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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기업

입인집단(立人集團): 원저우 흡금제국(吸金帝國)의 흥성과 붕괴

by 중은우시 2012. 2. 24.

글: 안검(顔劍)

 

음력 정월 십팔일(2월 9일), 원저우 타이순현에서 백가연(百家宴)을 여는 날이다. 현지 풍속에 따르면, 백가연은 구정이후 또 한번의 성대한 명절이다.

기자가 타이순현에서 원저우입인교육집단의 자금모집사건을 조사할 때, 귀청을 찢는 폭죽소리가 원저우 타이순현의 곳곳에서 울려퍼졌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 코를 찌르는 화약냄새가 마을을 떠돌았다.

일년에 한번뿐인 백가연이 아이들이 열심히 기다리는 가운데 열렸다. 그러나, 좌석에 앉은 어른들의 얼굴에 웃음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입인집단 자금모집사건의 심각한 영향은 아마도 이곳의 경제와 사람의 생활을 10년은 후퇴시켰을 것이다.

 

휘황한 흡금제국

 

"그 사람 모른다." "그사람과 친하지 않다" 기자가 동순성(董順生)에 대하여 물으면 많은 채권자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2011년 10월 31일, 입인집단이 채무상환중지를 선언한 후, 입입교육집단의 동사장 동순성은 그후 2주일동안 링거를 맞으면서, 타이순현 뤄양옛시가지 양신제 32호 2동에서 채권자를 맞이했다. 이때서야 채권자들은 처음으로 타이순현에서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인물을 만난 것이다.

10여년동안 동순성과 그가 설립한 육재(育才)시리즈학교는 타이순에서 명성을 떨쳤다. 2011년 10월 31일에 돌연 바닥으로 떨어져버린 것이다.

1961년, 동순성은 타이순이라는 '구산반수반푼전(九山半水反分田)'의 곳이다. 그리하여 이름도 '순성'이라고 지었다. 그는 집안의 형제자매중 여섯째이고 중전(中專, 실업계고등학교) 학력이고, 회계를 전공했으며, 딸 하나를 두었다.

1998년, 동순성은 현지 도자기공장에서 사직하고, 다른 6명의 주주들과 도자기공장의 부지를 빌려서 육재고급중학(育才高中)의 교장이 된다.

 

동순성은 학교를 설립운영하는데 재능이 있었다. 그는 높은 급여를 주고 전국에서 우수한 교사들을 초빙한다. 몇년후, 육재중학은 현재에서 교육품질, 진학률이 모두 뛰어난 학교가 된다. 현지의 타이순일중(泰順一中)에 이어 2위였다. 한 타이순현의 관리는 이렇게 말한다. "객관적으로 말하면 동순성은 타이순의 교육사업에 큰 공헌을 했다."

2001년, 그는 다시 육재초중(育才初中)을 설립한다. 2003년에는 육재소학과 유아원을 설립한다. 이를 기초로, 입인교육집단유한공사는 2003년 9월에 설립된다. 주요주주는 여전히 동순성등 7명이고, 등록자본금은 3.2억위안이었다.

학교가 성공한 것이 동순성에게 재산을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입인집단의 동사인 레리샤오차오에 따르면, 1998년 육재고중이 설립된 후 다음해에 결손을 본다. 민간에서의 자금조달이 이때부터 시작된다. 그후 다시는 '돈을 빌려 학교를 만드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동순성에 있어서, 육재시리즈학교는 계속 발전해야 했다. 이것은 학교자체의 경영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물며 학교가 빌린 거액의 채무도 상환해야 했다.

자료에 따르면, 동순성은 2002년부터 새로운 투자의 길을 시작한다. 이해 10월, 그는 타이순에 타이순육재채소생산기지를 시작한다. 그러나, 무공해채소를 생산하는 기지의 연생산액은 80만위안에 불과했다.

