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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보시라이-왕리쥔사건

누가 보시라이를 비호하는가?

by 중은우시 2012. 8. 18.

진파공(陳破空) 

 

2012년 8월 9일, 세상사람들이 주목하는 구카이라이살인사건이 허페이(合肥)에서 개정했다. 구카이라이과 장샤오쥔(張曉軍)이 법정에 출석했는데, 죄수복을 입지도 않고, 수갑을 차지도 않았으며, 표정은 편안하고 즐거워보였다. 특수대우를 받은 것이 분명했다. 혹은 간수소에조차 들어가지 않은 것같다. 어느 호화로운 호텔에 '쌍규'조치만 취하고는 허여멀겋고 통통하게 잘 먹인 것같다.

 

구카이라이가 법정에서 정신적으로 여유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범한 범죄의 범뤼는 법정에서 기소당한 것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이 법정은 단지 그녀가 범한 한 개의 형사범죄만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녀의 나머지 범죄들은 눈감아주었다. 더더구나 그녀의 중대한 경제범죄를 봐주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남편인 보시라이가 관련되었음이 분명한 이 형사범죄에서 보시라이의 이름은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아서, 선을 분명히 그었다.

 

구카이라이는 편안하게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녀와 당국이 공동으로 만들어낸 한 가지 이유가 법정에서 받아들여질 것같다. 그 이유는 바로 그녀의 살인동기이다. 그녀가 아들을 생명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라는 것이다. 이 이유는 헤이우드가 이미 죽어서 대질을 할 수 없을 뿐아니라, 근본적으로 믿을만한 것이 아니다. 그 영국상인이 왜 아들의 생명을 위협한단 말인가. 그저 보시라이 구카이라이의 부패와 돈세탁건만 일반에 공개한다고 하더라도, 보시라이 구카이라이부부는 깜짝 놀랄 것이다.

 

4명의 충칭 찰계의 고위직이 구카이라이의 살인사건을 비호한 것으로 재판을 받았다. 죄명은 순사왕법(徇私枉法)이다. 다만, 당시 충칭시서기로 있던 보시라이가 최대의 비호자이다. 순사왕법이 가장 심각했다. 그러나, 구카이라이사건이건 4명의 충칭경찰고위직 사건이건(그리고 비밀리에 개정했다고 알려진 왕리쥔사건이건), 보시라이는 모두 사건에서 제외되어 있다.

 

확실히 다른 사람을 '순사왕법'으로 제소한 북경중앙정부가 바로 지금 순사왕법죄를 범하는 것이다. 입으로는 법률의 존엄이 짓밟혀서는 안된다고 하던 중남해가 스스로 법률의 존엄을 짓밟고 있다.

 

구카이라이와 보시라이의 경제범죄를 봐준 것은 중남해의 투서기기(投鼠忌器)의 심리를 잘 보여준다. 구카이라이가 '중대한 공헌을 세우는 표현'을 하여 다른 사람을 고발하였지만, 보시라이도 '중대한 공헌을 세우는 표현'을 할 수가 있다. 그것은 바로 대다수 정치국 상임위원과 정치국 위원이 모두 부정부패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중남해는 보시라이 구카이라이부부의 경제범쥐를 추구하지 않은 것은 스스로 중공지도자집단이 바로 부정부패집단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

 

처벌은 하지만 너무 심하게 해서는 안된다; 한편으로는 죄명을 찾아내면서, 다른 한편으로 죄책을 감경시킨다. 이것이 바로 중남해에서 구카이라이재판에서 보여주는 모순된 심리이다. 하나는 또 다른 버전의 고육계이다. 하나는 때리고 싶어하고 하나는 맞고 싶어한다. 모두 계획과 거래가 이루어진 후 무대에 등장하여 연기를 하는 것이다.

 

먼저 중공고위층의 보시라이지지파는 중남해의 보수파이다. 여기에는 저우용캉(周永强)과 그가 대표한 '신사인방'이 있다: 우방궈(吳邦國), 자칭린(賈慶林), 리창춘(李長春). 이 세력은 장쩌민계에 속한다. 그리고 정치국상임위원중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그들은 보시라이와 동일한 극좌이념을 가지고 있다.

 

장쩌민 본인은 일찌감치 그가 보시라이를 처리하는데 동의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는 확실히 감경처리하기를 바란다. 최대한 범위를 축소시키고, 영향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이는 실질적으로 보시라이지지파이다. 보시라이의 부친인 보이보(薄一波)는 일찌기 장쩌민의 은인이다. 장쩌민은 보답할 생각이 있다. 장쩌민의 보살핌 아래 보시라이는 계속 승승장구했다. 보시라이가 다롄시장으로 있을 때, 일부러 장쩌민을 띄워준다. 시정부의 건물외벽에 정쩌민의 거대한 화상을 걸어둔다. 장쩌민이 이를 보고, 얼굴을 활짝 펴며 기뻐했고, 그 자리에서 보시라이는 다롄시위서기로 승진시킨다.

