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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보시라이-왕리쥔사건

다큐멘터리소설: 왕리쥔

by 중은우시 2012. 3. 1.

글: 강유평(姜維平)

 

2012년 2월 8일 오전, 비행기의 엔진소리가 울렸다. 청두에서 베이징까지, 이 항로는 이전에 여러번 다닌 바 있다. 그러나, 오늘처럼 마음이 복잡하고, 희비가 교차하며, 온갖 생각이 나는 적은 없었다. 과거에는 보디가드와 수행원이 가득하여, 지위의 중요성과 인생의 휘황함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츄진(邱進)이 내 옆에 앉아 있고, 국가안전부의 여러 요원들이 있다. 나는 새장 속에 갇힌 새신세이다. 비록 보시라이의 손아귀에서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체제내에 있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이것은 내 인생의 마지막 비행ㅇㄹ 것이다. 그러나 나는 괴롭지 않다. 어쨌든 나는 최선을 다 했다. 다른 사람을 손보든지, 다른 사람에게 당하든지 나는 모두 거창하게 벌였다.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수도 있고, 비밀을 가져갈 수도 없겠지만, 나는 이 침묵의 세계에 나의 목소리를 들려주고자 한다. 그렇다, 비행기를 조종하는 엔진소리와 더불어 거대한 날개가 나를 공중으로 들어올리는 것을 느낀다. 나는 은회색의 비행기날개와 솜같은 검은구름을 본다. 햇볕의 반점은 불타고 도약했다. 나의 추억처럼. 상상, 회한, 분노, 우울과 기대, 이런 것들이 하나로 모여서, 정신의 재로 된다.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츄진과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듣기를 바란다. 아래는 나의 자백이다:

 

보시라이에게 마음의 빚을 지다

 

나같은 사람은 출신도 밑바닥이고, 대단한 집안배경도 없다. 보시라이처럼 배경이 없다.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려면, 실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성격상 징기스칸의 영광스러운 전통을 이어받아서 호승심이 강하고 용맹하며 마음을 집중하여 큰 일을 하고자 했다. 야심만만했지만, 힘이 모자랐다. 귀인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테링(鐵嶺)에서 내가 파출소 경찰로 있을 때, 제일 먼저 뒤를 봐준 사람은 공안국장 왕리저우(王立洲)였다. 지금 어떤 사람들은 내가 그를 이용하려 했다고 하는데, 확실히 그런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왕국장은 나를 적지 않게 끌어주었다. 나를 하급경찰에서 파출소장으로 만들어주었다. 승진의 고속도로를 달리고 그의 오른팔이 된다. 나는 그에게 감사했고, 그를 '양아버지'로 불렀다. 이 점은 거짓이 아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그를 위하여 적지 않은 일을 해주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중국의 흑사회(黑社會, 조직폭력배에 해당함)는 모두 사회에서 굴러먹는 깡패들이다. 그리고, 왕국장 혹은 그 상사와 갈등이 있는 기업주도 있다. 왕국장이 그들을 '흑사회에 관련되었다'고 결정해주기만 하면 나는 공안국의 총이 되어, 그들을 모조리 '흑사회'로 만들었고, 사람을 감옥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들의 재산은 흑사회관련자금으로 하여 모조리 몰수했다. 그들은 평생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보호산(保護傘)까지도 제거했다. 가실 그쪽은 대립파의 관리들이다. 이점은 2008년에 보시라이에게 이용된 것과 같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공안국 부국장을 맡은 후, 나는 테링의 최고간부로부터 직접 명령을 듣고 싶었다. 누가 '양아버지'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계속 듣기를 원하겠는가? 사람들에게 원한을 사는 것은 내가 하고, 사람들에게 인심을 얻는 것은 그가 되는데, 왜 그래야 하는가?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그래서 우리들 간에는 갈들이 생겼다. 서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원수지간으로 된 것이다. 우리는 엉망진창으로 싸웠다. 결국 나는 그를 감옥으로 보낸다. 약간 인의(仁義)하지 못한 점은 있지만, 그렇게 얼굴에 철판을 깔지 않으면 위로 올라갈 수가 있는가?

 

이 일을 제외하고, 인력거꾼 장구이청이 나를 고발한 사건에 대하여 구체적인 경위는 말하지 않겠다. 매체에 다 보도되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내가 법잽행을 하면서 법을 어겼다. 내가 법을 사적으로 악용한 것이다. 중국청년보의 기자는 조금도 잘못 쓰지 않앗다. 그러나, 사람이 성공가도를 달리고, 미쳐날뛸 때, 누구든지 자신을 거슬리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20세기말 21세기초에 랴오닝에서는 항상 나를 고발하는 서신이 있었다. 테링, 진저우에서 선양과 베이징으로 계속 그런 서신이 올라갔다. 몇번은 '타흑영웅'인 나의 명성이 무너질 뻔도 하였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보시라이를 만난다. 내가 테파(鐵法)시에서 경찰을 데리고 양씨형제를 붙잡았을 때, 온 세상이 난리를 치고, 이견도 많았지만, 그때는 '양아버지'가 나를 지지해주었다. 지금은 보시라이형님이 뒤를 받쳐준다. 그가 지시를 하면, 나를 고발한 사람도 조용해진다. 랴오닝성의 세 수장인 법원원장, 검찰원검찰장, 공안국장도 보시라이성장의 손바닥 하나에 미치지 못한다. 그가 잘 써먹는 수법대로 먼저 랴오닝성 고급인민법원의 부원장 텐펑치(田鳳岐)를 먼저 붙잡았다. 그랬더니, 모두 고분고분해졌다. 나는 사람을 잘 본 것이다. 보시라이형님은 친구로 할만하다.

 

옛사람들이 말했다.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고. 나는 그때 생각했다. 보시라이의 집안배경에 중국과 서방을 다 배운 재능에 북경 중남해 고위층과의 인맥관계, 게다가 과담하게 일처리하는 담량과 기백이면 그가 큰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그를 위하여 양륵삽도(兩肋揷刀)하여 부귀영화를 함께 누리고자 했다. 그래서 그가 원스전(聞世震)과 싸울 때, 장궈광(張國光)과 싸울 때, 양롱(仰融)과 싸울 때, 류용(劉湧)과 싸울 때 등등 나는 모두 생사를 넘나들며 전력을 다했다. 심지어 원스전의 전화를 도청하기도 했다. 아니, 보시라이를 따르지 않는 랴오닝의 모든 고관과 친구의 전화를 도청하고 미행했다. 이 모든 것은 보시라이성장이 지시하고, 내가 집행했다.

