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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왕라오지 vs 자둬바오

왕라오지(王老吉)은원록

by 중은우시 2012. 6. 2.

글: 남방인물주간

 

5월 11일 저녁, 광저우약업집단은 공고를 통해서, 중국국제경제무역중재위원회의 재결에 따라, JDB 소속의 홍다오(鴻道)집단은 '왕라오지' 상표의 사용을 중지하였다고 발표했다. 이제 380여일간 계속되던 상표쟁탈전은 마침표를 찍었다. 2011년 4월, 광약집단은 '왕라오지상표'의 중재신청을 제출했다.

 

광약이 승소한 것은 논리적으로 보면 지극히 정상적이다. 1995년, 홍콩홍다오집단은 광약으로부터 붉은 색 캔입 왕라오지양차의 중국대륙에서의 독점경영권을 취득했다. 그리고, 1997년 JDB집단을 설립하여 운영을 책임지도록 했다. 2000년, 쌍방은 주상표계약을 체결하고, JDB집단의 '왕라오지' 상표에 대한 사용권을 2010년까지 연장했다. 이 계약에 따라, JDB집단은 2011년초부터 더 이상 '왕라오지'라는 문자가 붙은 양차를 생산, 판매하지 못했다.

 

홍다오집단이 상표사용권을 돌려주는 것을 거절한 원인중 하나는 천홍다오(陳鴻道)가 각각 2002년과 2003년에 광약집단의 전 총경리인 리이민(李益民)과 두 건의 보충계약을 체결하였고, 기한을 각각 2013년과 2020년으로 연장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이 두 부의 보충협의를 체결한 배경은 리이민이 천홍다오로부터 300만홍콩달러의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 밝혀졌고, 홍다오집단은 결국 패소했다.

 

JDB(加多寶, 자뚸바오)가 억울하게 생각하는 것은 한 브랜드를 자신의 손에서 시장잠재력이 거대한 산업으로 키웠는데, 지금은 양손으로 남에게 바쳐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데이타에 따르면, 왕라오지양차는 2002년전에 판매액이 2억위안에 미치지 못했다. 이를 보면 1995년, 연임차료300만위안의 가격으로 상표권을 빌린 것은 그 당시 아주 괜찮은 장사였음을 알 수 있다. 2008년이 되어, 붉은 캔 왕라오지의 판매액은 100억위안을 돌파했고, 그후 나온 브랜드가치는 더더욱 1000억위안에 이르러, 코카콜라를 넘어서서 중국시장의 최고 음료브랜드가 되었다.

 

왕라오지의 성공에서 최대의 공신은 당연히 JDB이다. 2003년이전에 왕라오지는 그저 지방브랜드에 불과했다. 광동, 절강남부지역에 고정적인 소비자층이 형성되어 있었고, 판매액은 연속몇년간 1억위안가량을 유지했다. 그러나, 왕라오지는 시종 북방시장을 뚫고 전국으로 향하지는 못했다.

 

원인은 아주 간단하다. 중국남북의 기후와 음식습관에 차이가 크고, 양차가 열기를 내리고 더위를 식히는 약용가치와 중약맛은 북방에서는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2년말, 원래 JDB의 광고를 찍던 마케팅회사가 왕라오지양차에 대한 새로운 포지셔닝을 제안했다. 붉은 캔 왕라오지의 전장터는 정식으로 대중음료업계로 번졌고, 그 특색은 "열오르는 것을 예방하는 음료"로 삼았다.

 

사천요리가 전국에 유행하고 건강음식을 숭상하는 배경하에서, 사람들에게 역사가 유구한 왕라오지양차는 시장에서 가장 좋은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세분화된 포지셔닝은 왕리오지로 하여금 다른 음료대기업들과의 직접경쟁을 피하도록 해주었다.

