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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보시라이-왕리쥔사건

보시라이는 사형을 당할 것인가?

by 중은우시 2012. 10. 3.

글: 강유평(姜維平) 

 

일찌기 2010년, 필자는 글에서 보시라이가 말년을 감옥에서 보내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그가 젊을 때 진성감옥(秦城監獄)에서 5년여를 보냈던 것처럼. 그가 일생동안 두 번의 감옥생활을 한 것은 다른 사람을 원망해서는 안된다. 당연히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공청단파(共靑團派)의 기세가 중천에 뜬 해와 같을 때 그는 광망자대(狂妄自大)와 무법무천(無法無天)은 다른 사람들이 공격할 빌미가 되었다. 구카이라이의 살인이 정적의 함정에 빠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왕리쥔이 밤에 미국영사관으로 도망친 것이 우연한 돌발사건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보시라이의 순사왕법(徇私枉法)은 이미 다롄에서도 십여년동안 진행되었다. 2007년이후, 그의 부친이라는 보호막이 사라졌는데도 그는 전혀 삼가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기세등등하게 나왔다. 마지막에는 왕리쥔이라는 '사탕'에 걸려서 신패명렬(身敗名裂)하게 된다. 현재의 문제는 그가 아마도 엄중한 형벌, 사형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있고, 즉시 집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롄의 언론계 소식통에 따르면, 중앙기율검사위원회는 다롄의 특별수사팀에 두 사무실을 설치했다고 한다. 하나는 다롄의 봉추도빈관(棒槌島賓館)에 있고, 다른 하나는 주수자(周水子) 국제공항부근에 있다. 9월 23일, 이미 부정부패와 직권남용죄에 대한 조사는 기본적으로 끝났고, 업무에 참여한 사람중에 현지인은 없었다. 모두 중앙기율검사위가 전국각지에서 뽑아온 정예인력이었다. 다롄의 지방세력의 은폐를 막기 위하여, 그리고 보시라이, 구카이라이의 사건은 사건기간이 길고, 수단이 교활하고, 정상이 악랄하며, 사건관련금액이 거대하고, 미국 일본 영국등 여러 국가와 관련이 있어, 사건수사는 유례없이 힘들었다. 그래서, 사건담당인원에 따르면, 이것은 중앙기율검사위가 처리한 가장 복잡하고 가장 폭발력있는 부정부패, 살인사건이라고 한다. 6월 26일부터 30일까지, 세계부패방지대회때 전시된 전세계네트워크를 통하여, 보시라이와 구카이라이가 전세계에 숨겨둔 부정부패재산의 규모가 억위안을 넘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철저히 조사하지 않은 보수적인 숫자이다. 보시라이는 중국공산당설립이래 최대의 탐관오리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중앙기율검사위 부서기 마원(馬馼)은 9월 6일부터 9월 8일까지, 선양(瀋陽)에서 보시라이에 대한 보고를 받는다. 허궈창(賀國强)은 8월 30일에서 9월 12일까지의 기간동안 외부에 모습을 드어내지 않으며 이 사건을 연구한다. 그는 모든 증거자료를 자세히 검토하고, 요약본을 후진타오에게 보내어 살펴보도록 하였다. 후진타오는 사실을 존중하고, 사건을 왜곡하지 말며, 법에 따라 처리하여 인민들에게 책임있는 결과를 내놓으라고 지시했다. 이들 자료는 당의 기율과 국가의 법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먼저 당내에서 후에 당외에서, 먼저 위를 나중에 아래를, 먼저 쉬운 것을 나중에 어려운 것을" 이라는 원칙에 따라, "쌍개(雙開)"(당과 관직에서 제명하는 것. 제명의 중국식 표현은 開除임)를 제17기 7중전회에서 결정하고, 18대이후에 판결과 형을 내리는 것으로 진행하기로 한다. 이는 중국공산당 권력교체에 따른 심판이다. 그러나, 후진타오, 원자바오, 시진핑, 리커창은 의견의 일치를 보낟. 보시라이는 죄가 극악하여 연착륙할 수 없다. 그가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법에 따라 처리하는 것만이 사면초가에 빠진 중공정권을 구할 수 있고, 일당독재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이다. 그래서 중남해의 고위층은 이미 보시라이를 버리기로 결정내렸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구카이라이 살인사건이 사형집행유예로 판결된 것은 그녀가 입건후에 적극적으로 보시라이를 고발한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내용은 여러가지이다. 하나는 구카이라이에게 영국상인 헤이우드를 죽이라고 한 것이며, 둘은 그가 왕리쥔등 경찰들에게 시신을 훼손하고 증거를 없애 범죄를 비호하고 은폐하도록 명령한 것이며, 셋은 그가 직접 구카이라이의 뇌물수수와 자산이전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사실에 따라, 보시라이는 어러한 몇 가지 죄행이 있다: 살인죄, 수뢰죄, 직무침점죄, 순사왕법죄, 직권남용죄. 만일 여러가지 죄로 병합처벌받으면, 사형을 면하기 어렵다. 현재의 문제는, 사형판결후 집행유예할 것인가 즉시집행할 것이냐는 것이다. 현재 중국공산당의 고위층은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후진타오는 사형집행유예를 주장하여 목숨만은 살려주자고 한다. 원자바오는 사형집행을 하여 후환을 남기지 말자고 한다. 최종결과는 중공고위층의 일련의 회의와 투표상황을 보아야 한다. 위인은 가고 집단지도체제인 오늘 날, 이 사건은 여전히 변수가 많이 남아있다. 어떻게 바뀌더라도, 보시라이의 정치생명은 이미 끝났다.

