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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남북조)

팔왕의 난: 권력은 나쁜 것인가?

by 중은우시 2012. 7. 14.

글: 장효정(張曉政)

 

290년, 진무제(晋武帝) 사마염(司馬炎)이 죽었다. 그는 통일한지 겨우 10년된 방대한 제국과 '왜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냐?'라고 물었다는 바보황제 진혜제(晋惠帝)를 남겼다. 불행한 것은 이 바보황제에게는 추악하면서도 악독하기 그지없는 황후 가남풍(賈南風)이 있었다는 것이다. 진무제가 죽은 다음 해, 가남풍은 초왕(楚王) 사마위(司馬瑋)와 공모하여, 진무제의 장인이자 보정(輔政)인 태부(太傅) 양준(楊駿)을 죽인다. 이로써 중국역사상 가장 무정한 권력쟁탈전, 16년간에 걸친 '팔왕의 난'이 서막을 연다.

 

양준이 죽은 후, 조정은 여남왕(汝南王) 사마량(司馬亮)과 위관(衛瓘)이 주재하고 있었다. 가남풍은 사마위를 시켜 사마량, 위관을 죽여버리게 하고, 곧이어 조서를 고쳐서 사마위도 죽인다. 버마재비가 매미를 잡으려 하면, 참새가 뒤에 있다. 가남풍의 일당이 자신만만하게 폐태자를 죽일 때, 조왕(趙王) 사마륜(司馬倫)과 손수(孫秀)는 태자를 위하여 복수한다는 명목으로 조서를 고쳐 가남풍을 폐위시키고 죽인다. 그리고 가씨일당을 모조리 제거한다. 사마륜은 정권을 장악한 후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를 차지한다. 곧이어 제왕(齊王) 사마경(司馬)은 하간왕(河間王) 사마옹(司馬顒), 성도왕(成都王) 사마영(司馬潁)과 연합하여 사마륜 일당을 제거하고 진혜제를 데려와서 복위시킨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사마경은 조정의 권력을 독단하는 자리에 앉은지 반년도 되지 않아 장사왕(長沙王) 사마예(司馬乂)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러나, 사마예는 사마경의 경우를 재연했다. 권력을 잡은지 얼마되지 않아서, 사마옹, 사마영 및 동해왕(東海王) 사마월(司馬越)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제 권력을 잡은 것은 사마영이다. 그런데, 그 후는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먼저 사마영이 사마옹에게 패하고, 다시 사마옹은 사마월과 대치하다가 패배한다. "팔왕의 난"은 마지막에 사마월의 승리로 끝난다. 그러나, 사마월도 끝까지 웃지는 못했다. "팔왕의 난"은 서진의 인력, 물력, 재력, 병력을 모조리 소모했을 뿐아니라, 서진의 엘리트집단을 거의 모조리 소멸시킨다. 서진이 내란에 빠져있는 동안에, 유연(劉淵)등은 기회를 틈타 거병하고, 중국역사는 가장 어두운 '오호십육국'의 시기로 접어든다. 5년간 권력을 전횡하다가, 사마월은 내우외환의 가운데 죽는다. 그의 시신이 아직 식기도 전에, 석륵(石勒)에 의하여 부관참시된다. 석륵은 이렇게 선포한다. "천하를 어지럽힌 자는 바로 이 자이다. 나는 천하를 위하여 그 복수를 했다. 그래서 시신을 불태워 하늘에 제사지내는 것이다."

 

"팔왕의 난"은 중국역사상 권력투쟁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군신이 반목하고, 골육간에 서로 싸우고, 조정의 기강은 흐트러지고, 후궁의 질서도 무너지며,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아침 저녁으로 세상이 바뀌었으며,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사라졌다. 각종 수단이 모조리 사용되었다. 오늘은 네가 남을 죽이고, 내일은 남이 너를 죽인다. 사람을 죽인 사람은 다시 다른 사람에게 죽임을 당한다. 모조리 죽어버릴 때까지. 이 권력쟁탈전에서, 현명하건 어리석건, 나이들었건 어리건, 모두 불나방처럼 앞다투어 권력이 소용돌이속으로 뛰어들었다. 예를 들어, 조왕 사마륜은 비록 "원래 용열하고 어리석으며, 비열하고 무식했지만' 이것은 그의 권력 내지 황권에 대한 갈망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심지어 육기같은 뛰어난 지혜를 지닌 인물이나, 유곤과 같은 영웅호걸, 좌사, 반악과 같은 재주가 넘치는 사람들도 일찌감치 가남풍의 일당인 가밀(賈謐)의 "이십사우(二十四友)"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다. 가씨일당이 패망하고, "이십사우'는 비록 흩어졌지만, 좌사가 은거하고, 반악이 주살된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여전히 권력투쟁의 가운데에서 몸을 빼지 못했다. 육기형제는 고영의 충고를 듣지 않고 먼저 사마영에 의탁하였다가 사마영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화정학려(華亭鶴), 가부문호(可復聞乎)"(학정의 학울음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을까?)라는 장탄식을 남겼다. 유곤은 먼저 사마륜에 결탁했다가 나중에 사마경에게로 간다. 만일 나중에 전쟁터에서 죽지 않았다면 권력을 쫓던 무리라고 손가락질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권력은 춘약과 같다. 사람의 심성을 미혹시킨다. 사람으로 하여금 형세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게 하고 사리를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게 한다. 앞사람의 뒤를 이어 그 길을 가고 끝까지 깨닫지 못하고, 뒤돌아보지도 못한다.

