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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대륙과 대만

왕쉐홍(王雪紅): 남다른 재벌2세

by 중은우시 2012. 2. 26.

글: 중국기업가

 

 

 

왕쉐홍은 말그대로 '재벌2세'이다. 그녀의 부친은 대만의 유명한 '경영의 신'인 포모사플라스틱그룹의 동사장인 왕용칭(王永慶)이다.

그러나, 그녀는 남다른 '재벌2세'이기도 하다. 부친대의 영광을 등에 업고, 그녀는 독립하여 사업을 했다.

2011년 6월, 포브스의 글로벌부호랭킹에서, 왕쉐홍과 남편 천원치(陳文琦)는 미화68억달러의 순자산으로 전년도 타이완 최고부자인 '전세계OEM의 왕"인 홍하이그룹의 궈타이밍(郭台銘)을 누르고 새로운 타이완 최고부자의 자리에 올랐다.

이 모든 것을 이루는데, 왕쉐홍은 부친의 자원에 의존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는 일부러 부친이 준 도움을 피했다. 만일 있다면, 그것은 바로 부친이 그녀에게 심어준 '독립성'일 것이다.

왕쉐홍은 1958년 대가족에서 태어난다. 부친 왕용칭은 세 명의 부인이 있고, 모두 2남7녀를 두었다. 첫째부인 궈웨란(郭月蘭)은 자식을 두지 못했다. 둘째부인 양쟈오성(楊嬌生)은 2남3녀를 낳았다. 왕구이윈(王貴雲), 왕쉐링(王雪齡), 왕원양(王文洋), 왕쉐홍, 그리고 남동생 왕원샹(王文祥); 셋째부인 리바오주(李寶珠)는 네 딸을 낳았다.

 

왕용칭의 신념중 하나는 바로 아이들의 '독립성'을 기르는 것이었다. 왕쉐홍의 오빠, 언니들은 모두 어려서부터 영국으로 보내어져 공부를 한다. 왕쉐홍에 이르러서는 왕용칭이 세계의 경제문화중심이 이미 영국에서 미국으로 옮아갔다는 것을 느끼고, 15살된 딸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유태인 기숙가정에 던져버린다. 그녀의 독립적인 생활은 대륙의 재벌2세들이 받은 것과는 천양지차가 있다.

 

부친과의 서신왕래과정에서, 부친은 자신이 일처리를 하다가 부닥친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결책을 찾았는지에 관한 내용을 자세하게 왕쉐홍에게 말해준다. 이것은 왕쉐홍에게 가장 아름다운 기억이자 자산이었다. "비록 부친과 내가 같이 한 시간은 적었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부친이다" 왕쉐홍의 회고이다.

왕쉐홍은 클래식음악을 좋아했고, 많은 정력을 들여서 피아노를 배웠다. 그녀는 작곡가가 되는 꿈을 꾸었다. 그래서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의 음악대학 작곡과에 입학한다. 3주만에 그녀는 생각을 바꾼다. 음악에는 천부적인 재능이 필요한데, 왕쉐홍은 자신에게는 그것이 없다고 깨달은 것이다. 그녀는 지도교수와 오랜 시간을 얘기한 후에 경제학과로 옮긴다.

 

졸업후, 왕쉐홍은 부친이 불러 포모사 플라스틱으로 들어간다. 며칠 후, 왕쉐홍은 재미없는 회사일에 질려버린다. 부친의 뜻에 어긋나게 그녀는 몰래 언니 왕쉐링과 자형이 창립한 다중(大衆)컨퓨터회사에 출근하여 업무를 한다.

아마도 부친의 유전자때문인지, 아니면 월급쟁이의 재미없는 생활 때문인지, 1988년 왕쉐홍은 다시 스스로 창업하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녀는 부친에게 돈을 빌리지 않고, 모친의 타이페이 주택을 담보로 잡혀 은행에서 500만대만달러를 빌려, 실리콘밸리의 한 회사를 인수한다. 이것이 바로 나중이 웨이성(威盛)전자주식유한회사의 전신이다.

웨이성의 사업은 칩제조였고, 판매는 계속 괜찮은 편이었다. 그러나 국제적인 대기업에서 경계심을 갖게 된다. 1992년의 어느 날, IT업계으 거두인 인텔회사의 CEO인 Andy Grove가 왕쉐홍은 만나자고 한다. 생각지도 못하게, 만난 내용은 Grove가 그녀에게 경고하기 위함이었다: "이것을 하지 말라. 인텔은 칩분야의 도전자에게 아주 엄격하다."

 

왕쉐홍과 당시의 창업파트너인 나중의 남편 천원치는 이에 굴복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칩을 연구개발한 사람은 대부분 타이완에서 온 유학생들이었다. 그리고 인텔은 제품을 아주 비싸게 판다. 무엇때문에 다른 사람이 칩을 만들지 말라고 하는가?" 왕쉐홍은 7년의 시간을 들여 전세계 70%의 칩시장을 공략하고, 1999년 웨이셩은 상장을 한다.

인텔은 다시 애를 먹이기 시작한다. 웨이성이 신제품을 개발할 때마다, 인텔은 그들은 '권리침해'로 고발한다. 이에 굴복하지 않은 왕쉐홍은 세계각지를 다니며 인텔의 소송공세에 맞섰다. 그녀는 100여회의 공청회에 참가한다.

