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풍학영(馮學榮)
필자는 이전에 이렇게 단언한 바 있다: "중국의 국민성을 고치지 않는다면, 중국은 100년내에 여전히 좋은 정치가, 좋은 정부 내지 좋은 정치가 없을 것이다. 특히 '공정경쟁'의 정신을 민중들 사이에 건립되지 않는다면, 만일 국민들이 여전히 계속 '뒷문거래' '밀실담합', '투갱괴편(偸坑拐騙)'등등의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잠규칙에 빠져있어서, 규칙을 지키고, 공정하게 경쟁하는 사람들이 계속 손해를 보고, 계속 '바보' '멍청이'로 불린다면, 그렇게 공정경쟁의 질서가 수립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민의정치는 요원할 수밖에 없고, 분쟁이 끊이지 않고 갈 길은 험난하고 기구할 것이다.
사물은 항상 그것이 태어나고 태어나지 않는 사회의 기초를 가지고 있다. 중국인들이 공정경쟁을 하지 않는 것은 그 물질적인 기초가 있는 것이다.
'공정경쟁'이라는 단어에서, '공정'은 형용사이고 '경쟁'은 명사이다. 이런 주종관계를 보면, 우리는 알 수 있다: 먼저 경쟁이 있고, 다시 공정경쟁이 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소위 공정경쟁은 경쟁하는 가운데 건립된 것이다. 경쟁이 없다면 공정경쟁도 없다. 이는 '취피소아(脆皮燒鵝)"라는 단어와 같다. 반드시 먼저 '소아'가 있어야 비로소 천천히 '취피소아'가 생기는 것이다. 이를 보면 우리는 추단할 수 있다.세계에서 가장 먼저 '공정경쟁'정신이 나타난 국가는 반드시 민간경쟁이 아주 치열한 국가이다. 마찬가지 이치로, 세계에서 공정경쟁정신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이 뿌리내린 국가는 반드시 격렬한 경쟁의 전통이 있는 민족이다.
농경문화에서 발원한 중화문화는 경쟁의 전통이 없었다. 경쟁의 전통이 생겨날 토양이 없었던 것이다. 중국인들은 대대로 농사를 짓고, 각자 자신의 밭을 경작했다. 사람들의 생산량은 별 차이가 없었다. 게다가 땅의 경계가 분명해서 각 집은 생산에서 충돌할 일이 없었고, 경쟁할 필요가 없었다. 중국인들의 이런 생산방식은 중국전통의 농업사회를 이렇게 규정짓느다: 고인 물과 같이 정지된 사회였고, 민간에 경쟁이 없고, 경쟁이 필요도 없었다.
서방의 '유목어로'의 생산방식은 차이가 크다. 신선한 초지를 개척해야 한다. 먼저 도착해야 먼저 얻는다. 다 먹으면 떠나야 한다. 한 특정한 해역의 어획량은 상대적으로 고정되어 있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 다 잡아버리면 내가 잡을 것이 없다. 특정한 산야의 사냥터에는 사냥감의 총량이 상대적으로 일정하다. 다른 사냥꾼이 다 잡아버리면 나는 잡을 것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 수 있다. 주로 수렵어로에서 시작한 서방인들은 계속된 경쟁과정에서 생존하고 번성했다. 그러므로, 중국인이 경쟁정신이 결핍되어 있는 것과 비교하여 서양인들은 조상대대로 경쟁정신이 충만한 민족이다.
당연히 서방인들도 처음에는 그다지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다.그들은 처음에 경쟁할 때, 충돌하고 분쟁이생기면 먼저 폭력으로 해결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날수록 서양인들은 알게 되었다: 서로 계속 폭력으로 살륙하면, 복수만 반복될 것이고, 끝이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결과가 양패구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공정경쟁'을 배운다. 그들은 이러한 게임규칙을 약속으로 정한다. 이 초지는 네가 먼저 도착했으면 너의 소와 양을 먹여라. 나는 다른 초지를 찾겠다. 이것이 '공정'한 것이다. 이 해역은 너의 배가 먼저 왔으면, 네가 잡아라. 나는 다른 곳을 찾겠다. 이것이 '공정'하다. 이 산야는 네가 더 빨리 왔고, 네 무기가 더 날카롭고 네가 더 잘 잡으니 네가 새와 짐승을 잡아라. 나는 다른 곳을 찾겠다. 이것이 '공정'하다.
서양인들의 이런 격렬한 경쟁이 있는 어로수렵생활에서 확립된 공정경쟁의식은 더 나아가 서양사회에 일종의 '결투'문화를 발전시킨다. 두 사람의 갈등을 조화시킬 수 없으면, 각자 칼과 창을 들고, 공정하게 1대1로 싸우는 것이다. 서로 조력자를 부를 수도 없고,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것이다.
서양인들의 역사에서 이런 것은 중국인들의 눈에는 '바보'처럼 보인다. 그런 공정결투가 역사에 많이 존재한다. 유명한 러시아의 시인 푸시킨도 '1 대 1'의 공정한 결투에서 패하여 죽었다.