 

그때, 원스전을 끌어내리고 랴오닝성 성위서기에 오르기 위하여, 보시라이의 밀명을 받아, 나는 친히 하이청(海城)등지로 가서 그가 경제범죄를 저지른 약점을 잡으려 했다. 나는 원서기의 누나가 그 곳에서 다른 사람과 동업으로 작은 운송회사를 개업한 것에 주목했다. 그 회사는 랴오양에서 퉁알바오까지 운송한다. 법인대표는 웨이라는 성을 가지고 있었고, 사업규모도 그리 크지 않았다. 그다지 가치는 없었다. 나는 작은 문제를 들춰내서 웨이의 부하를 체포하고 12년형을 받게 했다. 그러나 원서기 친구의 문제는 발견할 수 없었다. 보시라이는 실망이 컸다. 생각지도 못하게 원서기는 청렴한 관료였고, 그를 끌어내릴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후진타오와 원자바오가 보시라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할 수 없이 랴오닝을 우회하여 승진하는 방법을 생각한다. 그래서 보시라이는 나에게 당시 약간 불만이 있었다. 그는 나에게 사건을 조작해서라도 손보려고 했었다. 그러나, 일반백성이라면 쉬운 일이지만, 원스전같은 고위직의 봉강대리(封疆大吏)라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마음의 빚을 지게 된다.

 

보시라이는 나에게 학력증서를 주다

 

1990년대말, 나는 랴오닝성의 '타흑영웅'이 되고, 진저우시의 공안국장이 된다. 야심이 어느 정도 팽창한다. 더 높은 관직에 오르고 싶었다. 그런데 학력이 모자랐다. 어떡할 것인가? 그때, 나는 보시라이의 지시를 받아 류용을 감시하며 큰 공을 세웠다. 보시라이성장은 나의 마음을 잘 알았고, 적극적으로 나에게 말한다. 지금 더 올라가려면, 그럴듯한 학력이 없으면 안된다. 나도 말했다. 그렇습니다. 나는 군대에 있었고, 지식청년과 직원을 지냈지만, 캠퍼스에 들어갈 인연은 없었습니다. 들어가더라도 기초가 없으니 어떻게 다 배워서 학위를 따겠습니까. 그러자 보시라이가 웃으며 말했다. 너, 리쥔아. 사람들이 너를 멍청하다고 말하는 이유를 알겠구나.

 

그는 바로 부성장 샤(夏)모에게 전화를 건다. 그는 원래 다롄 동북재경대학의 총장이었다. 보시라이가 랴오닝에서 발탁한 간부이다. 보시라이가 그에게 나의 일을 얘기했다. 상대방의 말은 내가 듣지를 못했다. 그러나, 얼마후, 나는 MBA 석사학위증서를 받았다. 당시 나는 28만위안을 냈다. 그러나 돈은 문제될 것이 없다. 보시라이성장의 말한마디만 있으면 기업을 찾아가서 비용처리하면 된다. 그는 말했다. 나는 그때 다시 한번 보시라이에게 더 큰 마음의 빚을 지게 되었다. 평생을 죽어라 보답해도 다 보담할 수 없을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후, 우리는 일당이 된다. 자주 내왕하는 형제들이 적지 않았다. 원래 보시라이가 다롄 진저우에 있을 때의 비서이자, 나중에 안전국 당위서기가 된 처커민(車克民), 문자비서인 우원캉(吳文康), 그가 다롄에서 키워준 민영기업인 스더집단의 오너인 쉬밍(徐明), 그리고 나의 고향사람인 자오번산(趙本山), 등등. 이들은 부유하거나 고관이었다. 모두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약간은 불만과 유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말한다. 봐라 후진타오의 그 딱딱한 모습을, 꼭 바보같지 않으냐; 원자바오의 잔망스러운 모습을 봐라. 꼭 백치같지 않느냐. 시진핑, 리커창을 봐라. 허. 더 말할 것도 없다. 어쨌든 우리 서클에 들어있는 사람들은 보시라이의 주변을 맴돌면서 오갔다. 그 누구도 보시라이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다. 보시라이는 180센티미터의 신장을 지녔고, 용모도 당당하다. 말도 잘한다. 영어도 유려하고 북경표준어를 쓴다. 일거수 일투족이 대국의 군주의 풍모를 지녔다. 그의 주재하에 우리는 자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논의했다. 그는 이제 상무부장이다. 나중에 중앙정치국 위원이 되었다. 그런데, 쉬차이허우(徐才厚)의 뒷자리인 말석이었다. 이것은 웃기는 일이다. 그는 당연히 불만이었다. 우리도 조급하게 움직였다...마침내, 우리는 하나의 행동방안을 마련한다. 먼저 자금을 모집해서, 매체를 매수하여 그를 띄우게 한다. 그 후에 인재를 골라뽑는데, 주로 글을 잘 쓰는 문인으로 그를 위해서 목숨바쳐 일하게 만들고, 그리고 일을 잘 만들어내는 부하를 두어, 정적의 거점에서 계속 못살게 군다. 나는 직접 돈도 들이고 시간도 들여서 2007년초 전국인민대표대회 이전에 인민대표를 매수하고 그들로 하여금 보시라이형님을 부총리에 오르게 하도록 움직이게 했다.

 

실제로 당의 17대대회에서 나는 보시라이의 명을 받아, 처커민등 보시라이의 일당들과 다롄의 완다부동산개발기업을 통하여 거액을 들여서 일부 당대표를 매수했고, 보시라이가 정치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힘쓰게 했다. 일반백성들이야 매체에 속고 있는데 뭘 알겠는가? 누구든지 능력이 있으니까 승진한다고 믿어버리겠지. 이 부동산회사의 오너인 왕모 자신도 돈을 들여 17대 대표가 된다. 보시라이는 그 보답으로, 상무무계통의 전국각지의 사업을 모조리 왕모에게 허가내준다. 전국 도처에 완다상업광장이 있지 않은가? 우리가 돈을 들여 매수한 사람으로 하나는 전밍 중앙지도자인 장쩌민(江澤民), 리펑(李鵬), 리란칭(李嵐靑) 등등이 있다. 이들은 돈을 요구하는데서나 일을 처리하는데서 모두 통이 컸다; 하나는 각 성,시,자치구의 중앙위원들이었다. 이들중 어떤 사람은 비교적 청렴했고, 어떤 사람은 아주 부패했다. 어쨌든 1표는 1표이다. 우리는 한 팀을 만들었고, 어떤 사람이든 끌어모았다. 어떤 수단이든 모두 썼다. 최대한의 노력을 한 것이다. 그러나, 후진타오와 원자바오가 극력 저지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보시라이형님은 나중에 충칭의 시위서기로 좌천된다. 우리는 그 말을 듣자 힘이 빠졌다. 보시라이형님은 당연히 여기서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마지막 도박을 걸기로 한다.

 

나는 보시라이의 앞잡이가 된다.

 

지금 고개를 돌려 생각해보면, 보시라이는 큰 뜻을 품고 있었고, 일찌감치 계획을 해두었다. 그는 필요한 인재들을 끌어모았다. 나처럼 두뇌가 없는 사람은 그가 좋아하는 유형이다. 나는 처음부터, 그의 총애를 받았다. 이것은 일종의 사전준비작업이다. 그는 나를 주구로 만들었다. 먼저 약간의 고기를 맛보게 했고, 나는 기뻐서 꼬리를 흔들며 아양을 떨었다.

