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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기업가

위진용(禹晋永): 사기꾼의 행적

by 중은우시 2012. 9. 18.

 

글: 21세기경제보도 

 

 

 

웨이보인기인에서 사기혐의자까지 위진용의 변신은 화려하달 수 없다. 최근 북경시 하이덴구 검찰원은 8월 17일, 중국세대투자지주집단 동사국주석 위진용을 계약사기죄로 이미 구속했다고 확인했다.

 

이전에, 위진영의 신분은 중국세대투자지주집단 창업자, 총재였다. 그가 대외적으로 내세운 또 다른 신분은 북경대학 공공경제관리연구센터 이사장, 고급연구원이었다.

 

2011년말, 위진용은 웨이보에 이렇게 쓴다: "구정후에 우리는 휴가를 지낸다. 다른 해와 마찬가지로 정월 십육일후에 다시 출근하는 것이다. 모두 환호작약하며 인사하고 더날 때, 한 어린 여직원이 울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연말보너스가 적어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무슨 기분좋지 않은 일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6자리 숫자나 받았고, 이렇게 많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글이 올라온 후 일시에 네티즌들 사이에 화제가 된 바 있다.

 

이미 공개된 정보에 따르면, 위진용사건은 9년전에 수취한 후 돌려주지 않은 입찰보증금때문이다. 2003년 5월, 베이징의 한 소프트웨어회사는 소프트웨어파크프로젝트 입찰건으로 위진용이 지배하는 '베이징카이아이투자유한공사의 구좌로 입찰보증금 50만위안을 입금했다. 지급후, 그 회사는 입찰상황이 비정상정임을 발견하고, 여러번 위진용에게 보증금을 반환해달라고 했으나, 돌려받지 못했다. 그후 전술한 소프트웨어회사는 이 건에 대하여 고발했으나 수리되지 않았다. 2012년 5월, 이 소프트웨어회사는 고발절차를 다시 개시하고, 그후 베이징 하이덴공안분국은 사기혐의로 위진용을 형사구속했다.

 

위진용이 검찰에 구속되자, 논쟁의 대상이던 그 및 그의 회사의 성장궤적이 결국 수면위로 떠올랐다.

 

"모두 처음에는 그가 아주 대단하다고 여겼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혼자서 궈메이(國美)의 상업부동산판도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찾아가서 사업을 논의하기도 했다." 한 부동산관련업무를 하는 회사의 중간관리층의 말이다.

 

이 말은 위진용의 사업에서 처음에 자랑스러워하던 직업이력을 말해준다. 위진용은 그를 접촉해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었다: "나는 정부와의 관계가 아주 좋다. 황광위(궈메이 창업자)가 보유한 많은 땅은 모두 내가 따낸 것이다. 최소한 많은 땅을 따내는 과정에서 내가 핵심작용을 했다."

 

그때 위진용은 막 궈메이집단에서 이직했을 때이다. 그는 여러번에 걸쳐서, "나와 황광위는 파트너관계이고, 고용관계가 아니다. 황광위가 보유한 많은 토지는 모두 내가 따와서 그에게 판 것이다." 다른 매체와 얘기할 때도 위진용은 스스로를 "황광위 배후의 부동산남자"라고 자처했다.

 

이런 말은 위진용에게 유리한 일면만을 얘기한 것인데, 다른 한편으로는 그다지 자랑스럽지 못하다.

 

2004년, 위진용은 헤드헌터회사를 통하여 궈메이집단으로 간다. 그때 황광위는 상업부동산으로 사업영역을 늘이려고 했다. 그래서 궈메이치업을 만든다. 당시 타이왕카이성집단에서 일한 이력이 있고, 부동산업계에서 5년간 종사한 바 있는 위진용은 희망에 부풀어 있던 황광위와 바로 뜻이 맞았다. 위진용은 궈메이집단 산하의 궤메이치업의 총경리가 된다.

 

공개된 자료를 보면, 궈메이치업이 성립된지 2개월후에, 8억위안의 돈을 들여 펑타이위안과기본부 핵심상무구역의 2개의 부지, 면적 35만평방미터를 따낸다. 1개월후인 2005년 5월, 위진용은 기자회견에서 30억위안을 들여 전세계 최대이 하이테크체험센터를 만들겠다고 말한다.

