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인민망
태양신조 금장식은 중국문화유산의 표지이고, 중화민족이 광명을 추구하고, 분발상승하는 정신풍모를 상징한다. 태양신조 금장식은 선저우(神舟)6호가 우주를 비행하면서, 중화민족이 신조와 같다는 것을 상징하고 수천년 비천몽을 실현했다.
태양신조 도안은 인류초기의 소박한 세계관과 우주관을 보여준다. 햇볕은 생명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숭배한 신이 된다. 중국의 원주민은 태양과 하늘을 나르는 신조를 하나로 연결시켜, 신조가 태양을 등에 업고 비행한다고 생각했다. 태양신조는 고촉인(古蜀人)의 초기부락의 토템이었다. 신조요일(神鳥繞日)을 중국 선주민의 태양을 향한 마음과 광명을 숭상하는 하늘을 나는 꿈을 나타낸다.
고궁박물원의 금은기 전문가인 딩멍제(丁孟介)는 이렇게 말한다. 고촉부락은 중국에서 최초로 황금을 채굴하고 사용한 부족중 하나이다. 일찌기 3천년전에 그들은 사금가공기술을 익혔다. 태양신조 금장식은 바로 자연사금을 가공해서 만든 것이다. 먼저 자연사금을 열로 단조하고, 그후에 반복하여 두드려서 종이장처럼 얇은 금박을 만든다. 다시 도안을 그리고, 누공조각(鏤空雕刻)한다. 공예가 뛰어난 태양신조 금장식은 삼천여년전의 중국선주민의 사상과 지혜를 충분히 나타내고 있다.
3천년전의 금박이 종잇장처럼 얇다.
태양신조 금장식의 출토과정은 우연했다. 2001년 2월 8일, 청두(成都) 부근의 금사촌(金砂村)의 관도시공과정에서 동기, 석기등 문화재를 발굴한다. 고고학자들이 즉시 문화재구조작업을 진행한다. 파내어 부서진 진흙 속에서 융단식 수색을 실시한다. 25일 오전, 직경 10센티미터의 작은 진흙덩이에서 자그마한 금조각을 드러낸다. 햇볕아래서 아주 빛이 났다. 고고학자들은 대나무조각과 페인트솔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진흑의 외부층을 벗겨냈다. 진흙속에 하나로 엉켜있던 태양신조 금장식이 이렇게 세상빛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금박의 외곽은 원형이고 도안은 내외 양층을 되도 있다. 모두 누공(鏤空)의 방식으로 만들었다. 내층의 도안은 등거리로 분포한 십이망태양문(十二芒太陽紋)이시계방향으로 퍼진다. 외층 도안은 4마리의 등거리를 두고 분포한 같은 모양의 새(鳥)로 구성되어 있다. 새는 모두 목을 빼고 다리를 뻗었다. 시계반대방향으로 날아간다. 전체적으로 보면, 내층도안은 돌아가는 태양과 같고, 외층의 새는 신화전설 속의 태양과 관련있는 신조를 연상시킨다. 이에 따라 관련전문가들은 이를 '태양신조" 금장식이라고 명명한다.
태양신조 금장식이 출토된 금사유적지는 지금으로부터 3천여년전인 개략 기원전1200년에서 기원전650년가지의 상나라 말기 및 서주 초기에 삼성퇴(三星堆)문명이 쇠락한 후 또 다른 고촉국도읍의 소재지였다. 고촉인은 청강대고원의 고강족(古羌族)의 지파이다. 기원전 5세기를 전후하여 동남으로 이주했다. 그들은 청두평원에 규모가 큰 초기도시를 건설한다. 도시의 주위에서 농업경작을 한다. 뛰어난 지리적 조건과 비옥한 토양, 풍부한 광물로 황하유역과는 크게 다른 문화를 잉태한다. 고촉인의 높게 추모양으로 만든 머리모양, 옷을 왼쪽으로 여미는 것, 소매가 좁은 것, 등부분이 앞부분보다 긴 것은 꼬리를 길게 늘어뜨린 것과 같다. 그들은 삼족도화(三足陶盉)에 고기와 음식을 넣어서 끓였고, 병모양의 도자기잔에 술을 담았다. 그리고 패각을 법정화폐로 하여 매매를 했다.
고촉인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황금을 채굴 사용한 고대부족중 하나이다. 당시 중국의 북방, 중원지구에는 이미 금기(金器)가 출현했다. 그러나 출토수량이 아주 적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모두 장식용의 금잎이나 금조각이었다. 금사유적지에서 출토된 황금제품의 총수는 200개가 넘는다. 그 제작기법도 동시대의 다른 지역보다 뛰어났고, 모양도 금면구, 금허리띠, 원형금박, 나팔형금장식등이 있어 도안이 궤이하고, 중원문화와는 다른 독특한 풍격을 나타냈다.
