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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정치

"18대" 권력분배의 의외와 비의외

by 중은우시 2012. 11. 25.

 

글: 민주중국

 

 

2012년 11월 15일 정오, 중국공산당 제18기 1중전회가 끝난 후, 새로운 정치국 상임위원이 마침내 국내외 인사들의 기대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의외중의 하나: 후진타오가 완전히 물러나며 시진핑에게 물려주었다.

 

후진타오는 제18기 1중전회에서 총서기직을 시진핑에게 넘겨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군사위주석까지 넘겨줄 것인가에 대하여 일반인들은 확신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덩샤오핑이 장쩌민에게 물려줄 때나, 장쩌민이 후진타오에게 물려줄 때, 모두 군사위주석은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새로운 최고지도자는 할 수 없이 한동안 전임자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일반인들이 보기에, 위와 같은 양위방식은 이미 중국공산당 최고권력교체의 관례였다. 그래서, "18대"이전에, 외부에서는 속속 추측하기를 후진타오도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18대"이후 군사위주석을 최소한 2년간 맡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제18기 1중전회가 끝난 후, 신화사에서 공표한 소식에 따르면, 시진핑은 중공총서기직을 물려받았을 뿐아니라, 중앙군사위주석직까지 차지한다. 의문의 여지없이, 후진타오가 시진핑에게 물려준 것은 깔끔하게 모조리 물려주었다고 할 수 있고, 이는 "18대" 권력교체에서 가장 볼만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얼마후, 시진핑은 후진타오의 국가주석직도 물려받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정군의 권력을 한 몸에 갖게 된다.

 

의외중의 둘: 류윈산, 장까오리가 최고위층에 오르다.

 

신임 정치국 상임위원중에서 시진핑과 리커창을 제외하고, 장더장, 위정성, 왕치산은 이전부터 상임위원에 들어갈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7명 상임위원제이건 9명 상임위원제이건 외부에서 볼 때, 이 3명이 상임위원에 들어가는 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없어보였다. 이전에 명망이 높던 왕양, 리웬차오, 류옌동은 정치국에서 한 단계 더 올라가지 못했다. "18대"를 개최하기 얼마전에, 해외매체는 돌연 류윈산과 장까오리가 상임위원에 올라갈 것이라고 보도하기 시작한다. 당시 이것이 사실일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지금 권력분배가 끝나고 보니, 가장 먼저 이 사실을 보도한 매체는 정확한 자료를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왕양과 리웬차오는 최고위층에 진입하지는 못했지만, 연령으로 봐서, 다음기 당대회때, 그들은 여전히 만68세가 되는 정치국 상임위원을 대체할 희망이 크다. 왜냐하면, "19대"이후, 계속 유임할 "18대" 상임위원은 단지 시진핑과 리커창 뿐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5명은 모조리 퇴임해야 한다. 왕치산이 정치국 상임위원이 된 것은 기실 하루 전날 이미 우회적으로 공표되었다. 왜냐하면 왕치산은 중앙기율검사위 위원으로 선임되었는데, 다른 위원들은 경력에서 그와 비교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시에 왕치산이 중앙기율검사위를 장악할 것은 확실했다. 과연 제18기 1중전회에서는 이 결과를 확인해주었다.

 

예상의 하나: 정치국이 다시 7인제로 되돌아갔다.

 

"16대"때 후진타오가 장쩌민의 뒤를 이어 중공총서기직을 맡은 후, 중공최고위층은 9명상임위원제를 시행했다. 9명상임위원제는 "17대"까지 지속되었다. 연속 2기에 모두 9인 상임위원제였으므로, 외부에서는 일찌기 "18대"에도 9인 상임위원제가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충칭사건으로 보시라이가 일찌감치 배제되고, 고위층의 정치계획은 교란된다. 7인 상임위원제는 외부에서 다시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전의 중국공산당 역대대회와 마찬가지로, "18대"이전에 최고위층 권력분배의 버전은 갖가지로 나왔다. 그러나, 이번에, 각종 버전은 모두 7인 상임위원제를 근거로 하여 나왔다. 그러나, 비록 버전은 많았지만, 모두 어느 정도 근거가 있었다. 일반독자들은 그저 식후의 얘깃거리 정돌 생각했고, 정말로 그렇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사실상 절대다수이 버전은 확실히 최종결과와 일치하지 않았다. 이는 많은 경우 매체의 추측이었고, 사실에 근거를 두지 않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당대회개최일이 가까워지면서, 새로운 버전은 비교적 진실에 접근해갔다. 18기정치국상임위원의 구성은 중국정부의 공식매체에서는 계속하여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10월 9일, 홍콩의 명경신문망에서는 사전에 새로운 상임위원의 구성을 보도했다. "18대"개최기간동안 보신신문망등도 사전에 정치국상임위원의 구성을 보도했고, 지금 확인해보면 이런 보도는 완전히 정확했다.

 

예상중중의 둘: 시진핑, 리커창이 계속 정치국상임위원을 맡다.