2003년 7월, 그는 장쑤 화이안에서 부동산투자사업을 시작한다. 이 상업 및 창고프로젝트는 현재 이미 거의 마무리단계이다. 소수의 상점만이 미분양이다. 이어서 몇년동안 2008년 금융위기가 발발한 때 투자프로젝트가 없었던 것을 제외하고, 그의 투자프로젝트는 상하이, 장쑤, 구이저우, 내몽골등지에서 발생했다. 주로 부동산, 석탄광산프로젝트였다.

10여년의 융자역사에서, 거의 모든 타이순현의 사람들은 동순성을 알게 된다. 동순현으 현성인 뤄양진의 길거리에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아도, 동순성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나는 동순성에게 13만위안을 빌려주었다. 아마도 회수할 수 없을 것이다." 2월 8일 오전 11시, 허리를 굽히고, 삼륜차를 힘있게 밟고 있는 차부(車夫)의 말이다. 그는 오르막길을 힘겹게 올라간 후, 기자를 양신제 32호의 입구까지 데려다 주었다. 별볼일 없어보이는 4층자리 주택건물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 누추한 건물의 2층과 4층에 자금조달액이 백억위안이상인 동순성의 입인집단 사무실이 있었다는 것을.

입인집단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끌어모았을까? 아마도 동순성과 몇몇 심복들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2011년 11월, 입인집단은 미지급채권이 22억위안이고, 채권자는 4천명이 넘는다고 하였다.

 

십여년동안 입인집단의 자금조달총액은 최소한 80억위안에 달한다고들 말한다. 어떤 정보에 따르면, 융자총액이 180억위안이상이라고 한다. 입인집단이 몇해동안 채권자가 상환한 이자는 35억위안에 달한다고 한다.

동순성의 자금을 모으는 기술이 뛰어나서, 입인집단은 현지에서 공상은행, 농업은행, 중국은행, 건설은행 외의 '제5대은행'으로 불리웠다. 입인집단은 심지어 일정기간동안은 최소금액이 30만위안, 혹은 40만위안이상인 경우만 받아들인다고 공표하기도 했다. 이 금액에 미치지 못하면 아예 받지를 않았다.

"수천명의 채권자 배후에는 아마도 수만명의 채무자가 있을 것이다." 현지인사의 말이다.

"나는 언젠가 사태가 터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일 줄은 몰랐다. 2008년의 그 힘든 시기도 넘겼는데..." 한 채권자는 동순성의 말을 이렇게 전했다. 동순성은 마음 속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타이순현의 한 관리는 이렇게 말한다. 채무상환정지를 선포한 후, 현의 고위간부들이 그에게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는데, 동순성은 "계속 빌리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흡금술과 양뗴효과

 

신격화에는 모략이 필요하다. 동순성은 이 분야의 고수이다.

육재시리즈학교는 동순성이 돈을 버는 기반이었다. 동순성이 타이순의 흡금제국을 성공적으로 운용하는 좋은 간판이었다. 동순성의 융자판도에서, 사회공중의 자금모집외에, 육재학교 교내에서 진행한 자금조달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구(顧)선생은 장시사람이다. 2006년, 그는 인터넷을 통하여 육재시리즈학교로 와서 교사가 되었다. 그보다 전에 그의 매부가 이미 2005년에 이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처음 몇년동안 그는 동순성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그런 기회도 없었다. 이것은 '당시에 그에게 돈을 빌려주려면 관계가 있어야 했고. 돈도 있어야 했다."  

"현재, 되돌아생각해보면, 나는 그들의 문제가 2009년이후 나타난다고 느껴진다. 왜냐하면, 2010년부터, 육재학교의 내부에서 연이은 자금조달이 있었다. "천선생의 말이다. 먼저 장쑤 화이안의 프로젝트에 자금모집을 시작하고, 곧이어 2011년 1월부터 내몽골 석탄광산 자금조달이 시작되었다.

