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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한국/한중관계

방정비(幇艇費): 중국-북한 중간해역의 관례

by 중은우시 2012. 5. 28.

글: 남방주말

 

2012년 5월 21일 새벽, 북한군에 13일간 억류되었던 3척의 중국어선 요단어23979, 23528 및 23536호가 대련의 다리덴군항으로 돌아왔다. 28명의 선원은 기아, 피로, 상흔 및 악취와 함께 중국으로 돌아왔고, 바로 다롄 싱수툰중심의원에서 입국심사와 신체검사를 받았다.

 

억류사건은 일단 끝났다. 그러나 중국북한해역에는 역사가 남겨놓은 "회색지대"이다. 1990년대 이래로 중국어선에 대한 억류, 공격사건이 잇달아 발생했다. 이 특이한 "회색지대"는 중국어민들이 리스크를 안고 조업을 하는 어장이 되었을 뿐아니라, 양국권력이 돈을 버는 '전장'이 되기도 했다.

 

"동지 겸 형제"국가인 북한사병이 조업중안 요단어23979호 어선에 승선한 것은 2012년 5월 8일 새벽 4시경이다. 황색구명복을 입은 북한군인은 총을 들고 선장을 제외한 9명의 선원을 뱃머리에 탁구대크기의 화물실에 가두었다. 선장은 북한의 포선으로 끌고 갔다. 시간이 정오에 가까워지자, 북한인은 어선을 몰고 암석으로 이루어진 섬에 정박시켰다. 암석위에는 20여명의 북한군복을 입고 총을 든 사병들이 지키고 있었다. 선장인 주촹(朱闖)은 곧이어 어선으로 다시 끌려가서 화물실에 갇힌다.

 

주촹은 중국북한해역에서 조업한지 여러해이다. 비록 자신은 북한에 억류된 적이 없지만, 일찌감치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있다. 화물실에 갇힌 후, 그는 선원들에게 북한군인들이 선주와 협상하여 일이 금방 해결될 것이니 안심하라고 다독거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13일이나 억류가 계속되었다.

 

같은 날 오후 13시, 또 다른 두척의 어선인 요단어23528, 요단어23536호도 북한군인에게 억류된다. 선상이 18명 선원도 같은 처지에 놓인다. 억류된 대부분의 시간동안 28명의 선원은 그저 화물실내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화물실의 창문으로 보이는 광선의 변화로 시간의 흐름을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군인들은 선원들이 화물실 밖에서 2끼의 식사를 하도록 허락했고, 한번에 개략 15분씩이었다. 선원들은 이 시간을 이용하여 대변을 보았다. 소변은 그저 화물실내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서서 병에다 소변을 볼 수밖에 없었다" 한 선원의 말이다.

 

2012년 5월 21일, 평안하게 귀국한 선원들은 중국매체의 기자들에게 북한에서의 대우를 설명했다: 여러번 얻어맞고, 욕을 먹고, 협박을 받았다. 싱수툰중심의원에서 여러 명의 선원들이 몸에 부상을 입은 것이 발견된다. 어떤 선원은 의복이 쨎겨졌고, 어떤 사람은 발꿈치를 다쳤다. 선장인 왕리제(王利杰)는 숨을 때 머리 오른쪽을 북한군인에게 가격당해서 오른쪽 눈꺼풀에 암홍색의 상처가 남아 있다.

 

북한측이 중국어선을 억류한 이유는 중국어선이 국경선을 넘어서 조업했다는 것이다. 3척의 중국어선이 억류될 때의 구체적인 위치는 현재 이미 알 수 없게 되었다. 선장 왕리제와 주촹에 따르면, 3척의 배가 조업한 지점은 동경123도55분에서 123도57분 사이였다. 그러나, "북한군인들이 배에 올라와서 조타실로 들어가 GPS를 뽑아버리고 엔진을 꺼버렸다. 그리고 배위의 항해기록을 모조리 삭제했다."

 

증거를 파괴한 후, 북한군인들은 선원들에게 월경조업했음을 인정하는 승인서에 서명하도록 요구한다. 주촹에 따르면, 사건발생후 오일째, 북한측이 세번째로 그에게 서명하도록 핍박했을 때, 외부에서 어떻게 상황이 진척되는지 알 수 없어서 할 수없이 북한측의 요구에 따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후 북한측은 벌금을 요구한다. 선장은 북한군인들의 위성전화를 이용하여 다롄의 선주와 연락을 한다. 북한은 배가 월경조업했음을 이유로 하여, 선주에게 벌금지급을 요구한다. 벌금의 금액은 척당 40만위안 인민페였다. 나중에는 30만위안으로 감액되어 합계 90만위안이다.

 

"중국과 북한의 해상국경선은 이미 회색지대이다." 북경대학 한반도연구학자인 주펑(朱鋒)의 말이다.

