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당문(唐文)
얼마전에 미국은 중국의 대외군사물자무역회사인 바오리(保利, Poly)집단을 제재한다고 발표했다. 바오리집단은 중국공산당 원로인 왕전(王震), 덩샤오핑(鄧小平) 가족의 이익을 대표하는 기구이다. 중공의 전원로 왕전과 덩샤오핑가족간의 정치 및 이익교환의 내막이 폭로된 후, 미국의 매체는 덩샤오핑가족의 영역이 부동산과 희토류에 걸쳐 있다고 폭로했다.
블룸버그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6.4"이후인 1990년, 중공중앙은 일찌기 고관자제들이 사업에 종사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는 명령을 내린 바 있다. 이 금지령은 태자당을 그다지 오래 붙잡아두지 못했다. 90년대 덩샤오핑이 도입한 일련의 경제개혁에서 태자당들은 기회를 잡는다. 그들은 신속히 발전사는 업종에 뛰어든다. 여기에는 부동산업이 포함된다.
덩샤오핑의 자녀인 덩롱(鄧榕)과 덩즈팡(鄧質方)은 가장 먼저 부동산업에 뛰어들었다. 심지어 1988년 정부에서 주택시장을 대규모로 상업화하기 이전에 이미 뛰어들었다. 덩롱은 부친을 따라 1992년 남순한 후 2년만에 홍콩으로 가서 선전의 부동산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헤드라인뉴스로 32층짜리 아파트의 한 채 가격이 24만달러에 달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회사기록을 보면 1990년대말 회사의 절반자산은 두 사람이 보유하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바로 등롱의 남동생의 며느리인 류샤오위안(劉小元)과 왕전의 손녀인 왕징징(王京京)이다.
덩샤오핑의 사위인 우젠창(吳建常)은 일찌기 국유유색금속기업의 고관이었다. 1993년에는 산하소속기업의 동사장이 되고, 회사는 홍콩에 상장한다. 우젠창은 중국유색금속공업총공사의 총경리, 야금부 부부장, 야금국 부국장, 중국강철공업협회 당위서기 및 부회장등 직위를 보유한 바 있다. 그는 동시에 오슬로에 상장한 진휘(金輝)선무운수의 명예동사장이고 장시동업(江西銅業)의 동사이다.
우젠창이 관리하는 이들 기업에 덩샤오핑의 또 다른 사위인 장홍(張宏)의 휘하에 있는 기업은 힘을 합쳐서 미국 General Moters에 희토류를 주로 공급하는 회사를 인수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희토류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다. 현재 많은 미국의 스마트폭탄, 풍력발전터빈, 하이브리드자동차에 필요한 희로류 광물은 모두 중국공급업체에서 온다.
덩샤오핑의 38살된 외손자 줘수오(卓遡)는 부친 우젠창이 뒤를 이어 금속업계에 뛰어들었다. 그가 이끄는 회사는 오스트레일리아 철광산의 지분을 사들였다. 명함을 보면, 줘수오는 이젠투자(易簡投資) 동사장이고, 중국과 홍콩의 회사기록을 보면 그가 이 회사에 관련되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회사인 진시자원(金西資源, GWR)의 2012년 재무제표를 보면, 2008년의 거래로 이젠투자는 160만주 즉 0.83%지분를 보유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의 리서치에 따르면, 제3대중 또 다른 구성원인 덩롱의 34살된 딸 줘웨(卓玥)은 현재 자선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2012년 11월, 그녀는 베이징에서 자선파티를 조직한 바 있다. 고관대작들이 흰색 BMW를 타고 참가했고, 차문에는 "BMW VIP Service"라고 적혀 있었다. 파티장 바깥의 로비에는 판매가격이 1만6천달러나 하는 스위스 HUBLOT손목시계를 팔고 있었고, 워렌 버핏의 아들인 피터와 영국총리 블레어도 파티에 참석했다.
