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오한운(吳閑雲)
중국은 고대에 "구주"라 칭해졌다. 그렇다면 구주는 어디어디인가? 역대이래로 서로 견해가 달랐고, 정설은 없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르게 나누었기 때문이다.
주류는 대체로 아래의 몇 가지 견해이다:
<상서.우공>: 기주(冀州), 곤주(衮州), 청주(靑州), 서주(徐州), 양주(揚州), 형주(荊州), 예주(豫州), 양주(梁州), 옹주(雍州)
<이아.석지>: 기주(冀州), 곤주(衮州), 서주(徐州), 양주(揚州), 형주(荊州), 예주(豫州), 옹주(雍州), 유주(幽州), 영주(營州)
<주례.직방>: 기주(冀州), 곤주(衮州), 청주(靑州), 양주(揚州), 형주(荊州), 예주(豫州), 옹주(雍州), 유주(幽州),병주(幷州)
이외에도 여러가지 견해가 있다.
고대문헌에 서로 다른 기록이 있는데 도대체 어느 것이 정확한 것인가?
오늘날 이를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얘기한다: <상서>에 쓰인 것은 하(夏)왕조의 구주이고, <이아>에 기록된 것은 상(商)왕조의 구주이며, <주례>에 기록된 것은 주(周)왕조의 구주이다. 이는 소위 "삼대구주(三代九州)"라는 말이다.
만일 이렇게 이해한다면, 그것은 단지 행정구역이라는 의미의 구주이다. 천연지리적인 진면목은 아닌 것이다.
중국은 왜 구주로 불리웠을까? 도대체 어느 구주일까? 이 모든 것의 근원을 거슬러올라가면 우리는 역시 왕조이전의 대우치수(大禹治水)부터 얘기해야 한다.
일찌기 4천여년전에 중화대지에 홍수가 잦았고, 우는 명을 받들어 치수사업을 벌인다. 그는 "치수는 반드시 물의 성질을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 물은 아래로 향한다. 높은 곳은 뚫어서 통하게 하고, 낮은 곳은 잘 이끌어주어야 한다" 는 치수이념을 가지고, 하도를 소통시켜 홍수가 빠르게 통과하여 최종적으로 바다로 나가도록 하였다.
당연히 치수는 대우 한 사람이 한 것은 아니다. 반드시 연해 각 씨족부락수령들의 지지와 협조하에서 진행될 수 있었다. 그래서 하부락의 대우는 모든 부락연맹의 총지휘자가 되고, 공동으로 수재에 대응하였던 것이다.
13년의 노력을 거쳐, 큰물은 모두 하류로 흘러가서 바다로 들어가게 되었다. 강물은 잘 흘렀고, 중화대지는 "구주"가 형성되었다.
"주"는 글자형태로 보아서, 하류가 돌아가는 높은 지역, 산구릉을 말한다. <설문>에는 "물의 가운데 살 수 있는 곳을 주(州)라 한다." 이를 보면 최초의 뜻은 행정구역과는 무관하고, 천연적인 지형모습을 가리킨 것이다.
모든 "주"는 수면보다 높아서 사람이 살 수 있는 육지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육지는 모두 9개이다. 그래서 구주라 부른 것이다.
그렇다면, 이 구주는 도대체 어떤 9개의 땅덩어리인가?
정전제(井田制)의 구궁격(九宮格)을 보자. 가로로 두 개의 선이 있고, 세로로 두개의 선이 있다. 그리하여 하나의 "정(井)"자를 만들 수 있다. 이 정자는 바로 토지 하나를 9개로 나누는 것이다.
고대 중국은 바로 대형의 정전제 구궁격이었다. 가로의 두 개이 선은 바로 황하와 장강이다. 이 두 강의 상류, 중류, 하류의 임계점이 바로 세로의 두 개 선이다. 이렇게 하면 9개의 땅덩어리로 나눌 수 있다.
북방의 3개 땅덩어리는:
상류: 나중에 양주(凉州)라 칭하는 지금의 감숙성 일대이다.
중류: 나중의 병주라 칭하는 산서, 하북일대이다. 춘추시대 진(晋)나라가 이 곳에서 패자로 군림한다.
하류: 유주. 지금의 하북성 이북 옛 연(燕)나라이다.
남방의 3개 땅덩어리는
상류: 나중의 익주(益州). 지금의 사천. 옛 파촉(巴蜀)의 땅이다.
중류: 옛 형주. 지금의ㅣ 호북, 호남일대. 춘추시대 초(楚)나라가 이곳에서 패자로 군림한다.
하류: 양주. 지금의 강소,절강 일대. 춘추시대, 오, 월이 이곳에서 패자로 군림한다.
황하와 장강의 가운데 있는 3개의 땅덩어리는
상류: 옹주. 지금의 섬서일대. 춘추시대 진(秦)나라가 서쪽의 패자로 군림한다.
중류: 예주. 중주(中州)라고도 불리며 지금의 하남이다. 위에서 아래로 가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건 항상 중간에 위치한다. 그래서 중원(中原)이라고 불린다.
하류: 나중의 청주. 태산의 동쪽. 촌추시대 제(齊)나라가 이곳에서 패자로 군림한다.
그러므로, 원래의 중국에서 중(中)은 황하, 장강의 가운데를 가리키는 말이다. 지구의 한가운데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이것이 바로 중국이 중국이라 불리우는 이유이다. 고대중국의 구주는 실제로 황하장강연안의 9개 대륙땅덩어리를 의미한다: 양주, 병주, 유주, 옹주, 중주(예주), 청주, 익주, 형주, 양주
어떤 명칭은 나중에 형성된 것이나, 여기서는 편의적으로 서술한다. 이런 구분방법은 행정구역과 다르다. 그것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산하를 경계로 하기 때문이다. 이는 원래의 지형모습에 더욱 가깝다.
구주는 바로 거대한 정전제의 구궁격이다. 천자가 가운데 있고, 팔방에서 조공을 바친다.
중국역사상 첫번째 조공은 대우가 부락연맹의 수령으로 추대된 후, 각 지역의 소부락수령들이 속속 각 주의 청동(靑銅)을 바친 것이다. 대우는 이렇게 진공받은 청동으로 구정(九鼎)을 주조한다.
<춘추.좌전>에는 구정의 주조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다:
대우는 천하를 구주로 나누었다. 하왕조 초기, 하계(夏啓, 대우의 아들. 하왕조의 첫번째 왕)는 구주목(九州牧)에게 청동을 바치라고 명하여 구정을 만든다. 먼저 사람을 보내어 각주의 명산대천, 명승지, 기이한 물건을 그림으로 그려 도책으로 만들고, 그 후에 잘 선발한 기술자를 보내어 이들 그림을 구정에 새겼다. 정 하나는 하나의 주를 의미한다. 새긴 도형은 각 주의 산천명승지를 나타낸다.
이때부터 구정은 구주를 상징하고, 하왕은 '천명'에 순응하여, 천하의 공주(共主)가 된다. 구주는 중국의 대명사가 되었고, 구주는 왕권이 지고무상, 국가통일의 전국보기(傳國寶器)가 된다. 천자만이 대대로 물려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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