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문정(文靜)
"국주마오타이(國酒茅臺)"의 상표분쟁이 계속되고 있을 때, 마오타이주의 뿌리중 하나인 라이마오주(賴茅酒)의 상표쟁탈전은 더욱 시간을 오래 끈 것이다.
사실상, 2년이 지났지만, 라이마오 상표가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귀속될 것인지는 아직도 결정되지 못했다. 현재까지, 이 시장에서 잘 팔리고 있는 백주브랜드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이익당사자들의 막후다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8월상순, 런화이시(仁懷市)에 막 간판을 걸고 성립된 주류발전국(酒類發展局)의 국장 어우야치(歐亞奇)는 이렇게 토로했다: 라이마오 재심사건의 최종결과는 곧 나올 것이다. "만일 마오타이집단이 가져간다면, 나는 이후 더 이상 라이마오주를 생산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는 말했다. 라이마오는 구이저우(貴州)가 장향형(醬香型) 백주산업과정의 하나의 교훈이다.
사실상, '라이마오' 상표쟁탈전에서 마오타이집단외에, 라이스하오(賴世豪)가 설립한 구이저우라이스자(賴世家)주업유한공사와 구이저우성 런화이시 마오타이진 난궈(南國)주업유한공사(이하 "난궈주업")은 여전히 이 상표를 차지하기 위하여 힘을 내고 있다.
"내가 알기로, 라이씨집안의 삼형제중 둘째와 셋째는 이의를 추가로 제출했다." 8월 31일, 귀이저우종관(縱貫)율사사무소 주임 런우(任武)는 이렇게 말한다: "모두 상표의 재심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최근 들어, 천가지가 넘는 라이마오주가 시장에 나타났다. 이들 대부분은 마오타이진에서 만들고, 외지에서 판매하는 OEM제품으로 소비세는 모두 외지에서 납부한다. 런화이시는 그저 산주세(散酒稅)만 징수하고 있다. "라이마오주로 구이저우성의 재정에 끼치는 손실만 계산해도 억단위에 이른다."
더욱 심한 것은 여러 공상부서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라이마오의 명칭을 내건 술들 중에서는 품질이 열악한 경우도 있고, 가짜술을 담은 경우도 있어, 백주시장의 질서를 크게 교란시키고 있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점은 라이마오가 이미 전국에서 비교적 큰 지명도를 지닌 장향형 백주브랜드라는 것이다. 마오타이집단에 따르면, 최근 들어 국가공상총국이 런화이시에 사람을 파견하여 재조사한 바에 따르면, 라이마오를 둘러싼 다툼은 빠른 시일내에 끝날 것이다.
진짜 가짜 라이마오
시장에서 지금 판매되고 있는 라이마오주는 도대체 몇 가지나 될까? 이 문제는 아무도 정확한 답을 내놓지 못할 것이다.
마오타이집단 지적재산권처 브랜드상표과의 책임자인 양쥔(楊駿)의 회고에 따르면, 작년의 청두당주회(成都糖酒會)에서, 마오타이집단은 사람을 파견하여 수집한 라이마오관련자료만 30여개였고, 제품은 수백개 내지 천개이상이었다. 일찌기 2008년, 선전시 공상국은 관리감독에서 많은 라이마오를 적발해 냈다.
귀이저우 라이용추(賴永初)주업유한공사의 부총재인 라이야페이(賴亞飛)에 따르면, 2,3십년동안, 시장에서 나타난 라이마오공장은 400여개에 달하고, 허난, 산동, 광동, 푸젠등지에서 라이마오주를 만들고, 라이마오주를 파는 곳이 있다.
"전체 마오타이진은 라이마오주를 모두 생산하고 있다." 츠쉐이허(赤水河)의 변에 줄줄이 늘어서있는 양조장중에서 비교적 규모가 큰 민영주류기업의 양주사의 말이다.
기자가 고객신분으로 라이마오주를 사겟다고 하자, 그는 바로 두 가지 연도의 라이마오주를 포장해서 내놓았다. 마오타이진 타이량(臺糧)주업유한공사, 귀이저우마오타이진마오타이집단주식유한회사, 귀어저우성 런화이시 마오타이진 화이챠오(懷橋) 주창(酒廠)총부, 조사야(祖師爺)라이마오주업유한공사등이 모두 라이마오주를 생산, 포장하고 있다.
