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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분석/중국역사의 분석

정통(政統)과 도통(道統)

by 중은우시 2012. 9. 19.

작자: 미상 

 

중국전통문화중에 정통은 군왕(君王)을 대표로 하며, 황제가 세속권력의 합법성을 보유하였다는 것을 표명한다. 도통은 독서인(讀書人)이 맡으며, 도덕표준과 정신가치를 담당한다. 만일 정통이 정권을 대표한다고 말한다면, 도통이 대표하는 것은 발언권이다. 가장 먼저 도통의 개념을 얘기한 사람은 조주(潮州)에 유배간 한유(韓愈)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인(士人)이 대표하는 도통은 군왕이 대표하는 정통보다 존귀하다. 왜냐하면 도통은 유가의 "내성지학(內聖之學)"이고, 정통은 "외왕지학(外王之學)"이다. 먼저 "내성"이 있고, 다음에 "외왕"이 있다. 사회의 발전은 이상의 도덕과 천리를 따라 운행되어야 한다. 왜나하면, "도가 큰 것은 하늘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하늘이 변하지 않으면 도도 변하지 않는다." 도는 바뀔 수 없지만, 정권은 세대교체될 수 있다.  

 

자고이래로, 도통과 정통간에는 시종 밀고당기는 힘이 존재했다. 양자의 상호작용은 황제, 관료, 사인간의 복잡한 상호관계이다. 사인은 계속 정통의 압제와 박해를 받았고, 그들은 "종도(從道, 도를 따르다)"와 "종군(從君, 임금을 따르다)"의 사이에서 선택해야만 했다. 압박에 굴복하여 도덕을 배신하고 명리장(名利場)에 떨어진 사인도 적지 않다. 그러나, 풍골(風骨)이 있는 사인은 극력 도통의 존엄을 보호하여 도통의 정신역량이 세속정권을 초월했고 정통에 대한 제약과 감독을 구성했다 동한의 태학생(太學生)은 탁류(濁流)를 배척하기 위하여 전부후계(前仆後繼)했고, 명나라때의 동림당인들도 악정에 항의하여 시사여귀(視死如歸)했다. 이는 모두 독서인의 독립정신과 자유사상에 대한 추구이다. 명나라때 이학가(理學家)인 여곤(呂坤)이 말하기를 "묘당의 언리(言理)는 천자도 세로서 빼앗을 수 없다." 바로 이런 내재적인 독립성은 사인들로 하여금 도통을 지키게 할 때, 황제와 권력귀족에 대하여 당당할 수 있고 빈부귀천을 떠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사인들이 도통을 가지고 제왕의 스승이 되겠다는 휘황한 꿈을 만들었다.

 

수천년동안, 사인과 황권의 투쟁은 정통과 도통의 이런 장력(張力) 속에서 지속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선 후, 처음으로 양자를 통일한 것은 손중산(孫中山)이다. 그는 '삼민주의'의 창립자로 신도통의 찬술자이면서 동맹회, 국민당의 지도자로서, 중화민국의 최초 총통이며, 중국민주혁명의 선행자이다. 이어 연안은 정풍을 통하여 소련의 볼세비키에서 온 토생토장의 혁명가를 격파하고, 자신의 신민주주의혁명이론을 건립했다. 모택동은 혁명의 영수와 이론가, 도사(導師)와 영수를 한 몸에 합쳤다. 정통과 도통의 합병이다. 이때부터 이들 사상도사 겸 정치영수의 인물은 한 몸에 두 가지를 모두 겸비한다. 그리고는 이 시대의 사상과 정치 양대영역을 주재했다. 이때부터 통치자의 추구는 이데올로기에서 반드시 견지해야할 것이다. 20세기의 신전통은 철저히 수천년이래의 정통과 도통이 분리되었던 구전통에서 분리되었다. <삼국연의>의 시작편에서 말한 것처럼, "천하대세는 분구필합(分久必合), 합구필분(合久必分)"이라는 역사철칙을 입증했다.

 

사상도사와 정치영수가 상호분리되던 시대는 끝이 났다. 또한 사인이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던 시대도 철저히 끝났다. 생각해 보라. 사회의 전진방향을 장악할 수 없고, 중대한 사상을 만들어낼 수 없는 게층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독서인은 이로서 둘로 갈라진다. 일부분은 직업관료로 변신한다. 날로 강대해지는 국가기기에 보충되어 들어갔다. 또 다른 일부분은 지식을 삶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삼는다. 그리하여 사상의 난쟁이가 된다. 사인은 이때부터 문인이 된다. 문인은 문화를 가지고 노는 사람이다. 견유주의가 성행하는 시대에 문인의 가장 좋은 출로는 관료가 되는 것이다. 학문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신발을 닦는 법을 배우고, 방법을 바꾸어 공덕을 칭송한다. 이 시대에 그들 중에 나타난 가장 걸출한 대표는 전종서(錢鍾書)와 계선림(季羨林)이다. 그들은 여러가지 언어를 알고, 머리 속에는 세계의 거의 모든 지식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들 자기만 없다. 그러나, 이는 그들을 탓할 수 없다. 이 시대는 그들이 자기를 가질 필요는 없다.

 

정통과 도통이 통합으로 가는 동시에, 사인도 이 사회에서 점점 독립적인 지위를 상실했다. 첫째, 학교는 관청이 독점하고, 민간에서 학문을 하는 길은 폐지되었다; 이어, '관본위'는 사인들을 좁은 관직에의 길에서 쫓아냈고, 쌀, 식량을 구하는 독서인은 하루종일 바쁜 가운데, 점점 원래의 독립적인 자아의식과 정신가치를 잃어가고 있다. 얻은 것은 날로 군왕에 빌붙는 노비의 지위이다. 이런 사인은 자아의 주재도 말할 수 없는데, 무슨 명도(明道), 행도(行道)와 내성지학을 말하겠는가? 고인의 위안정신(偉岸精神)과 초발기상(超拔氣象)은 그저 점점 멀어져가는 옛날의 인상일 뿐이다. 과거에 "공부를 잘하면 관직에 나가고," "감히 제왕의 스승이 되겠다"는 이상은 일지감치 옛날의 꿈이 되었다.

 

독립적인 경제적 기초와 사회제도의 지원이 없으면, 독서인이 도통을 지키고, 정통에 대한 의존을 벗어나고자 하더라도, 이는 실제에 부합하지 않는 환상이다.사회는 도통과 정통이 통합되어, 실질적으로 도통의 정통에 대한 구속력과 제약작용이 없어졌다. 날로 거리낌없어지는 독재로 향한다. 문혁때 지식인들은 집단적으로 말을 잃었다. 오늘날 사회의식에서의 민주(民主)는 그저 "백성을 위하여 말한다"는 사상의 표현일 뿐이다. 모두 서로 다른 측면에서 도통이 변경된 후 잔혹한 사회현실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