시사평론가인 린바오화(林保華)는 이렇게 털어놓은 바 있다. 큰아들 덩푸팡(鄧樸方)은 일찌기 "강화(康華)"로 유명했고, 89년 민중운동의 목표가 된다. 이것도 덩샤오핑이 살기를 품게 된 원인중 하나이다. 그러나 둘째아들 덩즈팡은 부동산으로 형을 따라잡았다. 상해시정부는 싼 가격으로 그에게 홍차오지역의 황금주택지구의 땅을 불하해준다. 여기에 호옹의 청콩실업 및 수도강철공사의 저우베이팡(周北方)과 결합하여 홍콩에 상장회사인 서우장쓰팡(首長四方)을 만든다.
어린 딸 등롱은 군대에 편제되어 있지만 여전히 선전의 한 회사 동사장을 맡고, 덩샤오핑의 이름을 빌어 홍콩의 대부호들에게 건물을 프로모션한다. 덩롱의 남편은 해방군 총참모부 장비부 부장인 허핑(賀平)이다. 그는 군사물자무역에 종사하는 바오리집단의 부총경리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AK47기관총을 밀수하다가 압수당하는 바람에 장비부 부장의 관직은 잃게 된다. 경제분야에서 비교적 조용한 장홍, 덩난(鄧楠) 부부도 사업을 한다는 소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중 우젠창의 중국유색금속공사의 덕을 본 것도 있다.
큰 딸 덩린(鄧林)은 화가로서의 본모습을 넘어섰다. 최소한 그녀의 작품가격은 이미 덩샤오핑의 가격을 넘어섰다. 예를 들어, 홍콩의 2대부호가 86년말에 각각 50만과 60만홍콩달러로 그녀의 두 폭 그림을 매입했다. 그녀는 스스로 '대가'의 반열에 올랐다고 생각하여 곳곳을 다니며 화전을 연다. 홍콩, 타이완의 일부 사람들은 낯짝 두껍게 그녀를 치켜세워주고 있다. 목적은 당연히 덩샤오핑을 치켜세우는 것이고 약간의 시혜를 바라는 것이다.
우젠창은 덩린의 남편이다. 그의 중국유색금속총공사는 홍콩분공사를 만든다. 중국유색은 홍콩에 3개의 상장회사가 있다. 즉, 동팡유색집단, 동팡신위안집단, 인젠국제. 우젠창은 이 세 기업의 동사회 주석이다. 이 세 개회사는 단순히 '중국테마주'일 뿐아니라, "부마테마주'이다. 덩샤오핑의 생전에, 우젠창은 자주 홍콩에 갔고, 뉴스도 적지 않았다. 회사주가도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었다.
2월 11일, 북한의 핵실험때, 미국은 중국공산당 원로 완전의 아들인 왕쥔(王軍)과 덩샤오핑의 사위인 허핑(賀平)이 주도하는 중국공산당의 대외군사물자무역회사인 바오리집단을 제재한다고 선포하였다. 작년말, 미국의 불룸버그통신은 바오리집단은 중공원로 왕전, 덩샤오핑가족이익의 핵심기구라고 보도한 바 있다. 공개된 자료를 보면, 중공원로 왕전, 천윈(陳雲) 및 덩샤오핑가족은 모두 보시라이, 저우용캉 쿠데타사건에 관련되어 있었다.
해외중문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왕전의 아들이며 전 중신(中信, CITIC)집단 동사장 왕쥔은 왕리쥔 사건이후, 적극적으로 '보시라이구명'운동에 참여하여 중공고위층에 압력을 가하고, '보시라이문제를 정확히 처리해줄 것'을 요청했다. 보시라이가 낙마하기 전에, 그와 관계가 밀접했던 국가개발은행 동사장 천위안(陳元)은 보시라이의 '충칭모델'에 자금을 공개적으로 투입했었다. 천윈(陳雲, 천위안 부친)은 보이보(薄一波, 보시라이 부친)은 전쟁연대의 전우이다. 천윈의 손녀이자 천위안의 딸인 천샤오단(陳曉丹)은 한 때 보과과(薄瓜瓜, 보시라이 아들)와 연인관계였다.
