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맹료(孟燎)
최근 소식에 따르면, 현임 내몽고서기인 후춘화와 길림성위서기인 쑨정차이가 중곡18대 정치국에 들어가, 정치국위원이 된다고 한다. 이는 60년대생이 정식으로 중공당과 국가지도자 반열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중공 제6대핵심인물로서 향후 배양과 관찰을 받게 될 것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후춘화와 쑨정차이는 제6대핵심인물로 대표성이 있으나, 중국공산당의 미래에 불확정성을 반영한다고 한다.
첫째, 중국공산당이 미리 지도자를 선택하는 표준에 혼란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말하면, 정치국위원은 최소한 2개의 성급, 장관급단위의 1인자를 맡은 적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구체적이고 풍부한 지방 및 중앙의 업무경험이 있어야 한다.
자격으로 보자면, 후춘화는 정치국에 들어갈 자격이 더욱 충실한 편이다. 그는 티벳과 내몽고의 두 변방지구에서 일한 바 있고, 허베이에서 정부의 1인자를 지낸 바 있다. 중앙정부의 업무경험은 없지만, 변방지역에서 십여년을 힘들게 일한 공로가 있고, 비록 한 지방을 통솔하는데 우수한 능력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큰 원칙과 정책에 있어서는 시종 당중앙과 일치한 입장을 나타냈다. 그리고 여러가지 시험을 거쳐서, 그의 이력은 충분한 편이다. 이런 경력은 중국공산당 성급 고위관리중에서는 돋보이는 점이다. 60년대생 관료중에서도 봉모인각이다. 후춘화가 정치국에 들어가는데 대하여 크게 이의는 없는 편이다.
그러나, 쑨정차이는 지방경험도 있고, 중앙정부의 업무경험도 있어, 자격은 겨우 맞추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부족한 점이 두드러진다. 겨우 베이징과 지린에서만 일을 해보았고, 베이징 순이에서 북경시위, 다시 중앙정부, 그리고 중앙정부고관신분으로 지방으로 갔다. 계파의 도움을 받은 외에 다른 능력은 보여준 바 없다. 경력이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기본적으로 제대로 시험을 거치지 않았다. 그가 정치국에 들어가는데 대하여는 여러가지 말들이 많다.
둘째, 중국공산당이 미래지도자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도덕원칙과 기준이 기뵨적으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을 반영한다.
후춘화는 그다지 큰 는능력은 없다. 그러나 사람됨은 비교적 정파(正派)이고, 처세도 비교적 잘하는 편이다. 일처리에서도 조심스럽고, 스타일도 청렴하고 소박하다. 젊어서 능력에 의문을 표시하는 이외에 다른 측면에서는 아무런 이견이 없다. 그가 선두주자로 나선 것은 은사인 후진타오가 적극 끌어주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자신의 몸가짐도 중요한 원인이다.
그러나 쑨정차이는 정반대이다. 순이현서기를 맡은 이래 그에 대하여는 말들이 많았다. 여러해동안, 중앙의 관련부서에서 고발장을 받은 것이건 항간에 떠도는 소문이건 계속 끊이지 않았다. 쑨정차이는 중국공산당 지방관리의 전형적인 특색을 지니고 있다. 사람은 아주 총명하고, 대인관계도 원만하다. 옛날에 자칭린이 그를 총애하여, 북경시위 비서장을 맡았정치국,다. 나아가 수억위안의 순이 땅을 우방궈와 원자바오의 가족들에게 넘겨주면서 두 사람의 적극적인 추천을 받아 농업부 부장을 지낸다.
곧이어 쑨정차이는 공청단파에 의지하여, 링지화(令計劃)의 처에게 거액의 이익을 얻게 해주어 링지화의 신임을 받는다. 마침내 원자바오의 강력한 추천과 링지화의 막후공작으로 지린성위서기에 오른다. 젊은나이에 출세한 쑨정차이는 득의만면하여,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했다. 2010년, 그는 막 지린성위서기에 오른 후 첫 구정기간동안 자신이 링지화의 가족과 연말저녁식사를 같이 했다는 점을 주변사람들에게 자랑했다. 그 결과 링지화의 귀에까지 들어가, 질책을 받기도 한다.
지금 링지화가 세를 잃게 되자, 총명한 쑨정차이는 한편으로는 드러나지 않게 관계를 정리하고, 핵심인물들에게는 링지화와 별다른 관계가 없다고 표시한다; 다른 한편으로 미리 정치국 상임위원중 하나인 류윈산(劉雲山)과의 관계를 가까이 하는데 노력한다. 이 관계는 쑨정차이가 지린에 가자마자 시작되었다. 금방 류윈산의 아들인 류러페이(劉樂飛)와 친해진다. 2011년 5월, 류러페이가 중간에 나서서 노력하는 바람에 류윈산이 지린으로 시찰을 온다. 그후 류러페이는 지린의 몇 가지 대형투자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 두 사람이 중국공산당 제18기 정치국위원이 된 것은 간부선발에서 어룡혼잡(魚龍混雜)의 국면을 잘 보여준다. 중국공산당의 권력이전과정에서, 전통적인 도덕과 능력을 핵심으로 하는 선택기준은 이제 더 이상 효과가 없다. 파벌, 부패는 간부선발의 '숨은 기준'이 되어 버렸다. 이런 '숨은기준'은 이미 중앙에서 지방까지 각급관리의 발탁에서 일상적인 일이 되어 버리고, 이는 중국공산당 미래의 불확정성을 더욱 강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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