 

그후, JDB는 일련의 광고를 통해서 소비자들의 욕구를 환기시켰다. 이들 광고는 일상생활에서 가장 자주보는, '쉽게 열이 오르는' 장면을 뽑았다. 예를 들어, 훠궈를 먹거나, 밤새워 축구경기를 보거나, 불고기를 먹는 등이다. 이것들이 전해주는 소식은 왕라오지가 있으므로 생활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이런 일을 할 때는 즉시 붉은 캔 왕라오지를 연상할 수 있다.

 

브랜드 프로모션의 영향력과 소비력을 위하여 JDB는 채널확장을 가속화했다. 브랜드포지셔닝에 따라 JDB는 식당채널을 중점으로 삼아서, 대량의 사천요리, 호남요리, 훠궈점등을 전략합작파트너로 삼았다.

 

식당채널의 우세는 명확했다. 한편으로 성장성이 빠르고, 시장의 용량이 크다.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업체가 투입하는 비용이 비교적 적다. 그리고 쉽게 처음마시는 시험성 소비를 하게 할 수 있다. 이제는 붉은 캔 왕라오지의 식당채널에서의 독점적인 지위는 아주 명확하다. 광약집단이 나중에 내놓은 녹색테트라팩 왕라오지가 거의 파고들 틈이 없었다. 그후 몇년간, JDB는 대형매장등 대리점, 구멍가게등 통상채널에서 점차 전국적인 망을 갖추기 시작한다.

 

새로운 브랜드포지셔닝과 채널확보로 왕라오지양차는 사업상의 성공을 거둔다. 2003년, 판매액은 전년동기대비 4배나 늘었다. 1억여위안에서 6억위안까지 는 것이다. 광동, 절강남부를 벗어났다. 2004년, 판매액은 10억위안을 돌파한다. "열오르는 것이 겁나면, 왕라오지를 마시자." 이 구호는 마케팅업계의 고전적 사례가 된다. 이와 동시에, 광약이 출품한 녹색테트라팩 왕라오지는 비참했다. 2004년 녹색 테트라팩의 판매액은 겨우 8000만위안이었다.

 

진정한 비약은 2008년에 발생한다. 원촨대지진후, JDB는 1억위안을 출연한다. 순식간에 여론의 관심을 받고 담론의 촛점이 된다. <왕라오지를 중국의 판매대에서 없어지게 하자. 모두 죽여버리자>라는 제목의 글이 널리 전파된다. 이 글의 진신할 목적은 소비자들에게 수퍼마켓의 붉은 캔 왕라오지를 다 사서 없애자는 것이다. 인터넷에는 심지어 "금년 여름에 물을 마시지 말고, 마시려면 왕라오지를 마시자"는 유행어까지 번진다. 그해 붉은 캔 왕라오지는 100억위안의 판매액을 돌파한다. 2009년에 나온 하고초(夏枯草)사건도 왕라오지의 판매에 심각한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붉은 캔 왕라오지의 판매숫자가 급증하면서, JDB와 광약간의 균형관계도 점차 무너지게 된다.

 

2004년에 일찌기 광약의 산하에 있는 왕라오지약업은 JDB와 협상을 한다. 그들도 "열오르는 것이 겁나면, 왕라오지를 마시자"는 광고어를 사용하여 프로모션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쌍방은 직접경쟁을 피하기 위하여, 포장, 가격, 채널과 소비자군을 나눈다. 붉은 캔은 3.5위안/병으로 팔면서 주로 고급인원과 음식점채널을 공략했다. 녹색테트라팩은 주로 수퍼마켓등 채널을 뚫었고, 가격은 2위안/개로, 가정을 목표로 했다. 이런 조치하에서, 녹색 테트라팩도 판매액이 매년 배로 늘어나서 2006년에는 6억위안을 돌파한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녹색테트라팩과 붉은캔의 차이는 갈수록 커졌다. 광약이 왕라오지 상표를 회수하려는 갈망은 갈수록 절박했다. 2011년 11월 10일, 광약집단은 북경에 '왕라오지건강산업계획"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리고 "광약왕라오지, 중국제일브랜드"를 구호로, 홍색캔 왕라오지의 제품과 판매데이타를 전시했다.