"외지와 마오타이진 현지의 양조장은 라이마오의 덕을 보고, 라이씨가족문화를 이용하여 대거 투기하여 돈을 벌고 있다." 구이저우 라이위성(賴雨生)주업유한공사 동사장 라이스센(賴世賢)이 구이양(貴陽)에서 기자인터뷰때 한 말이다.
이로 인하여 여러가지 웃지못할 일도 벌어졌다. 예를 들어, 라이씨집안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기업이 라이스강(賴世綱)이 그들의 할아버지라고 하였는데, 동일한 전람회에서 똑같은 술을 경영하는 라이스강이 바로 그의 전시부스 앞면에 서 있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기업은 라이씨집안의 조상인 라이자롱(賴家榮)을 자신의 할아버지라고 하면서, 두상을 술병에 붙여놓기도 했다.
한가지 우스운 일은 귀이저우스위(世雨)주업유한공사라는 기업은 라이마오주를 팔기 위하여, '라이스위(賴世雨)'가 라마이모주의 창시자의 후손이라고 날조하기도 했다.
작년 3월의 청두당주회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은 라이스위가 라이마오주창시자의 후손이라는 선전책자와 업무인원의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라이씨3형제 라이용추, 라이구이산(賴貴山), 라이위성(賴雨生)의 세 사람을 언급했다. 매장에는 자신들을 정종(正宗)라이마오주라고 표시했다. 책자를 돌린 기업은 구이저우라이스위주업유한공사의 이름으로 참가했다.
전시회에 참석했던 라이스센은 즉시 청두시 율정공증처에 증거보전공증을 신청했고, 대리인에게 위탁하여 그 회사에 주문을 내고 계약금 1000위안을 지급했으며, 구이저우라이스위주업유한공사가 날인한 영수증, 샘플술 및 선전책자등을 획득했다.
구이양으로 돌아온 후, 라이스센은 라이씨가족 8명과 함께 구이저우스위주업유한공사를 법정에 제소하고, 즉시 그의 가족구성원에 대한 허위선전을 중지하고, 정신위자료 20만위안을 배상하도록 요구했다. 2011년말, 구이양시 난밍구인민법원은 원고의 하나인 부친의 성명권과 명예권을 침범한 것으로 구이저우스위주업유한공사에게 선전중단 및 사죄, 영향제거를 명했다.
"현재, 구이양시중급인민법원의 2심판결이 이미 나왔다. 상대방이 여전히 패소했고, 법원집행단계에 있다." 8월 31일, 이 명예권사건의 원고대리변호사인 구이저우종관율사사무소 주임 런우는 이렇게 말했다: "권리침해자는 허난사람이 만든 라이마오주기업이다."
"이들 라이마오주공장은 100% 법규를 교묘히 회피하고 있다." 라이야페이의 말이다.
"기업중 라이마오주창이라고 부르는 곳은 런화이시에 하나도 없다." 런화이시 공상국장 위안이신의 말이다. 이전에 라이마오주창이 하나 있었는데, 이미 말소되었다.
"어느 기업이든, 라미아모주상표를 생산하는 것은 국내에서 보호를 받을 수 없다." 그는 말한다. 라이마오상표는 이의재심기간이기 때문에 소유권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시장에는 라미마오의 '삼란(三亂)'이 형성되었다: 브랜드란, 가격란(價格亂), 산지란(産地亂).
작년 당주회에서, 전시회참여기업인 구이저우쉬란(旭冉)주업유한공사가 라이마오주를 하나 내놓았다. 술에 등록상표인 '샤오페이(小飛)'는 아주 작은 글자로 쓰고, '라이마오(賴茅)' 두 글자는 아주 크게 썼다. 라미아모상표와 제품명칭을 혼동시키는 것이다. 어떤 기업은 아예 장향형 라이마오주를 농향형(濃香型)의 대표로 말하기도 했다.
"2,3십위안짜리 산주(散酒)를 박스에 넣어서 포장한 후 600위안짜리 연도술로 판매한다." 런화이의 한 라이마오주 양조장의 주인의 말이다. 1990년대, 어떤 외지기업은 금융위기때, 라이마오주를 병당 3, 5위안까지 팔기도 하여, 가격이 아주 혼란스러웠다.
