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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산업

중국의 커피산업

by 중은우시 2012. 9. 18.

글: 시간선(時間線) 

 

1985년 겨울, Kraft에 근무하던 천바오칭(陳寶慶)은 찬바람을 맞으며 베이징의 모 외국계호텔에 들어섰다. 그는 이미 쉬지않고 96개의 섭외기구를 방문했다. 멕스웰커피의 진한 향기를 가지고.

 

그러나 그때의 중국에서 천바오칭이 직면한 것은 완전히 공백인 시장이었다. 선진국에서 1인당 매년 100잔의 커피를 소비하는데, 당시 10명의 중국인을 합쳐서 1잔도 마시지 않았다. 그러나, Kraft는 중국의 개혁개방이 정상궤도에 들어서고, 비지니스맨들이 늘어나면, 미래의 커피시장이 커질 것이라고 보았다. 그들은 정교하게 보기좋은 선물포장을 준비했다. 멕스웰커피중에서 80%가 바로 이런 선물상자였다. 중국인들에게 커피는 선물하기 좋은 물품이었다.

 

거의 동시에, 스위스의 네슬레도 이 신흥시장을 주목했다. 1980년대, 이 두 개의 식품대기업 산하에 있는 '인스탄트 커피'는 그 시대에 가장 생생하게 살아있는 기억중 하나이다. "맛이 아주 좋다"와 "점점이 진한 향기가 오래 지속된다."는 광고어는 당시 대륙의 커피에 대한 계몽교육을 시작하는 말이다. 처음 커피를 접한 중국인들은 구미시장에서 유행하는 블랙커피에는 심리적인 거부감이 있었다. 네슬레는 그리하여 쓴맛을 제거한 1+2의 혼합형커피를 내놓는다. 그리고 광고에서 커피를 타는 방법을 보여준다.커피메이트를 섞어 향기와 단 맛이 나는 가운데, 중국인의 커피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30년이 흐른 후에도 인스탄트 커피의 지위는 여전히 단단하다. 다만, 커피의 중국에서의 이미지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커피는 일찌감치 단순한 커피색분말음료의 의미를 벗어나서, 일종의 감정이 깃든 문화현상이 되었다.

 

이런 의미는 아직도 계속 진행중이다. 스타벅스의 전 중국구총재인 왕진롱(王金龍)은 이렇게 말한다: "중국은 지금 전환기이다. 커피문화는 이미 점차 커피소비로 변화한다." 현재, 스타벅스는 중국대륙시장에 700개가 넘는 점포를 가지고 있고, 금년에 다시 150개의 신규점포를 개설할 예정이다. 2015년이 되면 중국에 최소한 1500개의 점포를 운영하게 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중국은 스타벅스에게 미국 다음가는 제2의 시장이 될 것이다. 짧은 30년만에 중국은 거의 유럽시장이 100년이 넘게 걸린 변화를 완성한다.

 

그러나, 사실상, 유럽시장이 겪은 3차례의 커피붐을 중국은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인스탄트커피이후, 스타벅스, Costa를 대표로 하는 이탈리아식커피가 점차 제2의 붐을 형성하고, 현재 조용하게 고급거피가 흥기하고 있는데 아직 완전히 싹을 틔우지는 못했다. 성숙된 시장에서 온 사람이건 아니면 새로 성장하는 얼굴이건 그들은 중국에서 독특한 커피생태를 그려가고 있다.

 

최초의 10년간, 인스탄트 커피는 거의 커피의 대명사였다. 한 무리의 타이완 사람들이 밝은 창문과 편안한 의자 그리고 커피포트를 대륙으로 이식했다. 1990년대, 대륙인들이 처음으로 잘 알게 된 상도(上島)커피와 조각시광(雕刻時光)이 등장한다. 상도커피는 커피를 비지니스기능으로 정의했다. 그때 비단창문의 편한 의자의 커피숍에 앉아서 한 잔에 수십위안하는 커피를 마시는 것은 아주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비지니스를 하는 상인들만이 이 곳을 이용할 수 있었다.