 

2008년은 내 일생의 전환점이다. 보시라이는 과거에는 암중으로 나를 썻찌만, 그는 나라는 '타흑영웅'을 전면무대로 내세웠다. 이것은 심사숙고한 결과이다. 이전에 '창홍타흑'은 내가 기획한 것이 아니다. 진정한 기획자는 구카이라이(谷開來), 쉬밍(徐鳴), 우원캉(吳文康) 등이다. 듣기로 장쩌민, 리펑, 저우용캉등의 지지도 받았다고 한다. 보시라이의 생각은 아주 분명하다. 두 단계로 가는 것이다. 하나는 십팔대에 정치국 상임위원이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후진타오를 대체하는 것이다. 그들은 말했다. 먼저, 하나의 강령을 만들었는데, 그 톤이 너무 높을지 우려했다. 후진타오와 원자바오가 화를 내서 저지를 하려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창홍타흑'이다. '창홍(唱紅)'은 보시라이형님이 근정묘홍(根正苗紅)의 혁명가집안출신이므로 반드시 후계를 이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타흑(打黑)'은 한편으로 허궈창(賀國强), 왕양(王洋)의 일당을 제거하며, '보호산'을 찾아내고, 다른 한편으로 사회안정에 영향을 주는 '깡패'와 보시라이를 따르지 않는 기업주를 하나로 묶어서 모조리 '흑사회'로 포장하여 제거하고 재산을 모조리 몰수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백성들이 부자와 관리를 미워하는 심리에도 부응할 수 있고, 매체와 인심을 매수할 수 있는 돈도 마련할 수 있다.

 

보시라이는 나에게 말했다. 쉬밍은 원래 상무부 연구실에서 일을 했고, 아이디어가 많으며, 글재주가 좋고, 모략이 있다고. 주로 그를 위하여 큰 그림을 그려준다; 구카이라이는 북경을 잘 알고, 인맥이 넓고, 법률을 안다. 주로 중남해와 충칭관료의 정보와 관계를 소통시켜준다; 우원캉은 다롄에서부터 데리고 다니는 부하이고, 상황을 잘 알고, 비교적 충성스럽다. 그는 보시라이의 일상업무를 어레인지한다; 처커민은 특무계통의 내부운영을 잘 안다. 보시라이의 홍콩과 해외정부소집, 정리를 책임지고, 국외에 있는 보시라이 직계의 정보망을 지휘한다. 주로 보시라이에게 불리한 글을 쓰는 인사를 감시하고 미행하며 소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외에 보디가드팀도 만들어 보과과를 따라다니게 한다. 이들은 키신저와 밀접하게 내왕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그에게 물어보았다. 보시라이는 말했다. 너는 공안국을 장악해라. 첫번째로 먼저 왕양, 허궈창의 옛부하들의 위법범죄증거를 수집해라. 그리고 다음 단계의 행동을 전개한다. 그는 약속했다. 너는 마음대로 해라. 여기는 랴오닝이 아니다. 내가 정치국 위원으로서 너를 전력을 다하여 지지하겠다. 너는 검찰, 법원, 사법을 신경쓸 필요도 없다. 무슨 절차, 무슨 이론이 있더라도 반드시 엄중하게 처리하라. 왕양 그들이 남긴 일체의 관계를 제거하고, 최소한 1000억위안을 모으면 상부와 한번 놀아볼 만하다. 너는 먼저 부국장을 맡고, 다시 정국장으로 올려주겠다. 그 후에는 부시장까지 올려준다. 쉬밍은 '돈을 생각하고' 허스중(何事忠)은 '돈을 쓰고', 너는 '돈을 빼앗아라'

 

나는 그의 말을 듣고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이것은 세 단계 승진이 아닌가? 과거에는 정청급(正廳級)이었는데, 지금은 계속 승진할 희망이 보인다. 이것은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꿈에도 그리던 일인가? 그러나 약간 불안한 점도 있었다. 그러자 보시라이가 말한다. 그게 뭐 대단하냐. 내가 정법위 서기가 되면 네가 공안부장이 될 것이고, 내가 총서기가 도면 너는 저우용캉이 된다. 지금 네가 사람이 필요하면 내가 주겠다; 네가 돈이 필요하면 내가 주겠다; 네가 무기가 필요하면 내가 장하이양(張海洋)과 저우용캉을 찾아서 모두 주겠다. 나는 말했다. 랴오닝에서 일부 부하들을 데려와도 되겠습니까? 보시라이는 그 자리에서 말한다. 네가 데려오고 싶은 만큼 데려와라. 그쪽은 신경쓸 것없다. 내가 전화해주겠다. 나는 말했다. 데려오면서 승진시켜도 되겠습니까? 보시라이는 말했다. 네가 결정하면 그만이다. 여기 조직부서에서 동의하지 않으면, 나에게 보고해라, 내가 친히 전화를 걸어주겠다.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이유를 붙여서 체포해버리면 그만이다. 누가 감히 네 말을 듣지 않겠느냐. 우리는 무서울게 없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제서야 안심을 했다.

 

기실, 이전의 2007년 12월에서 내가 부임하기 전에, 보시라이의 심복은 이미 전화도청과 정보수집업무를 마쳤다. 그들은 발견했다. 허궈창과 왕양이 비록 떠났지만, 현지에는 기반이 튼튼하게 남아있다는 것을. 군중들이 옹호할 뿐아니라, 관리들도 대부분 그들을 그리워했다. 특히 사법국장 원창(文强)과 공안국 부국장 펑창젠(彭長健)등은 북경과 자주 연락했다. 전화도청에서, 보시라이는 많은 정보를 얻어낸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반드시 그들의 유죄증거를 빨리 찾아내야 한다. 반드시 즉시 그를 구속해야 한다. 사형을 시킬 수 있을 정도여야 한다. 그래야 그를 발탁한 장원빈(張文彬)에게 할 말이 있다. 허궈창, 왕양에게 이것 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관리들에게도 본때를 보여줄 수 있다. 일벌백계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큰 그물을 친다. 표면적으로는 원창과 같은 자리에서 밥먹고 술마시지만, 속으로는 '오점증인' 지정한(季鉦澣)을 찾는다. 그는 자주 진커(金科)호텔에서 도박을 했고, 나의 형제들의 눈에 걸려들었다. 금방 그의 약점을 잡아낸다. 왜 그를 찾았는가? 첫째는 그가 원창의 심복이었고, 둘째는 그가 돈이 있었고, 셋째는 그가 간이 작고 바람에 따라 방향을 바꾸는 자였기 때문이다. 과연 그는 솔직하게 원창과 관련된 많은 나쁜 짓들을 털어놓는다. 그 단서를 쫓아서 증거를 손에 넣는다. 그러나 보시라이는 말했다. 그의 배경이 너무 세고, 관련된 사람이 너무 많다. 반드시 한바탕 '창홍타흑'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먼저 사람들이 노래를 불러서 정신없게 만든 다음에, 다시 그들을 무너뜨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재미가 없게 될 것이다. '타흑'의 규모가 크면 뼈와 근육이 다칠 수 있어, 중남해의 승인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청두군구의 동의를 받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보시라이는 나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리고, 나와 여러번 얘기를 나누었다. 매번 몇 시간씩이었다. 우리는 구체적인 부분까지도 연구를 마쳤다.