 

세계제일의 가장 권위있는 보시라이사건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11월 15일 방영될 것이다. 감독인 에드워드는 9월 23일 터론토에서 필자에게 말했다. 보시라이가 영국상인 헤이우드를 살해하도록 지시한 직접적인 원인은 그가 보과과에게 보낸 이메일이 아니라, 그가 미국매체에 폭로한 페라리 호화승용차건 때문이다. 또 다른 소식통에 따르면, 구카이라이는 보시아에게 아들의 보호자겸 영어선생인 헤이우드와 반목하는 경우의 위험성에 대하여 얘기했다고 한다. 그는 90년대초에 보시라이의 가족관련업무를 진행하고 해외자산을 대리하였으므로 그가 진싱을 털어놓으면, 보시라이의 관료생애가 끝날 수 있다. 보시라이는 "죽으려는군"이라고 말한다. 그 후 보과과와 구카이라이는 화해한 듯한 모습을 보이며, 충칭 장베이(江北)의 UN공급기지프로젝트가 중단된 책임을 원자바오에 떠넘긴다. 그리고 영국상인에게 경제배상을 하겠다고 약속하여 헤이우드를 함정에 빠트린다. 그후 구카이라이가 여색으로 유혹하여 호텔로 부른다. 그리하여 헤이우드가 화장실에 알몸으로 쓰러지고, 장샤오쥔이 도와서 살인멸구해버린다.

 

그러나, 보시라이는 "쌍규(雙規)" 당한 이래 모든 것을 부인한다. 그는 살인음모를 인정하는 경우의 결과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카이라이가 살인에 성공한 후, 왕리쥔, 궈웨이궈(郭維國)등 여러 사람들의 증언이 있으므로, 그는 부득이 순사왕법의 죄행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부정부패에 대하여도 그는 인정한다. 그러나 금액에서 구카이라이가 자백한 것과는 차이가 비교적 컸다. 그렇기는 해도 그의 관련금액은 1억을 넘었다. 만일 정부가 공표하면 백성들의 공분을 부를 것이다. 만일 보시라이, 구카이라이사건을 정치제도와 분리해서 본다면 당의 이미지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다. 그를 판결한 후 다른 고관에 대하여 연상하지 않도록 하면 된다. 이것이 현재의 난제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보시라이가 살인을 지시한 것은 1대1의 증거이다. 그의 처가 제공한 것이므로 부족해 보인다. 중앙정치국위원이라는 직급에서 "1대1"의 증거만으로는 확실히 부족하다. "의심있는 경우에는 피고인에 유리하계"라는 것이 법원칙이지만, 그의 부정부패금액이나 정상을 보면 사형을 판결하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또 다른 소식통에 따르면, 우원캉(吳文康), 처커민(車克民), 쉬밍(徐明), 푸얜빈(富彦斌)등 사건관린인원들은 모두 사건적발후 보시라이와 구카이라이의 경제문제에 대하여 고발하고 진술했다.