"라이마오 양조장의 대부분은 OEM생산이다." 라이야페이의 말이다. 런화이시주류발전국국장인 어우야치는 이에 대하여 골치아파 하고 있다. 산지는 마오타이진인데, 판매회사는 왕왕 구이양 혹은 다른 곳이다. 소비세는 한푼도 런화이에 떨어지지 않는다. 구이저우스위주업유한공사의 생산기지는 구이저우성 런화이시 마오타이진의 전장주창(典藏酒廠)이고, 구이저우라이스센주업유한공사의 라이마오주는 마오타이진 진장(金醬)주업에서 생산한다. 규모가 크지 않은 이들 양조장에서 생산한 라이마오주는 품질을 보증하기가 쉽지 않다.
런화이시 공상국의 관련인사에 따르면 최근에 적발한 사례가운데, 어떤 기업은 생산과 판매가 모두 다른 성인데도 마오타이진에서 생산된 술이라고 사칭하여 판매한다.
법규를 교묘하게 피하는 것과 비교하자면, 어떤 기업은 라이마오주를 생산하면서 아예 무허가로 경영하고 있다. 금년 5월 12일, 기자는 마오타이진에서 구이저우라이스(賴氏)주업에 술을 사겠다고 했다. 연락인인 우(武)사장은 전화에서 런화이시가 지금 생태환경보호회의를 열고 있기 대문에, 무허가영업을 하던 그는 이미 생산을 중단했다고 한다. 술이 필요하면 며칠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라이마오상표는 권리가 확정되지 않았다. 중국백주산업에 큰 해를 끼쳤다. 그러나 권리가 확정되지 않았으므로 우리의 단속부서도 방법이 없다." 양쥔의 말이다. 다른 기업이 '마오타이주의 자원' '마오타이주의 전신'등으로 선전하고 있는데, 이것은 모두 허위선전이다.
뇌씨집안의 내분
이들 온갖 라이마오중에서, 상당한 일부분은 라이씨가족 내부에서 내놓은 것이다.
금년 1월, 다롄시 사허커우구인민법원은 라이스강과 라이스센이 구이저우라이용추(賴永初)주업유한공사의 동사장 라이세창(賴世强)을 제소한 건에서, 라이마오주 명예침해권사건의 1심판결을 내렸는데, 원고의 소송청구를 기각했다.
법원은 심리를 거쳐, 작년 5월 6일, 다롄만보의 광고판에 "정종라이마오주 - 라이용추 선생독창"이라는 글을 실었는데, 구이양시 공상연합회이 1992년 5월 23일자로 발급한 <증명서>를 인용했다: "역사명주 라이마오는 당회 회원 라이용추 선생이 1930년대에 독자적으로 만든 구이저우 마오타이촌 헝싱주창(恒興酒廠)이 만든 것이며, 조상대대로 내려온 것이 아니다. 그 동생 라이구이산, 라이위성은 여하한 투자나 지분이 없다."
법원에서는 이 증명서는 객관적이고 진실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라이구이산, 라이위성의 명예를 모욕,침해하는 방식으로 손해를 끼치지 않았다고 하였다.
라이자롱(賴家榮)은 세 아들을 낳았는데, 장남 라이용추(라이스창의 부친, 1981년 사망), 차남 라이구이산(라이스강의 부친, 1999년 사망), 삼남 라이위성(라이스센의 부친, 1965년 사망)이다.
라이씨 삼당형제는 처음으로 법정에서 만났다. 또한 라이씨가족이 각각 개인명의로 경영하는 방대한 주업이 수면위로 드러났다.
금년 5월 13일, 구이양에서 라이스센이 설립한 구이저우라이씨문화연구센터에서 기자는 라이스센, 라이스강 두 노인을 만났다. "다른 성씨사람들과 소송을 하는 것은 호랑이를 잡더라도 소가 힘들어 죽는다. 너무 돈이 많이 든다." 라이스센의 말이다. 현재 그는 문화를 통하여 라이씨가 아닌 투기분자들을 드러내게 하려고 한다.
라이스센은 처음으로 외부에 라이씨가족 구성원이 라이마오주를 생산하는 기업을 정리해주었다.
라이용추가 사망한 후, 아들인 라이스창은 구이양에 구이저우라이용추주업유한공사를 설립하고, 마오타이진에 구이저우성 런화이시 마오타이진 헝싱주창을 설립한다. 라이용추의 또 다른 부인소생인 라이스쉬(賴世擧)주업유한공사를 설립했다. 라이스쥐의 아들 라이펑성(賴鵬生)은 구이저우라아펑성주업유한공사를 설립하고, 라이스쥐의 조카 라이송(賴松)도 라이송주업을 설립한다.