 

곧이어 우리는 '에딘버러사건'을 과장하기 시작한다. 원래 그것은 독립적이고 일반적인 형사사건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부호 천밍량(陳明亮), 판치항(樊奇航)등과 억지로 엮는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반정도의 내용은 허구이다. 댐속의 총은 가짜이다. 내가 사람을 시켜서 버리게 한 것이다. 증인의 증언도 고문으로 얻어낸 것이다. 목적은 이 일을 오너와 엮어버리기 위해서이다. 그래야 천밍량의 거액재산을 빼앗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방면에서 지정한은 나를 도와서 여러가지 일을 해주었다. 그외에 '3.19총격사건'은 모조리 허구이다. 나는 동북 테링에서 사람을 찾아서, 그에게 돈을 주고 그로 하여금 초병을 습격하게 했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어 청두군구에서 분노하게 되었다. 보시라이는 즉시 보고한다. 후진타오와 원자바오는 속았다. 모두 충칭의 '타흑'을 승인한 것이다. 우리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3.19사건'이후 보시라이가 홍콩 펑황위성TV와 얘기할 때의 흥분된 모습을 보지 못하였는가? 그는 말했다. 크게 놀랄 일도 아니다. 그 순간 나는 보시라이의 얼굴에서 살인여마(殺人如麻)의 득의만면한 표정을 엿보았다.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그는 연기를 너무 잘한다. 혹시 밑천이 드러날까 두렵지도 않은가? 다행히 매체는 우리의 손아귀에서 놀아났다. 일찌기 중국작가협회의 충칭대회풍파가 있을 때, 고압적으로 매체에 압력을 가하여 계속 반성하고 총편집인을 면직하게 만들었다. 이로써 작가들은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게 된다.

 

전환점은 역시 원창과 천밍량의 죽음에서 시작된다. 백성들둥에서 누가 관리와 부자를 미워하지 않겠는가? '창홍타흑'은 금방 전국을 뒤흔든다. 우리는 600여개의 흑사회를 포장하고 기획하여, 수만명을 체포하고, 수천명을 형에 처하며, 수백명을 중형과 극형에 처한다. 수십명은 부호였다. 백성들은 환호성일색이었다. 그리고 관리들은 모조리 두려움에 떨었고, 보시라이의 명을 따랐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범죄의 처벌로 몰수한다는 명목으로 1000억위안의 민영기업자산을 빼앗게 된 것이다. 과거의 정부는 가나냈지만 지금의 정부는 부자이다. 우리 공안국은 부를 분배하는데 큰 형님이다. 하, 하. 그 때는 정말 돈이 넘쳐났다. 친구들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생각해보라. 펑즈민(彭治民)의 재산만 90여억위안이다. 힐튼호텔의 장사는 얼마나 잘되는가? 하룻밤만에 자신이 지배하는 재산이 된다. 흑사회에 관련있다는데, 그의 가족들이 감히 따지고 들겠는가? 경매를 하지만 누가 감히 낙찰받겠다고 오겠는가? 감옥에 갇혀 있는데, 누가 우리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있는가? 보시라이는 말했다. 돈이 국유기업에 가면, 우리가 일당을 보내어 동사장을 하게 하면, 우리가 그 돈을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리하여 일시에 전세계의 사람들이 모두 몰려들었다. 우리에게 돈이 있기 때문이다.

 

삼단뛰기에 성공하다.

 

나는 물만난 고기였다. 보시라이는 정말 의리가 있었다. 나에게 부시장직까지 주었다. 그러나 순조롭지는 않았다. 인민대표대회에서 무기명투표를 하는데, 두 번이나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보서기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친히 나서서 표를 점검한다. 다시 투표해라. 그리고 여기에 원창이 아직도 많구나, 아직도 탐관을 더 죽여야 겠는가? 라고 소리친다. 즉시 높은 표를 얻어 당선된다. 나는 부성장급 간부가 된 것이다. 그날 나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술도 마시고 축하도 많이 받았다. 그러다가 넘어져서 머리를 욕조의 벽에 부닥친다. 몇분간 혼절해 있었다. 나중에 치료를 받았고, 별 탈은 없었다. 그러나, 이때부터는 머리가 어질어질해진다. 그래서 나중에 우울증을 문제삼아 그들은 '휴가식 치료'를 받는다고 했는데, 그런 연유는 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인과응보가 있는 법이다. 나는 부시장 겸 공안국장이 되고, 매체의 조명을 받는 '타흑영웅'이다. 그러나, 머리를 부닥친 이후로는 정신이 온전하지 못했다. 과거의 몇 가지 일들이 눈앞에 계속 아른거린다.

 

첫째는 우샤오칭(烏小靑)의 죽음이다.

 

그와 장타오(張韜)의 일은 모두 원창을 처리하면서 처리한 것이다. 장부원장은 북경에서 파견한 간부였다. 원래, 보시라이는 그를 껄끄러워했다. 왜냐하면 보시라이는 북경에서 파견온 간부는 모조리 후진타오파에서 심어놓은 '눈과 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부정부패사건을 파헤친 것이다. 우샤오칭은 기반이 없다. 그러나, 집행재판정에서는 힘이 있었다. 그를 장부원장과 함께 엮는 것이 순리에 맞는다. 그러나, 이 자는 매를 버티지 못했다. 우리가 '타흑기지'에서 그를 심문할 때, 부하들이 너무 세게 다루었는지 맞아서 죽고 말았다. 기실 사람이 죽은 것은 닭 한마리 잡은 것과 다를 바 없다. 무슨 대수이냐. 그렇지만 그는 법관이다. 방법이 없었다. 우리는 이야기를 만든다. 증거를 위조하여 그가 간수소에서 목을 매어 자살한 것으로 꾸몄다. 이것은 이치에 맞지는 않았다. 그러나 보시라이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의 가족들에게 돈이나 조금 쥐어주고, 입을 다물게 하면 그만이다.

 

둘째는 원창이 죽기 전의 일이다.