2011년 10월 4일, 충칭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덩샤오핑의 동생이자 충칭시 전부시장인 덩컨(鄧墾)이 시위서기 보시라이에게 글을 써주었다. 충칭이 "자강불식(自强不息)"하고, "양수도요경(兩手都要硬)"하라고. 보시라이도 덩컨에 회신을 보낸다. 홍콩 <문회보> 전기자인 장웨이핑(姜維平)은 이렇게 지적했다. 덩컨은 분명히 스스로 나서서 보시라이에 서신을 써준 것이 아니라, 보시라이가 정교하게 기획하여 덩샤오핑 친지의 글을 받아서 자신의 위풍을 과시한 것이라고 하였다.
분석에 따르면, 덩컨과 보시라이의 관계에 대하여는 아직 더 관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덩컨은 확실히 보시라이에게 글을 써주었고, 현재보기에 관계가 애매하다. 덩컨은 보시라이와의 관계를 쉽계 선긋기 어려울 것이다.
작년 18대가 시작하기 전에, 중공정계의 혼란은 가중되었다. 어떤 소식에 따르면, 중국공산당은 3대 태자당 류위안(劉源), 왕쥔(王軍)과 보시라이의 동싱 보시청(薄熙成)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고, 이들 세 명은 보시라이사건에 관련이 있다고 하였다. 보도에 따르면 보시청은 이미 인신의 자유를 잃었으며, 왕쥔과 류위안은 제한적인 자유를 지니고 있지만 24시간 감시를 받고 있다고 하였다.
덩샤오핑가족일람
덩샤오핑은 3번 결혼했다. 첫번째 부인인 장시위안(張錫媛)은 난산으로 사망한다. 둘째부인 진웨이잉(金維映)은 이혼한다. 세째부인인 줘린(卓琳)과의 사이에 5명의 자녀를 둔다.
장녀 덩린: 중국미술협회 회원, 중국화연구원 화가, 동방미술교류회 회장
장남 덩푸팡: 현임 중국전국정협 부주석, 중국장애인연맹 제5기주석단 명예주석, 80년대후기에는 캉화(康華)회사의 책임자였음.
차녀 덩난: 전 과기부 부부장, 현 중국과학기술협회 서기처 제1서기, 상무부주석, 중공 제17기 중앙위원
삼녀 덩롱: 중국국제우호연락회 부회장, 중러우호화평및발전위원회 부주석
차남 덩즈팡: 셔우장쓰팡에 참여
사위 우젠창: 덩린의 남편. 중국강철공업협회 부회장, 당위서기, 진휘집단(홍콩) 명예주석
사위 장홍: 덩난의 남편, 중국과학원 과기개발국 국장
사위 허핑: 덩롱의 남편. 중국바오리집단공사 부동사장, 총경리, 총참모부 장비부부장 소장
손자: 덩샤오디(鄧小弟): 덩즈팡과 류샤오위안 사이에 1984년 미국유학시 태어났다. 미국국적. 덩샤오핑의 유일한 손자. 2008년 듀크대학 로스쿨에서 법학석사과장을 마친 후 미국뉴욕의 로펌에서 일하고 있음. 할머니의 성을 따라 탁(卓)으로 성을 바꿈. 영문이름은 David Zhuo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 > 역사인물 (등소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등소평이 1954년에 쓴 모택동찬양시 (0) | 2022.03.10 |
---|---|
모택동과 등소평의 모순 (0) | 2014.04.29 |
덩샤오핑(鄧小平)과 화궈펑(華國鋒)의 대결 (0) | 2011.12.28 |
등소평 일생의 세 부인 (0) | 2008.06.04 |
등소평은 왜 두번이나 개명하였는가? (0) | 2008.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