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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증시

동남융통(東南融通): 한 해외상장기업의 돌연사

by 중은우시 2013. 2. 4.

글: 21세기상업평론 

 

4개월 5일. 시가총액이 14억달러에 이르던 고이윤중국개념주가 한푼의 가치도 없고 악명이 자자한 재무조작자까지. 동남융통은 천당에서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한다. 137일, 의문이 제기된 때로부터 회사해체까지 이를 친히 겪은 사람이 말하는 역사는 기괴하다.  

 

2012년 12월, 베이징의 겨울은 이전보다 더욱 추웠다. 장밍(張明)이 베이징에 모습을 나타냈을 때 확실히 살이 빠져보였다. 살이빠진 원인은 모르겠지만,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 그는 창백해 보였다. 동남융통의 전 경영진으로서 그는 또 다른 여론의 촛점이 되고 있다.

 

2012년 12월 4일, SEC는 글로벌4대회계법인의 중국법인인 PwC중텐(普華永道中天), 딜로이트화용(德勤華永), KPMG화쩐(畢馬威華振), E&Y화밍(華明) 및 다화(大華)회계사무소를 제소했다. 소송에서 이 5개 회게법인은 SEC에 미국에 상장한 중국개념주의 사기투자자와 관련된 회계감사자료의 초고 및 관련문건의 제공을 거부하여 미국 <증권거래법> 및 <샤베인즈옥슬리법>에 위반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시작은 동남유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12년 5월, 딜로이트가 동남유통의 회계감사업무 초고를 제출하지 못하자 SEC는 딜로이트에 대하여 민사소송을 제기한다. 중국, 미국 쌍방이 관련된 회계감사문제의 이견이 이때부터 점점 에스컬레이트된다.

 

중미쌍방은 회계감사초고에 대하여 힘겨루기를 하고 있고, 영향을 받는 것은 장밍의 운명만이 아니고, 거기에는 4대회계법인 및 여러 중국개념주회사들이 있다. 최소한 딜로이트와 동남융통은 이미 하나로 묶여 있다. "만일 SEC의 최종심의결과에 동남융통이 재무상 문제가 없다면 딜로이트는 자연히 깨끗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재무상 조작을 했고, 사기에 관련된다면, 딜로이트도 관련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장밍의 말이다.

 

"과거 3개월, SEC는 우리에 대하여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2012년 12월 20일, 장밍은 독점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SEC는 여전히 동남융통을 제소할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그러나,그는 솔직히 인정한다: 동남융통은 2가지 방면의 징벌을 받았다. 첫째는 감독기관인 SEC가 원고주주들이 동남융통에 대하여 제기한 집단소송을 적극 지원하여 주주와 투자자에게 노력을 보여주려 하고 있고, 둘째는 집단소송에서 동남융통에 투자하였다가 대량의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도 소송을 제기하여 손해배상을 요구한다.

 

"사건발생후 우리는 회사성립10여년동안의 장부를 다시 거내서 뒤져보고 체크해보았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기 위해서이다." 장밍은 말한다. 현재 동남융통은 사람도 없고 건물도 비었고, 이들 장부를 정리하는 것은 SEC의 소송을 당했을 때 분명히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현재, 동남융통의 전CFO인 Derek Palashuk는 원고변호사와 화해협의를 진행중이다. 장밍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쌍방의 태세로 봐서 원고변호사는 데렉과 쉽게 화해하지 않을 것같다. "원고변호사는 반드시 데렉을 끌어들여 그를 법에 따라 제소하여 고액의 벌금을 받게 하려한다." 이전에 글로벌4대회계법인중 하나인 E&Y는 자한임업(嘉漢林業)이 재무조작건으로 원고주주에게 1.18억달러를 배상했다.

 

2012년 11월 14일, 미국연방법관은 동남유통의 주주가 딜로이트화용회계사무소에 대하여 낸 집단소송을 기각했다. 다만 딜로이트는 여전히 동남유통사건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현재 원고변호사가 제출한 증거에는 명확하게 딜로이트가 고의로 (재무조작을) 했거나 딜로이트가 가담했다거나 중대한 과실이 있다는 것이 나타나지 않는다." 장밍의 말이다. 이는 원고변호사가 새로운 증거를 수집하여 딜로이트에 다시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남유통에 대하여이건 딜로이트에 대하여이건 회계사의 업무초고는 관건이다. 그러나 중미양국의 법률환경차이로, SEC가 동남융통의 회계감사초고를 확보할 수 있을지는 불확정적이다.