 

2010년 9월, 육재학교의 올림피아드수학경시대회사무실 교사처에 이런 소식이 들려온다. 이번의 자금조달은 5푼6리의 이자라는 것이다. 20만위안이상을 받는다고 했다. 이 소식이 퍼져나가자, 선생들 사이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돈을 빌려준다. 당시 입인집단이 사람들에게 주는 이자는 월3푼이었기 때문이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자, 학교는 또 다른 소식을 퍼트린다. 2010년 4월 화이안프로젝트에 투자를 했던 선생들만 돈을 빌려줄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많은 선생들은 이들 자격있는 선생을 찾아서 대출을 하도록 도움을 부탁할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원래 8개월만에 원리금을 상환하려던 계획은 4개월을 앞당겨, 2011년 1월경에 원리금을 전부 상환한다.

 

이번 융자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

2010년 12월, 육재학교의 고위층은 새로운 자금조달전에 동원과 교육작업부터 한다. 교사들은 이렇게 말한다. 2주마다 한번씩 열리는 교직원업무회의에서 입인교육재단의 부동사장이며, 육재고중의 교장인 샤커딩(夏克定)은 동사장 동순성이 보기 힘든 염영한 상인이고, 동사장은 정계, 군대에 모두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교직원들을 안심시켰다.

교사들에게 재산굴리기개념을 확실히 심어주기 위하여 그들은 전문 재산관리투자회사의 사람을 불러서 교직원들을 교육시키기도 했다. "우리는 이렇게 점차 세뇌되었다." 구선생의 말이다.

모든 것은 갖추어졌다. 2011년 1월, 육재학교시리즈 학교에서 새로운 자금모집활동이 벌어진다. 이번 자금모집에서 이전에 참여하지 않았던 교사들이 많이 가담하게 된다.

 

이번 프로젝트는 내몽골의 석탄광산에 투자하는 프로젝트라고 했다. 30만위안이 1주이다. 1년반후에 3-5배의 금액으로 투자자에게 반환하겠다고 약속한다.

교사들이 투자에 안심하도록 만들기 위하여, 2011년 4월, 학교는 선생들을 모아서 장쑤, 내몽골등지로 관광을 보내어 프로젝트를 보게 한다. 일부 트로젝트는 동순성이 육재학교에서 데려간 선생들이 책임자를 맡고 있었다.

프로젝트 참관의 효과는 아주 좋았다. "3장의 사진, 몇시간의 설명으로 프로젝트가 아주 잘 진행되고 있고, 전망이 아주 좋다고 말했다" 현재 아무도 이번 자금조달을 의심하지 않게 된 것이다.

2011년 7월, 다시 한번 자금조달을 시작한다. 이번에도 석탄광산프로젝트였다. 구선생은 말한다. '나는 하루는 4명의 상사로부터 전활르 받았다. 나보고 어떡하든 돈을 마련해서 투자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정말 돈이 없었다."

 

또 다른 한 육재고중의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육재시리즈학교의 죠직원은 모두 어쩔 수 없이 투자하였다. 그 과정을 선생들은 취(吹), 유(誘), 핍(逼), 랍(拉), 함(陷)의 아섯 수단이라고 한다.

이렇게 분위기를 만들자 선생들은 자연히 갖은 방법을 강구해서 투자하게 된다. 심지어 리스크문제조차 생각지 않았다. 육재시리즈학교의 선생 및 금액에 대한 통계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타이순현 교육국 부국장임 마오예화의 말에 따르면, 5.5억위안가량의 선생채권이 있고, 절대다수의 육재시리즈학교 교직원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조직규범이 있는 육재시리스학교에서 돈을 모으는 것에 비하여, 입인집단이 일반인들에게 자금을 모으는 것은 더욱 쉬웠다. 그의 수하에 있는 몇몇 심복들은 거액을 모집하는데 큰 공로들을 세웠다.

입인집단의 양신제 32호의 사무실이 간소한 것과 마찬가지로, 입인집단의 조직구조도 아주 간단하고 규범적이지 않았다. 장샤오샤오, 샤위란, 메이쥐, 차이따친등이 입인집단내에서 지위가 높았지만, 그녀들의 대외신분은 재무주관, 출납, 혹은 회계였다.

 

아는 사람을 내세우고, 친척의 정을 내세우며, 융자받을때의 독문절기인 기아마케팅은 바로 그녀들이 만들어낸다.