 

그는 처음에는 죄를 인정하지 않고, 말로도 밀리지 않았다. 나는 보시라이에게 보고한다. 그는 말했다. 그에게 본때를 보여주라고. 먼저 그의 아들을 붙잡고, 다시 그와 조건을 얘기해서 거래를 하라고 했다. 나는 그대로 했다. 과연, 그후 원창은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감정이 완전히 무너진다. 적지 않은 문제를 불었다. 나는 다시 보고한다. 보시라이는 친히 심문녹음테이프를 보고는 말했다. 안된다. 그에게 허궈창과 왕양의 일을 들춰내도록 해야 한다. 만일 말을 하지 않으면 사형이고, 말을 들으면 사형집행유예를 해주겠다고 한다. 원창은 계속 말을 듣지 않았다. 죽기 며칠 전에야 그는 일부 자료를 썼고, 녹음을 했다. 보시라이는 말했다. 사형집행유예는 안된다. 반드시 즉시 집행해야 한다. 나는 말했다. 이미 그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어떡할까요? 보시라이가 말한다. 리쥔, 너는 어째서 다시 멍청해졌느냐. 증거를 모두 속여서 얻어냈는데, 반드시 그를 죽여야 할 것이 아니냐. 그래야 증거가 확실해 지지 않느냐. 영원히 뒤집을 수도 없고. 나는 깜짝 놀란다.

 

그는 다시 말했다. 죽기 전에, 그에게 집행시간을 말해주지 말아라. 네가 그를 찾아가서 비밀리에 얘기를 했다는 것을 크게 보도해라. 중남해까지도 알 수 있도록. 이들 자료는 두 부를 복사해서 후진타오에게 1부를 보내고 여기에 1부를 남겨놓아라. 그러나, 당시에 나도 잔머리를 굴려서 한 부를 더 만들어서 나도 보관했다. 나중에 들으니, 보시라이는 이 '비밀무기'를 이용하여 허궈창과 왕양을 물러나게 했다고 한다. 왕양은 충칭에서 재직한 기간이 짧았고, 비교적 청렴했으며 일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허궈창의 이야기는 너무 많았다. 나는 후진타오가 허궈창과 보시라이를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랴오닝성에서 보시라이에 대한 조사는 하다가 말다가, 잡았다 놓아주고 하여 형세가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나, 보시라이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것이 바로 관리로서의 '큰 지혜'이다. 비록 내가 돈을 모았지만, 누가 돈을 모으지 않았겠는가? 누가 먼저 상대방의 약점을 잡아내느냐가 관건이다. 먼저 손을 쓰는 것이 좋다. 그것이 큰 지혜이다. 보시라이의 뜻을 받들어, 나는 원창의 아들을 1년여 붙잡아 두었었다. 그리고 그를 적지 않게 괴롭혔다. 지금 생각해보니 모두 업보를 쌓은 것이다.

 

셋째는 왕즈이(王紫漪)이다.

 

바로 '양점차루(亮點茶樓)'의 그 여주인이다. 그녀는 그저 아가씨 몇명을 둔 것뿐이지 않는가? 전국 어디에 그런 곳이 없겠는가? 보시라이서기가 다롄에서 살던 집의 아래에도 있었다. 왜 그녀들만 붙잡았는가? 원래 그녀들은 장사를 크게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많은 정부관리들이 드나들었다. 자신도 드나들면서 다른 사람을 소개하기도 했다. 정부의 일부관리들은 완전히 빠져 있었다. 나는 보시라이에게 보고한다. 그는 말했다. 관리들이 우리 말을 듣느냐 아니냐는 여기에 달렸다. 이곳은 그들이 말을 듣게 하는 좋은 기회이다. 우리는 자세히 방안을 연구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녀들 자매를 붙잡았을 뿐아니라, 한명을 총살시킨다. 해외에서 그녀를 데려오기 전에 일부러 매체를 동원하여 여론을 조성한다. 창량으로 하여금 구호판을 들고 서서 비행장에서 흔들게 한다. 이것은 허궈창 등에게 보라는 것이다. 우리는 말했다. 나와 너의 수하는 모두 '양점주루'에 가서 매춘을 한 ㅈ거이 있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래서 이때부터 충칭의 많은 관리들이 고분고분해졌다. 우리의 지시를 잘 따랐고, 마치 온순한 양처럼 되었다. 왜 그런가? 그들의 약점이 모두 공안국장의 손안에 있기 때문이다.

 

넷째는 이쥔(李俊) 사건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것은 청두군구에 관련된 큰 사건이다. 그는 군구와 20여년을 협력했고, 토지를 몇 군데 구매하여 큰 돈을 벌었다. 재산이 45억위안에 달했다. 은행현금예금만 2억여위안이었다. 장하이양(張海洋)이 정치위원으로 있을 때 그의 땅중 한 곳에 눈독을 들여, 리쥔에게 그 땅을 내놓게 하기 위하여, 어린 조카딸에게 부동산업을 시작하게 한다. 그녀도 돈을 벌고 싶었다. 그러나, 이쥔은 장하이양의 체면을 봐주지 않는다. 장하이양은 화가 났고, 장하이양은 이를 이용하여 정적을 숙청하고자 한다. 그래서 보시라이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보시라이는 나에게 말했다. 이 일은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군대가 관련되었으니, 반드시 잘 처리해야 한다. 이것은 군대의 마음을 얻기 위한 투자이다. 다시 말해서, 장하이양과 나는 어릴 때 불알을 내놓고 함께 자란 친구이다. 그의 체면을 봐주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다이샤오화(戴小華)를 시켜서 익명서신을 만들게 한다. 군중의 고발을 받아서 그를 조사하기 시작한 모양을 갖춘다. 그리고 리쥔을 체포한다. 한참을 가두어놓았다. 그는 부대에 4000여만위안을 주고는 마무리했다. 그러나, 개인에게 주겠다고 한 돈은 주지를 않았다. 보시라이는 다시 그를 체포하도록 명령한다. 이 자는 명이 길었다. 그는 도망을 쳐버렸다. 우리는 그의 집안 30여명을 붙잡아 모조리 형벌에 처한다. 리쥔의 형인 리슈우(李修武)는 18년형을 받는다. 보시라이가 말했다. 그를 감옥에서 죽게 만들어라.

 

