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문소(文昭)
7월초 북경의 제11차당대회가 끝나면서 류치(劉淇)가 물러나고, 궈진롱(郭金龍)이 올라갔다. 전국의 성급 당위원회의 교체업무는 전부 완료되었다. 이제는 7월하순-8월에 거쳐 개최되는 "바이다이허회의"가 최대의 볼거리이다.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중국대륙은 진정한 의미에서 '정치의 계절'을 맞이하였다.
2011년 10월 - 11월, 그리고 금년 4월 -7월에 거쳐 성급 당위가 교체되었다. 여기에서는 공산당 미래권력구조에 대한 약간의 단서를 엿볼 수 있었다. 주요한 볼거리는 금년 2월에 발생한 왕리윈-보시라이사건이후였다. 여기에는 다음이 포함된다: 첫째, 약간의 성에서는 정법위서기를 새로 교체된 성위부서기가 겸임했다. 이는 정법위계통내의 인원이 직접 지방의 의사결정층으로 진입하는 통로를 막은 것이고, 정법계통을 성급당위의 통제하에 두려는 것이며 중앙에서 성급에 이르는 '수직적 영도'를 강화하고, 저우용캉이 장악한 각급 정법위계통이라는 '제2중앙'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둘째, 철저한 장쩌민파의 고관들은 찬바람을 맞았다. 그들의 정치적 앞날은 암담하다. 대표적인 사건은 북경시위 서기 류치가 물러난 것과 장쩌민의 외조카인 상해시 정법위서기인 우즈밍이 새로 구성된 상해시위 상임위원에서 배제된 것이다. 매체에 따르면, 우즈밍은 연령문제로 물러났다고 하는데, 1952년생인 그는 60세에 불과하다. 67세인 상해시위서기 위정성도 잘나가고 있다. 그전에 우즈밍은 이미 근 11년간 상해시 정법위서기를 맡았고, 8년간 공안국장을 겸임했다.
어떤 사람은 이번 성급당위의 교체는 후진타오의 '느리지만 세심한 일처리'의 중요구성부분이라고 본다. 먼저 바깥부터 배치를 시작하고, 마지막으로 중앙에서 결전을 벌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베이다이허회의의 풍향은 지방관리의 교체의 영향을 받을 것인가? 이런 영향은 두 가지 방면에서 나올 것이다. 하나는 새로 부임한 지방당위서기들이 직접 베이다이허로 가서 세를 보탤 수 있을 것이다. 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서 후진타오를 도와서 결정을 내리게 할 것인가? 이것은 '베이다이허회의'가 어떤 성격의 회의인지, 누가 참가할 자격을 가지는지부터 얘기해야겠다.
'베이다이허회의'는 '베이다이허공작회의'라고도 부른다. 이것은 '휴가회의'라고 할 수 있다. 공산당의 일종의 비정식 회의 매커니즘이다. 규모는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고, 참가자의 자격도 높을 수도 있고 낮을 수도 있다. 중앙위원이상, 성,부급이상의 당정관리는 모두 잠재적인 참여가능대상자이다. 은퇴한 원로. 정정당당하게 당의 정식회의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노간부'들도 참석을 초청받아, 마지막 남은 불꽃을 태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회의는 탄력성이 아주 크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마오쩌둥시대에 3번의 베이다이허회의가 있었다. 제1차는 1958년 8월 17일 - 30일 사이에 개최되었고, 회의에서는 '대약진'운동을 하기로 결정한다. 이런 국가의 기본경제노선에 관련된 결정을 하기 위하여, 참석자들은 중앙정치국의 구성원, 각 성, 직할시 및 자치구의 당위제1서기, 그리고 정부관련부서의 당조책임자를 포함했다. 이는 '정치국확대회의'에 상당한다.
제2차 베이다이허회의는 1960년 7월 5일 - 8월 10일에 개최된다. 주요 목적은 '대약진'으로 초래된 심각한 경제문제를 토론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소련수정주의'와의 관계문제이다. 이것도 또 한번의 '정치국확대회의'의 급이다. 참석자는 정치국위원과 후보위원외에 일부 중앙위원과 성위서기가 포함되어 합계 64명이 참가했다.
