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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한)

허황후(許皇后): 역사상 가장 멍청한 재녀황후(才女皇后)

by 중은우시 2013. 2. 4.

글: 조염(趙炎) 

 

중국역사상 재녀라고 칭할만한 황후는 많지 않다. 그러나 '멍청한' 황후는 적지 않다. 이 현실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소위 "여자무재편시덕(女子無才便是德)". 여자는 재주가 없는 것이 바로 덕이다. 글을 읽지 않다보니 자연히 재녀가 나오기 힘든 것이다. 글을 읽지 않다보니, '명청한' 여자들이 많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서를 읽어보면 문장에 뛰어난 황후는 있었는가? 있었다. 한성제(漢成帝)의 허황후가 바로 그 중의 하나이다.

 

한성제 유오(劉驁)는 아마 낯설지 않을 것이다.그는 바로 조비연(趙飛燕), 조합덕(趙哈德) 자매와 '한궁운사(漢宮韻事)'를 만든 장본인이다. 그러나 이 조씨자매가 입궁하기 전에, 요오는 여러 여인을 사랑했었다. 사료에 기록된 성과 이름이 기록된 사람만도 여러변이다. 허황후, 반첩여(班婕妤), 위첩여(衛婕妤), 그리고 왕미인(王美人)도 있다. 첩여, 미인의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쓰기로 하고 본문에서는 허황후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허황후의 방명은 아(娥)이다. 부친은 허가(許嘉)이다. 그는 대명이 자자한 허평군(許平君)의 친동생이다. 허평군은 바로 한선제의 황후이고, 한원제의 모친이다. 즉, 한성제의 친할머니이다.

 

손가락으로 배분을 꼽아보면 나는 정말 혼란스럽다. 허아는 한원제의 사촌여동생이다. 확실히 한성제의 오촌고모뻘이다. <한서>에 따르면, 한원제가 사촌여동생을 자신의 아들에게 시집보낸 것은 바로 죽은 모친인 공애후(恭哀后, 즉 허평군)를 그리워해서라는 것이다.

 

근친결혼이어서인지 허황후와 한성제 사이에 낳은 일남일녀는 모두 요절한다. 역사가들은 한원제를 "유인호유(柔仁好儒)"라고 하였다.

 

솔직히 말해서 필자는 3년간 문사류의 글을 써왔고, 스스로 괜찮게 쓴다고 자부심을 가졌다. 그러나 <한서>속에 기록된 허황후가 아무렇게나 썼다는 "소(疏)"를 읽은 후 나는 스스로 부끄러워졌다. 얼굴을 둘 곳이 없었다. 내가 무슨 문사학자인가 허황후야말로 그 자격이 충분하다.

 

이 "소"는 아주 길어서 천여자에 이른다. 문필이 아름답고 사료가 충실하고 인용과 고증이 잘 되어 있고, 분석에 조리가 있다. <한서>의 작자는 허황후를 이렇게 평가한다: "황후는 총명하고 사서를 잘알며, 비에서 황후에 오를 때까지 황상의 총애를 항상 받았다. 후궁이 황제를 뵙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하면 이상하다. 이렇게 재색을 겸비하고, 조카의 총애를 듬뿍받는 재녀황후를 왜 '멍청하다'고 할까.

 

그녀가 아무렇게나 썼다는 그 "소"를 보면 허황후는 분명히 적지 않은 책을 읽었음을 알 수 있고, 역사에 정통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역사를 귀감으로 삼고" "배운 것을 써먹는"데는 서툴렀다.

 

비교적 '멍청'하다고 생각되는 한가지 일은 바로 질투로 인하여 머리가 돌아버린 경우이다.

 

여자의 투기를 멍청하다고 할 수 있는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만일 그것도 멍청한 일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범위가 너무 넓어진다. 그러나 허황후의 투기는 다르다. 그녀는 재녀이다. 투기로 인하여 어떤 결과가 초래될 지를 잘 알 것이다. 당시 후궁의 태세는 아주 미묘했다. "황후의 총애는 날로 식어가고, 후궁들 중에서 새로 총애를 받는 여인들이 많아졌다." 한성제는 먼저 반첩여와 위첩여에게 정을 느끼고, 얼마후 사복을 입고 나갔다가 조씨자매를 거두어들인다.

 

역사를 잘 안다면, 허황후는 전조의 두태후 이야기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왜 두태후의 은인자중을 배우지 않았던가? 그녀는 언니인 허알(許謁)에게 호소한다. 허알도 보통내기가 아니다. 그녀는 여동생을 도우기 위하여 무고(巫蠱)를 익힌다.

 

무고가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 것인가. 한무제 말년의 그 무고지화는 수십만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았다. 교훈은 항상 피비린내가 난다. 다시 말해서, 임신한 후궁 왕미인을 저주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왜 대장군 왕봉(王鳳)까지 저주하는가. 왕봉은 당시 조정을 좌지우지하였고, 이목이 많았다. 네가 그를 건드리면 그것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 아닌가. 과연 사태는 금방 들통나고, 허알은 피살된다. 그리고 많은 무고한 사람들까지 죽임을 당한다. 허황후도 화를 면하지 못하여 폐위되고, 소태궁에 연금된다.

 

가장 멍청했던 또 한 가지 일은 거의 바보 수준이라고 할 만하다.

 

허황후의 또 다른 언니로 허미(許靡)가 있다. 허미는 남편인 한보(韓寶)가 죽은 후, 과부로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외로움을 참지 못하고, 왕태후의 조카이자 시중인 순우장(淳于長)과 바람이 나서 그의 정부이 되고, 나중에는 아예 순우장에게 시집가서 그의 첩실이 된다.

 

순우장이 어떤 사람인가? 그의 일생은 "탐(貪)"으로 요약된다. 권력을 탐하고, 권세를 탐하고, 여색을 탐하고, 재물을 탐했다. 그는 탐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동시에 그는 아주 총명하기 그지없는 인물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읽었고, 잘 이용했다. 아주 불행한 점은 허황후가 "동산재기"를 꿈꾼다는 것을 순우장에게 읽힌 것이다. 확실히 그녀는 언니 허미에게 배신당했다. 순우장이 이런 돈벌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그는 함정을 파서 허미에게 말한다: "나는 너의 동생을 도와서 말해줄 수 있고, 그녀가 좌황후(左皇后)가 되도록 해줄 수 있다. 그러나 작업하는데 돈이 든다." 허미는 이 일을 허황후에게 말한다. 허황후는 이를 진짜로 믿어서 많은 돈을 언네에게 건네주며 순우장에게 주라고 한다. 그리고 말했다: "그저 첩여만 되도 나는 만족한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한다.

 

순우장이 믿을만한 사람인지 여부는 불문하고,"좌황후"라는 직위는 황당무계하지 않은가. 한나라에 이런 선례가 있었는가? 없다. 허황후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속아서 돈을 손해본 것은 큰 일이 아니다. 그러나 몸가짐을 바르게 하지 못한 것은 크다. 기원전8년, 순우장은 인생의 내리막길을 걷는다. 왕망은 왕태후의 앞에서 순우장, 허미, 허황후간의 일을 고발하고, 왕태후는 다시 한성제에게 얘기해서, 한성제가 대노한다. 그 결과는 심각했다. 순우장은 낙양감옥에서 교사당하고, 허미 및 그의 가족은 광서 합포로 유배되며, 한성제는 정위 공광을 보내어 허황후에게 음독자결을 하도록 한다.

 

역사상 보기 드문 재녀황후가 이렇게 가장 멍청한 여인으로 전락하고 결국은 목숨까지 잃는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