그외에 임업국간부 방디(方迪), 감히 보서기에게 대든 리창(黎强), 그리고 우리들에게 과장되게 '조폭두목'이 된 공강모(龔鋼模), 자오광위(趙光裕)등등. 특히 변호사 리좡(李莊)이 있다. 이 일은 보시라이를 골치아프게 했다. 그는 말했다. 펑전(彭眞)의 아들이 그와 싸우고 있으니, 리좡을 처리하지 않으면 체면이 서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증거를 위조하고, 이야기를 꾸몄다. 증언은 허위이고, 판결은 그저 형식이었다. 특히 리좡이 사우나를 하는 사진은 컴퓨터기술로 합성한 것이다. 나는 공안국에 명령하여 가짜자료들을 중국청년보로 보내게 했다. 우연도 기가 막히게, 1999년에 중국청년보는 나를 비판한 적이 있다. 지금은 나에게 이용당하게 되었다. 정말, '풍수는 돌고 돈다'는 것이다. 이 일은 너무 크게 벌였고, 헛점이 많았다. 처음에는 우리가 이겼고 변호사를 간담이 서늘하게 만들었다. 다음번에는 우리가 난감하게 패배한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후진타오와 원자바오의 지시에 졌다. 더이상 재판하지 말라고 했다. 천여우시(陳有西), 허웨이팡(賀衛方)등의 변호사들도 떴다. 리웬차오까지 보내어 보서기를 압박했다. 그도 부득불 명령을 거두어들일 수밖에 없었다. 보시라이는 신경쓰지 않았다. 먼저 후진타오의 체면을 한번 봐주자. 그리고 사람을 시켜서 리좡을 감시하도록 해라. 우리가 위로 승진해 올라가면 그는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의 처지가 약간 미묘하다고 느꼈다. 그리하여, 나는 형제들을 파견하여 리좡의 조수인 마샤오쥔(馬曉軍)을 감시하게 한다. 그리고 변호사 주밍용(朱明勇)등에게 겁을 준다. 그런데, 효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나는 보시라이에게 보고했다. 그는 말했다. 한번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한다. 독하지 않으면 사내대장부가 아니다. 손을 쓸때 독하지 않으면 사업에 성공할 수 없다. 그리하여 증거를 없애기 위하여 우리는 검찰관 공용(龔勇)을 죽인다. 우리는 그가 원창사건의 내막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그가 기소했고, 그가 이의를 제출했다. 나는 그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불안했다. 지금 중앙기율검사위의 사람이 다시 그를 찾아왔다. 또 다른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심복들에게 그를 식사에 초청하도록 하고, 술에 약을 넣어서 그를 죽여버렸다. 우리는 여론을 속이기 위하여, 그에게 열사의 칭호를 준다. 죽고 나서는 당기를 덮고, 돈도 조금 집어주었다. 가족들을 고마워했다. 중국의 백성들을 속이기가 너무 쉽다.

 

가실 창홍타흑운동에서 죽은 사람이 많다. 그러나, 모두 감추어두고, 매체에서 알지 못하게 했다. 한가지 정확한 숫자를 얘기해주겠다. 수십명의 비정상적인 사망이 있었고, 수백명이 얻어맞아서 병신이 되거나 부상을 입었다. 수천명이 고문ㅇ르 받았고, 수만명이 연루되었다. 공식적으로는 3.6만명을 수배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10만명가량이다. 충현에만도 61개의 추적팀이 있었다. 이를 보면 보시라이는 확실히 제2차문혁을 진행한 것이다. 나는 현대판의 세푸즈(謝富治)인 셈이다.

 

자상잔살(自相殘殺), 야반도주

 

나는 원래 보시라이가 승진할 것이라고 믿었다. 저우용캉, 리창춘, 리웬차오가 시찰을 왔을 뿐아니라, 시진핑까지도 치켜세우지 않았던가? 누가 충칭모델을 부정했는가?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전환점은 2011년 6월 10일 북경으로 가서 '창홍'을 하는 사건에서 시작된다. 해외매체는 먼저 보시라이의 밑바닥을 들춘다. 이것은 지방의 중앙에 대한 도전이다. '핍궁(逼宮)'이다. 그러자 난리가 났다. '홍가를 부르는 것'이 맞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이것은 보시라이의 급소를 찌른 것이다. 이전까지, 중앙에서는 서부대개발을 위하여 약간 떠들썩하게 하더라도 별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도 처음에는 보시라이가 윗자리로 올라가기 위하여 공개적으로 중앙에 도전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타흑을 기치로 내걸며 덩샤오핑의 30년에 걸친 개혁개방의 성과를 철저히 부정할 줄도 몰랐다. 그리고 쑤웨이(蘇偉), 리시광(李希光)을 우두머리로 하는 "양효(梁效, 兩校와 발음이 같으며 북경대학, 청화대학을 가리킴. 문혁때 논거를 제공한 글들을 썼음)" 팀을 만들어 새로운 행동강령을 제정했다. 이제 일이 커졌다.

 

색각해보라. 당내민주를 얘기하더라도, 중앙집권인 대국이다. 어찌 이런 것을 용인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겨우 자칭린(賈慶林)만이 상징적으로 한번 보고 갔을 뿐이다. 거기에 '창홍'의 두번재 연출은 '이포(二砲, 제2포병사령부)'이다. 장하이양이 이포의 정치위원이다. 아마도 리쥔사건을 중국군사위원회쪽에서도 알아차렸던지, 장하이양과 보시라이가 죽이 맞아 있을 때, 그를 이포의 정위로 이동시켜버린 것이다. 보시라이는 그래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여전히 '창홍'을 떠들었다. 후진타오가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보시라이에게 좀 신중하게 일처리를 하면 안되는지를 얘기한 바 있다. 그는 무서울 것 없다고 말했다. 쉬차이후와 우성리(吳勝利)등은 모두 그의 친한 친구이다. 우원캉도 그렇게 말한 바 있다. 쉬차이후의 원적은 다롄시 와팡덴(瓦房店)이며, 그의 사촌동생 쉬창웬(徐長源)도 거기에서 부동산업에 종사하는데, 보시라이가 적지 않게 도와주었다고. 우성리는 이전에 다롄수면함정학원에서 재직한 바 있다. 보시라이와 안면이 있었다. 장쩌민, 리펑, 주룽지도 그를 지지했다. 그리고 뤄간의 조카인 뤄샤오위(羅韶宇)는 충칭에서 사업을 크게 하고 있었다. 보시라이는 생각해놓은 것이 있다는 듯이 말했다. 대담하게 해야 한다. 인생에 몇번 기회가 오느냐. 싸워야 이긴다.

 

나중에 나는 조짐이 좋지 않다고 느낀다. 우리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졌다. 북경의 변호사업계의 수백명뿐아니라, 흑사회사건에 연루된 가족 수천명, 그리고해외매체의 비판적인 글, 특히 리쥔이 사람을 시켜 보여주는 증거들에는 공문도 있고, 사진도 있다. 계약도 있고 영수증도 있다. 이로 인하여 보시라이는 나에게 화를 많이 냈다. 청두군구도 중앙군사위의 비판을 받는다. 각급 관리와 군인들이 모두 우리에게 불만을 가진다. 보시라이는 화가나서 말한다. 우리는 엉뚱한 일을 해버렸다. 이 일로 상대방이 우리 약점을 잡게 되었고, 청두군구에도 밉보이게 되었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4개의 추적팀을 해외로 보내어 리쥔을 찾도록 시켰다. 오대양 육대주를 돌아다니면서 천만이상의 돈을 썼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정치부 주임 저우징핑(周京平)을 전직시키고, 리쥔의 가족들에게 화풀이를 했다. 리슈우등에게는 중형을 때렸다. 다만, 보시라이는 여전히 불만이었다. 내가 고의로 그의 일을 망쳤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형법의 태두라는 자오창칭(趙長靑)까지도 리쥔을 돕는 말을 한다. 그는 보시라이의 상임법률고문이다. 그런데도 등을 돌린 것이다. 이제 어떡하면 좋은가?