"아주 감동적이었다. 샤웨이란이 너의 마음을 건드리면, 그녀들에게 돈을 주지 않으면 미안할 정도이다." 채권자인 류모씨의 말이다. 2011년 8월초의 어느 오후, 그녀 혼자서 청베이루의 곁에 있는 골목길을 산책하고 있었다. 멀리서 샤웨이란이 "아왕오빠, 아왕오빠'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류모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키는 크지 않고, 약간 뚱뚱한 샤웨이란은 그의 앞까지 달려와서 아주 친근하게 말을 시작한다. 한참이 지나자 샤웨이란이 말한다. "아왕오빠. 돈을 우리에게 맡기면 완전히 안심해도 되요. 우리 동사장(동순성)은 마음이 선량해서, 다른 사람의 돈을 빚지고 있으면, 밤에 잠을 다 못잔답니다."

입인집단에 돈을 빌려준 바 있는 류모는 더욱 안심을 했다. 곧이어 그는 마누라를 속이고 친구에게 1푼5리의 이자로 184만위안을 빌려서 8월 5일과 8월 13일에 두번에 걸쳐 동순성에게 건네준다. 그는 입인집단의 3푼이자면 중간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금조달의 문턱을 설정해놓고 나중에는 약간씩 완화시킨다. 이자도 계획적으로 변동시킨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만기전에 원리금을 상환했다. 현지인들에게 입인집단에 돈을 맡기면 안전하고 수익율이 높다는 느낌을 갖게 해주었다. 10여년에 걸친 자금조달과정에서 이런 인상은 더욱 굳어진다.

이런 인상이 일정기간을 지나 강화되고 확산되자, '양떼효과'가 나타난다. '양떼효과'는 정보비대칭으로, 투자자가 미리시장의 불확정성에 대하여 합리적인 예견을 하기 어렵게 되어 왕왕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여, 정보를 얻고, 이런 정보가 계속 전파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정보가 동일하고 피차 강화된다. 이렇게 하여 군중행동이 나타나는 것이다.

"당시에, 아무도 리스크문제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분위기는 그저 계속 돈을 집어넣는 것이었습니다." 채권자들의 말이다.

 

풀기어려운 채무상환수수께끼

 

2월 3일, 동순성, 장샤오샤오, 샤웨이란, 메이쥐, 차이따친등을 포함한 6인의 입인집단 고위층은 불법공중자금흡수죄로 원저우 경찰, 타이순현 공안국에 의하여 형사강제조치를 받는다.

이것은 입인집단사건이 사법절차에 들어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임 간단한 형사절차로 동순성을 처리하고, 그후 회사자산을 처리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관련된 사람이 너무 많고, 현지 사회각계각층의 인사가 여루되어, 어느 해결방안도 반대세력이 많은 것이다.

"사실, 우리가 가장 바라는 것은 민사절차로 가는 것입니다." 200여명 채권자들로부터 위탁을 받은 북경전방(振邦)율사사무소의 린차이홍 변호사의 말이다. 이렇게 해야 그가 대리하는 채권자들에 있어서 권익을 최대한도로 보장받을 수 있다고 한다.

2011년 11월, 입인닙단이 내놓은 3개의 해결방안은 린차이홍이 대리하는 200여명의 채권자로부터 동의를 받지 못한다. 그후 린차이홍은 북경징저(京哲)율사사무소의 장런과 함께 타이순현 법원에 민사소송청구를 제기한다. 그러나 사건수리가 되지 않는다. 여러번의 교섭을 거친 후, 어쩔 수 없이, 린차이홍과 장런은 타이순현 공안국에 고발을 한다. 근 3개월이 지난 2012년 2월 3일 오후, 동순성은 최종적으로 형사강제조치를 받게 된 것이다.