제3차 베이다이허회의는 1962년 8월 6일 - 24일까지 개최된다. 주요내용은 마오쩌둥이 계급, 형세, 모순의 3개방면에서 당내사상을 통일하고, 동시에 '대약진'의 심각한 악영향의 책임을 미루기 위함이었다. 이번에 참석자는 아주 많았다. 정치국 상임위원, 각 대구(大區)의 제1서기, 중앙각부의 책임자 합계 167명이 참석한다.
덩샤오핑이 권력을 장악한 후, 베이다이허요양원(北戴河療養院)은 상설화된 '여름궁전'이 된다. '베이다이허회의'의 탄력성은 더욱 커진다. '당내의견청취'의 범위를 넓히고, '당내민주'를 체현하고자 한다. 관련인사에 따르면, 덩샤오핑시대부터 '베이다이허회의'는 더 이상 정식의 '중앙공작회의'가 아니게 된다. 개막과 폐막의 문제도 없고, 아주 느슨한 회의형식이었다. 먼저 도착하면 먼저 휴가를 보내면서 수영을 하다가 사람이 모두 도착하면 회의를 연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중공중앙 정치국과 서기처의 구성원이 모두 출석한다. 그러나, 중앙위원과 부장급 관리들은 반드시 참석하지 않는다. 토론의제상 필요하면, 그 분야의 업무를 맡은 사람이 초청을 받는 것이다. 지방관리를 포함해서 베이다이허에서 논의하는데 참석하는 중공고관은 개략 100-200명가량이다.
그래서 '역사선례'에서 출발해서 살펴보자면, 제17기 중앙정치국위원은 아마 모두 금년 여름에 베이다이허에 나타날 것이다. 여기에는 이미 북경시위서기에서 물러난 류치도 포함된다. 왜냐하면 어쨌든 그는 제17기 정치국 중앙위원의 신분을 유효하게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중앙정치국에 중앙서기처의 정치국위원에 들어가지 않는 허용(何勇), 링지화(令計劃), 왕후닝(王滬寧)의 세 사람이다. 이들은 합쳐서 30명이 넘지 않는다. 나머지 백여명은 누가 될 것인지가 관건이다.
예를 들어, 막 북경시위 서기에 오른 궈진롱은 제17기 중앙위원이고, '지방관리중 으뜸'이므로 그가 금년의 베이다이허회의에 출석할 가능성은 아주 크다. 마찬가지 이치로, 후춘화(胡春華), 류치바오(劉奇葆), 저우창(周强)등 공청단파 출신의 성위서기도 '의제의 필요'상 금년 '베이다이허회의'에 참가할 가능성이 크다. 장쩌민파의 세력이 전체적으로 약화되는 상황하에서, 금년 '베이다이허회의'의 전체 풍향은 후진타오에 유리할 것이다. 이번 '비정식확대회의'에서 의외의 일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후진타오는 우세를 드러내고 공고히하는 무대가 될 것이다. '18대'의 정치국상임위원의 인선문제에서 도 후진타오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더욱 클 것이다. 널리 알려진 바로는 차기 정치국 상임위원은 9에서 7명으로 줄어들고 '정법'과 '선전'은 상임위원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더욱 크다고 한다.
또 다른 각도에서 말하자면 금년의 '베이다이허회의'는 성급당위가 교체된 후로 어레인지 되었다. 그래서 참여자들의 심리적인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장쩌민파의 인물들이 약화된 것은 이미 분위기를 형성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스스로 줄을 서게 만들고, 줄을 잘못서지 않도록 방향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질문제를 토론할 때 아마도 그다지 목소리를 크게 할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아야 할 점은 저우용캉, 리창춘을 우두머리로 하는 공산당내 정법과 선전계통은 계속하여 '체제유지'를 위하여 온갖 일을 다 하고 있다. 일부 공산당 원로가 보기에 이들은 '당성'이 가장 강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위기가 심각해지는 상황하에서도 여전히 당내원로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태자당 집단내의 각 사람들은 입장이 서로 다르지만, 위기가 닥치면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여 완고하게 바뀐다. 그래서 베이다이허회의에서 그리고 그 이후에 공산당내의 개혁파들이 우세를 점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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