 

작년말부터, 상황은 좋지 않게 변해갔다. 보시라이는 자주 몰래 북경으로 돌아갔다. 이전에는 나를 자주 데리고 갔었는데, 지금은 고의로 나에게 감춘다. 말도 절반만 해준다. 그리고 신비스럽게 움직인다. 나는 약간은 간담이 서늘해진다. 설마 그가 나를 버리려 한단 말인가? 그것은 인의에 어긋난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을 죽이고, 사람을 가두면서 양손에 피를 가득 묻혔다. 만일 그가 승진을 위하여 졸을 버리고 장을 지키려 한다면 내가 희생양이 될 것이다. 나의 형제들은 동북에서 왔고 이미 육십명에 이른다. 내가 중요한 자리에 다 심어놓았는데, 그중에 몇명은 도청을 했다. 나에게 보시라이가 중앙기율검사위의 사람을 접대했다고 말해준다. 그들은 비빌리에 흑사회사건에 연루되어 형벌을 받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적지 않은 증거를 확보했다. 그들은 왕래가 잦았다. 혹시 사건을 뒤집으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동북에서 온 사람들은 테링의 소식을 전해주었는데, 그쪽의 공안국에도 일이 터졌다. 이런 체제하에서 간부들 중 누가 부정부패하지 않겠는가? 듣기로 나까지 엮으려고 한다.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보서기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말을 돌려서 했지만, 나에게 힌트는 주었다. 그에게 나를 보호해주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한 가지 일을 더 해주어야 겠다고. 무슨 일인가? 그는 마침내 나에게 행동계획을 말해준다. 나는 듣고는 등에 식은 땀이 났다.

 

사실대로 말해서, 나는 그를 따라 한단계 한단계 승진하는 것만 생각했다. 그저 관직에 있고 싶었던 것이지, 무슨 군사쿠데타나 경찰쿠데타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아가 중남해의 최고권력을 찬탈하겠다는 생각은 더더욱 해본 적이 없다. 이전에 그는 큰 돈을 내주었고, 나는 계속하여 지방경찰병력을 충원했다. 여러번 전국에 경찰모집을 했다. 또한 장갑차도 여러 대 마련했다. 국빈호위대와 여경대도 조직했다. 그리고 키신저가 중국을 방문하는 때에 훈련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저 나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고, 고관의 기세를 더욱 드러내고 싶었을 뿐이다. 나에게 비밀리에 국가지도자를 암살하거나 납치라라고 할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이것은 대역무도한 짓이 아닌가? 그러나, 보시라이는 이미 준비를 마쳤다. 그는 말했다. 2월초에 윈난을 한번 가서, 14집단군의 사람을 만날 것이라고 한다. 이전에 군사열병에 참가하고, 청두군구에 모택동동상을 선물하는 것은 군심을 교란시키는 것이 아닌가? 결국, 그는 준비를 마쳤다. 일단 상임위원에 들어가지 못하면, 즉시 후진타오와 원자바오에 등을 돌리고 독립을 선포할 생각이다. 소리높여 북벌을 시작하려는 것이다. 나는 놀라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나 얼굴에 드러내지는 않았다. 공개적으로 반대하면 죽을 뿐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후 여러날을 나는 밥을 먹지 못했다. 잠도 못잤다. 해방군서남의원으로 갔더니, 의사의 말이 우울증이라고 한다. 그리고 술먹고 벽에 머리를 부닥친 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한다. 보시라이는 알았다. 나에 대하여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그냥 모든 것을 그만두고 랴오닝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가 음흉하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다. 그는 먼저 나의 십여명의 심복을 체포한다. 비서도 있고, 운전기사도 있다. 그리고 나의 오른팔도 있었다. 나는 돌연 깨닫는다. 그는 처음부터 나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이것은 처커민과 다르다. 그들은 환난을 겪은 형제이다. 나는 그의 사업이 성공했을 때 가담한 것이다. 그는 내가 충성스럽지 못하다고 여겼다. 아마도, 그는 4년간 저지른 모든 나쁜 짓을 나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나의 피로 그의 정대화령(頂戴花翎)을 붉게 물들이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곧이어 2월 2일, 나는 돌연 보직변경을 통보받는다. 나는 가장 말석의 부시장이 되어, 문화교육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것은 사실 나에게서 총을 빼앗는 것과 다름없다. 나에게 추가조치가 있을 것이라는 징조이다. 보기에 나도 준비를 해야겠다. 나는 그와 여러해를 같이 일했고, 그가 독랄하다는 것을 안다. 한번 얼굴을 바꾸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그는 나를 암살하거나, 나를 '쌍규'시킬 것이다. 전자가 성공하면 나의 시신에는 당기가 덮이고 나는 공무로 순직한 것이 될 것이다. 후자가 성공하면 나는 '속죄양'이 되어, 이 몇년간의 '창홍타흑'의 과오는 모조리 내가 뒤집어 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형판결을 하여 입을 막을 것이다. 나는 전자의 가능성이 더욱 크다고 보았다.

 

과연 그는 고문하여 나의 형제 한 명을 죽였다. 두 명의 부하는 병신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모두 동북에서 나를 따라온 사람들이다. 가족과 사업을 버리고 생사를 같이 했다. 뿐만아니라 오명도 뒤집어 썼었다. 그 가련한 형제는 나와 몇년간 같이 일했는데, 작별인사조차 하지 못했다. 묵묵히 눈을 감고, 그 형제들에게 미안하다고 느낀다. 비록 내가 이전에 '양아버지'에게 불의하게 했지만, 그는 어쨌든 나를 처리하려고 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나는 반드시 보복해야 한다. 나는 먼저 교육회의에 참가하며 말을 잘 따르는 것처럼 가장했다. 그후 나는 휴가를 신청하여 서남의원으로 가서 병치료를 했다. 보시라이가 보낸 사람이 나를 감시했다. 나는 못본 척 한다.

 

2월 5일, 일요일이다. 나는 집안에서 하룻동안 준비했다. 먼저 자살을 생각한다. 그러나 차마 못하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비록 많은 나쁜 짓을 저릴렀지만, 내가 주모자는 아니다. 그가 나에게 인정을 베풀고 나는 그를 위해 죽어라 일했다. 우리는 서로 비긴 것이다. 누구도 누구에게 빚진 것이 없다. 그는 다시 나를 가지고 놀려고 한다. 나를 죽이거나 감옥에 가두려고 한다. 이것은 너무나 의리없는 짓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반드시 즉시 행동을 취해야 한다. 기회를 틈타서 베이징으로 가는 비행기료를 사면 반드시 들통날 것이다. 출국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여권은 일찌감치 빼앗겼다. 어떻게 할 것인가? 유일한 출로는 미국영사관으로 가는 길이다. 그리고 겨우 3시간 거리이다.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문제는 미국이 나의 정치적 망명신청을 받아줄 것인가이다. 나는 국제법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과거에 반체제인사를 심문한 바 있고, 약간은 안다. 내 생각에 5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최소한 1가지에는 들어맞아야 한다. 하물며 나는 내부자료와 기밀문건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는 보시라이의 부정부패와 흑사회를 치면서 흑사회를 기른 증거가 있다. 그리로 충칭에서 반체제인사를 진압한 사실도 있다. 유일하게 불리한 형세라면, 시진핑이 곧 방미할 것이며 그가 화를 내면 미국이 곤란할 것이라는 점이다. 어찌되었건 한 발을 양보하여, 신청이 실패하더라도, 나는 증거를 미국영사관에 남겨둘 수 있다. 해외매체들이 떠들 것이다. 동정이 커지면, 내 사건을 처리하는 사람들도 단계가 올라갈 것이다. 보시라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진퇴가 자유롭다. 그리고 이것이 일생일대의 활로이다...

