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정치/대륙과 대만

캉스푸(康師傅)의 금의환향

중은우시 2009. 8. 14. 22:14

글: 김천(金泉), 이원(李媛)

 

대만부동산의 미래 부가가치잠재력을 좋게 보았기 때문에, 타이완 정신(頂新)그룹은 500만NT달러를 들여 대만의 부동산에 투자했다. 그중, 위씨형제는 타이페이101회사의 22.07% 지분을 인수해서, 단일 최대주주가 된다. 정신그룹측에서는 지분을 계속 늘여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타이페이101은 아마도 이번 9월 28일에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이사와 감사를 선임할텐데, 업계에서는 위씨형제가 동사장이나 총경리의 자리를 다투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다.

 

타이페이101빌딩의 높이는 508미터로 현재 기준공된 전세계 최고층빌딩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금년 하반기에 타이페이101은 북경, 상해로 가서 업체모집을 할 것이라고 한다. 업계에서는 이것이 정신그룹이 손을 쓴 주요한 윈인일 것으로 본다. 그리고 정신그룹의 거액투자는 타이완 정계, 금융계를 공황에 몰아넣었다. 어떤 입법위원(한국의 국회의원)은 당국이 정신그룹의 자금원을 조사해야한다고 말했다.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타이페이101을 '대륙자금의 수중"에 넘어가게 해서는 안되고, 타이페이101은 타이완의 정신지표, 보루이므로 절대 빼앗겨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반대의견도 만만찮다. 국민당 입법위원인 비홍태(費鴻泰)는 "정신그룹에 마음대로 모자를 씌울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당국이 타이완상인의 귀향을 장려하지 않는가? 타이완상인들이 이제 돈을 가지고 돌아오는데, 설마 싫다고 할 것인가? 하물며, 타이페이101은 원래 개발때부터 민간자금이다. 그저 조건만 맞으면 팔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인수로 발생한 말싸움에 대하여, 정신그룹의 캉스푸지주유한회사의 동사장 위응주(魏應州)는 이렇게 강조한다. 타이페이101은 좋은 대상물이다. 그래서 시비도 많다. 정신이 타이페이101의 지분을 매입한 것은 현재의 환경이 타이완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타이페이의 경제가 발전할 것이다. 정신그룹의 위씨는 이 양안관계의 완화로 인하여 파생하여 발생하는 상업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더더구나 타이완을 사랑하기 때문에 '연어의 귀향'이라는 심정으로 타이완의 부동산에 투자했다고 한다.

 

정신의 인수는 타이완을 이처럼 놀라게 만들었다. 가장 주요한 원인중 하나라면 바로 정신이 대륙에서 순풍에 둧단듯 잘나가다가 자금을 들고 금의환향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고향을 떠날 때는 대기업도 아니고 대부호도 아니었다.

 

중국의 일반백성들이 보기에 '캉스푸'는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는 단어이다. 그러나 위응주를 얘기하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비록 캉스푸브랜드광고는 사람들의 시야에서 벗어난 적이 없지만, 이 캉스푸지주유한회사의 동사장과 그의 형제들은 조용하다. 초기에 대륙으로 진출한 타이완상인들과 마찬가지로 드러내기를 좋아하지 않고 조용하게 지낸다. 1954년, 타이완 창화에서 출생한 위응주는 위씨 4형제중 장남이다. 4살때, 부친인 위덕화(魏德和는 대만에 정신(頂新)유지가공공장을 창립한다. 주로 피마자유, 팜유등을 생산판매했다. 1978년, 위덕화가 사망한 후, 정신은 4형제가 이어받는다. 이 이름없는 유지공장이 처음에 대륙에 진출했을 때는 그다지 순조롭지 못했다. 타이완내에서의 발전도 그다지 순조롭지 않았으므로, 1980년대말기에 위씨형제는 1.5억NT달러를 가지고 대륙으로 건너갔다. 1989년부터 1991년까지의 3년동안, 위씨는 대륙에 4개의 합자기업을 설립한다. "정호청향유(頂好淸香油)", 캉라이(康萊)계란쿠키, 피마자유등의 제품을 시도했다. 비록 제품품질은 뛰어났지만, 대륙시장의 소비자들은 구매력이 아직 부족했다. 1.5억NT달러의 원금을 거의 절반이나 까먹었다.

 

이때, 캉스푸식품왕국의 '개국공신'인 라면이 등장한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같이 등장한다. 1991년, 위응주의 넷째동생인 위응행(魏應行)은 기차를 타고 가면서 타이완 고향에서 가져온 즉석라면을 먹었다. 그 향기는 곁에 있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사람들이 도대체 어디서 이런 라면을 가져왔느냐고 물어보았다. "대륙이 이렇게 넓은데, 기차를 타는 사람도 이렇게 많은데, 라면시장은 얼마나 클 것인가?"  비록 캉스푸에 나중에 입사한 직원들도 이때의 위응행이 얼마나 흥분했었는지를 말하곤 한다. 그러나, 시장조사를 해보니, 위씨형제들은 대륙시장에 이미 적지 않은 라면기업이 진출해있음을 알게 된다. 마찬가지로 타이완에서 건너온 통일그룹도 이미 10여년의 라면경영역사를 가지고 있다. 당연히, 실망하면서 희망도 보았다. 당시 라면제품은 양극분화가 명확했다. 품질과 가격이 적당한 제품은 시장에서 아직 공백인 상태였다. 그리하여, 원래 천진에서 과자를 생산하려고 준비하던 계획을 라면생산으로 바꾸게 된다. 1992년 8월 21일 위씨형제는 800만달러를 투자하여 천진개발구에 천진정익(頂益)국제식품유한공사를 서립한다. 캉스푸의 첫번재 소고기라면(紅燒牛肉麵)이 탄생한 것이다. 중국인의 입맛에 맞는 1.98위안의 가격은 캉스푸가 세상에 나오자 마자 중국인들의 아믐 속에 라면의 대명사로 자리잡는다. 1994년부터, 캉스푸는 광주, 항주, 무한, 중경, 서안, 심양등지에 생산기지를 설립하고, 전국에 구역화된 생산판매구도를 갖추게 된다.

