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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고속철

중국고속철의 환상: 2조위안 시장을 주고 어떤 기술을 받았는가?

by 중은우시 2012. 7. 6.

 

: 신세기

 

 

 

"시장을 주고, 기술을 얻는다(以市場換技術)"이라는 말은 자동차공업에서 처음 나왔고, 고속철에서 집대성되었다.

 

1980년대초, 중국은 승용차와 경트럭을 수입할 필요가 있었다. 당시 중기총공사 동사장이던 라오빈은 이렇게 재안한다. 승용차를 수입하는 동시에 외국측에 무상으로 관련기술을 제공하도록 요청하자. 이를 통하여 중국자동차공업의 제조능력과 연구개발능력을 제고시키자. 그후, 중국은 다시 자동차시장을 개방하여, 다국적기업들이 중국에 합자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한다. "시장을 주고 기술을 얻는다"는 정책이 점차 펼쳐지면서, 중국의 공업제조능력을 향상시키는 중요한 길의 하나로 자리잡는다.

 

철도부의 전부장인 류즈쥔시대에, 중국은 고속철건설에서 시장을 주고 기술을 얻는다는 것이 널리 선전된 큰 성과였다. 중국은 7년의 시간을 들여서 자주적인 지적재산권을 가졌고, 세계최고속도의 기차를 가졌으며, 이를 위하여 겨우 23억달러의 기술라이센스비만을 들였다. 이것은 거꾸로 류즈쥔과 같이 중국에서 고속철을 대거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중요한 이유가 된다.

 

이 고속철의 최고성과를 대표하는 것은 화해호 시리즈의 CRH380모델열차이다. CRH1, CRH2, CRH3, CRH5에서 CRH380까지 중국고속철도차량은 2004년부터 철도부가 협상을 조직하여 중국에 도입했고, 외국전문가들의 지도로 중국에서 제조하였으며, 나중에는 중국에서 자체조립생산하게 된다. 이것은 통일적으로 "화해호"라고 명명된다. 2010 5 27, 최초의 CRH380이 장춘객차주식유한공사에서 생산될 때, 신화사는 원고에서 이 열차의 최고운영시속이 380킬로미터이며, 국산화율이 85%에 달하고, 중국은 100% 자주적인 지적재산권을 보유하였다고 하였다.

 

2011 6 CRH380이 경호고속철에서 정식으로 운영에 투입된 초기, 고장이 끊이지 않았고, 구후에 원저우에서 40명이 사망하는 "7.23"열차사고가 있었다. 이는 자신만만하게 해외로 나가려 하던 중국고속철업자들에게는 심각한 타격이었다. 류즈쥔을 대표로 하는 철도부패사건은 급속히 발전하던 중국고속철의 대약진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렇기는 해도, CRH380으로 대표되는 고속철기술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중국철도인들이 자랑으로 생각하는 성과이다.심지어 현재도, CRH380의 제조업체인 중국남차와 중국북차는 고속철기술을 해외로 수출하려는 웅심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경호고속철이 운영개시된지 1년후인 2012 5 22, 중국남차의 동사장인 자오샤오강은 강연때 공개적으로 말한 바있다. 그는 경호고속철의 감속운영은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속도를 350 내지 380킬로미터로 회복시켜야 한다. 이유는 시속을 250킬로미터에서 350킬로미터로 끌어올린 후, 탈궤계수(脫軌係數)는 오히려 0.72에서 0.32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속도를 올리면 안전성이 더 커지지 더 적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자오샤오강은 말한다. 이전에 남차는 이미 금년내로 시속 500킬로미터까지 시험할 것이라고. 중국인들의 속도에 대한 사랑은 짧은 기간동안의 침묵후에 다시 끓어오르고 있다.

 

확실히, 중국은 이미 고속철기술을 이미 보유하고 장악하고 있다고 하지만, 외국의 동종업계(주로 고속철기술수출업체)에서 인정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2010년 남차가 해외에서 고속철시장을 개척하겠다고 선포한 초기에, 일본의 카와사키중공업은 변호사를 조직하여 관련특허를 연구하고 법률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지멘스차이나의 한 내부인사는 그가 친히 겪은 이야기를 해주면서 중국고속철기술에 대한 견해를 얘기한다:

 

"당시 철도부는 시속을 300킬로미터에서 380칼로미터까지 끌어올리려고 하였다. 380열차의 방향조정기술을 책임진 한 중국전문가는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 밥을 먹지 못할 정도였다. 지멘스가 제공한 영문설계도면을 가지고 지멘스를 찾아와서 구체적인 번역과 수정방안을 물어보았다. 당시 신문에서는 곧 생산되는 380은 중국이 자주적인 지적재산권을 완전히 보유하고 있다고 선전할 때였다. 지멘스의 전문가는 조롱하듯이 말했다. '나한테 물어보지 말라.완전한 자주적인 지적재산권을 갖고 있지 않느냐?'"

 

그 지멘스의 엔지니어가 보기에, 장춘객차의 CRH380은 지멘스로부터 사간 CRH3의 플랫폼에서 만들어낸 것이고, 겨우 차량앞부분의 모양을 바꾸어 약간 더 길게 하였을 뿐이다.

 

이 점은 적지 않은 중국철도업계 내부인사들도 인정하는 바이다. 철도부의 전 과기사 사장인 저우이민은 공개적으로 말했다. 중국고속철의 차량의 도입한 설계모델을 다 써버렸기 때문에, 안정성은 검증이 되지 않았다. 속도가 빠를수록, 탈궤계수가 작아지는 문제에 대하여, 중국남차 주저우공장의 한 부총공정사는 이것만으로 고속이 안전하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이에 대하여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나는 속도가 일정한 수치에 도달한 후 탈궤계수를 계산하는 공식을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어떻게 바꿔야할지는 우리가 모르고 있다."

 

"샤리 한대가 가속패달을 밟아서 벤츠의 속도를 낸다고 하여, 샤리가 벤츠로 바뀐 것은 아니다." 이 말은 외국측이 중국에서 고속철속도가 맹목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보고 한 말이다. 6월초 베이징에서 거행된 고속열차세미나에서, 이것은 뒤집어서 말해진다. 북경교통대학 교수인 자리민은 "중국고속철은 벤츠를 샤리속도로 달리게 하는 것이다."

 

도대체 샤리가 벤츠속도로 달리는 것인지, 벤츠가 샤리속도로 달리는 것인지? 화해호에 관하여 어떤 것이 중국고속철발전을 위하여 포장한 거짓말이고, 어떤 것이 중국자주 지적재산권의 진상일까?

 

7년에 걸친 '시장을 주고, 기술을 받는다'는 정책은 2개의 중국차량제조업체의 미래발전을 위하여도 중요하고, 중국하이테크기술발전의 선택에 있어서도 큰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답하는 핵심은 중국이 정말로 가장 선진적인 고속철기술과 생산능력을 사오고,자주적으로 혁신하였는지가 아니다. 오히려, 중국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댓가를 치르고 소위 고속철 자주 지적재산권을 보유하였으며, 이들 자주적 지적재산권이 향후 중국에 무엇을 가져다 줄 것이냐는 점이다. 국내의 고속철시장을 효과적으로 운영할 것인가? 아니면 고속철기술을 수출할 것인가?

 

기자는 3개월의 취재를 통하여 중국고속철의 '시장을 주고 기술을 받는다'는 전 과정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의 득실을 살펴보았으며, 나중에 교훈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2011년 여름, 경호고속철이 개통되기 전날, 주저우전력기차공장의 고속견인연구소 소장이자, 원사인 류여우메이는 철도부의 초청을 받고 현장에 갔다. 동시에 초청받은 사람에는, 고속철자주연구개발에 참여했던 7,8명의 전문가들이 있었다. 2002년 고속철자주연구개발방안이 폐기된 후, 그들은 처음으로 다시 만난 것이다.

