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남북조)

남북조시대에는 외국이름을 붙이는 것이 유행하였다.

중은우시 2012. 1. 10. 17:08

글: 이개주(李開周)

 

홍콩은 구미문화의 영향을 받은지 오래되었다. 어떤 친구들은 자식의 이름을 지을 때, 중국과 서양을 합쳐서 짓기를 즐긴다. 예를 들어, 별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무술배우중에 주필립(周比利)이 있다. 그리고 삼류영화에 주로 출연하는 배우 중에는 조찰리(曹査理)가 있다. 이들은 모두 중국성에 외국이름을 붙였다. 그외에 이마리(李瑪麗), 장탐(張湯姆), 왕존(王約翰), 조켈리(趙凱瑞)등등의 이름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찌기 중국의 위진남북조시대에 중국인들도 이런 취향을 지닌 바 있었다. 당시에는 아직 유럽의 풍속이 중국으로까지 오지는 않았다. 중국으로 온 것은 불풍(佛風)이었다. 동한시대 인도승려가 <사십이장경>을 중국에 소개한 이래로, 중국으로 오는 승려가 갈수록 많아졌다. 번역한 불경도 갈수록 많아졌다. 출가하는 중국인도 갈수록 많아졌다. 고관대작들이 돈을 내서 만드는 절도 갈수록 많아졌다. 위로는 황실에서부터 가운데로는 여러 신하들, 아래로는 일반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불교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을래야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연명이 중년에 은거하여 세상 일에 관여하지 않는데, 어떤 사람이 그의 집으로 달려가서 그에게 같이 "연사(蓮社)"에 가입하여 염불을 하고 극락정토를 추구하자고 권하기도 했다. 이를 보면 이미 불교가 사회전반에 널리 침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진남북조시기의 불교는 현재보다 훨씬 흥성했다. 불교신자의 비율이 지금보다 컸다. 양무제가 몇번이나 출가한 것은 말하지 않더라도, 제무제는 사원을 크게 지었고, 진무제는 화상을 스승으로 모셨다. 일반 백성들 중에서도 많은 선남선녀들이 모든 가산을 절에 기부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연지공불(煉指供佛)을 드리기도 했다. 이는 손가락에 기름을 바른 후에 불을 붙여서 손가락이 모두 탈때까지 하는 것이다. 북위의 태무제가 재위기간동안 행정력을 동원하여 불교를 탄합한 것을 제외하고는 전체 위진남북조때 불교에 대한 신앙은 "거국약광(擧國若狂, 온 나라가 미친 듯했다)"이라는 네 글자로 형용할 수 있다.

 

불교를 믿었으므로, 많은 사람들은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불교의 낙인을 찍었다. 도연명의 친구중에 아이의 이름을 "사승(舍僧)"이라고 지은 경우가 있는데 그 뜻은 돈을 내서 승려를 공양한다는 의미이다. 사령운에게도 한 동료가 있는데, 아이의 이름을 "승시(僧施)"라고 지었다. 그 뜻은 역시 마찬가지로 승려에게 보시를 한다는 의미이다. 북위의 한 태상경(太上卿)은 직접 "양승(楊僧)"이라고 이름지었다.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승'은 승려, 화상을 의미한다(수백년후 송나라의 대문학가인 구양수의 아명이 和尙이다). 동진말기에 고관이 있는데, 이름이 왕담수(王曇首)이다. "담"은 범어 다르마(Dharma)의 음역인데, 그 뜻은 '불법(佛法)'이라는 것이다. 나중에 왕담수는 두 아들을 두는데, 큰 아들의 이름은 "승작(僧綽)"이라고 하고, 둘째아들의 이름은 "승건(僧虔)"이라고 하였다. 이 두 이름은 모두 승려에 대한 공경과 경건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남조 송나라의 중서령이 있었다. 중서령은 재상의 바로 다음가는 권력자이다. 그의 이름이 "왕승달(王僧達)"이었다. 남조 제나라에도 태상박사가 있었는데 이름이 왕승유(王僧孺)이다. 남조 양나라에는 대장군이 있었는데, 이름이 호승우(胡僧佑)이다. 남조 양나라의 연주자사는 이름이 "여승진(呂僧珍)"이었다. 이를 보면 당시의 부모는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승"자를 붙이는 것을 아주 좋아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거사(居士)"를 이름으로 쓴 사람도 있었다. 남조 제나라에는 "이거사(李居士)"라는 사람이 있었고, 관직이 강주자사에 이른다. 남조 진나라에도 "유거사(劉居士)"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나중에 수문제에게 목이 잘린다. '거사'라는 이름은 불교를 신봉하나 출가하지 않은 수행자를 의미한다.

 

또 일부 사람들은 범어에서 이름을 직접 따오기도 했다. 예를 들어, 남조 양나라에 소년장군이 있었는데, 이름이 "소마하(蕭摩)"이다. "마하"는 범어(산스크리트어)의 maha의 음역으로 의미는 '강대'하다는 것이다. 이 소마하는 확실히 강대했다. 13세때 선봉에 서서 진나라의 대장 두승명을 일패도지하게 한다. 남조 제나라에는 고관2세인 "강구담(江瞿曇)"이 있었는데, '구담'은 범어 Gautama의 음역이다. 그 뜻은 '승리'이다. 아쉽게도 강구담은 승리하지 못했다. 그는 길거리에서 소가 끄는 수레를 너무 빨리 달리다가 다른 관료2세의 가마에 부딛쳤다가, 상대방에게 얻어맞아 죽었다. 그러나, 어찌되었던, 당초 그의 부모가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는 그가 "구담'할 것을 즉 하는 일마다 승리할 것을 바랐을 것이다.

 

남북조가 지나가자, 불법이 어떤 때는 성하고, 어떤 때는 쇠한다. 불교식으로 이름을 짓는 풍속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청나라때가 되어 불교를 믿는 고관 완안인경(完顔麟慶)이 딸의 이름을 세글자로 지어주는데, "불연보(佛蓮保)"였다.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세글자로 이름을 짓는 것이 최근 몇년간만 유행한 것이 아니다. 일찌기 당나라때, 이백은 아들의 이름을 "명월노(明月奴)"라고 하였고, 백거이는 딸의 이름을 "금란자(金子)"라고 한 바 있다. 모두 세 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