 

더욱 한숨이 나오는 일은 일부 원래 청류에 속한 인사들도 권력을 장악한 후, 마치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처럼 심지어 보는 사람에게 그들이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이 '변질'의 과정이라고 느끼게 만든다. 예를 들어, 사마량은 역사에서 "청경유재용(淸警有才用)"이라고 하였다.그러나, 일단 정권을 잡자, 권력을 사유화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을 실망시킨다. 그리고 사마경은 "어려서 인자하고 어질기로 유명했으며, 잘 베풀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가 거병하기를 바랐다. 그가 거병하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그러나 일단 권력을 잡자, 그는 교만하고 호사스러우며 권력을 마음대로 썼다. 그리고 자기의 집을 크게 짓고, 향락에 빠지고, 주색에 탐닉했다. 그리하여 안팎의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결국 패망한다. 다시 사마영은 '성격이 돈후하여' '사람들의 인망을 얻었다.' 그러나 일단 권력을 잡자, '공을 내세우며 교만하고 호사를 부렸고, 사마경때보다 심했다." 그리고, 사마월은 '여러서 명성을 얻었고, 겸허하고 포의의 지조를 지켰다. 그리하여 안팎으로 명성이 있었다." 그러나 일단 권력을 잡자, 권력을 독단하고 패도적이 된다. 그가 신하로서 부적절한 행동들을 하여 사해의 사람들이 모두 알았다." 마찬가지로 여러 사람들이 실망한다. 결국 그는 두려움에 죽는다. 권력은 마치 춘약과 같이 모든 사람들을 중독시킨다. 거기서 정신을 차리고 빠져나가기 힘들다. 두목이 <과진론>에서 말한 것처럼, "진나라 사람들은 스스로 불쌍히 여길 여유가 없어서 후세인들이 그들을 불쌍히 여긴다. 후세인들은 불쌍히 여기면서도 본받지 않았다. 그리하여 후인들은 다시 그 후인들을 불쌍히 여긴다." 한마디로, 권력은 나쁜 것이다. 누구든 만지면 중독되고, 가까이 하면 착란을 일으킨다.

 

당연히 권력은 춘약도 아니고, 독약도 아니다. 권력이 나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제약을 받지 않는 권력이 나쁜 것이라고 말하는 편이 낫다. 팔왕이 서로 앞다투어 등장한 것을 되돌아보면 모든 사람들은 등장하기 전에 뜻을 크게 지녔다. 그러나, 일단 권력을 잡자 하나같이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표현을 한다. 이는 사람들에게 막스 베버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권력을 개인매력의 카리스마 위에 세우는 것보다는 제도권위의 위에 세우는 것이 낫다. 비록 이런 제도화된 정치는 카리스카형정치에서처럼 사람들을 격동시키는 헌신정신이나 영웅기개는 부족할지 모르지만, 더욱 안정적이고, 믿을만하고, 안전하고, 예측가능성이 있다. 사람의 성격은 항상 약점이 있다. 약점이 있는 인간성에 제약을 받지 않는 권력이 더해지면, 바뀌지 않으려고 해도 바뀌지 않기 어렵다. 권력의 운영을 개인의 자제력에 의존한다면, 그것은 제도의 구속에 희망을 거는 것만 같지 못하다. 이것은 개인의 권위는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근원은 우리가 그의 도덕적 품성에 희망을 걸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도덕품성은 십중팔구 믿을만하지 않을 것이다. 개인의 권위는 당연히 일을 좋게 발전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더 많은 경우에는 더 나쁘게 만들 것이다. 심지어 그 자체가 문제의 일부분 내지 근원이 될 수도 있다. 문제의 해결방법은 아니다. 한마디로, 권력이라는 것은 복을 만들 수도 있고, 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 관건은 그것을 새장속에 가둬둘 수 있느냐이다. 제도의 속박을 차고 춤추게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권력을 장악한 사람의 도덕적 자제에 기대를 걸 수는 없다. 그렇게 하였더라면, 아마도 '팔왕의 난'과 같은 계속 중복되는 역사의 비극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