가장 감탄스러운 것은 태양신조 금장식이다. 무게 20그램, 바깥직격 12.5센티미터, 안직경 5.29센티미터이고, 두께는 0.02센티미터이다. 복사지와 비슷한 크기이다. 그리고 자연사금으로 만들었고 금합유량이 94.2%이다. 이렇게 정교한 공예는 오늘날이라고 하더라도 달성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분석에 따르면, 태양신조 금장식을 제작하는데 먼저 자연사금을 열단조로 원형으로 만들다. 반복하여 두들겨서 금박의 두께를 기본적으로 일치시킨다. 그후에 바깥의 불균등한 부분을 잘라버린다. 이렇게 하여 비교적 표준적인 원형으로 만든다. 마지막으로 원형의 금박편의 표면에 태양과 4마리 새를 그린다. 다시 이미 그린 문양에 따라 파낸다. 금박이 매우 얇으므로, 가장자리는 말아둔다. 조각이 완성된후 다시 말아올린 부분을 차례로 펼친다. 전체 과정은 최소한 열단조, 두드리기, 잘라내기, 다듬기, 파내기등의 공예가 사용된다. 이를 보면 당시 고촉국의 수공업이 세부적으로 분업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일숭배(鳥日崇拜): 선주민의 소박한 우주관
태양신조 금장식의 도안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는 <산해경>의 태양신 제준(帝俊)에 관한 기록에 근거하여, 회전하는 불덩이는 태양신으로 보고, 그것을 둘러싼 4마리 새는 태양신의 4명의 사자라고 본다. 동서남북의 네 방향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회저하는 불덩이는 태양이고, 4마리 새는 태양을 업고 하늘을 운행하는 신조라고 본다. 이 도안에서 나타내는 것은 "금오부일(金烏負日)"의 중국고대 신화전설이다. 전설에 따르면 중국고대에는 하늘에 10개의 태양이 있었고, 제준과 희화가 낳았다. 그들은 동방 탕곡의 부상나무 위에 살았는데, 태양이 금오가 등에 지고 한 마리가 돌아온 후에 다른 한마리가 이어서 나간다. 매일 돌아가면서 동방의 부상(扶桑)에서 서방의 약목(若木)으로 날아간다.
조일신화의 출현은 선주민들의 해가 뜨고 해가지는 등의 우주법칙에 대한 관찰과 느낌을 말해준다. 우주에 대한 탐색에서 자신만의 이해를 갖게 된 것이다.
고촉인은 새를 숭배하는 신앙이 있었다. 금사유적지는 제3대 촉왕 어부(魚鳧)의 통치후기이다. 어부는 동시에 수조어응(水鳥魚鷹, 가마우지)의 엣명칭이기도 하다. 태양신조 금장식의 신조는 길다란 목과 날카로운 부리가 있어서 어부와 비슷하다. 대체로 고촉인이 청두평원으로 이주해올 때 수환으로 청두평원은 늪지대였을 것이다. 촉인은 많은 가마우지를 길러서 물고기를 잡았을 것이다. 오래 되다보니 가마우지 토템이 '신조'가 되었다.
그러나 딩멍제선생은 특별히 지적한다. 조일숭배는 고촉에서만 유행한 것이 아니다. 저장 하모도(河姆渡)에서 출토된 "쌍조봉일"등 문양이나, 한나라때의 벽돌에서 발견된 태양형상도 새 한마리가 둥근 해를 등에 업고 나는 형상을 띄고 있다. 호남 장사 마왕퇴 한묘에서 출토된 백화(帛畵)에소 금오의 태양이 그려져 있다. 이는 고축문화가 비록 황하유역과 서로 다른 문화적 특징을 나타내지만, 화하문명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중화문명의 다원기원의 중요한 원천중 하나이다.
고촉인 자신은 문헌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서한(西漢) 사학자는 8글자로 그들을 묘사한다: 불효문자미유예악(不曉文字, 未有禮樂, 문자를 모르고 예약이 없다). 시인 이백도 일찌기 탄식한 바 있다. 잠총급어부(蠶叢及魚鳧), 개국하망연(開國何茫然). 잠총과 어부는 고촉국의 왕의 이름인데, 그들이 언제 개국했는지는 알 수가 없구나. 그러나, 고촉문명은 하모도, 하락등등문화유적과 마찬가지로 중화문명공동의 유산이다. 2005년 8월 16일, 태양신조는 998건의 중국문화보호표지설계작품중 두드러져서 중국문화유산표지로 당선된다.
2005년 10월 12일에서 17일가지, 태양신조 금장식의 촉수(蜀繡)제품이 선저우6호 우주선에 탑재되어 우주를 유영한 후 지구로 귀환했다. 3천년전, 고대인들이 우주를 날고 싶어했던 아름다운 꿈을 태양신조에 의탁했는데, 지금 태양신조의 비천몽은 '선저우6호'를 통하여 실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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