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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보시라이-왕리쥔사건

보시라이의 악수

by 중은우시 2012. 2. 23.

글: 장천량(章天亮)

 

왕리쥔사건이 중국대륙에 일으킨 지진은 이제 막 시작하였다.

 

왕리쥔은 보시라이의 '타흑' 간장이다. 중공정치국위원 보시라이는 2007년 12월 중경시위 서기로 취임했고, 2008년 6월 왕리쥔을 진저우에서 충칭으로 데려온다. 왕리쥔에 의존하여, 보시라이는 '타흑'의 명목을 내걸고, 과거 충칭의 관료체계를 숙청했다. 이것은 보시라이가 왕리쥔을 오른팔로 삼았다는 것이다. 만일 보시라이가 아직도 중앙정치국 상임위원으로 승진할 가능성이 있다면, 왕리쥔을 보호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보시라이가 왕리쥔을 보호해주지 못하면, 그 자신도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다.

 

보시라이는 중국고위층에 인맥이 좋지 않다. 2011년 6월 11일, 보시라이는 500명의 '홍가단'을 이끌고 북경으로 가서 공연을 한다. 아홉명의 정치국 상임위원중에서 한 명도 출석하지 않았다. 이것은 보시라이가 작년에 벌인 첫번째 악수이다. 그가 중국고위층에서 고립무원이라는 것을 중국인들에게 드러낸 것이다.

 

중경으로 돌아온 후, 10월 5일, 보시라이는 <중경일보>의 제1면 잘 보이는 곳에 덩샤오핑의 동생인 덩칸(鄧墾)의 제자(題字)를 실었다. 10월 6일에는 다시 <중경일보> 제2면에 후진타오의 당제(堂弟)인 후진싱(胡錦星)의 인터뷰를 실었다. 둘 다 보시라이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였다. 날카로운 사람이 보면 이것은 보시라이의 두번째 악수이다. 왜냐하면 그는 분명히 후진타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후진싱을 내세운 것이다. 이규를 못찾으니 이귀를 찾은 꼴이다.

 

11월 10일, 후진타오가 하와이로 APEC정상회담에 참가하러 갔을 때, 보시라이는 충칭에서 군사훈련을 크게 벌인다. 신화사에서 전재한 <중경일보> 보도에 따르면, "청두군구국동위(국가국방동원위원회) 제6차 전회실병연습이 충칭에서 거행되었다. 충칭시위서기 보시라이, 중앙군사위위원, 국무위원 겸 국방부장 량광례, 청두군구사령관 리스밍, 정치위원 텐슈쓰, 부정치위원 퓨창건, 참모장 아이후성, 시장군구사령관 양진산, 쓰촨성장 장쥐펑, 꾸이저우성장 자오커즈, 충칭시장 황치판, 윈난성 대리성장 리지헝, 티벳자치구정부 부주석 자러 로상단증등이 참관했다"

 

이것은 보시라이의 세번째 악수이다. 후진타오가 중국을 떠나 있을 때, 보시라이는 이런 방식으로 후진타오에게 패를 내밀은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것은 후진타오에게, 보시라이는 군대동원능력이 있다고 보여주는 것이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카드를 내놓아야 할 때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별로 주목하지 않았겠지만, 2012년 1월 15일자 보도에 따르면, 중앙군사위 부주석 쉬차이허우, 궈보슝 및 총정치부장 리지나이가 공개적으로 말했다. 군대는 '후주석의 지휘를 따라야 한다"고. 2월 2일, 황리쥔이 충칭시 공안국작의 직에서 면직된다.

 

시간순서에 따라 일련의 사건을 분석해보면, 필자는 이렇게 추측해볼 수 있다. 후진타오는 이미 보시라이를 제거하기로 결심했다. 왕리쥔부터 손을 댈 생각인 것이다. 만일 보시라이가 왕리쥔을 죽어라 보호해주려고 한다면, 두 사람은 공수동맹을 맺어야 한다. 그랬다면, 아마도 후진타오와 계속 싸울 수가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보시라이는 책장 뒤집는 것보다 더 쉽게 얼굴을 바꿨다. 즉시 왕리쥔을 버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왕리쥔은 보시라이의 일을 너무나 많이 알고 있다. 보시라이에게 버림받은 후, 살인멸구의 위험을 느낀 것이다. 그리하여 스스로를 최대한 보호하는 조치는 충칭을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왕리쥔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미국영사관이 그에게 정치망명을 허용하지 않을 것임을. 그가 영사관을 선택한 것은, 아마도 일을 크게 만들기 위함일 것이다. 일단 충칭을 떠나게 되면, 미국영사관에서 충분한 시간을 기다릴 수 있고, 베이징이 개입하게 된다. 왕리쥔의 인신안전은 잠시 보장되는 것이다. 해외의 여러 매체에서 충칭시장 황치판이 70대의 경찰차를 끌고 가서 왕리쥔을 충칭으로 데려가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중앙기율검사위원회는 왕리쥔을 데려가리고 결정했다. 그래서 왕리쥔은 8일 아침 청두의 쐉류공항에서 북경으로 날아간 것이다. 그리고 보시라이와 '어사망파'하겠다고 선언한다.

 

정치국위원이라고 하여 안전하지는 않다. 천시통, 천량위는 모두 정치국위원 자리에서 낙마한 것이다. 보시라이는 마음과 수단이 독하여 고위층에 동맹자가 없다. 그의 최후는 아마도 정치국상임위원에 못들어가는 정도가 아닐 것이다. 만일 그의 관운이 여기서 끝나고 체포되어 하옥된다고 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