 

초기의 커피숍은 확실히 힘은 들고 돈벌기 어려운 장사였다. 1997년, 타이완사람인 좡즈(庄仔)가 베이징대학 완성서점(萬聖書園) 부근에 첫번째 조각시광 점포를 열었을 때, 어디로 가야 커피기계와 커피콩을 살 수 있는지를 몰라서 멍했다. 당시 중국내에서 커피를 다루는 공장은 아주 적었다. 그저 곳곳에 물어볼 수 박에 없었다. 첫번째 커피기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망가져 버린다. 좡즈는 그제서야 발견했다. 고가를 주고 사들인 것이 원래 중고품이었던 것이다.

 

최초의 몇 개월간, 커피숍의 일일 손님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하여, 좡즈는 커피숍에서 영화를 방영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커피점의 성격에 맞았다. 주요 고객은 베이징대학과 칭화대학의 교수와 학생이었다. "내 느낌에 세느강가에 있는 맛이 있었다." 좡즈의 말이다.

 

상도의 비지니스분위기와 다르게, 조각시광은 문예적인 분위기로 쁘티부르조아청년들이 심취했다. 그 후, 풍격이 서로 다른 작은 커피숍이 계속 나타난다. 대부분의 커피숍은 좡즈와 마찬가지로 분위기를 따지고 비지니스적이 아니었다.

 

이때의 커피풍조에서, 커피문화는 시종 위에서 아래로 피라미드식으로 전파되었다. 비지니스맨들이 커피숍의 소비를 부담하고, 학생들은 커피문화의 선구자가 된다. 많은 커피숍은 대학부근에 열었다. 그 때의 젊은이들은 새로운 사물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아쉬운 점이라면, 짧은 기간의 이 낭만적인 풍조가 금방 더욱 강한 풍조에 휩쓸려 버렸다는 것이다. 또 다른 타이완사람들은 스타벅스의 '세이렌(인어)'를 데리고 바다를 건너온다. 미국식으로 포장한 이탈리아커피가 저항할 수없는 방식으로 중국인의 커피미각을 바꾸어 버린다.

 

2005년, 왕진롱이 스타벅스로 돌아가 대중화구 총재를 맡았을 때는 스타벅스가 중국내에 최초의 점포를 개설한 때로부터 이미 6년이 지난 때였다. 그가 스타벅스에 처음 들어간 것은 1992년이다. 1987년에 최초의 점포를 개설한 스타벅스는 그때 미국에 겨우 150개 내지 160개의 점포가 있을 때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5,6년의 시간동안 스타벅스 대중화구는 이미 400여개의 점포를 가지고 있었다.

 

스타벅스가 전세계에 구축한 '제3공간'을 사람들이 찾게 되는 이유는 "이러한 공간에서 사람의 관계는 자유롭고 평등하다. 직장의 상하등급의식이 없다. 가정의 각종 역할의 속박도 없다. 사람들은 진정으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

 

이전의 각종 소규모 커피숍과 비교하면, 스타벅스는 완벽한 사교 와 신분을 드러내는 공간으로 만들어진다. 처음 스타벅스를 찾은 고급 화이트칼라에 있어서 스타벅스는 신분을 인정받는 상징이었다: 고수입, 품위, 그리고 국제화. 외자기업이 모여있는 상하이를 예로 들면, 2000년 상하이 화이하이루에 첫번째 점포를 개설한 후, 2년내에 스타벅스의 상하이에서의 판매액은 1억위안에 달한다.

 

커피를 전혀 모르지만 호기심은 있는 고객들에게, 스타벅스는 편안했다. 인테리어가 현대적이고 분위기가 편안했으며, 다른 문예커피숍처렴 사람을 압박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스타벅스가 극력 만들려고 한 친근한 분위기였다. 스타벅스는 중국고객의 습관을 친절하게 고려했다. 예를 들어, 중국소비자들은 점포내 혹은 부근에서 식사를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스타벅스는 중국의 대부분 점포에서, 식품과 좌석을 미국보다 많이 제공했다. 중국인들이 뜨거운 음식을 좋아하는 것을 고려하여 모든 점포에 전자레인지를 두었다. 이 방식은 오후나 저녁에 커피를 마시는 습관이 있던 중국고객이 아침에도 찾아오게 만들었다.