 

경호고속철의 개통현장에서 CRH380열차를 보면서, 류여우메이는 만감이 교차했다. 10년전 그는 일지기 고속철자주연구개발의 핵심인물이었다. 2003, 전 철도부부장 류즈쥔이 부임하자, 많은 반대의 소리를 물리치고, 이미 10년이나 진행했던 고속철자주연구개발을 중지시킨다. 그리고 "시장을 주고 기술을 얻는다"는 기술도입방안으로 방향을 바꾼다. 류여우메이와 그의 팀에서 연구개발한 중화지성(中華之星)은 고속철발전의 문밖으로 쫓겨난다. 그는 지금도 이 결정에 대하여는 불만이 크다. 그러나, CRH380의 바퀴가 철궤 위에서 안정적으로 운행되는 것을 보고는 역시 격동을 감출 수 없었다. 왜냐하면 옛날 중화지성의 연구개발로 배양된 인재들이 나중에 각 공장에서 해외기술을 도입하고 소화시키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번 고속철의 "시장을 주고 기술을 받는다"는 것에서 도대체 무엇을 받았는가? 그의 생각을 들어볼 만하다: "지적재산권으로 말하자면 모두 제고되었다. 그러나, 핵심기술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반풍자적이다. 옛날 중화지성의 연구개발을 중단시킨 것이 잘된 결정인가 아닌가? 중국은 7년에 걸친 기간동안 고속철기술을 도입하면서 반성해야할 점이 이것만은 아닐 것이다. 생각해봐야 할 점은 자주연구개발과 기술도입은 무슨 관계인가? 어떤 제품은 자주개발해고, 어떤 것은 기술도입을 해야하는가? 하나의 수단으로서 '시장을 주고 기술을 받는다'는 것 자체는 잘못이 없다. 그러나 어떻게 바꾸어야 가장 적은 댓가를 치르고 가장 큰 효과를 얻을 것인가? 기술에 속박당하지 않으면서.

 

중국고속철이 처음에 걸었던 길은 자주연구개발이다. 1990,철도부는 중국고속철발전모델과 계획을 수립한다. 푸즈환은 중국고속철 자주연구개발노선의 지지자였다. 1998년에서 2002년까지, 푸즈화니 철도부장으로 있을 때, 남징푸전차량공장, 철도부 주저우전력기차연구소(나중의 남차 주저우전력기차연구소유한공사)와 장춘객차공장을 포함한 몇 개의 국내기차제조업체는 모두 더욱 빠른 속도의 열차연구개발에 주력했다. 그러나, 참여인원이 많지 않고, 투입자금도 적었다. 류여우메이의 말에 따르면, "가난하게 버텼다."

 

많은 사람들은 '중화지성'을 중국고속철자주연구개발의 대표자로 보고 있다. 류여우메이등 원로철도인사들이 볼 때, 이것은 오해이다. 중국은 당시에 이미 준고속열차모델(시속 160킬로미터 내지 200킬로미터)을 개발하였고, 그중 선봉, 오성과 중화지성은 동력분산노선(동력을 몇 개의 열차차량에 분산시키는 것)이엇고, 남전은 동력집중노선(동력을 열차의 양끝에 집중시키는 것)이었다.

 

선봉호 전기열차는 2000년에 난징푸전에서 연구제조했다. 같은 해 주저우연구소, 장춘객차등은 남전을 개발한다; 2001년 남차 주저우연구소는 오성과 중원지성의 열차를 개발한다. 이들 시험차종중에서, 안정성에서 가장 뛰어난 것은 남전이었다. 철도부도 이를 구매해서 지금도 광주-심천선을 운행하고 있다. 오성도 카자흐스탄에 수출된 바 있다.

 

2001 4, 철도부는 "시속270킬로미터고속열차설계임무서"를 하달한다. 류여우메이가 총설계사였더. 동력집중노선을 걷는 중화지성이 정식으로 연구개발을 시작한 것이다. 임무서는 시속200킬로미터이상의 열차를 생산하고 최종적으로 연간생산능력 15대를 가지는 것이었다. 이는 당시 국가계획위원회가 비준한 프로젝트이고, 남차주저우연구소, 북차, 철도과학원등 12개 기업의 최첨단연구개발역량을 집중했으며, 국가에서는 1.3억위안의 재정자금을 지원했다.

 

2003, 최고운행속도가 시속270킬로미터인 중화지성이 진심객차운송전용선에 투입되어 시운전한다. 중국 최초의 자주지적재산권을 지닌 고속운행열차로 불리웠다.

 

그러나 참가한 전문가들은 당시의 자주연구개발은 문을 걸어닫고 차량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기술도입, 흡수 및 소화를 포함했다. 류즈쥔이 나중에 대규모로 도입한 것과 주요한 구별은 "이런 기술도입은 소량이었다. 국내연구개발인원이 위주이고, 도입후의 학습과 흡수에 중점을 두었고, 재혁신을 추구했다."

 

2001년부터 연구개발된 중화지성을 예로 들면, 동력시스템, 제동시스템과 방향조절기등 핵심분야에서 시스템집적과 기술자주를 이룩했다. 그러나 많은 핵심부품은 해외에서 수입했다.

 

총설계사 류여우메이는 직접적으로 맗하기를 꺼리지 않는다: "고속수전궁, 진공단로기, GTO기자재, 이온분리밸드, 고속축, 공기압축기등은 모두 외국에서 수입해서 국산의 기술부족을 보완할 수 있다." 당시 선봉호와 중화지성의 연구개발에 참여했던 철도과학원의 전문가도 솔직하게 말한다: "당히 우리의 방침은 도입과 동시에 자체연구제작이었다."

 

더욱 중요한 점은 당시 자주연구개발은 비록 국가에서 통일적으로 계획하였고, 관련프로젝트는 국가 "85개년계획", "95개년계획"에 들어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말하자면 기업행위였다. 심지어 난징푸전, 주저우덴리기차공장과 장춘객차공장 및 철도과학원등 차량생산업체와 과학원간에 연구개발경쟁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런 나를 위주로 한 모색식의 연구개발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국내의 과학연구개발인원의 성장은 시일이 필요했다. 국외기술을 흡수하는 기초위에서 열차를 제조하는 것은 단지 첫걸음이다. 기술이 성숙되고 상업운영단계에 접어들려면 더욱 긴 시간이 필요했다. 2001 9월에 생산된 중원지성을 예로 들면, 일찌기 경광철로의 정저우역과 우창역을 운행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운영때 고장이 잦았다. 당시 정저우국 차량단에서 일한 바 있는 철도인사는 이렇게 회고한다: "당시 차를 타면 느낌이 편하지 않았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열차제조시 전체 차량의 진동빈도와 고정빈도가 맞지 않아서 진동이 컸다." 운영기간동안 차량은 자주 중간에 고장나서 승객과 업무인원의 불만이 높았다. 반년간 겨우 운행하자, 유지보수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서 운행중단한다. 남전은 광심선에서 운행할 때 역시 고장률이 지나치게 높은 문제가 나타났다.

 

그러나 류즈쥔이 고집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술도입을 기초로 하고, 국내공장과 연구소가 자주개발하는 길은 느리지만 굳건히 지속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했다면 나중에 전국을 석권하는 고속철대약진은 없었을 것이고, 중국에 지금처럼 "백년이 지나도 원가를 회수할 수 없는" 수조위안의 고속철투자로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화지성을 공개적으로 부정하는 세미나 이전에, 류즈쥔은 전문가평가회를 개최한 바 있다. 참석했던 한 전문가에 따르면, 당시 회의에는 중원지성의 연구개발에 참여했던 몇몇 남차,북차의 총공정사들도 참여해 있었다. 류즈쥔이 사전공작하여, 그들은 제조업체의 명의로 중원지성의 여러가지 문제를 지적했다. 회의에서, 여러 엔니지어들은 지시받은대로 발언했다. 남차주저우연구소의 엔지니어만이 침묵을 지켰다. 말을 듣지 않은 주저우연구소는 나중에 그 댓가를 혹독하게 치른다.

 

2003 9 19일 지린성 창춘에서 개최된 "고속동차조전문가세미나"에서 중화지성은 '국외선진기술과 비교하여 기술수준, 제품성숙정도 및 신뢰성등 분야에서 확실히 차이가 있다."고 평가받는다. 이 결론은 중화지성에게 사형판결이다. 이번 회의에서, 철도부는 명확히 국외에서 시속200킬로미터의 열차와 300킬로미터 이상의 고속열차를 도입하겠다고 명확히 밝혔다. 자주연구개발에 참여했던 많은 원로전문가들이 보기에, 이번 소위 전문가는증은 그저 정치적 쇼였다. "그들은 필요한 전문가들을 불러왔지만, 널리 의견을 들을 생각은 없었다. 정치가 노선을 결정한 것이다." 기존연구개발성과를 모조리 부정하였고, 대거 국외에서 기술을 구매하고 도입한 이유는 류즈쥔등이 고속철건설을 즉시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열차발전은 그의 정치생애의 발판이다. 그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자주연구개발을 기다릴 수 없었다.' 여러해 후, 선봉호의 연구개발에 참여했던 철도과학원의 원로전문가의 회고이다. 그는 류즈줜에 대하여 원망이 크다.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일본인은 30년의 시간을 들여서 열차시속을 210킬로미터에서 300킬로미터로 올렸다. 류여우메이도 생각한다. 기술격차는 확실히 존재한다. 그러나 고속철의 연구개발성과는 빠를 수 없다. 기술소화,흡수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차량의 안정적인 운행시험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노반의 침하에는 더욱 긴 시간이 필요하다. 고속철이라는 이 분야에서 기술자들은 담량이 없었고, 정치인에게는 담량이 있었다.