라이스쥐 본인과 라이용추의 관계에 대하여 라이야페이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라이스쥐는 라이씨집안사람이 아니다. 내가 아는 바로는 그는 원래 라이씨가 아니었다." 그러나 기자는 구이양시 공안기관과 구이저우성목업총공사 이퇴휴판공실에서 내놓은 증명서를 보면 라이스쥐와 라이용추는 부자관계이다.
라이구이산의 후손중 주업을 경영하는 사람이 가장 방대하다.
라이스센의 소개에 따르면, 라이구이산의 첫째부인 소생인 라이스룬(賴世倫)의 아들 라이딩(賴頂)은 구이저우 후이구이라이(回歸賴)주업공사를 설립했다. 큰부인의 둘째 딸인 라이스샤(賴世俠)은 구이저우라이스샤주업을 설립한다. 큰부인의 셋째 딸인 라이스링(賴世玲)은 구이저우라이스링정헝(正衡)주업공사를 설립한다. 라이스링의 사위 쉬잉(徐英)은 구이저우라이구이산주업유한공사를 경영하고 있다.
라이구이산의 둘째부인이 낳은 아들 라이스강은 구이저우성라이스강주업유한공사를 설립한다. 둘째부인이 낳은 딸 라이스쥔(賴世俊)은 구이저우라이스쥔주업유한공사를 설립한다.
라이구이산의 셋째부인이 낳은 아들 라이스하오(賴世豪)는 구이저우라이스하오주업유한공사를 경영한다. 셋째부인의 또 다른 아들인 라이스중(賴世忠)은 구이저우라이스중주업유한공사를 보유하고있다. 라이스하오의 형인 라이스청(賴世誠)은 라이위안주창(賴源酒廠)을 열었다.
라이위성의 아들은 라이스센 한 명이다. 그는 구이저우라이스센주업유한공사와 구이저우라이위성주업유한공사를 창업한다. 후자는 아들 라이상루(賴相如)가 책임지고 있다. 라이상루는 구이저우진라이예(金賴液)주업을 경영하고 있다. 라이스센의 딸인 라이첸루(賴茜如)도 주창(酒廠)을 하나 열었다.
"라이씨집안소유의 주창은 모두 라이마오주를 생산한다." 라이스센의 말이다. 예를 들어, 라이스청의 회사에는 라이마오주, 라이위안주(賴源酒)가 있고, 라이스하오의 회사에는 라이스주(賴世酒), 라이마오주가 있고, 라이스순은 라이주(賴酒), 라이마오주를 생산한다. 라이스센은 라이마오주 이외에 라이타이주(賴臺酒)도 있다.
우량예주식의 16구 "윤장발승(尹長發昇)" 명나라때 주교(酒窖)의 후인들은 아무도 술을 하지 않는 것과 달리, 마오타이집단의 전신인 "청이(成義)", "롱허(榮和)"와 "헝싱(恒興)"의 3개의 사영양조장이 국유로 된 후, 헝싱주창에 관련된 라이씨가족은 거의 모두 술을 만들고 있다.
라이스센의 회고에 따르면, 라이용추는 서거하기 전에 "모두 단결하여, 라미마오를 발양광대하길 바란다"고 한 바 있다. 라이구이산은 더더욱 후인들이 모두 술을 만들기를 희망했다.
부친대의 격려하에, 라이씨가족은 처음으로 술업계에 뛰어든다. 일찌기 1980년대초, 라이구이산은 마오타이진에서 술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라이쓰주창(賴氏酒廠)을 설립했다. 같은 시기에, 라이스룬, 라이스센, 라이스창, 라이스청이 속속 주창의 기치를 내건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아시아금융위기를 맞이하여, 대부분의 주창이 생산중단한다. 단지 헝싱주창만 여전히 경영하고 있다.
1988년 12월 29일 마오타이집단이 '라이마오'상표를 등록하기 전에, "재정부서는 기업에 세금납부만 요청했고, 누구든지 라이마오를 생산할 수 있었다." 라이스센의 말이다. 그러나, 마오타이집단이 라이마오주를 등록한 후, 각중 시중의 라이마오주는 모두 매장에서 내려왔다. 라이마오주는 10년간 적막에 빠진다.
