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정치/중국의 정치 중공군사위 부주석 선임배경 by 중은우시 2012. 11. 25. 글: 중족보(仲足步) 중공 17기 7중전회가 끝나면서 2명의 군사위 부주석명단을 발표했다. 그리고 회의전에 군사위의 4총부(總部) 및 병종(兵種), 7대군구의 정직(正職)을 조정했다. 이는 다시 한번 후진타오의 군대에 대한 실제통제능력이 전임자 장쩌민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고당권의 교체전에 군사분야를 이렇게 빈번하게 교체한 것, 특히 일거에 군사위부주석을 2명이나 승진시킨 것은 사상유례없는 일이었다. 새로 선임된 두 명의 군사위부주석 중에서 쉬치량(許其亮)은 부주석으로 승진하는데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5년동안 중앙군사위 위원으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7기 7중전회전에 공군사령관의 직에서 물러났는데, 이는 일종의 준비상황이었다. 판창롱(範長龍)이 부주석으로 승진한하고, 서열이 쉬치량보다 앞서는 것은 파격적 발탁이다. 첫째, 판창롱은 지난(濟南)군구사령관이지만 군사위위원은 아니었다. 이번의 승진은 군사위위원이라는 자격을 한단계 뛰어넘은 것이다. 둘째, 판창롱은 연령이 많은 편이다. 1947년 5월생으로 이미 만65세가 넘었다. 퇴임하는 두 군사위부주석인 궈보슝(郭伯雄)은 2002년에 승진하였을 때 나이가 60세였고, 쉬차이허우(徐才厚)가 2004년에 승진할 때 나이는 61세였다. 연령으로 따지면, 판창롱의 군사위부주석직은 단지 1기만 재임할 수 있고, 19대이전에 물러나야 한다. 뒤를 이어 부주석에 오를 후보로는 장양(張陽)과 팡펑휘(房峰輝)가 유력하다. 비교하자면 장양의 가능성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정상적으로 승진한 쉬치량(1950년 3월생)도 군사위부주석에 승진한 연령(금년 만 62세)은 궈보슝이나 쉬차이허우의 승진당시보다 연령이 많다. 이런 조치는 후진차오가 최근에 추진한 군대간부의 연경화(年輕化)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첫째, 판창롱은 지난군구의 업무를 잘 알고 있고, 이 군구의 주요임무는 북해함대와 함께 대일방어 및 대일 국부전을 책임지는 것이다. 둘째, 판창롱, 쉬치량 두 사람은 모두 평민출신으로, 계속 세력을 확장하던 장하이양(張海陽), 류위안(劉源)보다 부리기 좋다. 후진타오의 정치적 지시를 잘 따르고, 또한 혁명2세대(紅二代)처럼 시진핑에 대하여 말로는 따르지만 마음 속으로는 불복하지 않을 것이다. 장하이양과 류위안은 일찌감치 군사위 부주석의 후보로 거론되었다. 최소한 두 사람중 한 사람은 올라갈 것으로 보았다. 특히 장하이양은 월남전쟁에 참전한 실전경험도 있다. 이는 군내 고위장군들 중에서 보기 드문 경우이다(또 한 명은 신임 란저우군구사령관인 류웨쥔(劉粵軍)으로 중장계급이다). 다만, 장하이양은 보시라이와의 개인적인 관련이 너무 깊고 그 자신의 현재 직위는 총사령부의 정위(政委)로 판창롱이 지난군구사령관을 맡고 있는 것처럼 '천시(天時)'의 우세가 없다. 새로 총정치부 정직에 오른 장양이나 총참모부 정직에 오른 팡펑휘같은 '지리(地利)'도 없다. 확실히 구체적인 업무방면에서 군사위의 최고지도층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후진타오는 역시 연경화와 전문화에 신경을 썼다. 그러므로, 장양, 팡펑휘 내지 류웨쥔이 신속히 승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교하자면, 류위안은 전문적인 장점이 없다. 비록 류위안은 상장의 계급을 지니고 있고, "50년대생"이지만, 현임 직위는 해방군 총후근부이 정위(政委)이지, 총부의 정직이 아니다. 군사경력이 불완전하다. 군사경력은 지방에서 무경으로 다시 무경에서 군대로 왔기 때문이다. 저명한 매파인물인 마샤오텐(馬曉天)이 부참모장에서 공군사령관으로 간 것은 과도적인 성격이 짙다. 절대로 매파가 흥성하는 표지는 아니다. 왜냐하면 마샤오텐의 나이는 1949년 8월생으로, 전임자인 쉬치량보다 반년이나 많다. 바꾸어 말하자면, 마샤오텐은 이미 더 이상 발전할 여지가 없다. 그저 하나의 병종을 지킬 뿐이다. 그리고 그가 겸임하는 중앙외사공작(및 국가안전)영도소조 구성원이라는 중직은 신임 부참모장인 치젠궈(戚建國)이 승계할 것이다. 