 

2004, 철도부는 시속200킬로미터의 열차프로젝트의 조달입찰에서, 카와사키중공업, 알스톰과 봄바르디어등이 낙찰받는다.

 

중국에서 자체연구개발한 중화지성은 처음부터 입찰대상에서 제외된다. 왜냐하면 입찰에서 "성숙한 시속200킬로미터이상의 철도열차설계와 제조기술을 가지거나 혹은 국외합작기술지원을 받는 중국제조기업(중외합자기업포함)"일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전에 중화지성은 철도부에서 조직한 세미나에서 기술이 미성숙했다고 결론난 바 있다. 그외에 중화지성이 추구한 길은 동력집중노선이었고 최대한 8대로 편제한다. 이는 철도부의 사람을 많이 태워야한다는 요구조건에도 맞지 않았다. 그리하여 쫓겨난다. 2005 8월에 비록 52명의 원사가 연명으로 국무원에 호소하여 시운전자격을 억지로 받기는 했지만, 1년후 철도부는 부품이 느슨하다는 이유를 들어 철저히 봉쇄한다.

 

그러나, 당시 연구개발에 참여했던 일련의 인재들은 나중에 남차사방과 북차장객에서 국외고속철기술을 흡수하고 소화시키는 핵심골간이 된다.

 

2003년 중국은 10여년간 논쟁이 이어져오는 경호고속철이 여전히 발개위에서 정식으로젝트로 오르지 못하고 있었다. 중앙에서도 수백억위안, 수천억위안이 드는 고속철에 대하여 결심을 굳히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이 고속철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에는 컨센서스가 있었다. 당시 중국의 상황과 고속철발전상황을 보면, 고속철연구개발은 천천히 이루어져도 된다. 그러나, 류즈쥔의 생각은 명확했다. 선진국의 성숙한 기술을 '시스템적으로 도입'하여 국내고속철건설을 급속히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기술도입은 하나의 수단이다. 고속철을 급속히 발전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가 외국업체를 끌어들인 첫번재 주문은 '시속200킬로미터열차입찰'이었다. 2004 8, 철도부는 120대열차의 주문을 내놓는다. 이 열차는 철도 제6차속도제고에 쓰일 것이다. 원래 이번에 자주연구개발하고 생산제조능력을 가지고 있던 남전, 오성은 이미 속도에 도달했다. 그러나 그들도 중화지성과 마찬가지로, 입찰에 참가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2003년 상반기, 발개위와 철도부는 공동으로 기술도입의 구체적인 실시방안을 제정한다. 처음에 발개위는 방안설계를 책임지고, 철도부는 구체적인 업무를 책임졌다. 1990년대말, 발개위의 전신인 국가계획위원회는 지하철기술의 도입을 주도한 바 있다.

 

그때, 장슈광은 이미 류즈쥔에 의하여 철도부로 불려와 있었고, 고속철기술의 도입업무를 책임졌다. 장슈광은 처음에 자주 발개위 산업협조사의 사람을 찾아서 외국대기업과 어떻게 싸워야하는지를 물어보았고, 어떻게 하면 기술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협의했다. 2003년 하반기가 되자, 철도부는 점차 발개위의 통제를 벗어난다.

 

당시 발개위에는 우대정책이 하나 있었다. 고속철이 국산화율의 요구조건을 완성한 후, 재정세제 및 수입관세에서 보조금과 장려금을 받을 수 있었다. 철도부는 이 장려금이 필요없다고 했다. "그때 그들의 생각은 나는 너의 장려금을 받지 않으면서, 너의 통제도 받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한 발개위 인사의 추측이다. 그후, 국무원이 통지를 내려보내어, 명문으로 철도부가 고속철기술도입을 책임지고,발개위가 협조한다고 규정한다. 그후, 국무원은 기술차량전문위원회를 설립한다. 철도부도 당시 철도부 운수국장이던 장슈광을 내세워 열차프로젝트연합판공실을 성립시킨다.

 

주도권은 이렇게 자리바꿈을 한다. 발개위는 완전히 주변으로 밀려났다. 한 발개위의 관리말에 의하면, "방안조차도 우리가 심사하지 못하게 했다." 세를 얻은 철도부는 마지막 감독자의 감독마저 벗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기술도입방안이 변경된다. 이전의 지하철기술도입에서는 국가계획위원회가 설계를 책임지고 입찰방안을 심사했으며, 입찰과정을 감독했고, 입찰권한은 지하철사업주에게 위탁한다. 기술도입의 주체는 기업이었고, 기업이 스스로 합작파트너를 찾아서, 합작방안을 협상하고, 다시 공동으로 입찰했다. 기술도입을 실현하기 위하여, 발개위는 지하철입찰방안에서 프로젝트총액임과 기술총책임을 둔다. 만일 외국측이 참가하면, 기술총책임은 왕왕 외국측이 맡는다. 시간이 흐른 후 발개위는 입찰과정에서 중국측이 기술총책임을 맡는 조항을 집어넣는다. 이를 통하여 외국측이 중국측에 기술이전하도록 추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하철입찰방안에서 순중국기업이 참여하는 것도 배제하지 않았다. 지하철사업주는 지방정부이므로 비교적 분산되어 있고, 입찰에서 충분한 경쟁과 시장의 선택을 실현할 수 있었다. 당시 참여한 관리에 따르면, 지하철기술도입은 국가재정을 한 푼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10년의 시간을 들여서 80%가량의 기술이 점진적으로 흡수소화되었다.

 

고속철기술도입과정에서는 중앙이 철도부에 10여억위안의 전용경비를 지급하여, 철도부가 차체,견인,핸들 및 브레이크의 4가지 핵심기술을 도입하도록 한다. 그러나, 철도부는 3차의 입찰과정에서 모두 23억위안의 기술비를 지급한다. 그중 CRH1은 합자공장에서 생산하므로 기술양도비가 없다. CRH2의 기술양도비는 약 6억위안이다;CRH3의 기술양도비는 8000만유로(8억인민폐)이며, CRH5의 기술양도비는 9억위안이다.

 

발개위와 다른 점이라면, 철도부는 이 입찰에서 전지전능의 역할을 한다. 입찰방안의 설계자이면서, 사업주이고, 마지막으로는 고속철기술도입의 주체였다

 

1차열차입찰전에, 장슈광은 먼저 국내의 수십개 열차생산기업을 한 자리에 모은다. 그리고 열차기술도입은 국가와 민족이익에 관련되는 것이므로, 남차사방주식과 장객주식 2개가 국외의 업체와 협상하고 나머지 기업은 외국측과 접촉할 수 없다고 명확히 한다.

 

그후, 철도부의 분배하에, 국내중점차량제조기업은 각각 세계각국의 선진기술을 양수한다; 프랑스의 알스톰회사기술은 장춘궤도객차주식유한회사가 양수하고; 일본카와사키중공업의 기술은 남차로 넘겨진다; 카나다 봄바르디아회사의 기술은 청도의 중외합자기업인 BSP로 이전되고, 독일 지멘스 자회사의 기술은 당산기차차량공장으로 이전된다.

 

푸즈환시대에 자주연구개발의 주력군은 남차 주저우연구소였는데, 기술도입과정에서는 배제된다. 당시에 철도부협상에 참가한 인사에 따르면, "1차기술도입은 모두 국내기업과 국외기업으로 구성된 연합체였다. 남차 주저우연구소는 다시에 아직 자주연구개발을 포기하지 않아서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불참으로 주문이 없게 되는 것을 발견하고는 비로소 철도부와 지멘스의 재차담판때 적극적으로 신청한다. 그러나, 류즈쥔의 반대로 남차집단은 200,300킬로미터이상의 플랫폼을 독점해서는 안된다는 명분으로, 지멘스의 300킬로미터 플랫폼을 당시 기술역량이 남차 주저우연구소보다 훨씬 떨어지는 당산궤도객차공장에 넘겼다."

 

이때부터, 중국고속철은 고속발전시대를 연다. 원래 완성차생산기술역량이 가장 강했던 남차주저우연구소는 배제되고, 그저 부속품생산에밖에 참여하지 못한다. 할 수없이 지하철시장으로 뛰어들어 생존을 모색한다. 그러나, 반풍자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은 주저우연구소 산하의 주저우스다이가 마지막에 CRH380A의 견인계통공급상이 된다는 것이다. 견인게통은 열차연구개발의 3대핵심시스템중 하나이다. 북차 당산공장과 장춘객차공장에서 생산하는 CRH380B는 지멘스기술에 대한 흡수와 소화가 부족하여, 경호고속철이 운영시작한 후 고장률이 각각 백만킬로미터당 10.46회 와 27.36회가 되어 부득이 리콜할 수밖에 없었다. 최종적으로 지멘스의 전문가를 불러서 난제를 해결하여야 했다.