 

나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어떻게 나갈 것인가가 문제였다. 나의 집 아래에는 '지키는 사람'이 있다. 그는 24시간 나를 감시한다. 그리고, 50만개의 카메라가 사각을 남기지 않고 있다. 나는 창문으로 내려다 보았다. 나를 감시하는 특무는 처커민이 보낸 것이다. 나는 당당하게 걸어나가서 조호이산(調虎離山)의 계책을 써야 겠다. 나는 그에게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할 것이다. 이전에, 나는 자주 일요일 저녁에 서남의원으로 진료받으러 갔다. '감시인'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저 나의 행적을 두 사람에게 보고할 것이다. 하나는 보시라이이고, 다른 하나는 서남의원 부군의 또 다른 감시인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내가 병원의 고급간부방으로 들어간 후, 일을 마친 후, 다시 내려올 때는 이미 변장을 하고, 건물아래의 '감시인'은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이상할 것도 없다. 이 병원은 청두군구후근부 위생부 관할이고, 또 다른 명칭은 "성제3군의대학'이다. 위치는 사평패구에 있고, 청두-충칭고속도로에서 아주 가깝다. 이 건물은 모두 8개층이며, 나는 위에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나의 핸드폰을 꼭대기에 있는 방안에 놔두었고, 심카드를 끼우지 않은 핸드폰을 몸에 지녔다. 이렇게 하여 '감시인' 및 그 상사는 안심하게 된다. 나는 '휴가식치료'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후 나는 부녀로 변장했고, 가발을 썼다. 밤을 틈타서 건물을 내려온다. 그 병원에는 입원한 사람이 아주 많다. 내가 걸어내려올 때,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이전에 나는 차량한대를 이곳에 숨겨두었다. 다른 사람은 모른다. 차번호판은 공안번호판이 아니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자신의 차를 병원정문에 버려두고, 뒷문으로 도망쳤다. 10분후 고속도로에 올라간다. 난충(南充) 방향으로 내달렸다. 그때 나는 리쥔을 생각한다. 그는 내가 체포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의 기업인 금룡옥봉호텔이 바로 이 근처에 있다. 그의 사업은 사평패구에서 시작했다. 내가 그를 몰아간 죄증은 함정수사로 얻어낸 것이다. 2010년말, 그가 도망갈 때도 청두에서 도망갔다. 지금 꿈을 꾸는 것같다. 시간은 1년여밖에 흐르지 않았는데, 나도 청두로 도망치고 있다. 아 이것이 인과응보인가?

 

나는 마음 속으로 묵묵히 참회했다.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은 스스로를 해치는 것이다. 법을 가지고 놀면 결국 법에 걸려서 처벌받는다. 나는 물러서고 싶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내내 마음이 조급했다. 그러나 차를 빨리 몰 수도 없었다. 붙잡히면 안되기 때문이다. 다행이 아주 순조롭게 3시간여를 달려, 청두의 미국영사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한밤중이었다. 니자차오(倪家橋)에 가까워졌을 때, 전화에 새로운 심카드를 끼우고, 안에 있는 사람과 통화를 했다. 기실 이 순간 청두시 국가안전국에서 전화감청하는 사람들은 나를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일요일은 공휴일이다. 그들은 아마도 소홀히 했을 것이고, 나는 순조롭게 미국영사관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금방 바깥에서 돌아온 총영사 하몬드(何夢德)를 만난다. 그 뒤의 이야기는 이미 인터넷에서 자세히 알려져 있으니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 결국 내가 기대한 대로 되었다. 너 보시라이가 나에게 의리를 지키지 않았느니, 나도 너에게 의리를 지키지 않겠다. 나는 어사망파도 두렵지 않다. 내가 유일하게 유감스러운 것은 이전에 직접 구매한 경찰차와 장갑차가 보시라이에 의하여 나를 붙잡으러 보내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대담하게도 미국영사관을 포위했다. 내가 구매한 고급경찰복은 지금도 여전히 그들이 입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적이 된 것이다. 더욱 웃기는 일은 내가 산 50만개의 카메라가 나를 추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정말 큰 풍자이다.

 

나의 정치적 망명이 거절되자 부득이 영사관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한눈에 대머리인 황치판이 보였다. 그는 70여대의 경찰차를 지휘하며 스촨성의 국보(國保), 무경, 국가안전부와 대치했다. 마치 블록버스터 경찰영화의 한 장면과 같았다. 우리는 격렬한 말다툼을 벌였고, 그는 충칭의 경찰이 데려가게 하려 했고, 나는 분명하게 거절했다.

 

그는 나에게 '휴가식 치료'를 약속했고, 부부장급의 대우를 영원히 유지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말했다. 더 이상 보시라이의 말을 믿지 않는다고.

 

한 경찰차 안에, 한 여경이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그 날을 비가 내리지 않아서, 내가 설계한 붉은 우의는 입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빨갛게 되어 있었다. 그렇다 그녀는 내가 직접 면접하여 채용했던 여경이다. 나에게 보답하기 위하여, 그녀는 나에게 다리를 내준 적이 있다. 바로 욕조 벽에 부딪쳐 혼절했을 때의 일이다. 그때 그녀는 얼마나 다정다감했던가. 그러나, 지금 그녀는 나를 분노에 차서 눈을 부릅뜨고 보고 있다. 눈에서 불꽃이 튈 것같았다. 나는 알았다. 나는 국가의 공적이 되었고, 중국공산당의 체면을 땅바닥에 떨어뜨렸고, 체제로부터 나는 철저히 버림받았다. 나는 법률의 재판을 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보시라이의 수중에 떨어지고 싶지는 않다. 가련한 시신이 되기는 원치 않는다. 몸 위에 붉은 색의 당기가 덮이는 것도 바라지 않고, 가족과 군중을 속이고 싶지도 않다. 나는 전세계에 알리고 싶다. 보시라이는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을. 그가 정권을 잡으면 중국에 거대한 재난이 올 것이라는 것을. 지금 나는 만족한다. 아마도 나는 제2의 원창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중국을 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