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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분석/중국역사의 분석

권(圈)

by 중은우시 2012. 1. 28.

글: 왕립군(王立群)

 

모든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대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권(圈)이 있다. 이 태어나면서 가진 '권(圈)'은 각자의 부모, 가족으로 결정된다. 한 사람이 이 태생적인 '권'에 대하여 이론적으로는 두 가지 태도가 있을 수 있다. 첫째는 이 태생적인 권을 유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태생적인 권을 계속 타파하는 것이다.

 

유방(劉邦)의 부친인 태공(太公)은 첫번째 유형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한고조6년, 유방이 황제에 오른 후, 태공가신들이 아뢰어 유방은 태공을 태상황(太上皇)으로 봉한다. 태상황은 자연히 황궁에 들어간다.

 

<서경잡기>의 기록에 따르면, 태상황은 장안으로 옮겨온 후, 궁궐안에서 거주했고, 매일 우울하게 지냈다고 한다. 유방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좌우에 물어봤더니, 원래 태상황은 어려서부터 도축군, 장삿군, 술장사, 떡장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투계, 축국등을 일생의 재미로 삼았는데, 지금 황궁안으로 들어오니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유방은 그 말을 듣고, 그건 문제없다. 고향을 옮겨오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리하여, 유방은 패현 풍웁을 본떠서 새로운 도시를 만들고, 고향 풍읍의 태공친구들을 모조리 옮겨오게 했다. 태상황은 이를 보고 기뻐했다. 이 새로운 도시는 나중에 이름을 신풍(新豊)이라고 짓는다. 신풍성을 만든 후, 원래 패현 풍읍의 방식대로 거리, 집을 만들었다. 남녀노소가 모두 신풍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집이 그 곳에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길거리를 뛰어다니는 개, 양, 닭, 오리도 자신의 집을 찾아낼 수 있었다.

 

<서경잡기>는 정통사서가 아니다. 그래서 참고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당나라때 사람인 장수절(張守節)의 <사기정의>에서는 <괄지지>의 다음 기재를 인용했다: 신풍고성은 옹주 신풍현 서남쪽 4리 지점에 있다. 한나라의 신풍궁이다. 태상황이 우울해하고 기뻐하지 않자, 한고조가 좌우에 그 연유를 물어서 알아본 후, 평생 좋아하던 것이 도축꾼 장사꾼, 숲도가, 떡장사이고, 투계, 축국을 좋아했다. 지금 이게 모두 없으니 재미가 없어한다. 고조는 그리하여 신풍을 만들고, 옛날 친구들을 모조리 옮겨오게 했다. 태상황은 기뻐한다. 여읍의 앞에 성과 절을 만들고, 백성들을 이주시켜 살게 하고, 이름을 고쳤다. 태상황이 돌아가신 후, 신풍이라고 명명했다.

 

<괄리지>의 기록은 당연히 믿을 만하다. <서경잡기>를 보면 그 내용과 대체로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태공이 태상황이 되면서 자연히 새로운 생활권을 갖게 된다. 이 권은 바로 왕공귀족, 황친인척, 충신양장등이다. 당시 태상황에게 잘보이려는 사람은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고조의 이 부친은 이 새로운 권을 거절하고, 원래의 권을 그리워한다. 황제인 유뱡은 권력이 대단하여, 이런 방법까지 생각해낸 것이다. 패현풍읍을 경성도시권으로 옮겨오는 것이다. 황제의 명이 내리자, 신풍이 만들어진다.

 

한고조 유방은 두번째 유형의 대표자이다.

 

유방의 원래 생활권은 그가 정장(亭長)으로 있을 때의 권이다. 이 권은 대다수가 하층관리, 평민, 그리고 불법분자이다. 다만, 유방은 이 권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는 진나라에 항거하는 반란에 가담하며 항량에 의탁한다. 이렇게 하여 그는 항량을 대표로 하는 의군의 권에 들어간다. 항우도 이 새로운 권의 중요인물이다.