2007년이래, 마오타이집단의 "라이마오" 상표에 대하여 이의가 제기된다. 국가상표국은 당해 상표를 마오타이집단에 인정하기는 했지만, 어떤 기업은 이 재정결과에 불복하여, 라아미오상표처에 이의재심을 제기하여 계류중이다.
2008-2009년, 라미아오주는 다시 한번 기세를 올린다.
허난, 산동등지에서 라이마오주가 잘 팔릴 뿐아니라, 라이씨가족의 두번째 주업투자가 다시 열기를 띈다.
라이위성주업, 라이스센주업, 구이저우진라이위안(金賴源)주업등이 이때 탄생한다.
"라이씨들은 모두 라이마오주 브랜드를 사용한다. 대외적으로 정종이라고 표시하고, 모두 조상대대로 물려온 것이라고 말한다." 라이스센의 말이다. "라이스창은 과거의 헝싱주창과 라이위성, 라이귀산은 무관하다고 말하여 현재 라이씨집안과 대립중이다."
내분은 선전책자에서도 이견을 표출한다. 점점 소송까지 붙게 되었다.
선전책자에서, 라이스센과 라이스창은 라이마오주가 헝싱주창에서 나왔다는 것을 인정하고, 국영마오타이주창이 헝싱주창의 기초하에 성립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외에 나머지는 크게 다르다.
라이스창의 라이용추주업은 여러번 강조하고 있다. 라이용추야말로 라이마오주의 창시자이다. '국주의 아버지'이다. 일찌기 20세기초, 라이자롱이 서거한 후, 라이용추는 구이양 다난먼에 연 '라이싱롱(賴興隆)상점의 장사를 모조리 책임졌다. "1941년, 라이용추가 독자적으로 헝창소방(衡昌燒坊)을 인수한 후, 거액을 투자하여 '헝싱주창'으로 이름을 고쳤다."
다만 라이스센은 구이양시 난밍구의 문사자료를 근거로 하여, '라이싱롱' 상호는 그저 라이용추가 전포(錢鋪)에서 학도로 있었다는 내용만 있지, 그가 모든 책임을 지고 처리한 것은 아니었다. 라이스센의 "백년우생" 화책을 보면, 라이자롱이 서거한 후, 전체 라이씨가족이 경영하는 전장(錢莊), 헝싱라이마오주창 및 모든 사업은 라이씨삼형제(라이용추, 라이구이산, 라이위성)이 계승하여 발전시키고, 분투하고 업무를 나누어 처리했다.
건국전 최초의 라이마오주 상표를 누가 설계했는지에 대하여도 쌍방은 서로 말이 다르다. 라이용추주업은 대외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20세기 30년대말에서 40년대초에 라이용추는 상표를 바꾸려고 한다. 그의 성씨 '라이'와 원산지 마오타이진의 '마오'를 합쳐서, '헝싱주창'이 생산하는 마오타이주의 대붕(大鵬)도안의 '라이마오'주 상표로 등록했다. 그 뜻은 날개를 펼치고 높이 난다는 의미이다."
이에 대하여, 라이스센은 말한다. 화마오(華茅), 왕마오(王茅)가 속속 상표를 가지게 된 후, 라이마오주 상표를 홍콩으로 가서 인쇄한다. 라이구이산이 상표설명을 쓴다. 상표를 신문에 싣고, 등록한다.
누가 라이마오주의 독특한 비방을 가졌는지에 대하여도 라이씨집안에서는 서로 말이 다르다.
라이스창은 말한다. 1980년대초, 부친 라이용추 선생이 홀로 창안한 라이마오의 양주기법과 배합비법으로 30여년간 중단되었던 라이마오주를 양조해낸다. 라이스센은 라이스센주업의 "라이마오주대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1990년, 라이마오주의 창시자인 라이위성이 아들이자 정종적계전인인 라이스센이 라이마오비법을 전승받아 조상의 사업을 발전시켰다.
라이스쉬노인이 내놓은 명함에는 '구이저우스쥐유한공사 공업사, 라이스쥐(라이마오배합비법계승자)"라고 적혀 있었다.
누가 배합비법의 진정한 소유자인가? 라이스센은 말한다. 해방후, 라이용추와 형제 3인은 모두 불려가서 배합비법을 쓰게 했다. 이때부터 마오타이양주의 기초가 된다. 라이씨집안의 주조사들이 썼다. 마오타이주의 공법은 세 집안의 정화를 모았다. 여기에는 화마오와 왕마오도 포함된다. "라이마오의 배합비법은 마케팅기법 내지는 프로모션기법일 뿐이다."