 

2011년 5월 27일, SEC는 최초로 딜로이트에 요청서를 보낸다. 2011년 7월 8일일이전에 동남유통의 재무사기와 관련된 관련문서를 제출하라는 것이다; 2011년 9월 8일, 미국 SEC는 다시 한번 상하이딜로이트에 요청서를 보낸다. 이유는 그들이 동남유통사기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회계사무소가 적시에 관련문서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상하이딜로이트는 자신이 이 요청서를 접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일을 법원에 상소하여 SEC의 요구를 기각해달라고 요구했다." 장밍의 말이다.

 

딜로이트는 SEC에 회계감사초고를 제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중국법률 및 중국관리감독기관의 구체적인 규정에 따르면, 중국정부의 허가없이, 중국회계사무소는 직접 외국관리감독기관에 문건을 제공할 수 없다. 2010년이래, 딜로이트화용은 중국증권감독관리위원회와 미국증권감독위원회의 관련요구에 협조해왔다. 다만 중국증감회와 미국증감회는 미국증감회가 문던을 취득하는데 대하여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주목할 점은 이번 소송은 딜로이트화용이 관련문건을 제기하지 않은 것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고, 딜로이트화용의 회계감사서비스의 품질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딜로이트는 매체성명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중국개념주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인사에 따르면, "현재, 중국증감회가 SEC에 보낸 회신에서, 중국개념주회사들의 문건은 현재 수집중이고, 중국증감회는 많은 시간을 들여 이들 회사의 문건을 심사할 필요가 있다." SEC도 범위를 축소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 특정한 사람 혹은 거래에 대하여 협조요구를 제출하는 것이다. SEC와 상하이딜로이트의 소송은 아직 개정되지 않았지만, 관계가 미묘하여, 쌍방은 이미 이 일을 2013년 1월에 토론하기로 미뤄놓았다고 선포했다.

 

장밍은 말한다. 동남융통은 과거 8년(상장이전 포하)간 딜로이트가 회계감사를 해왔다. 만일 동남융통에 재무조작이 있었다면, 딜로이트가 그렇게 오랫동안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회계사가 책임을 제대로 다하지 않았거나, 업무수준이 낮거나, 아니면 딜로이트가 일부 사정에 참여하거나 묵인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일찌기 2004년, 딜로이트는 동남유통의 회계감사를 맡기 시작한다. 2011년 5월 딜로이트가 사임을 선언할 때까지 계속 맡았다. 그동안 동남융통은 2007년 미국뉴욕거래소에 IPO를 완성한다.

 

동남융통의 골치거리는 2011년 4월 26일 공매도기구인 Citron Research가 글을 발표하여 동남융통의 재무조작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부터이다.

 

동남융통의 2010년 재무제표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0년 재무년도까지의 총이윤은 각각 61.1%, 65.7%, 62.5%이다. 높은 총이윤율은 동남융통을 공매도하는 핵심 '지수'가 된다. Citron은 60-65%의 총이윤율은 원쓰신식, 하이휘소프트웨어등 해외상장된 동종업계보다 높고, 놀라울 정도의 이윤율은 의심할 만하다. 직원채용방식, 경영진배경, 경영진거래 및 회계감사분야의 의문도 줄줄이 제기했다.

 

2011년 5월 22일, 2010년 재무연도 제4분기보고서를 발표하기 하루전날, 딜로이트는 동남융통의 회계감사를 사임한다고 선언한다. 이 조치는 동남융통으로 하여금 '신용'을 상실하게 만들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 사직서신에서 딜로이트는 3가지 이유를 내놓았다: 첫째, 동남융통은 은행예금과 대출잔액과 관련된 재무정보가 허위이고, 판매수입도 관련될 수 있다. 둘째, 동남융통의 경영진의 일부 구성원은 고의로 딜로이트의 회계감사업무를 방해했다. 셋째, 불법으로 딜로이트의 회계감사문건을 압수하였다.