 

"핵심기술을 도입하는 것은 철도부였다.철도부는 기술을 도입한 후 기업에 분배한다. 이 돈을 국내기술선도기업에 주지 않았고, 기업을 주체로 한 기술도입도 아니었다. 철도부가 소화흡수할 능력이 있는가? 설마 몇 개의 방에 설계도면만 펼쳐놓으면 된단 말인가?" 발개위의 인사는 입찰부터, 철도부의 역할포지셔닝은 편차가 있었다. 전지전능한 역할에는 반드시 부패가 따르기 마련이다.

 

"실제로 개인이 조종하는 시장에서는 시장의 경쟁매커니즘을 이용할 수가 없었다."

 

그때, 철도부의 이런 집중,통일되고 전면적으로 주도하는 협상방식은 일찌기 대거 선전된 바 있다. 지금까지도 여러 철도부 인사들은 유익했다고 생각한다.

 

2006, 3차고속철입찰에서 철도부의 기술도입협상에서 기술고문을 맡은 우쥔용은 이렇게 말한다: "담판에서 철도부가 주도했다. 모든 외국업체는 직접 철도부와 협상했다. 중국기업과 시장은 통합되었다. 만일 우리가 야보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아무런 방법이 없다. 우리는 하나하나 각개격파하면서 4개의 외국업체가 경쟁하게 했다." 그에 따르면, 철도부는 당시에 업계전문가로 6개의 협상소조를 구성한다. 장슈광 본인은 철도부 고속철기술도입소화흡수판공실의 주임을 맡는다. 매일 저녁이면 각조로부터 진전상황을 보고받고, 가격결정권과 최종결정권은 모두 철도부의 고위간부들이 가졌다.

 

독일 지멘스의 예를 들어 이 협상전략의 성공을 살펴볼 수 있다. 협상에 참가한 인사들의 회고에 따르면, 지멘스의 최초태도는 강경했다. 제시가격은 매 열차원형차량마다 3.5억위안을 요구했고, 기술양도비로 3.9억유로를 요구했다. 입찰전날까지도 지멘스는 양보하지 않았다. 철도부의 수석협상대표인 장슈광은 확실한 의사를 표명한다. 만일 원형차량가격을 2.5억위안이하로 내리고, 기술양도비를 1.5억유로이하로 내리지 않으면 배제될 것이라고. 결과적으로 지멘스는 제1차열차입찰에서 낙찰받지 못한다. 다시 입찰을 진행할 때, 지멘스는 원형차량의 대당가격을 2.5억위안으로 낮추었을 뿐아니라, 8000만유로의 가격으로 핵심기술을 양도한다. 우쥔용에 따르면, 이 하나의 프로젝트로 "90억위안의 조달비용을 절감했다."

 

그러나, 이것은 최초비용이다. 지멘스의 수익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2009 3 16, 철도부와 중국북차집단 산하의 당산궤도객차공사와 장춘궤도객차주식회사 및 중국철도과학원이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한다. 392억위안으로 100대의 신세대 고속열차를 구입한다. 그러나, 중국북차능 여전히 지멘스로부터 완성차 및 부품을 구매해야 했다. 지멘스는 이로부터 7.5억유로(70억위안)의 주문을 따낸다. 지금도 북차는 여전히 지멘스로부터 견인시스템의 핵심부품을 구매하고 있다.

 

브레이크시스템은 주로 독일 크노르사(Knorr-Bremse)가 독점하고 있다. 2004년말, 크노르극동유한공사는 쑤저우고신구에 회사를 설립하는데, 2010년말의 수입이 근 35억위안이며, 순이익은 7.7억위안이다. 중국은 7년의 소화흡수후에도 핵심부품은 여전히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시장을 주고 기술은 얻는 철도부의 선전은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 것같다.

 

더욱 크게 보자면, 철도부가 완전히 통제한 입찰하에서, 기업은 들러리가 된다. 입찰권과 주문은 모조리 철도부의 배분에 의존한다. 철도부관리의 권한은 무한히 확대된다. 장슈광은 동차연락판공실을 일인천하, 만인지상으로 만든다. 수천억위안의 사업을 혼자서 결정한다. 장슈광의 협상능력은 실제로 철도부가 강행한 대규모 고속철시장때문이다.

 

2004, 국무원이 심의하여 통과시킨 <중장기철로망계획>에서는 2020년까지, 전국철도운영연장거리가 10만킬로미터에 이르도록 하며, 주로 간선에서 화차, 객차의 분리노선을 실현하겠다고 한다.   <계획>에서는 처음으로 "사종사횡(四縱四橫)"의 여객운송노선망을 확립하고, 신규건설노선이 약 2.8만킬로미터에 달하고, 여객운송선의 속도는 200킬로미터 이상으로 확정한다.

 

그러나, 류즈쥔에 있어서 여객운송전용선은 고속철과 같은 말이다. 실제건설에서, 여객운송전용선의 속도는 시속 300킬로미터 이상으로 조정된다. 2008년 철도부는 다시 <중장기철로망계획>을 수정한다. 철도운영연장거리를 10만킬로미터에서 12만킬로미터로 증가시킨다. 류즈쥔은 활동공간이 더욱 넓어진 것이다.

 

2005 10, "시속300킬로미터열차"의 프로젝트입찰이 시작되어, 입찰로 도입한 열차를 새로 건설한 여객운송선에 사용할 준비를 한다. 2006년초, 카와사키중공업, 알스톰, 봄바르디아 및 지멘스의 4개 외국대기업은 남차, 북차 산하의 기업과 합작하여 낙찰받는다. 계약에서는 차량구매도 포함되고, 기술도입도 포함된다. 완성차구매에서 부품구매로 점차 발전하고 최종적으로 국내에서 조립생산한다. 중국측은 원형차량의 도면을 매입 및 외국측의 기술지도에 별도로 대금을 지급한다.

 

2006 11, 철도부는 국내 최초의 고속철인 경진도시간프로젝트를 입찰한다. 최종적으로 지멘스를 대표로 하는 독일기업연합체가 120억위안으로 낙찰받는다. 이전 두번과 다른 점이라면, 이번 입찰기업은 선로건설과 차량을 포함한 전체공사를 책임진다는 것이다. 공사가 커서, 철도부는 협상과정에서 목표를 300킬로미터이상의 최선진기술을 받아내는 것으로 삼았다.

 

나중에 철도부가 상부에 보고하고 대외적으로 선전한 것을 보면, 이번 거액을 투입한 기술도입은 확실히 17억위안을 들여서 세계최선진의 고속철기술을 매입했다고 묘사하고, 다시 그 이후에는 중국고속철에 자주연구개발과 국산화라는 레테르를 붙이게 하였다. 2010년에 CRH380이 생산개시된 후, 철도부는 중국이 이미 100% 고속철열차의 자주지적재산권을 보유하고 있다고 선전한다.

 

이것은 고의로 포장한 말이다. 그 뒷면에는 은환이 숨어있다. "류즈쥔이 성공한 것은 시속200킬로미터이상의 고속철시장의 수요를 잘 캐치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상품을 빠르게 공급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철도부는 공급은 통제할 수 있지만 수요를 통제할 수는 없었다. 이것은 고속철을 한 사람이 조종하는 시장으로 만들어 버린다. 시장의 경쟁매커니즘을 가지고 일처리하지 않았다. 사람의 욕망은 팽창하기 마련이다." 발개위 인사의 평가이다.

 

중국은 이런 "시스템적인 도입"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돈을 들였을까? 전 국가과학위원회 과기간부국 국장이자 과기부연구센터 연구원인 진뤼중은 다르게 계산한다: 2006년말까지, 철도부는 3차의 열차대입찰을 통하여, 독일, 프랑스, 일본의 고속열차 280(그중 160대는 시속 200킬로미터, 120대는 시속300킬로미터), 합계 533억위안어치를 구입했다. 거기에 1098대의 기차(전력기차 420, 내연기차 678)에 인민폐 305억위안을 들이고, 기술양도비 5억달러를 지급했다. 철도부는 모두 900억위안(110억달러가량)을 썼다. 이와 비교하면, 한국은 훨씬 돈을 적게 썼다. 진뤼중에 따르면, 마찬가지로 후발주자인 한국은 21억달러를 들여서 프랑스로부터 시속30킬로미터의 고속열차 46대를 구입한다. 핵심기술을 포함한 기술전부를 얻어냈을 뿐아니라, 직접 프랑스의 차세대고속열차개발에도 참여하고, 고속열차수출권리도 받아냈다.