 

이 조치는 즉시 광약과 JDB간에 잠재되어 있던 갈등을 폭발시켰다. 이틀후, JDB는 공식웹사이트에서 공개성명을 발표하여, 광약집단과의 관계를 명확히 했다. 서로 원수지간이 되었을 때가 마침 JDB의 왕라오지상표 임대기간만료가 다가왔다. 광약집단은 더더욱 상표를 회수할 이유가 생겼다.

 

왕라오지 상표를 잃은 JDB는 그저 물러날 수밖에 없는가?

 

외부의 추측에 따르면, 천홍다오는 여러해전부터 상표소속권이 결국 골치거리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사전에 관련 준비를 했다. 2005년초, 광약이 JDB와 협상을 하여 녹색테트라팩을 판매하기 시작할 때, 홍콩동흥약업이라고 부르는 회사가 왕라오지약업의 투자자가 되었다.  광약집단과 함께 각각 48%의 지분을 점유하여 나란히 제1대주주가 된다.

 

2010년, 왕라오지약업의 내부자료에 따르면, 이 회사의 제1회 임시주주총회에서 일련의 중대조정을 결정한다. 리주저(李祖澤), 황이홍(黃宜弘), 저우줸줸(周娟娟)이 회사동사직무를 사임하고, 왕젠이(王健儀), 징위준(景雨準)과 리다민(李達民)이 새로 선임되었다.

 

왕젠이는 왕라오지의 해외 제5대전인이고, 천홍다오와 관계가 깊다. JDB의 양차비방은 왕젠이가 수여한 것이다. 징위준은 일찌기 JDB집단의 법률고문, 대변인을 맡은 바 있고, 리다민은 헝지지산의 동사이고 홍콩거부인 리자오지(李兆基)의 동생이다.

 

왕젠이는 대외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광약은 상표소유권을 왕라오지약업으로 이전하기로 한 약속을 어겼다. 광약집단은 현재 왕라오지약업에 라이센스하여 양차를 생산한다. 마찬가지로 상표보유기간내에 라이센스를 회수할 수 있다.

 

이전 백년이상 왕라오지는 일맥으로 전승되었다. 19세기말에 분가하였고, 왕씨형제는 홍콩과 광저우에 나뉘어 정착한다. 1949년후, 왕저우 일맥의 산업은 국유화되고, 홍콩 일맥의 전인인 왕젠이는 상표의 글로벌시장통일을 위해 노력했다.

 

2011년초, 광약집단은 왕라오지약업이 백운산양차를 판매대리하도록 하겠다고 선포한다. 백운산양차브랜드를 왕라오지판매채널에 통합시키려는 것이다. 이는 다시 한번 왕젠이를 분노하게 했다. 왕젠이는 3월에 처음으로 JDB를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표시한다. 그리고, JDB의 왕라오지상표에 대한 공헌을 인정했다. 현재 왕젠이가 JDB의 명예동사장을 맡을 것이라는 소문이 있다.

 

시장에서 보면, JDB는 지진기부를 통하여 감정에 호소했고 브랜드이미지가 아주 좋아졌다. 그외에 채널, 마케팅수단, 시장반응매커니즘등 방면에서 국유기업인 광약집단이 따라올 수 없는 우세가 있었다. 실력과 경험으로 브랜드를 성공시켰다. 이것은 모두 천홍타오의 패이다.

 

이와 상대적으로 대건강산업이라는 플랫폼을 빌어서, 광약집단은 리카싱 산하의 허치슨 왐포아와 협력을 강화하려고 한다. 이것은 아마도 광약이 이번 투쟁에서 더욱 실력있는 맹우를 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표전탱은 비록 끝났지만, "홍록지쟁"은 더욱 격화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