 

1959년 8월 25일, <중화인민공화국정부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 황해어업협정>이 베이징에서 체결되고, 1960년 7월에 발효된다. 유효기간은 5년이고, 기간만료후 다시 5년이 연장되었다. 1972년, 중국북한 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정부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 어업협력합작협정>을 체결한다. 그러나, 산동성 지방지판공실의 웹사이트에 중국북한어업협정을 소개한 내용에 따르면, 1977년 4월 5일 중국북한 양국정부의 어업협력합작협정은 1985년말에 기한이 만료되고, 그 후에는 양국어업이 무협정상태로 되었다고 한다.

 

북한은 1977년 6월 21일에 정부명령을 반포하여, 200해리 전용경제수역을 발표한다. 전용경제수역은 영해의 기선에서 200해리이다. 200해리를 그을 수 없는 수역에서는 해양중간선이다. 이 범위는 중국측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

 

중국북한관계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현재 공개된 정식문건에서 중국과 북한의 해상국경선 혹은 임시국경선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이전에 공개된 국경협상기록에도 일부 국경좌표점이 공개되어 있지 않다.

 

어디가 북한의 전용경제수역이고, 어디가 중국북한어민이 공동으로 조업할 수 있는 해역인지를 민간이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다롄 싱수툰, 창하이현의 어민들에 따르면, 소위 동경124도선이 입으로 전해지는 민간판 컨센서스를 이룬 '국경선'이라고 한다. 이 국경선에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하나는 123도 59분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124도선이라는 것이다.

 

중국사회과학원 한반도문제연구센터의 전문가인 퍄오젠이(朴鍵一)은 이렇게 말한다: 이 선은 성문의 규정이 아니다. 어민들이 조업활동중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확정된 것이다.

 

국경선이 불명확하기는 하지만, "월경조업금지"규정은 있다. 2009년에 반포된 <요녕성인민정부의 불법조선해역월경조업을 엄금하는데 관한 통고>에 따르면, "다른 사람을 조직하여 불법으로 조선,한국해역으로 월경하여 조업하는 경우, 공앙부 변방부서는 <요녕성변경연해지구변방관리조례> 제34조의 규정에 따라 10만위안의 벌금에 처한다; 다른 사람을 도와서 불법으로 조선,한국해역에 월경하여 조업하는 경우, 공안 변방부서는 <요녕성변경연해지구변방관리조례> 제34조의 규정에 따라, 1만위안의 벌금에 처한다. 이상의 경우 위법소득을 몰수하고 불법활동에 사용한 설비와 도구를 몰수할 수 있다."

 

조선한국해역에 불법월경하여 조업하면 5만위안의 벌금에 처하고 위법소득을 몰수당하며, 공안변방부서가 발급한 선박, 선원증을 말소당한다.

 

한편으로 중국북한해역의 국경선이 불명확하고, 다른 한편으로 어민들은 먹고살아야 한다는 점이 있다. 북한해역에서 조업하는 다롄 싱수툰, 창하이현 및 단동어민들로부터 취재한 바에 따르면, 중국-북한회색해역에는 이미 중국변방무역 '중개인'과 북한군인들이 공동관리하는 관례가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최근 들어 발해,황해의 중국경내에는 해양자원이 격감하고 있고, 대량의 어민들은 북한,남한해역으로 가서 조업하고 있다. 한국에서 중한외교분쟁을 일으키는 것과 동시에, 북한해역은 묵인된 회색시장이 되었다.

 

황해연구학자에 따르면, 어정부서의 규정에 따라, 어선은 반드시 GPS시스템을 장착해야 하며, 어정부서의 관리감독을 받아야 한다. 일단 어정부서가 관리감독기기에서 어선이 허가없이 월경한 것을 발견하면, 선장에게 통지하여 돌아오도록 조치한다. 그러나, 어떤 어민은 물고기떼를 발견하여 어로작업을 하고 있을 때면 배 위의 GPS시스템을 꺼버린다. 창하이현의 한 어민은 이렇게 말한다. 어선이 조업할 때, 대다수의 어민은 시스템을 꺼버린다. 그 결과 해양감독어정부서는 그 배가 월경하였는지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번에 억류된 3척의 어선에 장착된 것은 최근 들어 유행하는 북두(北斗)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선박의 항적을 기록하고 단신통신이 가능하다.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시스템상으로 어선의 조업시 중국의 해상감독부서, 어정부서는 선박의 구체적인 정보와 소재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위험을 만나면 어선은 이 시스템을 통하여 유관부서에 구조신호를 보낼 수 있다. 그러나, 북한군이 이번에 3척의 중국어선을 억류할 때, 이 3척의 배는 경보신호나 구조신호를 보낸 바가 없다.

 

북한해역으로 가서 조업을 하는 중국어선은 북한군측이 중국내에 둔 '중간인'에게 일정한 금액의 방정비(幇艇費)를 지급해야 한다. 배의 대소와 조업품목에 따라 방정비는 수백위안에서 삼,사만위안/회로 각각 상이하다. 비용을 지급한 선박은 방정표를 받을 수 있고, 이것을 허가증명서로 사용한다.

 

일설에 따르면, 1990년대부터, 북한은 방정비를 지급하지 않은 어선을 체포하고 벌금을 부과했다. 벌금은 어선의 마력으로 결정하는데, 1990년대의 벌금은 개략 2만-4만위안이었고, 지금은 벌금이 최고 20만위안에 달한다.