 

왕진롱은 잘 알았다. 중국인들이 스타벅스를 찾아오는 것은 커피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그저 일종의 주목받는 체험을 하고 싶은 것이다. 다만 이로 인하여 소비자들에 대한 지식보급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스타벅스는 우유와 사탕을 매대에서 제공하고, '커피끓이는 상식" "무엇이 에스프레소인가"등의 선전자료를 놓아두었다. 비정기적으로 스타벅스교실을 열어 커피대가가 고객들에게 어떻게 커피를 감상할지를 가르치기도 하고, 더욱 정식의 커피감상회도 열었다.

 

스타벅스의 성공은 관망자들을 고무시킨다. 거기에는 패스트푸드의 거두인 맥도날드와 영국커피체인점의 거두인 Costa가 있다. 맥카페는 2010년에 베이징, 상하이 두 곳의 맥도날드점포에 출현한다. 가격은 더욱 쌌다. 그리고 미국의 맛평가에서 스타벅스보다 나았다. Costa는 2008년 중국에 상륙한다. 관리측인 북경화롄(北京華聯)의 부동산의 장점을 이용하여 점포확장이 파죽지세였다.

 

스타벅스의 패스트푸드 커피와 달리, Costa는 더욱 정교한 체험을 제공하기를 희망했다. 그들은 백색 자기잔에 커피를 담는다. 그리고 더욱 부드러운 쇼파로 사람들이 '더욱 고급스럽다'고 느끼게 하였다. 그 외에 그들은 차도 더욱 풍부했다. 이것은 아마도 영국의 차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고, 확실히 중국에 잘 들어맞았다.

 

의문의 여지없이, 스타벅스를 대표로 하는 외국대기업은 중국커피를 최근 10년간 발전시켰다. 커피문화는 보급되었을 뿐아니라, 중국인에 있어서 더어국 인정미와 생활분위기를 풍겼다. 사람들이 커피숍을 좋아하고, 커피를 사랑하면서, 커피를 마시는 장소와 방식은 더욱 풍부하게 되었다.

 

일찌기 2000년에 상하이의 Metadisign은 중국시장에 그들이 자체생산한 1인용커피를 프로모션하고자 했다. Metadisign은 이탈리아의 점한 커피업체인 Lavazza의 중국대리상중 하나이다. 그 브랜드른 주로 커피콩과 커피캡슐 및 커피기계를 생산한다. 이들의 커피판매량은 전세계의 점유율 45%이다.

 

그 때의 중국인은 막 미국의 커피를 받아들였다. 커피는 통상적으로 큰 잔이다. 여기에 많은 우유와 설탕을 넣는다. 마실 때 쓴 맛은 거의 없다. 이와 비교하자면, 캡슐에서 꺼내는 반잔의 쓴 커피는 중국사람들에게 흡인력이 없었다. 예전의 맥스웰커피와 마찬가지로, Megadesign은 눈을 베이징, 상하이 및 광저우지역의 '외국인'들에게 돌렸다. 이런 집단도 적지 않았다. 당시 난징의 피아트본사에는 산하의 각 독립회사에 많은 외국인직원이 있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커피기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 외자기업과 업무왕래가 있는 중국회사는 두번째 고객이 된다. 그들은 커피로 상담을 하는 외국인들을 접대해야 했다.

 

커피향이 넘치는 또 다른 장소는 이탈리아음식점이다. 일부 고급식당에서는 커피품질에 대한 요구조건이 까다로웠다. 그러나 원두커피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캡슐은 조작이 간편하다. 25초 내지 30초면 에스프레소 한 잔을 뽑을 수 있다. 캡슐은 비용이 비싸므로, 사용하는 식당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소모량은 아주 많았다. 한 달에 수천개씩 소모했다.

 

그외에 일부 고급주택가의 전업주부들이다. 이들도 비교적 일찌감치 캡슐커피에 접촉한 현지인들이다. 그녀들은 대부분 고등교육을 받았고, 품격있는 생활을 좋아한다. Lavazza와 고급요리잡지 <베이타이주방>은 합작으로, 주방장들을 초청하여 이들 주부들에게 요리를 가리키면서, 함게 식사후 커피를 만드는 법도 가르쳤다.

