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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송)

남당(南唐): 독살의 역사

by 중은우시 2012. 7. 6.

글: 축희(祝熹)

 

중국 형명(刑名)의 시조는 하우시대의 고요(皋陶)이다. 그가 만든 "오형(五刑)"은 사건을 재판하면서 형벌을 가하는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전통사회에서 법외지형(法外之刑)은 항상 존재했다. 명망이 높은 사람을 죽여야겠는데 형법에 저촉되지 않거나, 궁중의 음모로 적수를 죽여야 하는 경우, 비록 죄명을 붙이려면 뭐든지 붙일 수 있지만, 어쨌든 드러내고 일처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그래서, 법외지형을 가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형벌을 가해서 다른 사람을 겁주려 하는 것이 아니라면 법외지형의 최선의 선택은 바로 '독살'이다.

 

남당의 역사는 길지 않다. 제왕은 3명이다: 열조(烈祖) 이변(李昪), 원종(元宗) 이경(李璟) 그리고 후주(後主) 이욱(李煜)이다. 짧은 39년동안 독살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선주(先主) 이변이 황제에 오른 후, 용맹하고 전쟁에 뛰어난 주본(周本)의 인망이 높고 통제하기 어려워, 이변은 궁안에서 연회를 베푸는 틈을 타서, 주본에게 극독이 든 술, 잠주(鸩酒)를 하사하여 독살하고자 한다. 그러나 주본은 이를 눈치챈다. 주본은 술잔을 받아든 후 술의 절반을 다른 잔에 따른 다음 이변에게 내민다. 그리고, "이 술을 같이 마심으로써 황상의 천추만수를 기원하면서 동시에 우리 군신이 일심동체라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비록 군신간에 이미 사이는 멀어졌지만, 겉으로는 아직 완전히 안면을 몰수한 단계가 아니었다. 이 술은 이변이 당연히 마셔야 했다. 그러나 이변이 어떻게 마실 수 있단 말인가? 이변이 대경실색하여 어쩔 줄 몰라할 때, 배우인 신점고가 앞으로 나서서 춤을 추며 흥을 돋군다. 그리고 황상에게 술을 자신에게 하사해달라고 요청한다. 황상은 술잔 두 개를 모두 그에게 하사한다. 신점고는 두 잔의 술을 한 잔으로 만든 다음 한꺼번에 마셔버린다. 그리고 술잔 두 개를 가슴에 품고 자리를 떠난다. 증거도 함께 가져가 버린 것이다. 이변을 위하여 아주 주도면밀하게 행동해준 것이다. 이변이 급히 사람을 보내어 해독약을 보냈을 때 이미 시간이 늦어 신점고는 머리가 깨져서 죽어있었다. 주본은 인망이 높고, 이변이 황제에 오르는 것을 처음부터 반대했기 때문에, 나중에 우울증에 빠져 죽는다. 이변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3일간 폐조(廢朝)한다. 이변은 많은 단약을 먹어 만성독약중독으로 사망한다.

 

이변이 대신 주본을 독살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그리고 이 사건이 남당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중주(中主) 이경 시대에 숙질간의 그 독살사건은 남당의 역사를 바꾸는데 충분했다. 그것은 '태자'가 독주를 '숙부'에게 보낸 것이고, 왕위다툼이었으며, 숙질간의 처절한 싸움이었다.

 

이변이 죽은 후, 이경은 그의 영구앞에서 맹세한다. 나중에 황제위는 형종제급(형이 죽으면 동생이 잇는다)의 원칙을 따르겠다고. 그는 동생인 경수(景遂)를 태제(太弟)에 봉한다. 그리고 모든 태자의 관속은 태제의 관속으로 바꾼다. 그런데, 경수는 굳이 사양한다. 나중에 이경의 큰아들인 홍기(弘冀)가 오월과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자, 이경은 비로소 홍기를 태자(太子)로 보한다. 하루는 홍기가 법도를 지키지 않아 이경이 대노한다. 격구를 하는 막대기로 홍기를 두들겨 팬다. 그리고 경수를 불러오라고 말한다. 그 직접적인 결과는 태자를 폐위시키고 태제를 봉하는 것이다. 홍기는 경수가 격구를 하다가 목이 말라 마실 것을 찾는 틈을 타서, 독을 탄 술을 사람을 시켜 보내어 경수를 독살한다. 이 일은 이경에게 발각되지 않고 넘어간다. 그러나, 홍기는 나중에 경수가 귀신이 되어 자주 나타나서 그의 목숨을 달라고 하자, 공포로 인하여 얼마후 죽어버리고 만다. 홍기는 결국 황위에 오르지 못하고, 풍류를 즐기던 이욱 이후주가 황제에 오른다.

 

이욱은 풍류재자였다. 그러나 좋은 황제는 아니었다. 남당의 명장 임인조(林仁肇)는 송태조가 남정하려할 때 가장 강력한 적수였다. 송태조는 남당의 사신이 송나라조정에 왔을 때, 반간계를 써서 임인조를 제거하는데 성공한다. 송태조는 남당에서 온 사신을 데리고 임인조의 화상이 걸려있는 곳으로 간다. 그리고는 지나가는 말로 그림 속의 사람이 우리에게 귀순할 것이다. 먼저 화상을 신물로 보냈으며 이미 저택도 지어놓았고, 투항해 오기만을 기다린다고 말한다. 이욱은 사신으로부터 그 말을 듣고, 임인조를 독살한다. 이욱이 임인조를 죽인 것은 스스로 장성을 무너뜨린 것이나 다름없다. 1년후, 송태조는 군대를 이끌고 남하한다. 해가 지나자, 이욱은 포로로 잡히고 나라는 멸망한다.

 

칠월 초칠일. 이욱은 42세 생일때, 작은 누각에 올라서 반달을 바라보며, 지난 일을 회고하며 탄식한다. 그리고 <우미인. 춘화추월하시료>라는 사를 쓴다. 그 결과 사에 있는 문구인 "고국불감회수월명중(故國不堪回首月明中)", "문군능유기다수(問君能有幾多愁), 흡사일강춘수향동류(恰似一江春水向東流)"의 싯구는 송태종을 분노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이욱에게 '견기약(牽機藥)' '독주'를 내리고, 그는 결국 독주를 마시고 죽는다. 그가 생일날 쓴 글이 그의 목숨을 재촉하는 것이 되었다. 그 <우미인>은 절창이다. 남당의 마지막 국맥이 한 잔의 독주와 더불어 사라진 것이다.

 

남당역사를 살펴보면, 이변이 주본을 독살하려 하고, 홍기가 경수를 독살하고, 이욱이 임인조를 독살한다. 짧은 39년동안 왕실, 군신간에 서로 죽고 죽였다. 개국군주는 단약을 너무 많이 먹어서 만성중독으로 죽었다. 난세의 후주 이욱은 결국 송태조의 독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죽는다. 어찌 슬프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북송말기, 송휘종이 막 황제에 올랐을 때, 말을 타고 황궁을 순시할 때 이름이 없는 창고방을 발견한다. 좌우에 물어보고서야 그 곳이 궁중에 독약을 보관하는 창고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인자한 송휘종은 창고안의 독약을 모조리 불태워버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