 

중국의 잠재적인 댓가는 이뿐이 아니다. 철도부는 기술도입협상에서 강세를 보인 이유는 류즈쥔이 전례없는 대규모의 고속철시장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중국은 2006년을 전후하여 고속철건설을 대규모로 개시하고, 철도건설자금은 매년 증가한다. 2006년에는 2088억위안, 2007년에는 2520억위안, 2008년에는 3000여억위안, 2009년에는 6000여억위안, 2010년에는 7000여억위안이었다. 이들 자금은 주로 국내에서 차입으로 조달된다. 은행이 돈을 발려준 것은 중국정부의 고속철발전에 대한 결심을 좋게 보았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보기에, 대부분의 고속철노선, 특히 경제가 발달하지 않은 지역의 고속철노선은 경제적 합리성이 없었고, 이익을 낼 수가 없었다. 세계은행의 2010 7월분 보고서에서도 중국이 대규모로 고속철을 건설한 경험은 다른 나라가 본받기 어렵다고 적었다.

 

철도부의 재무제표를 보면, 2006년에서 2012 1/4분기까지, 철도부의 순자산은 8623억위안에서 15786억위안으로 늘었다. 1.8내가 증가한 것이다. 그런데 같은 기간 부채는 6401억위안에서 24298억위안으로 증가하여 3.8배나 증가한다. 특히 2008년에서 2011년까지 고속철을 대거 건설한 기간에는 총부채의 연간복합성장률이 41%에 달한다. 중국경제는 이로 인하여 큰 부담을 지게 된다. 중국사회과학원 금융중점실험실 주임인 류위휘는 글을 써서, 2010년말까지, 철도부의 부채는 1.72조위안(국가개발은행의 대출금 1720억위안 불포함)으로, GDP 4.3%를 차지한다고 말한다.

 

류여우메이, 진뤼중, 장치지를 포함한 여러 1세대 철도전문가들이 안타까워하는 점은 자주혁신과 기술도입은 모순되는 것이 아니고, 이것 아니면 저것인 관계가 아니며, 중국이 자체개발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원래 이처럼 방대한 규모로 '시장을 주고 기술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는 점이다.

 

전 과기부 연구센터 연구원인 진뤼중은 예를 들어 설명한다. 중국은 20년전에 3억달러를 들여서 유럽오십헤르츠집단으로부터 150대의 8K기차 및 전체기술을 도입하였고 소화흡수후에 재혁신을 이루었다. 중국이 '샤오산'시리즈기차품질은 세계선진수준에 도달했다. 중국철도는 이로 인하여 몇년내에 5번에 걸친 속도제고를 이루어낼 수 있었다. 이들 국산기차 및 '샤오산'기차의 실리콘부품은 지금도 대량으로 수출되고 있다. 국제고급시장에서 ABB등 다국적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다.

 

남전, 중화지성등이 상업화운영에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류즈쥔은 중국이 더빠른 속도로 기적을 창조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2007, 고속철기술을 도입한지 3년후, 장슈광은 공개적으로 기술도입의 성과를 선포한다: "3년의 소화흡수를 거쳐, 중국은 이미 열차의 9개 핵심기술 및 10가지 주요보조기술을 완전히 장악했다. 시속200킬로미터 열차의 국산화정도는 70%이상에 달했다. 이 급의 열차는 모두 160대를 구매했는데, 그중 완성차량은 6대뿐이다. 부품을 수입하여 국내에서 조립한 것이 12, 나머지 142대는 전부 국외기술을 장악한 국내기업이 제조한 것이다."

 

장슈광의 말에는 '시장을 주고 기술을 얻었다'는 성취를 자랑하고 있다. 짧은 3년의 기간내에 국내기업이 시속200킬로미터이상의 열차공업화제조기술을 확보하여, 푸즈환시대의 고속철자주연구개발속도와 비교하면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러면비법은 무엇인가?

 

철도부는 기술도입방식에 이렇게 규정했다. 국내기업은 반드시 국외기업과 합작하여야 주문을 따낼 수 있다. 국산화단계는 3단계로 나눈다: 완성차수입, 국외에서 부품을 수입한 후 조립, 국내기업이 기술흡수후 자체생산. 어느 기업이 국외기업과 합작할 것인지에 대하여 장슈광을 잘 아는 인사는 장슈광이 사적으로 이렇게 털어놓은 바 있다고 한다. 비핵심의 10대보조기술은 국내의 어느 회사로 할 것인지 그가 결정하면 그만이다. 다만, 9대핵심부품의 생산은 상부에서 결정한다. 기술능력이 비교적 강한 국유기업으로 선정하여야 한다. "그것은 리베이트를 받을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상술한 인사의 말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정말 이 3단계를 통하여 고속철제조의 핵심기술을 완전히 장악했을까?

 

알스톰, 지멘스등 기술양도에 참여한 기술자들은 인터뷰에서 그런 주장은 지나치게 과장되었다고 말한다. 당시 기술도입계약에 핵심부품의 설계기술을 양도하는 것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고, 양도하는 것은 단지 제조기술이었다. 즉 외국측이 중국에 양도한 것은 도면이고, 외국측에서 사람을 파견하여 중국측에 어떻게 조립하는지를 가르쳤다. 그외에, 소위 기술양도계약은 대량의 오리지날수입부품의 구매를 포함한다. 남차집단의 한 부총공정사는 솔직하게 이렇게 털어놓는다. "실제로는 핵심부품구매계약이다'

 

그 부총공정사는 이렇게 말한다: 고속철속도를 300킬로미터에서 350킬로미터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우리는 일부 개선작업을 했다. 도입한 열파의 설계여량을 이용하여 견인전기의 효율을 증대시켰다. 자연히 차량속도는 올라갔다. 그러나, 한꺼번에 설계여량을 모두 써버리고, 실무경험이 없다보니, 문제가 날지 아닐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기술전문가들에 따르면, 중국은 확실히 기술도입에서 적지 않은 선진적 제조기법을 배웠다. 예를 들어, 용접정밀도에서 크게 진보했고, 차를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북경대학 정부관리학원 교수인 루펑이 말한 바와 같이 자주혁신의 핵심은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암묵적인 지식의 집적과 획득이다.

 

열차도입에 참여한 바 있는 기술엔지니어에 따르면, 우리는 외국측이 제공한 도면을 가지고 핸들, 전기, 변압기를 생산할 수 있고, 외국측의 핵심부품으로 변류기와 자동제어시스템을 조립할 수 있다. 그러나 차형의 설계근거, 원리는 모른다. 차체를 넓히면 리스크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차체의 원시설계계산서는 앋지 못했다. 핸들의 핵심수치와 업그레이그방법은 얻지 못했다. 전기와 변압기의 전자장, 열장, 역장의 계산기 다차원협동시물레이션기술은 모른다. 더더구나 구조신뢰성이 있는 설계방법, 검사기준과 관련재료의 피로도특성데이타베이스는 얻지 못했다자동통제시스팀의 소프트웨어 소스코드도 얻지 못했다. "이것들은 가장 기본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핵심적이다. 우리는 도입을 통하여 얻을 수가 없었다."

 

바꾸어 말하면, 수년의 교육을 거쳐 중국은 확실히 열차의 대규모생산과 제조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장슈광이 말한 중국기업이 자주생산한 열차의 핵심부품은 여전히 국외에서 수입한다. 단지 중국에서 조립을 완성할 뿐이다. 이렇게 짧은 몇년만에 수백대의 열차를 생산할 수 있었다. 이 점은 자동차업계와 마찬가지이다. 자동차분야의 시장을 주고 기술을 얻는 것은 이미 보편적으로 실패한 경험으로 인식한다. 류즈쥔시대의 고속철기술의 비약적발전의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많은 철도인사들이 잊지 못하는 고속철수출에 대하여 한 발개위의 권위있는 인사는 절대로 불가능할 것이라고 암시한다. 원인은 다른게 아니라, "기술도입은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면 되지만, 수출은 왜 그런지를 알아야 한다." 중국은 현재능력으로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철도부서와 지멘스가 2005년말에 체결한 경진도시간 60 CRH3의 구매계약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철도부와 지멘스/당차연합체가 체결한 주문은 모두 60대인데, 그중 3대는 완성차수입이고, 나머지 57대는 조립이다.