 

딜로이트가 시작힌 3가지 이유에 대하여 장밍은 말한다. "첫번째 이유, 사실진상은 SEC가 말하면 그만이다. 둘째, 셋째는 실제로 쌍방의 오해이다."

 

장밍은 회고한다. 사건발생시 그는 현장에 있지 않았다. "사후에 가서 알아보니, 당시 일부 회계감사와 무관한 문건을 딜로이트가 가져갔다. 동남융통의 인원은 관련 경영진에게 보여준 후에 결정해야한다고 했고, 딜로이트는 자신은 회계감사를 하는 것이므로 동남융통이 이렇게 하는 것은 정상적인 회계감사프로세스에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나중에 딜로이트는 그 자리에서 동남융통의 보안과 다툼을 벌였다. 회사규정에 따라 회사의 물건을 건물에서 가져나가려면 반출승인서가 있어야 했다."

 

딜로이트의 세번째 이유에 대하여 장밍은 이렇게 변명한다. "불법으로 딜로이트의 회계감사문건을 압수했다는 것은 더더욱 오해이다. 딜로이트가 말하는 '문건'은 당시 재무장부의 복사본이다. 예를 들어, 고객계약, 왕래한 장부내역 및 약간의 회계감사초안이다" 당시는 5월 중순이고, Citon의 공매도보고서가 나온 이후이므로 딜로이트에서는 비교적 긴장했고, 자잘한 일이라고 쉽게 작은 마찰이 크게 번질 수 있었다."

 

사후에, 장밍은 동남융통과 딜로이트의 분란에대하여 "공매도기구의 계모에 당했다"고 결론내렸다.

 

2011년 5월중순, 미국자본시장의 공매도기구는 이렇게 말한다. 동남융통은 제때 2010재무년도의 보고서를 내놓지 못한다. 정상적인 절차대로라면 2011년 7월-8월, 동남융통은 2010년 재무년도의 재무제표를 내놓으면 된다. Citron이 공매도한 시간점에서 동남융통은 5월 23일에 적시2010년 재무년도의 제4분기 재무제표를 내놓으면 되었다. 2010년재무년도의 재무제표를 내놓을 필요는 없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당시 CFO를 맡고있던 데릭에 심각한 실수를 했다고 본다. 자본시장에 대응하기 위하여 그는 딜로이트를 압박하여 2010년 재무년도 제4분기재무제표를 내놓는 동시에 2010년 재무년도의 연도재무제표도 발표하게 했다. 연도보고와 분기보고가 섞여있다보니, 현장이 혼란스러웠고, 딜로이트는 동시에 두 가지 일을 완성할 수가 없었다. 그외에 공매도 보고서가 이미 나와 있으므로, 딜로이트는 회계감사의 절차측면에서 이전보다 훨씬 엄격했다. 이전에, 일부문건은 30%를 샘플조사하면 되었다. 그때는 70%이상을 샘플조사했다." 딜로이트의 업무량이 배이상 증가되었다. 재무제표의 제작시간이 연장되고 재무제표발표연기의 가능성이 커졌다.

 

경험을 종합하면, 장밍은 지금 이렇게 생각한다. 공매도기구가 목표회사가 정상적으로 재무보고서를 내놓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회계감사에 압력을 가하기 위한 것이다. 회계사무소와 기업이 준비부족인 상황하에서, 분명히 갈등이 나타날 것이다. '예측'의 본질은 '혼란조성'에 있다.

 

"당초 상황을 안정시키면서 급히 연도보고서를 내려 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저 2010년 제4분기 재무제표만 내놓았으면 된다." 1년여전의 실수를 회상하면서 장밍은 안타까워한다.

 

장밍이 우울했던 것은 동남융통과 딜로이트간의 업무연락은 이전에 CFO인 데릭을 통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2011년 5월 19일이후 CFO를 사직하자, 회사와 딜로이트간의 의사소통은 더 이상 순조롭지 못했다.