선전에서 서로 완전히 다른 외에, 생산가공에서, 라이용추주업은 가족내에서 다른 구성원등의 방식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라이스가족의 주업의 총규모에 대하여, 라이야페이는 "규모는 생산능력이 있다. 가족구성원내에 절대다수는 자신의 양조장조차 없다. 그런데 무슨 규모를 따지겠는가?"
라이스센도 인정한다. 생산허가증이 없으므로, 라이씨집안에서 설립한 주류기업은 부득이 마오타이진의 양조장과 결합해야 한다. 양조기지를 마오타이에 두는 것이다. "우리는 점차 마오타이전의 비교적 좋은 주창에 지분참여하려고 한다. 우리는 자신의 양조장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술 한방울 한방울을 모두 스스로 생산한다." 라이야페이의 말이다. 라이용추주업이 상무부에 의하여 중화노자호(老字號, 전통점포)로 평가받는다. 이는 구이저우의 첫번째 장향형 백주민영기업의 영예이다. 런화이공업단지에는 라이스창이 만든 신헝싱주창이 지금 확장중이다. 2014년에는 술생산능력 5000톤에 이를 것이다.
"다롄의 사건은 라이스센과 라이스강 노인이 중급인민법원에 상소했다. 지금은 모두 철회했다." 8월 31일, 변호사 런우는 이렇게 말한다. 라이마오상표를 빼앗으려면, 라이집안 사람들이 반드시 단결해야 한다. 그래야 마오타이집단과 싸울 수 있다. 그는 라이씨가족이 회사 1개를 성립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그렇게 한 후 국가상표국에 상표이의를 제기하고, 상표신청이 성공한 후 라이센스수권을 통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라이마오상표에 대한 태도에서 라이야페이는 금년 5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마오타이주창을 등록하던지 아니면 헝싱주창을 돌려주기를 희망한다."
라이마오상표의 곡절
사실상, 라이씨가족은 라이마오상표를 위햐여 이미 3번이나 신청했고 모두 실패했다. 이번이 네번째 시도이다.
라이스센은 말한다. 일찌기 1982년, 중화인민공화국 상표법이 발효된다. 라이구이산은 일찌감치 국가공상국에 라이마오상표를 등록신청한다. 그러나 부결된다. 1988년, 마오타이주창은 라이마오상표를 등록했을 뿐아니라, 화마오 및 왕마오 상표까지 등록한다.
1995년, 라이쓰가족은 실패에 굴하지 않고, 구이저우성 런화이현 마오타이라이스주창, 구이저우런화이마오타이헝싱주창, 구이저우성구이양용추주창, 구이저우성구이양용추주업유한공사는 마오타이주창에 대하여 상표등록공고상의 제627426호 라이마오상표에 대하여 이의를 제출한다.
이의신청인은 라이마오주는 라이용추선생 및 형제 라이구이산 선생이 1941년 런화이 마오타이촌에서 '마오타이촌헝싱주창'을 만들 때 만든 것이다. 라이구이산 및 그 후손이 등록하고 승계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
마오타이주창은 이렇게 변론했다: 해방전에 마오타이주는 화원취(華問渠)(청이주방), 왕빙첸(王柄乾)(롱허주방), 라이구이산(헝싱주방)의 3개의 사영기업이 경영하며, '화마오' '왕마오' '라이마오'라고 불렀다. 해방후, 정부는 선후로 청이주방의 모든 재산을 구매하고, 롱허주방을 몰수하여 마오타이주창으로 편입시켰다. 1953년 2월, 라이마오의 자산을 2.25억위안(구화폐)으로평가하여 마오타이주창에 귀속시킨다. 이렇게 하여, 화마오, 왕마오 및 라이마오의 3개의 사영주방의 모든 자산은 국가소유로 귀속된다. 그 제품도 삼모통일로 구이저우마오타이주로 부른다. 그래서 라이마오주, 왕마오주, 화마오주는 모두 마오타이인민의 지혜의 결정이고, 마오타이인민의 지적재산권이며, 이미 마오타이주창으로 귀속되었다."