 

또 다른 일설에 따르면, 현재 방정비의 시세는 2만위안을 납부하면 북한해역에서 2주간 조업할 수 있다고 한다.

 

어로조업으로 얻는 수익이 비교적 클 때는 어인들이 중간인 및 북한군에 돈을 지급하고 서로 평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일단 수익이 줄어들어 손실이 커지면 어민들은 생존압력을 받게 된다. 싱수툰 어민들의 말에 따르면, 어업자원이 날로 고갈되어 어로금지지역이 아니면 어로자원이 적은 곳이다. 지금 겨우 생존할만한 해역도 별로 없다.

 

지금 보면, 방정비로 인하여 이번 억류사건이 발생하였다. 단동의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1년간 북한해역은 중국선박의 조업으로 어획량이 감소하고, 수익이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하에서 방정비를 인하하지 않으니, 선주의 이익이 지나치게 줄어들었다. 그리하여 동항의 많은 선주들은 단결하여 방정비의 인하를 요구하게 된다. 그리하여 중간인 및 그 배후의 북한군인들과 선주들의 갈등이 날로 첨예해졌다.

 

그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사건의 원인은 중국북한의 중간인이 북한군인을 통하여 선주들에게 압박을 가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강제로 선박을 억류한 후, 돈을 받고 풀어줌으로써 선주를 겁주겠다는 것이다. "그들도 일하기 쉽지는 않다."

 

2012년 5월 11일, 선원들이 억류된지 4일째 되는 날, 3척의 선박의 선주들인 장차이휘(張財輝), 장더창(張德昌)은 인터넷을 통하여 사건경위를 공개하고, 사회여론의 지지를 호소한다.

 

이번 사건에서 선주가 가장 먼저 인터넷에 공표한 정보는 여러날 동안 조사한 결과 이번 사건은 내외에서 결탁한 사건이다. 즉, 단동의 흑사회(조폭)성격의 조직과 북한측이 상호결탁한 해적행위이다. 동시에, 선주는 선원과의 연락을 통하여 북한측에 중국인이 들어있었다고 말한다.

 

선주가 공표한 정보에 따르면, 북한군측은 중국의 핸드폰번호인 13941591127번을 알려주고, 선주에게 돈을 단동의 한 중국인에게 보내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다롄에서 단동연해의 어민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번 사건은 한번의 관례이다. 어민들 사이에서는 북한해역으로 조업을 갔다가 억류되고, 바지까지 빼앗겼다는 소문이 있다고 한다.

 

다롄 싱수툰의 나이든 어민인 왕모는 이전에 체포되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에 따르면, 1998년과 2000년 그근 동경124도의 동쪽에서 두번 체포되었다. 1998년에 월경조업시, 북한의 3,4척의 군함이 포위하여 어선의 선체에 작은 닻을 던져서 건 후에 배에 올라서총을 쏘았고, 모든 선원을 화물실로 몰아넣었다. 배위의 물자는 몰수하였다. 몸에 지닌 것을 제외하고, 물주전자, 신발, 칫솔, 라디오, 의복, 내복도 몸에 걸친 것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가져갔다. 중국으로 돌아갈 정도의 기름만 남겨두었다.

 

당시, 왕모는 조선의 존의(尊義)항구까지 끌려갔다. 왕모의 기억에 따르면, 1998년에는 중국대사관이 나서서 해결해주었다. 2000년에는 왕모가 자기 돈을 써서 해결했다. 처벌받은 금액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올라갔다. "첫번째는 20만위안을 배상했는데, 두번재는 30여만위아니었다. 귀국하여 중국변방부서로부터도 처벌을 받았다." 왕모의 말이다.

 

단동동항의 한 어민은 이번 사건이 중국북한의 어업분쟁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몇년전에 중국어민이 북한군인의 습격을 받았을 때, 상대방의 총을 빼앗아 북한군인을 죽였다고 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북한은 중국어민의 폭력사건을 이미 '관례'로 인식한다는 것이고, 공개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번에 억류된 선원들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2012년 5월 8일, 요단어23979호어선이 북한군인에 억류될 때, 1척의 산동적 어선도 억류된 바 있다고 한다.

 

5월 22일, 단동동항의 항구에는 단동시 인민정부가 2010년 5월에 부착한 <많은 어민 친구들에게 보내는 서신>이 있다. "많은 어민들은 우리나라의 외교와 변경지역의 안정이라는 대국적 견지에서 출발하여, 스스로 중국-북한, 중국-한국의 관련협정을 준수하고, 최근 몇년간 여러번 월경조업으로 인하여 조성된 섭외사건에서 교훈을 얻어, 월경조업은 협의규정을 위반한다는 점과 우리나라에 큰 부담을 준다는 점을 인식하자."

 

이 서신은 이미 2년전에 부착한 것으로 이미 바닷바람에 불려서 거의 날아갔지만, "월경조업은 자신의 생명재산을 도박으로 걸고 하는 불법행위이다. 스스로 관련법률법규를 준수하고, 절대로 월경조업을 하지 말며, 국가권익과 어민자신의 생명과 재산안전을 보호하자"라고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