 

항량이 전사한 후, 의제(義帝)는 초지역 의군의 최고통수권자가 된다. 유방은 의제를 영수로 한 초지역 의군권의 중요구성원중 하나이다.

 

진나라가 멸망한 후, 유방은 항우가 분봉한 18명의 제후중 한 명이 된다. 유방은 다시 새로운 권을 갖게 된다. 바로 제후권이다.

 

권에는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다. 권의 안에는 더 작은 권이 있는 경우도 많다.

 

유방은 천하제후권의 구성원중 하나로서, 그 자신의 권을 보유하고 있다. 이 권은 풍패의 고향사람을 위주로 한 공신집단이다. 그는 천하의 현사를 받아들이는데, 장량, 진평, 역이기, 육가등의 충신들이 있고, 한신, 팽월, 경포등이 모두 그의 권내로 들어온다. 마지막으로 그는 천하인재의 이 새로운 권을 이용하여, 유씨강산을 만들어내고, 서한제국의 개국황제가 된다.

 

유방의 일생은 계속하여 새로운 권을 개척한 인생이다. 진나라의 구신인 숙손통, 한군수졸 누경(婁敬)도 모두 유방의 새로운 권의 중요구성인물이 된다.

 

태공의 길을 갈 것인가, 유방의 길을 갈 것인가는 사실 한 사람의 선택이다.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어느 길을 가라고 강요할 수 없다. 다만, 권을 확대하고, 새롭게 하는 것은 사람들이 새로운 생활을 시도해보는 필연적 결과이다. 새로운 권이 생긴다고 하여 옛 권을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새로운 권이 없으면, 아마도 풍부하고 다채로운 인생은 불가능할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사업의 성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권을 계속 바꾼다.

 

권에도 대소의 구분이 있고, 아속(雅俗)의 구별이 있다. 대소가 어떻든, 아속이 어떻든 권은 권이다. 진입하는데는 모두 문턱이 있다. 출입증의 절반은 자신의 수중에 있지만, 나머지 절반은 그 권내의 사람들의 수중에 있다. 이 두개의 반쪽짜리 증이 완벽히 합쳐져야만 들어갈 수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권에 들어가는 것은 많은 정도에 있어서 당신의 뜻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접수와 승인의 표준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한가지는 확정할 수 있다. 표준에도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사공(事功), 즉 당신의 성취이고, 다른 하나는 위인(爲人), 즉 당신이 이 권내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느냐이다. 진평이 막 항우집단에 들어갔다가, 유방집단으로 전환할 때, 유방은 진평을 아주 높이 평가하여 그를 도위에 임명한다. 그러나, 유방집단내에서 강후 주발, 영음후 관영을 우두머리로 하는 공신파는 진평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유방의 앞에서 진평이 '형수를 빼앗고 돈을 받았다'고 폄하한다. 유방은 하마터면 이때문에 진평을 버릴 뻔했다. 그러나, 진평은 자신의 해명, 자신의 지모에 유방의 신임을 더해서 가장 어두웠던 시기를 넘긴다. 그리고 공신파의 주요구성원이 되고, 결국 공신파에 의하여 받아들여진다.

 

자신이 바라는 권에 급히 들어가려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당신은 아직 그 권의 문턱을 넘을 자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도거성(水到渠成, 물이 흐르면 도랑이 되고)인 법이고, 화숙체락(花熟落, 꽃이 다피면 꼭지가 떨어진다)인 법이고, 때가 되면 공은 이루어지고, 봄이 오면 꽃이 피는 법이다. 당신이 이 모든 조건을 갖추게 되면, 권은 자동적으로 당신을 받아들이고, 당신을 환영한다. 이때야말로 새로운 권에 들어갈 시기가 진정 성숙된 것이다.