 

펑타이위안과기본부 핵심상무구의 땅을 얻어낸 것은 위진용이 궈메이에 임직하고 있을 때 해낸 업적으로 찾아볼 수있는 것중 유일한 것이다. 실제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한 내부인사에 따르면, 위진용이 궈메이에 들어온 후, 한동안 교육훈련을 받는다. 업무에서는 뛰어난 실적을 보이지 못한다. 결국 회사가 나중에 "궈메이상도"가 되는 땅을 얻어내는 것을 도와주었을 뿐이다. 그후에 이직한다.

 

그 인사는 나아가서, "그가 당시에 이직한 것은 실제로 능력부족으로 해고당한 셈이다." 이런 표현과 위진용이 말하는 바와 같이, "황광위와 경영이념과 방식에서 차이가 있어서" 이직했다는 말은 차이가 크다. 이에 대하여 궈메이집단은 "위진용은 확실히 궈메이에 재직한 바 있다. 그러나 이직한지 너무 오래 되어서 코멘트하기 부적절하다."고 말한다.

 

이처럼 위진용과 궈메이의 밀월기는 겨우 7개월간 지속되었다. 그리고 한 부동산업계 인사에 따르면, 위진용은 궈메이치업에 얻어내어 나중에 '궈메이상도'가 되는 프로젝트가 궈메이부동산의 발전에 큰 영향을 준다. 이 토지는 면적이 너무 크고, 당시는 핵심상권이라 할 수가 없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했다. 거이ㅡ 당시 전체 궈메이상업부동산이 묶여지게 된 것이다.

 

궈메이를 떠난 후 위진용은 2006년 멍뉴집단등 대기업의 직업경영자로 채용되지 못한다.

그러나 몇달간 칩거하고 있던 위진용은 '탈태환골'한다. 2006년 5월, 위진용은 대외에 선포한다. 그는 홍콩에 10억홍콩달러의 등록자본금으로 중국세대투자지주집단을 설립했고, 해외의 13개 기금이 뒤를 받쳐주며, '자본부동산'을 운영할 것이라고.

 

당시에 말한 바에 따르면, "짧은 몇 개월동안 회사는 근 50억위안의 거액을 들여 여러 부지를 매입했고, 집단의 토지보유량이 만무(1무는 666.7평방미터)를 넘었다. 회사는 다시 한번 자본부동산의 신화를 이룩할 것이다."

 

그의 이런 말고 궈메이치업의 '성적'은 일부 기업들로 하여금 그를 믿게 만들었다. 전술한 부동산관련기업의 중간관리층에 따르면, 위진용에게는 여러가지 휘황한 경력이 있어서 그를 찾아가서 사업을 협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쌍방이 합작을 하지 못하게 된 원인은 그가 중국세대투자지주집단의 실력에 대하여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세대가 말하는 회사사무실 주소는 리쉐치아오 갑9호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를 북방명주 서쪽의 낮고 이름도 없는 사무실건물에서 맞이했다."

 

당시 세대투자는 회사가 북경북부 오환부근이 '북방명주'프로젝트를 땄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등록자본금이 10억위안이라는 회사가 어찌 이런 형편없는 곳에서 일을 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위진용과의 합작을 포기한다.

 

그 인사에 따르면, 나중에 북방명주 프로젝트가 북경중련아부동산개발유한공사의 것임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를 자신의 것인 것처럼 고객들에게 소개해왔다.

 

중국세대투자지주집단의 이런 행위는 북경중련아부동산개발유한공사의 반감을 가져오고, 북경중련아부동산개발유한공사의 인사는 매체에 전화를 걸어, 우리는 위진용 선생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술한 부동산인사에 따르면,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위진용이 북경중련아부동산개발유한공사의 동사장 스웨이쉐를 속였다. 그래서 합작이라는 말로 중련아의 많은 프로젝트를 자기 회사에 넣어서 소개한 것이다."

 

그외에 위진용이 자랑한 것은 '자본부동산'개념이다. 그런데, 아무도 그 의미를 몰랐다. 중국세대투자지주집단은 등록자본이 10억홍콩달러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겨우 1만홍콩달러이다.

 

고책부동산서비스기구 동사장 겸 총재인 타오홍빙은 "위진용이 사람들에게 남긴 가장 깊은 인상은 뻥을 잘 친다는 것이다. 내 인상에 위진용은 어떤 프로젝트도 한 바 없다. 어떤 제대로 된 일도 해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