당시, 국가공상총국 상표국은 상표는 지적재산권이고, 기업재산의 일부분이며 역사상 삼모의 통일로 재산권은 아주 명확해 졌고, 이의신청인의 이의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헝싱주창은 이에 불복하여, 다시 국가상표평심위원회에 이의재심을 신청한다. 결과 원래 상표국의 결정이 유지된다.
세번째는 라이스센에 따르면, 라이씨가족이 라이스하오의 명의로 다시 이의신청을 제출한 것이다. 국가상표국의 부작위를 이유로 소송을 제기한다.
"지금, 라이스하오뿐아니라, 라이용추 3형제의 둘째와 셋째는 모두 사람을 보내어 이의재심을 제기했다." 런우의 말이다.
이에 대하여, 마오타이집단 지적재산권부 양쥔은 이렇게 말한다. 1980년대 국가에서 상표법을 반포한 이래, 라이씨가족은 계속 불복하고 있다. 마오타이집단이 상표등록권을 받은 전후에 라이씨 및 비라이씨기업은 계속 라이마오상표를 사용하고 있다. 1990년대, 마오타이집단은 국가공상총국에 보고서를 낸다. 국가공상총국은 문서를 내서 기등록된 라이마오상표를 보호했다.
그러나 2003년이후, 마오타이집단의 지적재산권관리상의 경험부족으로 어떤 기업이 연속3년간 라이마오상표를 사용하지 않은 것을 이유로 국가상표국에 마오타이집단의 라이마오상표를 취소할 것을 청구한다. 2005년, 마오타이집단이 등록한 라이마오상표는 법에 따라 취소된다.
"우리는 수백개의 상표를 등록하고 있다. 어떤 방어상표는 반드시 등록해야 한다. 그러나 모두 쓰지는 않는다. 라이마오상표에 있어서 매 2,3년마다 상징적으로 기념주를 만들거나 광고를 한다. 그러나 국가평심위원회는 우리의 이런 사용방식을 인정하지 않고 잇다. 사용으로 보기에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양쥔의 말이다.
당시 크게 손해를 보았던 마오타이집단은 즉시 신청을 제출하여, 라이마오상표를 잃었다가 다시 찾았다.
그러나 후유증을 계속되고 있다. 마오타이집단이 사용때 라이마오는 구이저우 마오타이주의 역사상의 제품명칭임을 고려하여, 양자는 제품포지셔닝에 충돌이 있다고 보고, 계속하여 제품을 출품하지 않았다. 비록 라이마오상표를 마오타이집단에 인정해주기는 했으나, 이의신청인들이 이의를 제기하여, 현재, 이 상표는 이의재심중에 있다.
라이마오상표가 교착상태여서, 런화이시 본토의 한 양조기업인 난궈주업은 라이마오상표를 홍콩과 마카오에 등록했다. 이 기업은 작년 7월 28일 국가공상총국에 제35류 라이마오상표를 등록한다. 광고, 상업정보, 인사관리자문등이다. 33류의 식품류 라이마오상표를 등록할 수 없는 외에 난궈주업은 국내에 십여류의 기타 유별에 라이마오상표를 등록했고, 공고중이다.
이러한 상표절취행위에 마오타이집단은 그게 불만이다. "우리는 난궈주업의 다른 류에 대한 라이마오상표등록에 이의를 제기했다." 양쥔의 말이다. "우리는 상표평심위원회가 역사적으로 형성되고, 법률보호를 받아야 하는 민족공업브랜드를 인정해주고, 지방백주기업의 자주혁신의 길로 갈 수 있기를 바란다."
라이마오주가 마오타이주의 뿌리중 하나이지만, 라이마오주라는 명칭이 언제 나타났는지는 사료마다 서로 다르다. 마오타이집단박물관내의 라이용추조각상 아래에 기재된 것은 "1947년, 헝싱소방에서 생산된 마오타이주의 상표는 '라이마오'이다. 헝싱소방은 해방후 합병하여 마오타이주창이 된 3개의 소방중 하나이다."
난궈주업의 총경리 청다하이(程大海)는 1938년이라고 하고, 라이스센은 1935년이라고 한다. 변호사 런우가 가진 증빙으로는 1935년에 이미 헝싱주창이 있고, 라이마오주를 생산했다. 런화이현지에는 구체적인 시간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1941년 구이양의 라이용추가 저우씨(周氏) 헝창주방을 헝싱주창으로 이름을 고쳤다. 생산한 술은 먼저 헝창마오타이(衡昌茅臺)로 하다가 나중에 '라이마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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