 

그중 가장 적극적인 사람은 전 다롄국안국(國安局)의 당위서기인 처커민이다. 그는 1980년대 중반에 보시라이의 가신이 된다. 그에게 충성을 다하기 위하여 이혼도 마다하지 않았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는 보시라이와 함께 여자를 찾았으며, 서로 거리낌이 없었다. 이를 보면 두 사람의 사적인 교분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보시라이가 체포된 후, 그는 가장 먼저 고발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그가 진저우, 개발구, 다롄등지에 수천만의 부동산을 부정부패로 얻은 죄증을 진술한다. 그는 또한 보시라이의 지시에 따라 수백 수천의 정적과 비판인사를 체포하고, 순사왕법과 직권남용을 한 죄행도 인정했다. 다롄의 소식통에 따르면, 그가 잡혀들어간 후, 국안국의 부하들인 왕푸쉔, 정이창, 펑뚱후이, 린강등도 불안에 떨었다고 한다. 그리고 500여명의 보시라이와 관계가 밀접한 기업체 대표들도 면담을 했으며, 많은 범죄단서를 잡았다고 한다. 이들은 18대이후 추가로 조사를 받을 것이며, 왕젠린(王健林, 완다의 동사장)도 연루될 것이 두려워 이미 민영기업과 미국기업을 하나로 묶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2009년에 그가 충칭으로 따라가지 않고, 보시라이와 거리를 유지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현재, 중공고위층의 형세는 아주 괴이하다. 장쩌민은 얼굴을 드러내 극을보고 있으며, 리란칭은 구이저우에서 공연프로그램을 본다. 그들은 장쩌민계 인마를 안정시키려는 의도를 보인다. 왜냐하면 보시라이의 몰락이 장쩌민계가 오합지졸로 흩어지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농업대학을 참관했고, 북대나 청화를 가지 않았다. 이것은 그가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겠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호진타오와 원자바오는 "랴오닝호" 항공모함의 진수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는 이미 준비를 마쳤고 대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듯하다. 9월 27일, 정부에서 공표한 <사형집행유예를 감형하는 경우 25년이상으로 하여야 한다>는 것은 보시라이,구카이라이사건의 앞날을 규정한 것이다. 아마도 보시라이는 구카이라이와 함께 사형집행유예를 선고받을지 모른다. 그러나, 보석처럼 소요법외할 수는 없을 것이다. 2007년이후 충칭의 '창홍타흑'의 놀라운 사건들을 회고해보면, 알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하여 밤에 잠들지 못했는지. 보시라이의 죄행은 사형판결밖에 없다. 만일 중국공산당의 정치제도를 변혁하지 않고, 다시 한번 민주화의 좋은 기회를 놓친다면, 앞으로 5년내에 민중혁명, 사회동란도 배제할 수 없다. 누군가 보시라이가 차시환혼(借屍還魂)할 것이라고 얘기하는데 이는 그저 위협만은 아니다. '타흑' 경찰의 한 마디를 기억해야 한다. 이곳은 "사재동(渣滓洞, 사재는 쓰레기. 충칭의 한 석탄동굴은 석탄보다 쓰레기가 많아서 이렇게 부른다. 이곳은 나중에 집단수용소가 된다)"이다. 그러나, "강저江姐, 사재동을 주제로 한 드라마 여주인공)"는 없다. 그러나, 필자는 "사재동"과 "강저"가 중국의 땅에서 영원히 사라지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