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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공통)

중국의 태상황(太上皇) - 당

by 중은우시 2012. 3. 14.

글: 소가노대(蘇家老大)

 

당나라는 중국인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왕조이며, 중국역사상 태상황을 가장 많이 배출한 왕조이기도 하다.

 

양견이 북주의 고아과부로부터 북주정권을 탈취한 후, 개황원년(581년) 정식으로 수왕조를 건립한 때로부터 당공 이연이 양유(楊侑)를 괴뢰황제로 옹립한 때까지 수왕조는 겨우 37년간 존재했다.

 

수왕조의 말년 천하는 대란에 빠진다. 곳곳에서 전투가 일어나고, 군웅이 각축을 벌인다. 태원유수 당공 이연은 기회를 틈타 거병한다. 그가 내건 구호는 "지재존수(志在尊隋)"이다. 이는 어느 정도 현대의 "홍기를 들어 홍기에 대항한다"는 것과 유사하다. 수나라 대업13년(617년) 십일월, 이연은 장안을 함락시키고, 곧이어 13살된 수양제의 손자인 대왕 양유를 황제로 옹립하고, 의녕원년으로 연호를 고친다. 멀리 강도(지금의 양주)에 있던 수양제는 태상황으로 올린다. 이연은 '겸손'하게 스스로를 '당왕'으로 칭한다. 이때 수양제 양광은 수천리 떨어진 강남에 있었고, 취생몽사하면서 다른 사람이 와서 목을 잘라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에게 '태상황'이라는 봉호를 추가해준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다음해 삼월, 수양제는 부하에게 피살당한다. 소식이 전해지자, 이연은 가식적으로 통곡을 한 다음 말한다. "나는 북면(北面)하며 사람을 섬겼는ㄴ데, 도를 잃어 구하지 못했으니,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오월이 되자, 수공제(隋恭帝) 양유를 핍박하여 양위하게 하고, 자신이 스스로 황제에 오른다. 그리고 국호를 당이라 하고, 연호를 새로 만들어 무덕원년으로 한다(618년).

 

이연이 수나라를 멸망시키고 당나라를 건립할 수 있었던 것은 차남인 진왕 이세민의 공로가 컸다. 그리고 그의 공은 오히려 이연보다 클 정도였다. 그래서 부자간에는 서로간에 의심을 하게 된다. 이세민과 형인 태자 이건성, 동생인 제왕 이원길과의 권력투쟁은 날로 가열화된다. 후계자다툼은 너죽고 나살기식이다. 형제간의 간격이 멀어지면서 마치 물과 불같은 관계가 된다. 마침내 무덕9년(626년) 육월, 이세민은 진왕부의 장병을 이끌고 현무눈에서 매복하여, 이건성, 이원길을 죽여버린다. 이것이 역사상 "현무문의 변"이라고 부르는 사건이다. 진왕부의 장병들이 계속 핍박하자, 이연은 진왕 이세민을 태자로 삼는다. 이세민이 이미 대권을 장악했으므로, 2개월만에, 이연은 태자 이세민에게 황제위를 양위하고, 스스로 태상황이 된다. 역사는 이렇게 돌고도는 것이다. 이때는 이연이 수양제를 '태상황'으로 삼은지 겨우 9년이 지났을 때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신이 '태상황'이 되었다. 다음해 정월, 이세민은 연호를 고쳐 정관원년(627년)으로 한다. 이세민이 당태종이다. 바로 부친과 형의 손에서 황제위를 빼앗은 바로 그 당태종이다. 그러나 그는 전무고인, 후무래자(前古無人, 後無來者)의 대당성세를 이룬다. 역사에서는 그의 통치기간을 "정관지치"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연은 태상황으로 잘 지냈다. 정관9년(635년) 오월, 71세를 일기로 태상황은 수공전전에서 붕어한다. 그의 묘호는 고조이다. 역사상 당고조로 불린다.

 

당나라의 두번째 태상황은 이연의 중손인 당예종 이단이다. 이단이 황제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들인 이융기와 그의 여동생인 태평공주 덕이었다.

 

경룡4년(710년) 육월, 위황후와 그의 딸인 안락공주는 공모하여 당중종 이현을 독살한다. 그리고 상제(殤帝)를 즉위시키고 위후가 임조칭재(臨朝稱制)한다. 상왕 이단의 셋째아들인 이융기는 태평공주의 아들 설숭간과 황원총감 종소경등과 긴밀히 결탁하여, 먼저 황원에 잠입한 후, 다시 현무문을 공격한다. 이융기는 여러 병사를 이끌고 황원으로 들어간 후 위후, 안락공주 및 상관완아를 죽인다. 그리고 상왕 이단을 황제로 옹립한다. 그가 당예종이다. 셋째아들 이융기는 공로로 당예종에 의하여 태자에 봉해진다. 태평공주는 모친 무측천의 권력을 장악하고 싶어하는 유전인자를 물려받아, 이융기와 경쟁을 하고, 권력다툼은 날로 격화된다. 조정신하도 두 파로 나뉘어 명쟁암투를 벌인다. 친척, 중신들간의 분쟁을 보자 당예종은 고민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 도사의 '무위' 건의를 받아들여 2년간 황제를 지낸 후 물러난다. 선천원년(712년) 팔월, 황위를 태자 이융기에게 넘겨준다. 그리고 자신은 태상황이 된다. 이융기가 즉위한 후, 연호를 개원(開元)으로 바꾼다. 이융기는 역사상 당현종으로 불린다. 황제가 된 이융기는 개원원년 칠월, 태평공주를 모반죄로 집안에서 자진하게 한다. 개원4년(716년) 육월 태상황 이단이 백복전에서 붕어하니 향년 55세이다.