 

전체계약금액은 120억위안이다. 그중 지멘스에 지급한 구매금액은 60억위안이다. 나머지 59억위안은 당차에 지급했다. 나머지 1억위안은 당차가 지급한 일부 기술양도비이다. 주로 인원교육과 자료비용이다.그외에 철도부는 지멘스에 단독으로 8000만유로의 기술양도비를 지급했다.

 

철도부가 지멘스에 지급한 60억위안은 3대의 8편조 완성차와 수입부품이 포함되어 있다. 완성차량은 2.5억위안에 1대였다. 합계 7.5억위안이다. 부품의 계약가격은 5.14억유로이고, 합계 인민폐 50여억위안이다.

 

지멘스는 중국측 합작파트너인 북차당차, 영제전기공장 및 철도부연구원에 기술양도지원을 제공하기로 약속한다. 당차는 나머지 57대의 열차생산을 맡았고, 1단계의 국산화율은 30%이다. 2단계는 50%이고, 마지막에는 70%에 달한다. 전체 열차는 중국브랜드를 사용한다. CRH3이다. 이 모델차량의 제동시스템은 독일 크노르사가 제공한다. 견인시스템은 지멘스가 제공한다. 마지막 열차에만 ABB다통회사의 견인변압기를 장착했다. 제동과 견인시스템은 열차의 가장 핵심인 3대기술중 하나이다. 크노르는 CRH3에 제동시스템과 차량문시스템을 제공하고 5억유로를 벌었다. 그 회사 설립후 100여년만에 최대의 주문이었다.

 

지멘스의 기술자들이 보기에, CRH380은 바로 CRH3의 플랫폼위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차량머리부분을 빼고는 거의 변한 것이 없다.

 

CRH380A 국산화율은 CRH380B에 비하여 낮다. 견인전기, 견인변압기는 남차주저우전기유한공사, 용지신시속전기전기유한책임공사가 제공한다. 견인전류기, 전기통제, 전기통신은 주저우남차시대와 북차다통전기가 제공한다. 그러나 브레이크시스템은 주로 크노르가 쑤저우공장에서 공급한다. 작은 부분만 중국철도과학원기차차량연구소와 남경푸전제동설비유한공사가 공급한다. 류여우메이에 따르면, 경호고속철은 실제운행과정에서, CRH380A의 안잔성이 CRH380B보다 좋았다. 초기에 계산한 고장율은 단지 백만킬로미터당 1.46회였다.

 

지멘스에서 수입한 부품은 거의 절반가격을 차지한다. 국내에서 조립하므로, 국산화율에 포함된다.

 

"국산화율"은 중국정부부서가 좋아하는 지표중 하나이다. 국내기술수준을 형량하고 있다. 고속철도 마찬가지이다. 2007, 2008년 고속철의 비약적발전시기에, 상해철로국은 300킬로미터이상의 열차국산화율을 75%에 달했다고 하였다. 경호고속철 열차의 국산화율은 85%에 달했다고 하였다.

 

국산화율은 발개위가 지하철기술도입에서 사용했다. 주요 목적은 기술도입속도를 가속화하고, 원형차량구매비용을 줄이기 위함이다. 고속철에서도 마찬가지의 효과가 나왔을까?

 

지멘스와의 계약에서, 국산화율은 분명히 표시되어 있다. "완성차수입은 5%를 초과하지 못한다. 부품수입은 15%를 초과하지 못한다. 기술양도후, 국내생산과 조립하는 부품은 80%이상이어야 한다. " 그러나, 금액의 절반에 달하는 수입부품은 국내에서 조립되므로 국산화율에 포함되었다.

 

국산화지표는 공장에서 철도부에 자체보고한다. 계산방법도 각양각색이다. 심사는 하지 않는다. 한 국내견인변압기기업은 인민폐결산기준으로 국산화율을 계산한다. 국외독자기업은 국내공장을 만들어 부품을 생산하면, 국산화로 친다. 국외 수입되어 국내에서 조립되어 판매되면 국산화로 변신한다.

 

핵심기술협력업체를 선정하는데, 철도부는 절대적인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다. 많은 이전에 경험이 없는 생산기업들이 관계를 통하여 고속철분야로 뛰어든다. 그리하여 류즈쥔시대의 기이한 광경을 형성한다. 딩슈먀오가 지배하는 산시즈치는 바로 그 한 예이다. 이탈리아회사와의 합작으로, 경험이 없던 즈치는 마안산강철등 전통적인 바퀴생산업체를 누르고, 고속철 차륜의 독점공급상이 된다.

 

핸들의 중요부품인 침량(枕梁)을 예로 들면, 전세계에서 1개업체만이 생산하여 가격이 비싸다. 철도부는 국산화도입을 생각할 때, 이전에 생산경험이 없던 청도에이아오궤도집단을 선택한다. "국산화를 위하여 3단계로 진행했다: 먼저 웨이아오가 조립하게 하고, 2단계로 국외기업이 웨이아오에 주조기술을 제공하게 하고, 3단계로 웨이아오가 생산한다" 그러나, 실제로 현재 이 3단계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원래 직접 장춘객차로 보내어 조립하면 될 침량이, 먼저 청도웨이아오로 보내어진 후, 그 곳은 직원이 살펴본 후 다시 장춘객차로 보낸다." 지멘스 CRH3프로젝트에서 일한 바 있는 기술자는 놀리듯이 말한다. "국산화는 다른 지방의 털게를 양청후의 물에 씻은 후 양청후 털게로 변신하는 것과 같다."

 

10대보조기술들은 기술수준이 낮고 투입이 비교적 적으므로, 많은 민영기업들이 이를 기화로 고속철분야에 뛰어들고 싶어했다. 이들 분야에서, 장슈광은 큰 발언권을 지녔다. '점정(點裝)"과 가짜국산화가 성행했다. 한 발개위 관리에 따르면, 꽌시를 통하여 진입한 민영기업은 큰 힘을 들이지 않고 기술도입을 하려 했다기술양도를 실현하려면, 기술양도비를 지급하고, 공장을 짓고 설비를 설치하며, 충분한 R&D비용을 투입하여 대량투자가 이루어져야 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외국에서 부품을 수입하여 조립했고, 기술을 몰라도 돈을 벌 수 있었다.

 

철도라는 폐쇄적인 분야에서, 일단 이익관계가 엮이게 되면, 외부의 기업이 끼어들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경쟁을 통하여 기술능력이 향상되기 쉽지 않다. 예를 들어 고속철 차륜는 경험이 없는 즈치가 독점한 후, 국외에서 이미 제련이 다 된 강철을 수입하여 약간의 가공을 거쳐 철도부에 납품했다. 즈치의 실제지배인은 류즈쥔 및 장슈광과 관계가 밀접한 산시의 여상인 딩슈먀오였다. 또 다른 국내기업인 산시 진시차축이 연구개발해낸 공심차축은 지하철에 납품하고 수출한 실적이 있지만, 진입할 수가 없었다.

 

2011년의 "7.23"열차사고후, 철도부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국산화는 채택하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게 되고, 더 이상 맹목적으로 공급상에게 국산화율을 강요하지 않게 된다.

 

국산화는 확실히 원가의 절감을 가져왔다. 철도부는 열차제조가격을 매년 10%씩 감액시키도록 요구했다. CRH2는 남차가 카와사키로부터 도입했다. 원형차구매가격은 1.78억위안이었다. 2007년에 생산개시된다. 남차에서 공고한 주문으로 계산하면, 2010 10월에 생산한 CRH2의 제조가격은 1.21억위안이다. 하락폭이 32%에 달한다. 그러나 북차의 제조가격은 비교적 높고 가격인하효과도 분명하지 않다.

 

부품을 보면, 핵심부품일수록 가격인하가 어렵다. 가격하락폭이 가장 큰 것은 인테리어분야이다. CRH3를 예로 들면, 청도뤄메이웨이아오는 2006년의 가격표에서 유리강부품가격이 국산화제2단계후 20%하락했다.

 

지멘스의 기술자가 보기에, 열차핵심기술은 3개부분이다. 견인시스템, 핸들시스템 및 브레이크시스템. 그중 가장 핵심은 견인시스템이다. "열차의 심장"과 같다. 이들 기술은 외국측이 가격을 깍아줄 생각도 없고, 양도하지도 않는다.

 

견인시스템중 일부 부품 예를 들어 견인전기는 기술수준이 낮다. 국산화때 국내기업들이 많이 진입했고, 인하폭이 컸다. CRH2의 견인전기는 국산화제2단계에 12.5%가 인하되었다.

