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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문혁전)

후야오방(胡耀邦)의 4자녀는 왜 3가지 성(姓)을 가졌는가?

by 중은우시 2012. 8. 18.

작자: 미상 

 

전 중공총서기 후야오방과 부인 리자오(李昭)는 혼인전에 '약법삼장'을 맺은 바 있다. 그중 하나는 만일 아들을 낳으면 부친의 성 후(胡)를 따르고, 딸을 낳으면 모친의 성 리(李)를 따르기로 하는 것이다. 그후 그들은 확실히 이 약정을 이행했다. 후야오방과 리자오는 일생동안 4명의 자녀를 낳았다. 그런데 이 4명의 자녀는 3가지 성을 지니고 있다. 각각 부모의 성인 후, 리를 따른 외에 류(劉)씨성을 가진 자녀도 있다.

 

후야오방과 리자오가 서로 알고 연애를 했을 때는 1942년이다. 그해에 후야오방은 27살, 리자오는 21살이 되지 않았다.

 

결혼전, 두 사람은 약법삼장을 맺는다. 첫째, 먼저 뜻이 맞아야 한다(志同道合). 그 후에 생활의 반려가 된다. 둘째, 가정을 만든 후, 공동의 사업을 잊지 않는다. 셋째, 각종 엄준한 시험을 견딜 수 있어야 하고, 여하한 상황하에서도 서로 돕고, 서로 격려하고 함께 손을 잡고 나간다.

 

1942년 겨울, 후야오방과 리자오는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린다. 그들의 큰 아들이 바로 출생한다.

 

당시, 연안에서는 소위 남녀평등의 풍조가 유행했다. 부부가 서로간에 존중한다는 의미로 그들은 만일 아들을 낳으면 부친의 성인 후를 따르고, 딸을 낳으면 모친의 성인 리를 따르기로 했다. 그후 그들은 확실히 이 약정을 이행한다.

 

후야오방의 자녀들의 성명은 각각 장남 후더핑(胡德平), 차남 류후(劉湖), 삼남 후더화(胡德華), 막내딸 리헝(李恒).

 

후야오방의 4명의 자녀는 확실히 3개의 성을 가지고 있다. 부친의 성인 후, 모친의 성 리 그리고 유씨성을 지니고 있다.

 

1945년 겨울, 후야오방 부부는 부득이 태어난지 40일도 되지 않은 차남을 섬북(섬서성 북부)의 농민 류스창(劉世昌)에게 보낸다. 당시 후야오방은 3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첫째,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서는 안된다. 둘째, 장래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한다. 셋째, 자유연애를 하도록 허용해야 한다. 후야오방은 아이가 류스창의 성을 따라야 한다고 고집한다. 그래서 류스창은 절충적인 방법을 써서, 류후(劉湖)(胡와 같은 발음)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