 

당현종은 개원원년(713년)부터 천보14년(755년) 안록산의 난에 이르기까지, 이융기는 43년간 '태평천자'로 지낸다. 전기에 그는 정치에 정성을 쏟아 대당왕조를 번영의 "개원성세"로 이끈다. 그러나 후기에 그는 여색에 탐닉하고, 시인들에 의하여, "춘소고단일고기, 종차군왕불조조(春宵苦短日高起, 從此君王不早朝)" 봄밤이 짧음을 한탄하고 해가 높이 떠서야 잠에서 깼다. 이때부터 군왕은 아침조회에 참석하지 않는다. 그리고 간신을 임용하여, 정치가 부패한다. 그리하여 천보14년의 안사의 난을 불러온다. 안록산, 사사명의 반군이 경사의 방어막인 동관을 함락시키자, 이 위기의 순간에 당현종은 황급히 도망친다. 서쪽으로 청두로 가고자 한다. 곧이어 반군이 도성 장안을 점령한다. 서쪽으로 도망치는 무리는 흥평 마외역에 도착하여 금군이 소란을 일으킨다. 양국충을 죽여버린다. 당현종은 더 이상 양귀비를 보호할 수 없게 되고, 양귀비는 오빠와 함게 마외역에서 죽는다. 역사사 "마외역의 변"이라 불리는 사건이다. 사변후 당현종은 계속 서쪽으로 간다. 연도의 백성들이 길을 막고 만류하여, 당현종은 부득이 태자 이형으로 하여금 남아서 백성을 위무하도록 시킨다. 그해 칠월, 이형은 영무에 도착한다. 인심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이형은 대신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황제위에 오른다. 그가 당숙종이다. 당숙종은 한편 천하에 포고를 내리고, 한편으로는 사신을 보내어 당현종에게 글을 올려 당현종을 상황천제(上皇天帝, 즉 태상황)으로 모신다. 그리고 천하에 사면령을 내라고 연호를 지덕(至德)으로 바꾼다. 청두로 도망가있던 당현종 이융기는 자신이 망쳐버린 강산과 비바람에 흔들리는 정국을 보고, 그리고 황위교체가 기정사실로 되어버린 현실을 보고는 그저 순수추주(順水推舟)로 태상황의 존호를 받아들이고, 전국옥새를 내어놓는다. 그러나 그는 편안하게 살지 못했다. 왜냐하면 아들이 시시때때로 그가 되돌아와서 황제위를 되찾을까봐 경계했기 때문이다. 상원원년(760년), 태상황 이융기는 감로전으로 옮겨서 거주한다. 어려서부터 그를 따랐던 심복태감 고역사(高力士)는 무주(지금의 호남서부, 검양지구)로 귀양간다. 나머지 심복들 예를 들어 대장군 진현례, 내지 왕승은등은 모조리 해직되거나 유배를 갔다. 궁녀들도 모조리 교체된다. 바로 이해에 고독한 태상황 이융기는 그의 일생을 마친다. 신룡전에서 붕어한다. 향년 78세이다. 그가 바로 대당왕조를 성세로 이끌었다가 다시 성세에서 쇠락으로 이끈 당현종이다.

 

당나라의 네번째 태상황은 당순종 이송(李誦)이다. 이송은 당덕종 이적의 장남이다. 정원이십년(804년) 구월, 태자였던 이송은 중풍으로 말을 하지 못하게 된다. 정원21년 정월, 당덕종이 사망하고, 이송이 즉위하니 바로 당순종이다. 그러나, 몸이 좋지 않고, 말을 할 수 없어서, 군국대사를 처리할 수가 없었다. 즉위한지 8개월만에 태자 이순에게 양위하고,자신은 태상황이 된다. 몸이 좋지 않으므로 이선으로 물러나서 몸을 조리한다. 이것은 총명한 선택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원화원년(806년) 정월 당헌종 이순이 군신을 이끌고 태상황에게 응건성수태상황이라는 존호를 바쳤으나, 수명이 길지 못했던 태상호아은 그 달에 붕어한다. 향년 46세이다.

 

당나라의 다섯째 태상황 이엽(李曄)은 환관이 권력을 독점하고, 번진의 세력이 커진 상황하에서 나타났다. 당소종 이엽은 환관 유계술등이 옹립하여 황제가 된다. 광화3년(900년) 십일월, 환관 유계술이 "혼군을 폐위시키고, 명군을 세운다"는 명분을 들어 궁중정변을 일으킨다. 당소종과 황후를 소양원에 가두고, 음식은 모두 담장의 구멍으로 넣어준다. 환관들은 태자 이유를 옹립하여 황제위에 앉힌다. 당소종 이엽은 태상황으로 존칭한다. 이 태상황은 사실상 수감자와 마찬가지였다. 1개월여후, 좌선책군지휘사 손덕소가 거병하여 반란을 토벌하고 유계술등을 주살한다. 그리고 당소종을 황제로 복위시킨다. 태자는 다시 동궁으로 돌려보낸다. 그가 바로 황제에서 태상황으로, 다시 태상황에서 황제로 된 이엽이다. 4년후, 당소종 이엽은 당나라의 반군장수 주전충에게 살해된다. 향년38세이다. 다시 3년후(907년), 대당왕조는 마침내 멸망한다. 당왕조가 설립된지 290년만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