 

딜로이트가 사임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듣고, 동남융통의 경영진은 동사장 쟈샤오공(賈曉工)에게 나서서 딜로이트의 고위층과 협의해줄 것을 요청한다. "동사장은 어쨌든 회사의 구체적인 운영과 업무에는 관여하지 않으므로 그에게 딜로이트와 협상하게 한 것은 경영징의 성의를 보이는 것이다. 또한 신용도 보이는 것이다." 면담자리에서 쟈샤오공은 딜로이트에게 동남융통의 회계감사를 사임하지 말알줄 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인원을 파견하여 회사에서 더욱 심도있는 회계감사를 진행하라고 했고, 동시에 딜로이트의 업무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딜로이트는 거절한다.

 

이상이 경위에 대하여 딜로이트 공관부에 사실확인을 요청했지만, 원고작성완료일까지 딜로이트에서는 아무런 대답이없어, 딜로이트로부터 확인하지는 못했다.

 

딜로이트가 회계감사를 사임한 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문건만 한무더기 남긴다.

 

"현재 되돌아보면, 동남융통은 공매도보고서에 대흥하면서, SEC, 투자자등 외부와 소통하는데 아주 엉망이었다. 실제로 우리는 대응할 많은 기회가 있었다." 예전을 되돌아보면, 장밍은 유감스러운 점이 많다.

 

2011년 4월 26일, Citron의 연구보고서가 나오자, 동남융통의 주가는 30%나 폭락한다. 그날 저녁 데렉은 투자자와의 회의에서 표시한다. "이 건에 대하여 노코멘트하겠다." 다음 날 주가는 계속하여 20.28% 폭락한다. "이것이 첫번째 중대한 실수였다. 4월 27일 저녁, 많은 투자자들이 전화를 해왔고 말한다. 처음에 바로 이 일에 대하여 해명했어야 했다. 노코멘트를 해서는 안되었다. 외부에서는 너에게 문제가 있다고 여기지 않겠느냐."

 

그래서, 4월 28일, 동남융통은 투자자에 대한 전화회의를 거행한다. 그리고 주식환매규모를 5천만달러에서 1억달러로 높인다. 그날 주가는 20%가 올랐다.

 

"그 때, 데렉은 카나다에 있었다. 회사의 여러 업무라인의 경영진은 이것(공매도)이 큰 일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모두 각자 맡은 업무를 하고 있었다." 장밍의 회고이다. 당시의 회사경영진은 업무토론때 이 일을 언급하자, 나는 자본시장은 잘 모르고, 투자자들과 의사소통하는 것은 데렉이 할 일이고 그가 지금 미국의 투자자들과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믿었다 주식가격이 이렇게 떨어졌으니 더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사실상, 경영진이 아무 대응도 하지 않은 배후에는 "늑대소년" 이야기가 있다. 일찌기 2010년 4월, Citron은 제1차 동남융통공매도보고서를 냈다. 그후 연속 4분기동안 동남융통이 분기재무제표를 발표하기 20일가량 이전에, Citron은 공매도보고서를 내놓았다. 동남융통은 재무제표발표하기 이전의 '침묵기'이어서 대응할 수가 없었다. 그 몇번은 모두 그냥 지나갔다. CRO인 데렉은 동남융통의 경영진에 심각하게 생각할 것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CEO인 렌웨이저우(連偉舟)를 포함한 경영진은 Citron의 공매도보고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은 것이다.

 

동남융통의 경영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외부의 의심하는 분위기가 날로 짙어가는 줄. 동남융통의 장기간 침묵에 대하여 한 미국주식투자를 책임지는 기금파트너는 이렇게 말했다: "Citron의 공매도보고서가 발표된 후, 주요한 의문점은 총이윤문제였다. 동남융통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이는 투자권내에서 동남융통에 대한 신뢰를 잃게 만들었다."

 

장밍에 따르면, 데렉은 일찌기 동남융통의 경영진에 말한 바 있다. 그에게 변호사, 투자자, 회계사와의 접촉에 대한 전권을 주고, 다른 경영진은 계속 업무를 하고, 주문을 받고, 고객서비스를 하면 된다고. "이것은 동남융통 경영진의 두번째 중대한 실수이다. CFO 이외에도. 경영진에서 외부와 자신의 의사소통매커니즘을 만들었어야 했다."