 

한 사람이 자신이 만족하는 권에 들어갔다고 하여 일평생 그 권내에 머물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권내의 사람들이 영원히 너를 인정하겠는가? 일단 어떤 규칙을 어기면, 예를 들어 사람의 인품에 문제가 생긴다든지, 일처리에서 문제가 생기면 권내의 사람들은 너를 차버릴 것이다. 아니면 명목적으로 그 권내에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이미 권에서 쫓겨난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는 권에 들어가는 것도 있지만, 권에서 쫓겨나는 것도 있다. 권에서 나가는 것은 자신이 결정할 수도 있지만, 어떤 때는 자신이 결정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전체 권내의 사람들이 한 사람을 쫓아내기를 원한다면, 거기에 남아있을 수 있겠는가?

 

권의 구분은 아주 복잡하다.

 

어떤 권은 직업으로 구분된다. 예를 들어, 오락권, 학술권, 서예권, 회화권등등. 이 직업에 종사하고, 그 동업자들의 인정을 받으면 그 권에 들어갈 수 있다.

 

어떤 권은 재산으로 나눈다. 예를 들어, 부자권이다. 너의 재산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해야 이 권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권은 개인의 성취로 구분된다. 예를 들어, 명사권이다. 이것은 개인의 의지로 옮길 수 있는 권이 아니다. 명사권은 가장 복잡하고 방대하다. 여기에는 오락계, 체육계, 문화계, 과기계 등등이 포함된다. 

 

어떤 권은 관직의 고저로 구분된다. 어떤 직급에 도달하지 못한 관료는 그 권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것은 보통백성들로서는 알기 어렵다. 이 권은 '비아동류(非我同類)'의식이 특별히 강하다.

 

어떤 권은 업무로 구분된다. 네가 어떤 직장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너는 그 권에 속하는 것이다. 만일 권을 늘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이 권이 당신을 끝까지 따라갈 것이다.

 

그리고 그 외에도 각양각색의 권이 있다.

 

권을 타파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왜냐하면 권은 집단이 공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단의 공인을 받지 않으면 새로운 권으로 들어가기가 아주 어렵다. 우리는 일부러 어떤 권에 들어가려고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굳이 들어가려고 애쓸 것인가? 그저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취미를 가지고 나누는 권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하나 또 하나의 우상권을 형성한다. 이런 권은 아주 느슨하여, 진퇴가 자유롭다. 그것은 우리가 토론하는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

 

권의 교차는 어렵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여불위는 상계의 엘리트이다. 그러나 그는 최종적으로 정치엘리트로 유명해졌다. 범려는 정치엘리트이다. 그러나 그는 최종적으로 상계의 엘리트가 되었다. 각각의 업종에서의 엘리트들은 모두 정계로 들어온다. 정계만이 각종류 엘리트들의 집산지이다. 학계, 상계, 군계, 심지어 오락계에서도 정치가의 잠재적 자질을 갖추면, 모두 정계로 들어갈 수 있다. 세계에서 대통령 전공을 둔 대학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대통령은 아무리 세계적인 대학이라도 교육을 시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현실의 정치투쟁과정에서 단련되고 선발되는 것이다. 

 

권안에 또 권이 있을 수 있다. 영원히 이러하다. 혹은 하나의 권내에서도 핵심인물과의 친소관계는 모두 다르다. 혹은 관점, 혹은 기호, 혹은 유파가 다르다. 아니면 권에 들어온 원인이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리하여 권내에서도 다시 작은 권이 형성되기가 쉽다. 권내의 서로 다른 계파들간에도 아주 복잡하다. 유방이 황제가 된 후, 서한 정권에는 공신파, 황권파, 외척파의 서로 다른 파벌이 있었다. 서로 다른 파벌간의 균형을 맞추어야 권이 안정된다.

 

권이 커질 수 있는지 없는지는 통이 큰지여부를 봐야 한다. 통이 크면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아량이 있다. 사람을 받아들여야 큰 사업을 벌일 수 있다. 경쟁으로 계속 탄압한다면, 자신의 권은 점점 좁아지는 것이다.

 

권과 권은 서로 결맹할 수 있다. 공동으로 다른 권과 대항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여후가 죽은 후, 공신파와 황족파의 두 권은 손을 맞잡고 여씨외척파를 물리쳤다. 권과 권의 연합은 이익쟁탈을 위한 경우도 있고, 이익을 획득하기 위한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