 

인스탄트커피에 비하여, 컵커피는 시장이 더욱 좁았다. 중국에서 겨우 1%를 차지했다. 이것은 아마도 해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왜 네슬레 산하의 커피기계와 커피캡슐 브랜드 Nespresso가 2007년에야 비로소 중국에 진입했는지.

 

Lavazza와 달리, Nespresso는 주로 집에서 커피를 만드는 소비자를 겨냥했다. 이것은 사무실의 사람들보다 더욱 적었다. 판매는 주로 자신의 전매점을 통해서 했다. 2007년 신광천지(新光天地)에 첫 전매점을 연다. 첫 고객은 대부분 해외에서 귀국했거나 자주 출국하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해외에서 이미 이 브랜드를 알고 있었다. 제2차고객은 기존 회원의 소개를 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브랜드활동정보를 자신의 친구와 가족들에게 보낸다. 이메일을 받은 사람은 쿠폰을 가지고 점포로 와서 기계를 사면 500위안의 포인트를 적립해준다.

 

Nespresso는 편리한 커피기계를 지금까지 연구개발해왔다. 금년 5월 내놓은 Lattissima+는 최신 시험을 하고 있다. '원버튼' 조작이 가능하다. 동시에 이탈리아식 에스프레소와 신선한 우유 및 우유거품을 서로 다른 비율로 만들어 카푸치노나 라테등 서로 다른 맛의 커피를 즐길 수 있다.

 

현재까지, 네슬레는 인스탄트 커피와 커피 캡슐의 두 가지 형태만 있다. Nespresso 중국지구경리인 Manuel Sancho가 보기에, 양자는 전략적으로 연계된다. "인스탄트 커피는 일반적으로 대중 특히 젊은이를 겨냥한다. 그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수입이 늘어나면, 더욱 높은 품질의 커피를 찾는데, 쉽게 그들이 인스탄트커피에서 1인용커피로 옮아가게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네슬레의 제품은 커피소비자의 양극을 장악했다: 대중과 고수입자. 중간의 커피숍에 가는 사람들은 포기했다. 스타벅스는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게속하여 인스탄트커피 Via를 내놓은 후, 금년 3월, 스타벅스는 1인용커피기계 Verismo를 내놓았다. 고객들이 집에서 1인용음료를 마시게 하여 판매실적을 올리게 하려는 것이다. 현재 Verismo는 아직 중국에서 프로모션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경쟁상대방은 스타벅스보다 더욱 기다리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좋은 일이다." Sancho의 말이다. "현재 많은 사람들은 아직 1인용커피를 모르고 있다. 스타벅스와 같은 대형브랜드가 프로모션한다면, 그들은 금방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쉽게 우리의 제품을 팔 수가 있다. 경쟁은 이 업계에서 좋은 것이다."

 

커피업계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2007년부터, 이탈리아커피콩 생산업체인 illy는 중국에서 판매의 폭발기를 맞이한다. illy는 고품질 커피콩의 선구자이다. 업계내에 이런 말이 있다: illy의 대형통 커피콩이 몇 통이 팔리는지 보면, 커피숍이 얼마나 늘어났는지 알 수 있다.

 

커피의 폭발은 한편으로 자연적인 성장이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많아졌다. 다른 한편으로 도시화의 과정이다. "2007년부터, 1급도시뿐아니라, 2,3급도시에서도 대거 비지니스센터를 건설했고, 비지니스센터를 하나씩 건설할 때마다 식당과 커피숍이 따라왔다. 업계에 큰 추진력이 된다." illy 중국시장담당자인 천린의 말이다.

 

"현재는 군웅각축의 상태이다." 하오팡커피로스팅점창시자이자 커피로스팅전문가인 두슈는 이렇게 평가한다. 두슈가 10년전에 원두무역에 중사할 때, 1년데 개략 90톤의 원두를 팔았다. 10년동안 이 숫자는 거의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수요량은 확실히 증가했는데, 진입하는 업체도 많아졌다."