 

리커창은 일찌기 오랫동안 외부세계에서 중국공산당 제5세대의 정치핵심으로 인식되어 왔다. 다만, 시진핑이라는 다크호스가 나타나면서 외부의 시각이 바뀌게 된다. "17대"이전에 후진타오의 후계자로 보게 된다. 시진핑이 정치국 상임위원으로 들어가고, 다시 군사위 부주석을 맡으면서, 그가 후계자라는 것은 점점 더 분명해진다. 리커창은 비록 중공당수와 군사위주석의 보좌와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일찌감치 상임위원에 들어간 것을 보면, 그는 시진핑과 마찬가지로, "18대"이후 계속 정치국 상임위원을 맡을 것이다.

 

확실히, 시진핑과 리커창의 출현은 18기 정치국상임위원의 구성에서 아무런 의문이 없는 것이었다. 예상그대로, "18대"이후 시진핑과 리커창은 중국관료사회에서 가장 권세있는 인물이 되었따. 새로운 정치국상임위원을 구성하면서 제17기 상임위원중 시진핑과 리커창을 제외한 나머지 상임위원은 모두 물러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이것도 그대로 진행되었다.

 

예상중이 셋: 후춘화(胡春華), 순정차이(孫政才), 리잔수(栗戰書), 궈진롱(郭金龍)가 정치국에 진입하다.

 

"60년대생"이면서 지방정부수장인 후춘화와 순정차이는 외부에서 중국정계 미래의 스타로 인식되었다. "18대"이전에 외부매체는 두 사람이 정치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보았다. 이들은 제6대를 위한 준비이다. 18기 1중전회가 끝난 후, 신화사에서 공표한 정치국 위원명단에 두 사람이 과연 포함되었다. 이는 외부의 추측을 그대로 확인해준 것이다.

 

리잔수는 "18대"이전에 북경으로 가서 중앙판공청 주임을 맡아 링지화의 뒤를 이었다. 이를 보면 리잔수는 고위층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시진핑의 신임이 두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리잔수는 "18대"이후 정치국 위원을 맡는 것도 가능성이 컸다. 당연히, 링지화, 원자바오는 중앙판공실 주임을 맡을 때 모두 정치국 위원이 아니었다. 그러나 리잔수는 그들과 다르다. 이전에 지방에서 성위서기를 맡았다. 이것은 그가 정치국 위원에 들어갈 가능성을 더욱 크게 하였다. 그외에 신임 북경시위서기인 궈진롱은 수도의 1인자로서, 마찬가지로 정치국에 들어가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15명의 신임 정치국위원중에서 후춘화, 순정차이, 리잔수, 궈진롱의 4명이 들어가는 것은 별다른 의문이 없었다. 당연히 공안부장 멍젠주, 신강위구르자치구 당위서기 장춘센, 상하이시장 한정이 정치국에 들어가는 것도 중공의 정치규칙에 맞았다. 왜냐하면 중요부서나 중요지방이 책임자는 일반적으로 모두 정치국 위원이기 때문이다.

 

일찌기 11월 4일, 신화사에서 발표한 소식에서, 판창롱(范長龍)과 쉬치량(許其亮)이 중앙군사위 부주석을 맡았다고 했다. 이것은 두 사람이 쉬차이허우, 궈보슝의 뒤를 잇는 새로운 군부의 지도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몇 기의 경험으로 보면, 군부 지도자는 정치국 위원이 된다. 그래서 판창롱과 쉬치량이 정치국에 들어가는 것은 "18대"이전에 이미 결정된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전 중공총서기 후진타오는 지금까지 엄숙하고 딱딱한 이미지로 나타났다. 시진핑은 비록 멕시코 방문때 국제사회가 중국에 대하여 이래라 저래라 한다고 비판한 적은 있지만, 금년의 방미과정에서 외부에 비교적 좋은 인상을 남겼다. 새로운 7명의 상임위원이 모습을 드러내는 의식에서, 시진핑은 다시 강화를 발표한다. 가장 두드러진 단어는 "책임"이었다. 그중, 중공에 대한 책임, 민족에 대한 책임, 인민에 대한 책임이 있다. 시진핑은 당에 대한 책임을 첫머리에 두지 않았다. 그리고, 당내의 심각한 부패문제도 언급했다. 철을 치려면 스스로 단단해져야 한다고 말하고, 전체 당은 반드시 경계해야한다고 말했다.

 

시진핑의 1중전회후에 한 말은 다른 관리들이 한 말과 다르다. 그는 선명한 개인특색을 드러냈다. 여기에서 우리는 시진핑이 관리부패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엄중히 다스릴 결심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정치제도는 여전히 일당독제의 상황에서 배회하고 있다. 시진핑이 민중에 부끄럽지 않고, 역사에 부끄럽지 않고, 사명을 욕되게 하지 않으려면 큰 지혜와 큰 용기로 정치개혁을 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시한폭탄을 안고 수건돌리기를 하는 형국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