 

전체 견인시스템중에서 가장 핵심이고 기술수준이 높은 것은 소프트웨어시스템이다. 여러 업계전문가에 따르면, 지멘스, 카와사키, 알스톰은 모두 이 기술을 양도하지 않았다. "열차통제시스템을 장악해야 각 부품의 데이타수치를 설치할 수 있고, 진정한 설계능력을 가진다. 이것은 그들이 여러해동안 연구개발한 성과이고 두 손으로 넘겨줄 리가 없는 것이다." 전술한 지멘스기술자의 말이다. 당차의 한 기술자도 말한다. 현재 국내자주개발이라고 떠드는 CRH380B 시리즈차형은 일단 열차운행에 문제가 발생하면 여전히 지멘스에 물어본다. "소프트웨어의 업그레이드버전도 지멘스가 한다. 시험데이타도 지멘스본사에 피드백한다. 수정하는 주기가 아주 길다."

 

견인시스템의 이런 핵심기술은 한 열차총가격의 얼마를 차지할까? 20-30%이다. 그중 열차자동통제시스템은 전체 견인시스템의 절반이상을 차지한다. 이윤도 가장 높다. 전 지멘스구매부 인사는 이렇게 말한다: "현재 지멘스 구매부서는 견인시스템으로 돈을 번다." 알스톰도 마찬가지이다.

 

견인시스템과 마찬가지로, 왹구측이 생존의 근본이라고 보는 것은 브레이크시스템이다.이것도 실질적인 기술이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외국측의 중국내 합자공장에서 생산한다. "합자공장은 기술양도가 없다. 중국측은 도면조차 보지 못한다." 고속철브레이크시스템은 크노르가 독점한다. 핵심기술은 양도하지 않는다

 

3대시스템중 기술양도계약이 체결된 것은 핸들제조이다. 그러나 단지 설치도면만 팔았다. 설계원리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중국측은 그렇게 되는 것은 알지만 그 이유는 알지 못한다. 한 참여인사는 이렇게 말한다. 장춘객차는 일찌기 지멘스에 핸들데이타수치가 왜 이렇게 설치되었는지 물은 적이 있다. 지멘스의 전문가는 그저 모르는 척했다. 현재 핸들의 부품은 장춘객차가 용접하고, 나머지 부품은 국외에서 매입한다.

 

남차주저우의 한 엔지니어는 이렇게 비유한다. "몇 개의 외국회사로부터 열차를 구매하는 것을 통하여 우리는 4마리 물고기를 샀다.그러나 낚시기술과 방법은 배우지 못했다. 자동통제시스템의 핵심부품은 여전히 수입하고, 통제소프트웨어 소스코드는 아예 양도범위에 들어있지 않다."

 

고속철기술도입에서, 중국측은 방대한 시장을 만들어 내놓았다. 그러나, 진정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고액의 이윤을 얻어간 것은 해외의 업체들이다. 그들은 핵심기술과 핵심부품을 통제하여 주도권을 장악했다. VIP좌석을 예로 들면, 2009년에 설립한 상하이위안통이 철도부와 1만개의 VIP의자 생산주문을 체결한다. 동시에 미국회사와 기술협력을 했다. 위안통의 인사에 따르면, "미국측의요구는 가혹했다. 촉동기, 통제기 및 사밀조등 핵심부품은 앞의 1000개 의자는 미국회사에서구매해야 한다. 사밀조는 3000개를 반드시 미국에서 구매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모든 기술협상에서 중국측은 총도급상이 되어 가공비나 벌고 있다."

 

그러나, 100% 자주 지적재산권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는 CRH380에서, 철도부는 기술도입색채를 고의로 드러내지 않았다. 2009 3 16, 철도부와 북차, 철도과학원과의 100 CRH380BL시리즈의 신세대 고속열차구매계약현장에 지멘스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며칠 후, 지멘스의 공식웹사이트에는 "100대고속열차계약에서 지멘스는 7.5억유로어치의 계약을 따냈다"는 소식이 실린다. 철도부는 그 후에 지멘스와 계약한 것을 부인했다. 지멘스는 핵심기술을 양도하지 않았다고 얘기했다. 지멘스의 주문은 북차가 그들로부터 견인시스템을 구매한 것이다. 총가격 392억위안의 계약에서 지멘스가 20%를 차지한 것이다. 이를 보면 구매금액 자체에서 견인시스템등 핵심기술은 중국측이 흡수하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다.

 

가장 반풍자적인 것은 자주개발의 노선을 걷다가 류즈쥔에 의하여 배제된 남차주저우연구소가 남차가 제조하는 CRH380AL시리즈의 공급상명단에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공급하는 것은 가장 핵심인 견인시스템이었다. 류여우메이에 따르면 주저우연구소는 네트워크통제시스템을 포함한 완전한 CRH380AL의 견인시스템을 제공했다고 한다.

 

비록 중화지성이 요절했지만, 기술과 인재는 남아 있었다. 이들 유산은 기술도입단계에서 쓸모가 있었다. 남차주저우연구소는 2007년 지멘스와 합자회사 STEZ를 만들어 DJ4열차를 만든다. 주저우연구소는 DJ4의 열차 수치와 기능을 가지고 리버스엔지니어링을 한다. 이런 방식에 대하여 지멘스의 기술자들이 "주저우연구소는 몰래 우리의 기술을 배웠다"고 폄하한다.

 

주저우연구소가 만들어낸 견인시스템과 대용량전기는 처음에는 열차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지하철에서 기회가 왔다. 상하이지하철 1호선의 차량은 원래 지멘스로부터 도입했다. 2006년 수명이 다 되어 개조해야 했다. 지멘스는 가격을 너무 높게 불렀다. 2007년 그들은 주저우연구소를 찾아온다. 주저우연구소의 전기와 구동계통은 이렇게 하여 상해지하철의 차량에 탑재된다. 그리고 잘 운영되었다. 이때부터 도시궤도교통에서 시장을 확보한다. 최근 들어 그들의 견인시스템은 국내지하철시장에서 속속 낙찰받고 있다.

 

열차 CRH380A에서, 가장 먼저 핵심부품인 IGBT칩은 반드시 국외에서 구매했다. 발개위의 한 관리는 이 문제는 나중에 구매로 해결했다. 2008 10월 주저우연구소의 한 산하기업인 주저우남차시대는 전세계에서 지명도가 있는 반도체부품공급상인 카나다상장회사 Dynex Power Inc 75%지분을 인수한다. 그리하여 IGBT의 연구개발과 제조기술을 획득한다.

 

이와 동시에, 철도부의 주저우연구소에 대한 태도가 변화한다. 응용환경이 바뀌어, 선로, 전기공급시스템, 신호환경, 기후환경이 외국과 달랐다. 2006년에서 2007년까지 열차조립후 운전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기술을 가진 외국측은 문제해결과정에서 협력하지 않았다. CRH5를 예로 들면, 시운전단계에서 자주 알수없는 이유로 정차했다. 나중에 자동네트워크통제프로세스에 헛점이 있다는 것이 발견된다. 알스톰의 사람이 해결해야 했다. 그러나, 알스톰의 직원은 국내의 철로직원처럼 철도부에서 명령하면 바로 밤낮없이 일하는 것이 아니었다. 문제 하나를 해결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같은 문제는 지멘스에서 도입한 CRH3에서도 나타났다.

 

시급하게 고속철에 투입하여 운영하려는 철도부는 이것으로 골치가 아팠다. 그래서 철도과학원등 각 연구소에 문제해결방안을 찾으라고 한다.철도부는 국내기업의 기술능력이 올라와야 외국기업의 앞에서 발언권을 지닌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한 주저우연구소의 엔지니어는 이렇게 말한다. "나중에 철도부의 고위층은 사적으로 주저우연구소가 아직도 자주연구개발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회의에서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고, 반대하지 않았다. 이런 변화과정은 국내기업에 대한 완전한 불신임에서 국내기업이 자주개발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 것이고, 다시 2008년말에는 철도부 고위층이 국내기업의 자주연구개발을 지지하게 된다."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중국인은 시스템적인 도입과 개발로 시속300킬로미터이상의 열차를 대규모로 생산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이 속도는 놀라울 정도였고, 합작파트너들을 걱정하게 만들었다.

 

2004 8월의 열차입찰에서 알스톰은 낙찰받은 업체중 하나였다. 60대의 고속열차 주문을 따낸다.2004 10 10, 철도부와 알스톰은 정식으로 6.2억유로의 계약을 정식으로 체결한다. 알스톰은 7개의 고속열차핵심기술을 양도한다. 2대의 열차는 이탈리아의 공장에서 조립하고, 6대는 부품으로 수입하여 중국측이 조립한다. 나머지 51대는 기술이전을 통하여 장춘객차가 국내에서 생산한다.