이런 공정과 신용의 의식과 가치는 후흑(厚黑)의 습성에 물든 중국인들에 있어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중국인들이 만일 '결투'를 한다면, 친척 친구들을 한꺼번에 데려와서 몰려가서 한 명을 죽여버릴 것이다. 혹은 결투후 겉으로는 승복하지만 뒤돌아서서는 배후에서 벽돌을 집어들고 뒤통수를 내려칠 것이다. 또 혹은 관청이나 권력자와 결탁하여 상대방을 무고하고, 함정에 빠뜨리고, 암살할 것이다. 중국인들은 경쟁을 만나면, 이렇게 처리한다. 이것이 중국의 전통이다. 이것은 조상대대로 전해내려온 것이다.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서방인에 비하여, 경쟁있는 사회경험과 문화축적이 결핍되어 있다. 중국인들은 근본적으로 경쟁을 모른다. 그래서 무엇이 공정경쟁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어떠한 도덕의 건립도 장기간의 게임규칙을 실시할 것을 요한다. 중국인들이 어느 방면의 도덕이 결핍되어 있는 것은 역으로 추정해낼 수 있다: 그런 게임규칙은 중국에서 실시된 적이 없다. 혹은 실시되었더라도 시간이 길지 않다.
예를 들면, 고대에, 중국여인은 남자의 부용(附庸)이나 재산이었다. 그러므로 성이 억제당하였다. 이런 오래된 게임규칙이 오래 시행되다보니 점점중화민족의 성도덕으로 고착되었고, 심지어 중국인 사회생활의 도덕적 기초가 되었다. 여인의 도리를 지키지 않으면 비웃음 당하고 질책을 받는 것이다.
필자가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서방인의 공정경쟁정신은 가장 만저 '윈윈'의 강력한 사회적 요구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게임규칙을 실시한지 오래되자, 점차 사회도덕으로 된다. 심지어 도덕의 기초가 되었다. 공정경쟁을 하지 않으면 너는사람들에게 비웃음당하고 질책을 받는 것이다.
공정경쟁의 정신은 이렇다. 한걸음 한걸음. 서방사회의 골수로 깊이 들어가, 그들의 도덕기준과 정신가치가 된 것이다.
당연히, 중국인들에게 약간의 공정경쟁의식도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중국인의 도덕의식은 친척친구의 범위내이다. 일단 그 범위를 벗어나면, 중국인들은 낯선 사람을 만난다. 도덕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는 야만인, 금수가 되는 것이다. 가장 현저한 사례는 바로 줄을 서는 문제이다. 네가 한 중국인의 친구라면 줄서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자리를 양보까지 한다. 그러나, 일단 그가 낯선 사람이면, 그에게는 도덕을 따질 필요가 없다. 새치기를 하거나 줄을 아예 서지 않고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아예 총부리에서 정권이 나오듯이, 천하를 얻는 것이다.
이런 문화는 당연히 그 나름의 물질적 기초가 있다. 중국인은 대대로 농사를 지어서, 자급자족했다. 한 집안 사람들이 서로 의존한다. 그래야 의식주행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다. 외부인과 얘기할 필요는 없다. 외부인과 경쟁할 필요도 없다. 더더구나 외부인과 협력할 필요도 없다.
이것이 바로 '중국인의 공정도덕의식은 친척친구에 한한다'는 것의 뿌리깊은 근원이다. 중국인은 공민사회가 오랫동안 건립되지 않았는데, 이것이 그중 하나의 원인이다.
중국에서 공정경쟁의 정신을 제창하는 것은 의미가 아주 크다. 공정경쟁을 제창하는 것은 먼저 공무원의 채용에서 불공정을 없애는 것이다. 그러면 공무원의 자질이 제고될 것이다. 공정경쟁을 제창하는 것은 시장에서 각종 업종의 '리베이트'현상을 막는 것이다. 그러면 공정한 시장환경이 조성될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사업을 하는데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공상업이 발달할 수 있을 것이다. 공정경쟁을 제창하면, 선거정치가 투명하고 공정하고, 문명적으로 운영될 것이고, 공민들이 더욱 깊이있게 정치생활에 참여할 수 있으며 더 이상 청말민초와 같은 난상이 초래되지 않을 것이다.
이상의 실제적인 가치외에 공정경쟁을 제창하는 것은 또 하나의 중요한 정신적 가치가 있다. 공정경쟁이 기풍으로 자리잡은 중국은 비로소 문명의 중국이다. 공정경쟁을 신봉하고 몸소 실천하는 민족이 비로소 고상한 민족이다.
이 글에서 쉽게 알아낼 수있을 것이다: 농경문화는 야만의 근원이다. 공정경쟁의식을 수립하려면, 먼저 경쟁이 있어야 하고, 경쟁의 생산방식을 건립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농업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낮추어야 한다. 이것은 당연히 농업의 집약화를 의미하고 토지의 속박에서 벗어난 농민들이 공상업의 경쟁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쟁과정에서 계속 충돌하고 분쟁을 거치면서 결론을 내는 것이다. 그래야 공정경쟁에 대한 사회적인 수요가 커지는 것이다. 이런 수요가 대의제에 의하여 입법으로 강화되어야 결국 게임규칙이 확립되는 것이다.
이것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여전히 '법불책중(法不責衆)'(법을 어기는 사람이 많으면 법으로 처벌하기 힘들다)의 곤경에 처해 있다.
농경은 양날의 칼이다. 그것은 중국인들이 '아침에 저녁을 걱정하는' 생활을 벗어나게 해주었지만, 부패를 길렀고, 낙후된 눙경문화를 배양했다. 중국인들의 여러가지 비열한 근성은 모두 이 황금빛 찬란한 논밭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중국과 사회 > 중국의 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치한 "Sell China" 음모론 (0) | 2013.05.18 |
---|---|
중국인은 왜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가? (0) | 2012.09.20 |
알리페이(Alipay, 支付寶): 알리바바와 야후 (0) | 2011.05.26 |
중국인은 왜 극단과 편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0) | 2010.03.18 |
누가 중국이 부유해지는 것을 방해하는가? (0) | 2010.0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