 

해외에서는 누군가 장쩌민이 정치개혁을 추진하려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의 일은 금년 7월, 장쩌민이 역사교과서에 서문을 쓰면서 중공당원간부들에게 역사를 많이 읽으라고 말한다. '역대치란흥쇠의 경험교훈을 정확하게 배워야 한다" 이는 중요한 '정치개혁신호'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는 견강부회이다. 이전에 마오쩌둥도 당원간부들에게 역사를 읽으라고 말하기를 좋아했다. '역사를 귀감으로 삼는다'는 것은 나를 위해서 일하라고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장쩌민이 보기에, 중국공산당은 봉건왕조이다. 그는 스스로 '중흥' '성세'를 맞이했다고 생각한다. 그저 이 추세만 잘 유지하면 되는데, 왜 뒤바꾸려고 하겠는가. 이전에 장쩌민이 정치개혁을 추진한다는 소문은 나중에 모두 근거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모두 장쩌민파세력이 해외에 고의로 흘린 말이다. 혹은 민간의 환상을 자극한 것이다. 목적은 장쩌민에게 '개혁파'의 이미지를 구축하여, 물을 흐리고, 욕먹는 것을 회피하기 위함이다.

 

다음으로 하층 혹은 '민간'에서의 보시라이지지파는 교조주의적인 공산당원들이다. 혹은 철저히 세뇌되어, 죽어라 중공을 옹호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공산당의 민간에서의 기본판이다. 보시라의 좌익, 창홍, 송모(頌毛, 모택동칭송), 균부(均富)의 수법은 이런 류의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이런 류의 사람들의 취향에 들어맞는다. 그러나 보시라이 구카이라이 부부는 대량의 자산을 해외로 빼돌렸고, 금액이 60억달러에 달한다. 이들이 어찌 '공부(共富)'를 할 것인가.

 

구카이라이가 재판받는 날, 허페이에 병원에 항의하러 온 이십여명의 사람들은 바로 이런 류의 사람들의 대표자들이다. 그들은 경찰의 구타를 당하고, 어떤 사람은 심지어 경찰에 체포되었다. 바꾸어 말하면, 그들의 인권은 탄압받고, 침해되고, 박탈되었다. 그들이 지지하고자 하는 보시라이는 바로 인권탄압의 고수이다. 그들이 극력 숭배하는 마오쩌둥은 바로 중공인권재난의 화근이다. 오늘날 인권박탈을 당하는 것은 바로 마오쩌둥이 만들고, 보시라이가 죽어라 강화시킨 현대 정치제도때문이다. 민간의 보시라이지지자들은 사고에 장애가 생겼다. 이렇게 명백한데도.

 

외국의 보시라이지지파도 있다. 보시라이가 다롄에서 있는 동안, 적극적으로 일본계기업을 유치했다. 그리고 일본에서 이름을 날리고, 일부 일본인들의 호감을 산다. 보시라이가 쫓겨나자, 일본의 상업, 매체는 난리가 난다. 한때 이를 잘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일부 서방의 정치요인, 매체도 보시라이가 일부 민중의 '지지'를 받는 것같은 표면적인 현상에 미혹되어, 보시라이의 '창홍' 송모'가 중국사회에 심각한 위해를 끼친다는 점을 보지 못했다.

 

어떤 서방의 유력신문은 심지어 보시라이의 '쌍규'기간동안 혹형을 받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현실중국정치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것이다. '사인방'이후, 낙마한 중공고관은 혹형을 받지 않았을 뿐아니라, 오히려 법외의 특권을 누렸다.(사인방의 한 명인 왕홍문이 중국고관중 혹형을 받은 최후의 인물이다.) 일부 외국언론은 미혹되어, 무의식중에 서양 '보시라이지지파'의 맛을 풍긴다.

 

중남해의 보시라이반대는 후진타오,원자바오,시진핑,리커창,허궈창등이다. 이들은 고위층에서 하층까지로부터 오는 압력과 반발을 견디다 못해 차선책을 강구한다. 구카이라이를 법에 따라 처벌하기만 하면, 정치적으로 보시라이의 '사형'을 내린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번 적을 풀어주면 만세가 되어도 쫓기 힘들다' 그 리스크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보시라이반대파의 또다른 책략일 수도 있다: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 보시라이를 봐주는 것을 무기로 하여, 보수파와 거래를 하여, 18대의 인사배치에서, 더 많은 권력지분을 확보하는 것이다. '18대'에서 정권을 장악한 후, 다시 구카이라이를 처리하고, 다시 보시라이를 처리해도 늦지 않다. 과연 이런 인내심이 있을까? 눈을 씻고 살펴보아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