장양은 중공19대이전에 군사위부주석에 승진할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첫째, 총정치부의 직책은 그 자체로 정치사상공작을 하는 것이며, 상술한 '지리'적 우세가 있다. 둘째, 쉬차이허우의 선례가 있다. 2004년 쉬차이허우는 군사위위원에서 군사위부주석으로 승진하였는데, 바로 총정치부의 정직에 있었다. 이번에 장양이 광저우군구 정위에서 총정치부 주임으로 승진한 것이든, 쉬차이허우의 노선을 따라 직위를 승계하고 사임한 판창롱이든 모두 '인화'의 자본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공청단의 인원 후진타오의 심복인 왕양과 가깝다. 2008년 구정운송때, 남방에서 빙설의 재해가 있었다. 왕양이 정치국 위원으로 승진한지 4개월이 되었을 때, 충칭시위서기에서 광동성위서기로 옮겨간지 3개월이 되던 때였다. 만일 이 때 군사지역간의 갈등이나 군부측이 소홀히 했더라면, 왕양은 광동지방세력과 장쩌민의 잔존세력들로부터 협공을 받을 수 있었다. 나아가 후진타오의 체면까지 상할 수 있었다. 바꾸어 말하면, 장양은 이때 왕양을 보호해줌으로써 간접적으로 후진타오를 도와주게 된 것이다. 판창롱과 마찬가지로, 장양도 '지리'적인 우세가 있다. 남해문제에서, 후진타오는 대외적으로 강성을 보였다. 여러번 광저우군구에 전쟁준비태세를 승급시키도록 명령했다. 장양은 장친성(章沁生)) 후진타오의 명령을 조금도 차질없이 수행하여 후진차오의 신임과 인정을 받는다. 장양은 장친성을 도와 광동 및 광저우군구의 전체 관할구역내의 지방정부에서 빙설재해를 구조하는데 협조했고, 이를 통하여 후진타오로부터 "전쟁기간의 공로에 못지 않은 공로를 세웠다"고 칭찬을 받는다. 이를 통하여 '천시'의 이익도 얻게 된다. 어쨌든 중대한 공로는 장친성의 것이이고, 잘 하면 두 사람이 나눠갖는 것이다. 보시라이사건이 마지막에 성격규정되기 전에 장양은 군대측 신분으로 앞장서서 보시라이를 비판하여 공로를 독차지한다. 금년 6월, 장양은 <해방군보>에 글을 싣는다. 전체 군부에서 비전쟁행동중에 '다른 의도가 있는 사람'에게 이용당해서는 안된다고 한 것이다. 이때 군부내에서는 아직 보시라이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리고, 군부내에서는 혁명2세대의 고위장성인 장하이양, 류위안이 보시라이와 연루되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글에서 비록 이름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지적한 '다른 의도가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중공고위칭의 매커니즘을 조금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것은 장양이 보시라이사건이 뒤집어질 위험을 무릅쓰고 후진타오에게 충성을 표시한 것이라고 이해할 것이다. 이에 대하여 후진타오는 고마워한다. 바로 중앙판공청에 지시하여 인민망에 장양의 글을 전재하도록 조치한다. 장양이 이처럼 적시에 태도를 명확히 하였기 대문에, 군사위 각 총부의 보시라이옹호기류도 점차 가라앉는다. 나중에 군대내의 혁명2세대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홍콩매체는 류위안이 군사위에 들어가고, 군사위 부주석을 맡을 것이라는 내용을 보도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그러나 허장성세이다. 그 뜻은 류위안이 후진타오로부터 책임추궁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것 뿐이다. 공유하기 게시글 관리 중국,북경,장안가에서 '중국의 정치 > 중국의 정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류위안(劉源): 시진핑과 갈라서는가? (0) 2013.02.13 시진핑, 리커창은 제후할거의 시대를 맞이할 것인가? (0) 2012.11.25 "18대" 권력분배의 의외와 비의외 (0) 2012.11.25 제6대핵심인물: 후춘화(胡春華)와 쑨정차이(孫政才) (0) 2012.09.26 중국공산당이 18대이후 직면할 도전은 (0) 2012.08.16 관련글 류위안(劉源): 시진핑과 갈라서는가? 시진핑, 리커창은 제후할거의 시대를 맞이할 것인가? "18대" 권력분배의 의외와 비의외 제6대핵심인물: 후춘화(胡春華)와 쑨정차이(孫政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