 

당시 알스톰의 기술팀인원에 따르면, 철도부는 2007 4 18일 속도제고시, CRH5가 반드시 운행되어야 한다고 하여, 시간이 긴박했다. “이것은 어길 수 없는 정치명령이다. 철도부의 사람은 심지어 그날 하루만 운행되면 그 후에 멈줘도 좋다고 했다. 그러나 일단 경합선이 운영하고 나면 어떻게 멈출 수 있느냐?”

 

당시 알스톰에서 도입한 것은 시속200킬로미터의 기술이다. 그러나, 철도부는 운행속도를 반드시 250킬로미터에 도달하도록 요구했다. “실험속도는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최적운행속도는 아니다. 이것은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고 있는 것이나 같다. 열차사용수명에 손해가 크다.” 알스톰의 프로젝트책임자는 이것은 완성할 수 없는 임무라고 생각하여 사직한다. 사직이메일에서, 그는 3개의 Crazy라는 말로 형용했다. “이것은 미친 시대이고, 미친 나라에서 발생한 미친 일이다.

 

CRH5형열차가 생산개시된 후 시운행도 없이 급히 투입하여, 경합선(베이징-하르빈)을 운행했다. 통상적이라면 열차 1대의 시운행시간은 생산주기의 1/3이다. 1개의 열차를 3년에 걸쳐 만들었다면, 1년동안 시험운행해야 한다. “첫번째 열차는 궤도상에서 시험하는 시간이 가장 길다. 시범운행에서는 세부적인 사항을 살펴야 한다. 차량의 제동거리를 보아야 하는데, 긴급제동이면 얼마나 걸리는지를 봐야 한다.” 시험운행을 거치지 않고 투입된 CRH5는 운행한지 며칠만에 고장으로 중간에 섰고, 승객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당시 차량의 한 알스톰기술자는 수치스러움을 감당하지 못했다. 브레이스시스템, 에어컨시스템 및 열차자동문의 고장으로 CRH5의 고장빈도는 CRH1 CRH2보다 높았다. 철도부는 이로 인하여 더 이상 알스톰과 협력하지 않는다.

 

액셀을 계속 밟은 결과로 CRH5형 열차를 2007년부터 방향조정장치에 문제가 나타난다. 장춘객차는 알스톰에 수리를 요구한다. 그리고 알스톰에 사용수명 30년인 차량에 왜 지금 고장이 나타나는지를 물었다. 알스톰은 그저 웃으며 수리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방향조정장치의 문제는 장춘객차의 확인을 받지 않았다.

 

이것이 중국의 고속철기술도입과정에서 나타난 가장 미친 짓은 아니다. 많은 국외기술자들이 보기에, CRH380시리즈열차를 연구제조하는 것은 더욱 미친 짓이었다. “류즈쥔은 나중에 조금은 머리가 돌아버렸다” CRH380방안토론에 참석한 한 기술자는 이렇게 회고한다. 2009 380프로젝트를 개시하기 전에, 장춘객차의 기술자는 철도부의 회의에 참석했다. 철도부 고위층은 회의 상에서 경호고속철을 4시간내에 주파하라고 결정내려버렸다. 이에 따라 시속380킬로미터라는 속도가 계산되어 나온 것이다. 이것이 바로 CRH380의 유래이다.

 

당시 일본 카와사키의 전문가는 지적한 바 있다. 모든 구간을 380킬로미터의 속도로 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이런 차량을 설계하려면 반드시 경호고속철의 노선도를 놓고, 도로상황에 맞추어 연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정치적인 목적하에, 이런 기술적인 문제는 중요하지 않았다.

 

“CRH380의 기술플랫폼은 CRH3이다. 속도를 올리려면 공률을 늘여야 하고, 액셀을 끝까지 밟아야 한다. 안전의 여지를 모조리 없애버린 것이다.” 지멘스에서 일한 한 기술자의 말이다. 이 판단에 대하여 국내의 한 차량제조공장 부총공정사도 동의한다. “이렇게 하면 많은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아무도 모른다.”

 

많은 국내외전문가들이 보기에, 중국은 고속철기술도입문제에서 범한 잘못은 자주연구개발을 할 것이냐, ‘시장을 주고 기술을 받을것이냐의 선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법칙을 존중하지 않았다는데 있다.

 

류즈쥔은 고속철을 하루빨리 발전시키려는 목적으로, 모방제작과정에서 충분한 경비와 정력을 들여서 제대로 소화흡수하지 않았다. 비록 계속하여 도입과 모방을 해왔지만, 많은 핵심기술은 제대로 획득하지 못했다.

 

중국이 이처럼 비싼 댓가를 치르고 실현한 고속철의 대규모생산능력은 무슨 쓸모가 있을까? 겉으로 보기에, 이미 완공된 방대한 국내시장이 거의 유일한 소화채널이다. 2011년 하반기까지, 중국이 투입운영하는 고속철은 6522킬로미터에 달한다. 그러나, 이 고속으로 달리는 시장은 앞으로 오랫동안 수익을 낼 수 없고, 오히려 거대한 채무의 부담을 질 것이다. 그러면, 중국은 고속철기술을 수출할 능력이 있는가? 고속철수출시장은 얼마나 큰가?

 

CRH380이 세상에 나온 이래, 중국남차와 북차집단은 수출에 큰 흥미를 보인다. 미국, 러시아, 브라질에서 고속철을 준비한다는 소식에 이들은 속속 뛰어들어 시험해본다. 그러나 특허와 “7.23”열차사고는 중국고속철기술의 문제를 드러냈고, 중국고속철의 해외수출에 가장 큰 장애가 되고 있다.

 

2010 12, 중국남차와 GE는 합작프레임웍계약을 체결했다. 두 회사는 공동으로 5000만달러를 투자하여 미국에 합자회사를 설립하고, 미국 플로리다, 캘리포니아 두 주의 고속철프로젝트에 입찰참여하기로 하였다. 그들의 경쟁상대방은 지멘스, 알스톰 및 봄바르디아등이다.

 

이 거동은 카와사키중공업을 긴장시켰다. 당시 변호사에 위임하여 특허문제를 연구하도록 했다. 지멘스중국의 한 기술자는 당초 중국철도부와 기술양도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에 명문으로 양도기술은 중국대륙에서 열차를 생산하는데만 사용하고 해외수출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철도과학원의 한 원로전문가인 장치지는 이렇게 말한다. “중국이 사온 것은 특허이다. 그러나 지적재산권은 여전히 외국측의 것이고, 일정한 조건으로 중국에서 생산하도록 허락했다.” 그는 CRH380에서 유일하게 자주적 지적재산권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차량머리부분의 설계라고 한다.

 

2010년 핑안증권의 한 업종분석보고서를 통해서 남차가 해외에 수출하는 것은 총도급자의 역할이라고 한다. 즉 일부 핵심부품은 전세계에서 구매하므로, 자신이 고액이윤을 얻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외에, 해외에 중국처럼 커다란 고속철시장이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것도 어렵다고 한다.세계은행 2010년의 보고서에 따르면, 브라질, 인디아, 러시아, 터키, 영국과 미국등에서도 고속철투자를 고려하고 있기는 하지만, 중국의 경험은 특수성이 있다. 인구와 도시간거리등 선천적인 우세이외에 정부가 자원건설에 집중할 능력이 있고, 광활한 토지에 이처럼 대규모의 프로젝트를 건설하는데 필요한 경제규모를 가지고 있는 등 다른 나라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점들이 있다. 미국같은 민주국가에서 이같은 대규모의 인프라건설을 동의받으려면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시속 160-200킬로미터의 저속열차수출은 금년 5월에 말레이시아 프로젝트의 열차가 있다. 그리고 2006년에는 이란에 지하철의 열차를 수출했다. 다른 수출국은 터키, 스리랑카, 튀니지등이다.

 

남차의 한 엔지니어에 따르면, 남차북차의 최근 2,3년간의 수출은 도시간궤도열차와 화물열차위주이다. 도시간궤도열차의 속도는 일반적으로 120-160킬로미터이다. 중국은 10년전에 지하철기술을 도입했는데, 플랫폼과 나중의 열차는 같은 것이 아니다. 현재의 지하철 교류 및 제동은 자주연구개발을 실현했다.

 

주저우전략기차공장은 현재 지멘스, 북차장춘객차와 말레이시아의 또 다른 프로젝트에서 경합하고 있다. 이번 입찰가액은 30여억위안이며,7월말에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떤 나라는 중국에서 자금을 받아 고속철을 건설하고 싶어한다. 러시아 운수부장관은 기자인터뷰에서 중국에서 고속철열차를 구매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명확히 했다. 다만, 중국회사가 돈을 출자하여 고속철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것은 희망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