 

두슈의 경력은 전체업계의 상태를 보여준다. 커피숍은 매년 20%가량의 속도로 증가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결손상태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원인은 원료, 설비에서 건물임대, 인력비용까지 대폭 늘어났다.  커피업계의 직원들이 이직율은 아주 높다. 커피숍은 이때문에 신속히 확장해야 했다: "직원수가 늘어나면, 교육훈련비용도 내려간다. 수가 많아지면 직원이 이직해도 견딜 수 있다." 십년커피 창업자인 왕야오샹의 말이다. 그는 스타벅스와는 다른 체인업체를 구상한다. 한 지역에 밀집하여 점포를 여는 것이다. 우리 점포는 우다오커우(五道口)에서만 한다. 밀집하여 배치하고 이 범위를 벗어나면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스타벅스 탄생전의 유럽과 비슷하다. 전통적인 유럽도시에 한 커피점의 서비스반경은 개략 2,3킬로미터 이내이다. 그 구역내의 주민은 한번 거주하면 20년이다. 커피숍은 그 위치에 20년간 있는다. "커피는 슬로우 사업이다." 왕야오샹의 말이다. "식당과 다르다. 식당은 새로운 고객이 필요하고, 손님의 유동이 없으면, 식당 자신이 옮겨가야 한다. 그러나 커피숍은 기존 고객이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의 중국에서 커피종사자들이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이다. 날로 비싸지는 임대료로, 갈수록 많은 업계는 부동산에 볼모로 잡힌다. 커피도 예외는 아니다. 우다오커우를 예로 들면, 평방미터당 1일임대료는 개략 25위안가량이다. 200여평방미터로 계산하면, 하루에 최소한 200잔의 커피를 팔아야 임대료비용을 회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중국에서 커피숍은 완전히 커피를 마시는 곳은 아니다. 왕야오샹의 점포에, 커피는 개략 수입의 25%가량을 차지한다. 점유비율이 가장 높은 것은 먹거리이다. 그외에 차, 과즙등 음료이다. 이탈리아커피숍에서 하루종일 기계가 돌아가는 모습을 중국에서는 보기 힘들다. 하루에 3킬로그램의 커피콩(약 300잔)을 다 쓰는 것은 외국에서는 커피숍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왕야오샹은 3킬로그램자리 커피콩을 '가능한 한 1주일내에 다 쓰는 것"을 바랄 뿐이다. 시간이 너무 길면 커피콩은 산화된다.

 

두슈가 보기에, 중국커피보급의 최대장애는 아마도 가격일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상대적인 가격비교상의 열세이다." 독일의 예를 보면, 콜라 1병이 1.8유로이고, 커피는 2유로, 차는 4유로이다. 가격대비성능을 고려하면, 소비자들은 대부분 커피를 선택한다. 그런데 중국에서 콜라는 3위안, 커피는 25위안, 차는 15위안이다. 커피가 좋은 선택이 아닌 것이 확실하다.

 

이와 비교하자면, 두슈의 커피숍은 괜찮은 편이다. "나의 커피숍은 하루에 1킬로그램의 커피콩을 사용한다." 귀국전에 두슈는 독일에서 커피로스팅을 배웠다. 고급거피가 독일에서 인기를 얻어가는 것을 보고, 이것은 인스탄트커피, 이탈리아커피의 뒤를 이은 세번째 붐이라고 생각했다. 고급커피의 주인은 기본적으로 기술을 가진 로스팅전문가이다. 그들은 커피에 대한 감별능력이 있고, 서로 다른 맛과 개성있는 콩을 로스팅할 수 있다. "체인브랜드의 표준화교육을 겪은 후, 더욱 높은 단계의 개성화가 필연적이다."

 

당연히 이 과장은 아주 길 것이다.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대중소비시장이다. 당연히 일부 호소력있는 사람이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따를 것이다." 요 이년동안, 두슈는 각지의 커피애호가들에게 강의를 했다. 그의 학생등기표에는 이미 이만명에 가까운 사람이 올라 있다. 그들ㅇ 중에는 커피 자체에 흥미가 있는 사람도 있고, 머피 배후의 쁘띠부르조아생활을 체험하려는 사람도 있다. 당연히 어떤 사람은 이 생태권내에 들어오려고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