 

"우리가 결국 이겼다. 우리는 유일하게 그들과 끝까지 싸운 중국기업이다. 그들은 우리와 하와이에서 합의를 한다. 인텔이 얼마나 큰 회사인가. 우리는 얼마나 작은 회사인가. 그때 8개국가, 개략 30개도시에 우리는 모두 날아갔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와이를 찾았고, 우리가 승소했다. 합의로 끝난 승소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도 왕쉐홍은 애플과 특허소송을 벌이고 있다.

천원치는 이렇게 부인을 형용한다. "강해야 할 때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다. 달성하고자 하는 변화에 대하여는 끝까지 싸운다."

부친인 왕용칭이 포모사 플라스틱에서 세운 카리스마와 중앙집권제도와는 달리, 서방교육을 받은 왕쉐홍은 평등소통, 권한분산등으 이념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15년동안, 왕쉐홍은 이미 30여개의 회사를 보유한다. 그러나, 모든 회사는 그녀 혼자서 의사결정하지 않는다. 부하들도 그녀와 말다툼을 하고, 그녀와 농담도 한다.

 

왕쉐홍의 곁에서 여러해동안 일을 했던 한 경영진은 이렇게 회고한다. "그녀가 필요로 하는 인재는 온갖 방법을 강구해서 채용한다. 높은 급여, 높은 직위는 당연하다. 그러나 그녀는 더 해준다. 그가 충분히 중용된다는 느낌을 갖게 해준다." HTC의 초임 총재인 줘훠투(卓火土)의 말이다. 그는 왕쉐홍이 삼고초려해서 모셨다. 그가 50세가 되던 해에 미국에서 타이완으로 모셔서 그와 함께 창업한다.

두께가 2밀리미터도 되지 않는 팜컴퓨터를 연구개발하기 위하여, HTC는 창업전 2년동안 4.4억 대만달러를 썼다. 스스로 의사결정에 문제가 있다고 느낀 줘훠투는 부동산계약을 담보로 제공하면서, 왕쉐홍에게 계속 투자하자고 한다. 왕쉐홍은 두 말도 하지 않고, 다시 주당 40위안으로 증자해준다. HTC의 창립전 5년간 최소한 10억대만달러를 손해보고나서 비로소 이익을 낸다. 그후 왕쉐홍은 그녀의 웨이성과 HTC와 함께 잘 나가고 있다.

 

"그들은 모두 총명한 사람이다. 그들이 제품을 만들어내지 않았더라면, 시장이 아직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왕쉐홍의 말이다. "사람을 쓰면 의심하지 말라. 만일 믿지 못하면 아예 쓰지를 말라." 많은 직원들의 마음 속에, 그들이 따른 것은 웨이성, HTC가 아니라, 왕쉐홍이라는 오너이다.

부친의 영향으로, 지금 황쉐홍은 자신의 두 아들 (장남은 17살, 차남은 11살)을 미국에 던져놓고 공부하게 했다. 그러나, 그녀는 아들의 미래발전방향에 전혀 간여하지 않는다. 마음 속으로 그녀는 두 아들이 목사가 되고, 자신의 사업을 계승하지 않았으면 한다.

왕쉐홍은 크리스찬이다. 이것도 우연한 기회로 그렇게 된 것이다.

 

왕쉐홍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성격이다. 그녀는 당겨진 활줄과도 같이 살았고, 심할 때는 며칠간 잠을 자지 못했다. "나는 각종 방법을 써서 마음을 편히 가지려 했고, 한밤중에 일어나서, 책을 읽고, 산보를 하고, 당시송사를 외우기도 했지만, 모두 효과가 없었다. 거의 붕괴될 지경에 처했었다." 그녀는 기독교를 믿는 큰언지 왕구이윈에게 도와달라고 한다. 큰언니는 그녀에게 신에게 기도를 해보라고 한다 .신이 그녀에게 잠을 자게 해준다면 성경을 한번 읽겠다고 약속한다. 왕쉐홍은 의심을 가득 품고 응락한다. 그러나 몇번의 기도는 모두 효과를 얻지 못했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신에게 화를 낸다. 큰언니는 그녀를 일깨워준다. 먼저 신에게 약속을 지키고, 자신의 승락을 지켜야 한다고.

 

지금 기독교 신앙은 일찌감치 왕쉐홍의 골수에 새겨졌고, 기업경영이념에까지 새겨졌다. 2012년 HTC가 애플, 삼성등 국제적 대기업으로부터 압력을 받을 때에도, 그녀는 여전히 낙관적이고 적극적인 마음을 유지한다. 사면초가이지만 여전히 그러하다.

1월 15일, 회사의 연회에서 그녀는 마이크를 들고, 한손을 아래로 흔들면셔ㅓ, '앞으로 나가자'라는 노래를 불렀다.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그녀는 "현재의 작은 성공 혹은 작은 실패, 작은 곤란이 내일이 어떠할 것이라는 것을 대표하지 않는다. 내일을 봐라. 미래를 봐라. 좀 멀리 봐라. 왜냐하면 나에게는 아직도 미래가 있다. 나는 크리스찬이다. 나는 영생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