 

지금은 여러해동안의 노력을 거쳐, '캉스푸라면'으로 자리잡은 정신그룹은 대륙에서 이미 식품제조, 식당, 유통등 여러 분야에 걸쳐 있다. 그리고 위씨4형제는 서로 업무를 분장하고 있다. 첫째 위응주는 '캉스푸'와 관련된 식품사업을 관장하고, 둘째 위응교는 토지개발을 주관하고, 셋째 위응윤은 대만의 '미전(味全)'사업을 책임진다. 넷째, 위응행은 식당사업과 대륙의 전가(全家)편의점을 주관한다.

 

사실 타이페이101의 지분을 매입하기 전에, 캉스푸는 대만에서 움직임이 있었다. 그저 지금처럼 대단하지 않았을 뿐이다. 1998년 4월, 정신그룹은 주당 70NT달러의 가격으로 타이완의 랭킹2위식품그룹인 미전회사를 인수한다. 그리고 경영권을 차지한다. 1999년, 정신그룹은 미전의 지분을 확대한다. 그러나, 그후 미전의 주가는 70여NT달러에서 4.55NT달러까지 급락한다. 여기에 사업발전을 너무 빠르게 하고, 고정자산에 투자하다보니, 캉스푸의 현금흐름이 좋지 않게 되고, 재무제표에 붉은 등이 켜진다. 주가의 폭락으로 재정상태는 더욱 악화된다. 어쩔 수 없이, 위씨형제는 캉스푸지분을 팔아서 긴급자금을 마련한다. 그해 7월, 일본산요(三洋)식품주식회사는 주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1.4억달러의 현금으로 캉스푸의 33%지분을 인수한다. 그렇지만 위씨형제들이 여전히 경영권을 유지했다.

 

이 경력은 이후 위응주로 하여금 10년간 신중한 태도를 취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는 기업인수시 3가지 '불매(不買)"원칙을 세운다: '100%가 아니면 사지 않는다' '하락하는 기업은 사지 않는다' '돈이 있더라도 경영능력이 없는 것은 사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더욱 엄밀하게 사전시장조사, 판매채널을 진행했다. 한 직원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사장은 전국각지의 상황을 잘 알고 있다. 만일 우리가 잘못 말하면 그는 즉시 알아내고, 헛소리하지 말라고 한다."

 

지금은 타이완에서 '미전'의 사업이 매년 좋아지고 있다. 주가도 최근 11년이래로 최고점에 달했다. 동시에 숙적인 통일기업을 누르고 식품주의 왕좌에 올랐다. 이와 동시에, 캉스푸의 최근 영리상황도 계속 증가한다. 주가도 계속 상승하여 위씨형제의 재산은 급격히 늘어난다. 최근 포브스가 공포한 타이완지역의 부호랭킹에서 위응주가 5위에 올랐다. 이 모든 것은 금의환향한 위씨형제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천수이벤이 총통으로 있는 동안에, 타이완상인이 되돌아오게 하기 위하여 일찌기 일련의 우대조치를 취한 바 있다. 예를 들어, 2000억NT달러의 타이완상인귀향투자전문대출자금을 만들고, 토지임대료는 "006688"의 우대조치를 해주었다. 즉, 제1차, 제2차연도는 면제, 제3차, 제4차연도는 60%만 내고, 제5차, 제6차연도는 80%만 내도록 해주는 것이다. 비록 정책우대가 있지만 효과는 좋지 못했다. 타이완상인중에서 타이완으로 돌아오려는 의욕은 아주 낮았다. 마잉주(馬英九)가 타이완의 총통이 된 후에, 양안개방정책이 더욱 가속화되고, 대륙주민의 타이완관광도 개방되고, 통항, 통상, 통우의 '삼통'이 실행된다. 일련의 조치는 타이완자금이 타이완으로 되돌아오게 만들었다. 타이완의 '경제부차관'인 스얜샹은 이렇게 말한다. 양안의 해운을 예로 들면, 만일 제3지역 비자비까지 합친다면, '삼통'후에 평균 매편마다 30만NT달러를 절약할 수있다고 한다. 매년 4000편의 운송을 예로 들면 1년에 12억NT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는 말이다. 거래시간과 운송원가가 대폭 하락하였다. 이는 기업의 운영원가를 낮추어 주고, 제품을 타이완으로 가져와서 가공한 후에 판매할 수 있는 유인이 된다. 그리하여 더 많은 타이완자금이 타이완으로 돌아오고 있다.

 

'삼통'의 이런 예상효과는 타이완자금을 타이완으로 돌아오게 하는 유인중에서 타이완상인들이 가장 중시하는 것이다. 타이완의 투자기회는 어디에서 오는가? 타이완은 접싯물(淺碟)형 경제체이다. 자신의 내수에 의지해서는 그렇게 많은 공장들을 지탱할 수가 없다. 일단 양안교류의 장애만 타파되면, 양안의 경제무역교류가 정상화되고, 내수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