 

2011년 5월 9일, Citron Research는 다시 한번 글을 발표하여 동남융통의 인력자원관리상 문제가 존재한다고 한다. OLP Global이라는 연구기구도 엽살행렬에 가담한다. 동남융통의 주가는 다시 8.26%가 하락한다. 다음 날, 동남융통은 OLP Global과 Citron이 발표한 연구보고서에 대응을 하고 반박을 한다. 자신은 이미 "외부에서 앞다투어 업무와 재무의 완전성에 대하여 공격받는 대상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동남융통이 외부에 자신의 결백을 밝히려는 마지막 실질적 노력이었다.

 

장밍등 동남융통의 경영진이 손도 쓰지 못하고 당한 것은 2011년 5월 17일, 데렉이 동남융통 동사회 혹은 회사회계감사위원회의 수권도 없이, 임의로 뉴욕거래소에 거래정지를 통지한 것이다. 거래정지된 다음 날인 2011년 5월 19일, CFO 데렉은 사임서를 재빨리 제출한다. "동사회 및 회계감사위원회는 일찌기 회의에서 데렉이 거래정지를 한 이유를 물었다. 그는 해명하지 못했다. 그는 생각을 이미 굳혔고, 고치기 어려웠다. 게다가 이미 여러가지 실수를 저질러 더 이상 CFO를 하는게 부적합했다. 회사동사회는 데렉의 사임을 받아들인다." 장밍의 말이다.

 

데렉이 회사의 모든 재무업무에 전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회계장부와 보고, 중국회계장부와 보고 및 일상재무운영과 자금은 데렉의 전격사임후, 재무센터의 인원도 대량으로 이직하여 동남융통의 재무운영이 완전히 마비되어 버린다. 하마터면 그 달의 세무보고서도 내지 못할 뻔하였다. 데렉의 사직은 동남융통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져온다. 그때이후 동남융통은 외부투자자와의 연락이 완전히 끊겨버린다.

 

2011년 5월 17일의 거래정지에 이어 CFO, 딜로이트가 차례로 사임한다. 동남융통의 경영진은 "모르면 용감한" 상태에서 "알수없는 불안감"에 떨게 된다. 이 시가총액이 10억위안을 넘어갔던 회사는 신속히 붕괴한다.

 

거래정지부터 2011년 6월상순까지 거의 1달의 시간동안 경영진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회사 CEO 렌웨이저우는 1개월간 5킬로그램이 빠진다. 나중에 다시 회복되지도 않았다." 장밍의 말이다. 그리고 많은 투자자들이 건의했다. 동남융통이 신속히 로드쇼를 하여 투자자, 회계사, 애널리스트를 초청해서 동남융통의 매부를 조사하도록 해야 한다고. 그러나, SEC로부터 퇴출당하여 Pink Sheet시장으로 물러날 때까지 동남융통은 로드쇼를 하지 못한다.

 

2011년 7월 5일 동남융통은 선포한다. 회사의 사외이사 겸 회계감사위원회 주석인 Thomas Gurnee, 사외이사 겸 회계감사위원회 위원인 Zuyun Xue 및 Yifeng Shen의 3명이 7월 1일 사임서를 제출했다. 동남융통이 자본시장에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최후의 기회마저 상실했다.

 

2011년 8월 17일, 동남융통은 정식으로 Pink Sheet 시장으로물러난다. 그날의 종가는 0.78달러였다. 거래정지전의 종가와 비교하면 95.9%가 하락했고, 시가총액은 9.4억달러가 날아갔다.

 

모든 것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렌웨이저우등 경영진은 자구의 한줄기 희망을 품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도미노패가 쓰러지면서 동남융통은 해체로 간다.

 

이 도미노패는 Citron도 아니고 딜로이트도 아니고 심지어 SEC도 아니다. 그것은 동남융통의 고객들인 금융기관들이었다.

 

장밍의 회고에 따르면, 동남융통이 공매도를 당할 때, 당시 회사가 즉시 움직일 수 있는 현금은 많지 않았다. 미수금이 10억위안이상이었다. 동남융통이 자본시장에서 공격을 받고 있다는 말이 돌자 은행, 보험등 '돈많은' 고객은 적시에 대금을 지급하지 않았을 뿐아니라, 오히려 적지 않은 고객이 회사리스크가 크다고 보고 대금지급을 계속 미루었다.

 

2011년 5월에서 2011년 6월까지 동남융통이 회수한 미지급금은 1억여위안이다.그후 7월, 8월에 동남융통은 기본적으로 대금을 회수하지 못한다. 장밍에 따르면, 그해 6월, 동남융통의 장부상 실질적으로 움릭일 수 있는 돈은 3억위안에 미치지 못하는 현금뿐이었다. 그러나 동남융통의 직원은 8000명에 달하고 매월 직원급여, 실비정산 및 일상운영비용지출이 1억위안에 달했다.

 

그러나, 기자가 동남융통의 2011년 1월 31일자 제3분기 재무제표를 살펴보니, 그 재무제표에는 2010년 12월 31일까지 회사는 4.23억달러의 현금과 현금등가물을 가지고 있다고 되어 있다. 상식으로 추측해보면, 만일 동남융통의 재무제표가 사실이라면 현금에서 이렇게 부족함을 호소할 리가 없는 것이다.

 

2011년 6월중순이후, 렌웨이저우는 더 이상 시간과 정력을 들여 동남융동의 결백을 호소하려 들지 않았다. 그가 찾아다닌 것은 동남융통을 구할 방안이었다. 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돈이었다. 화웨이, 커라이트등 기구와 모두 깊이 접촉했다. 유감스럽게도, 당시 투자기금이건 IT업계의 동종업체이건 모두 동남융통은 이미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고 인식했다는 것이다. 만일 재무제표 수치조차 믿을 수 없다면, 투자 나 인수의 리스크는 너무나 큰 것이다. 그래서 결국 모두 흐지부지되고 만다.

 

현금은 금방 소진된다. 경쟁상대방은 속속 고객을 빼내갔다. 2011년 8월이 되자 동남융통은 해체된다. 8000명 직원과 고객은 모조리 '흩어져 버린다' 각각 원쓰, 하이휘, 롼통동력, 랑차오, 커라이트등 IT소프트웨어회사로 흡수된다. 이때부터 동남융통은 "수도호손산(樹倒猢狲散)" 나무가 쓰러지니 그 안에 살던 원숭이도 흩어진다는 꼴이었다.

 

2011년 8월 31일 동남융통은 정식으로 해체된다. 이때는 Citron의 보고서가 나온지 4개월 5일째 되는 날이었다.

 

1개월후에 거래정지되고, 3개월내에 Pink Sheet시장으로 쫓겨나고, 4개월후에 회사해체가 된다. 동남융통은 중국개념주폭풍 속에서 공매도기구의 최대전리품이 된다. 중국금융IT서비스업의 선두기업은 이렇게 소리소문없이 사라진다. 수십억위안의 시가총액은 먼지가 되어 흩어진다. 2007년 10월 24일 미국 뉴욕거래소에 상장된 후, 동남융통의 주가는 최고 42.85달러 시가총액 24억달러에 달한 적도 있다.

 

2012년초, 동남융통의 경영진이 다수 이직한다. 2012년 10월하순, 동남융통 CEO렌웨이저우도 계약기간만료로 정식으로 물러난다. 동남융통의 경영진은 이미 더 이상 이름을 걸고 있지 않지만, 모두 사후처리를 하고 있다. 2012년 10월, 동남융통은 여전히 상당한 금액의 미수금을 아직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장밍은 생각한다. 만일 동남융통이 외부와 적시에 소통하고 조치를 잘했더라면, 비극은 아마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다만 더 많은 사람들은 믿는다. 이것은 신용이 결핍된 것으로 인하여 당연히 받아야할 보응이라고.

 

당시 딜로이트가 동남융통을 회계감사하면서 열람하고 남긴 문건은 현재 이미 묶여지고 봉해져서 사무실에 놓여 있다. 동남융통 회계감사위원회가 선임한 변호사는 이미 이들 문건을 모두 복사하여 한번 살펴보았다. 문건의 보존은 회사변호사의 입회하에 이루어졌다.

 

"이들 법률문건은 우리가 '보명부(保命符)'로 남겨둔 것이다." 장밍의 말이다.

 

* 장밍은 본인의 요청에 의하여 가명을 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