 

일부채권자들은 이 결과를 돌연하다고 여긴다. 린차이홍과 장런은 더더욱 이상하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작년에 고발한 후, 린차이홍, 장런은 동순성과 여러번 교섭을 거쳤다. 그리고 초보적인 채권구조조정의향에 합의하였다. "사실 바로 2월 3일 오후, 우리는 동순성과 만날 예정이었습니다. 우리는 심지어 채권구조조정계약의 초안까지 준비했습니다. 동순성이 오후에 현정부의 회의에 출석한 후, 저녁에 다시 우리와 이 계약서본을 확정하기로 얘기했었습니다." 린차이홍의 말이다.

한 채권자는 육재후근부라고 되어 있는 메세지를 하나 보내주었다. 발송시간은 2월 3일 며칠전의 메세지이다.

 

"입인집단의 최근 상황: 구이저우젠홍을 1.7억위안에 성공적으로 양도함; 양도금은 단계를 나누어 입금될 것임: 상해이방은 이미 주식투자회사를 만들고, 이미 10억여위안을 인수했으며 합법적인 분리를 진행하고 있음; 짱쑤 쉬위는 정부의 도움하에 모집하루빨리 자금을 모집하여 잔여대금을 지급하고 매각을 개시할 것임; 최근 들어 동사구숭원의 재산을 경매하여, 최초의 그리고 이자를 받지 못한(원시어음을 기준으로 함)사람에게 원금의 10%를 지급함; 독립된 회계감사팀의 감사가 진행중임; 육재시리즈학교의 성적은 뛰어나고, 교사학생의 관계는 안정되고 질서정연함"

메세지에서는 "후속: 계속경영, 양도, 소득금액의 분리를 통하여 단계별로 채무를 상환함. 향후 각 채권자의 계속적인 이해, 지지 및 협조를 바람."이라고 하였다.

린차이홍, 장런은 모두 왜 구조조정의 서광이 비치는 때, 형세가 역전되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왜 이전 몇개월간 형사입건을 진행하지 않다가, 마침 사람들이 돈을 가질 때쯤이 되어서야 비로소 조치를 취하는 것인가?" 린차이홍은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대하여, 타이순현의 공식입장은 군중들이 고발을 했고, 중대형사사건은 2달내에 입건여부를 결정하여야 하기 때문인데, 2월 3일일이 마침 그 기간이 종료되는 날이다.

 

2011년 10월 31일부터 2012년 2월 3일 사이에, 입인집단의 자산유실문제는 채권자들이 의문을 표시하는 촛점중 하나이다. 예를 들어, 내몽골 하라거우 노천석타광산은 타이순의 채권인들에 있어서 아마도 그저 '수중월(水中月, 물 속에 비친 달)"이다. 이것은 바로 그 석탄광산이 2011년 11월 28일이후, 12월 5일 내몽골 현지채권자대표가 강제로 접수했다. 12월 28일에는 모든 재무회계자료를 채권자대표에게 건네주었다.

현재, 입인집단은 이미 저장시대변호사사무소 주임 처우스지에게 법률대리를 맡겼다. 처우스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자산조사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어떤 의견도 말씀드리기 힘들다."

 

상당한 일부분의 채권자에 있어서, 동순성과 비교하면, 그들에게 시간이 더 없다. 일부채권자들은 부동산저당으로 1년짜리 대출을 받았고, 그 자금을 입인집단에 빌려주었다. 그중 상당수 채권자의 대출금은 금년 3,4월이 기간만료이다. 이 일부채권자들은 만기일에 은행대출을 갚을 수가 없어서, 건물을 은행에 의하여 경매될 상황에 처해있다.

위에서 언급한 구선생이 바로 이런 상황이다. 그와 매부는 합계 74만위안을 학교에 빌려주었다. 그중 15만위안은 금방 대출만기일이 도래한다. 설상가상으로, 설암(舌癌)을 앓는 여동생은 20여만위안의 치료비를 계속 납부해야 한다. 그의 여동생을 언급하자, 40여세된 구선생은 금방 만면에 눈물을 흘렸다.

 

4. 신화붕괴후의 상처와 여파

 

"시간이 아주 부족하고, 심정은 아주 절망적입니다." 한 채권자의 말이다. 현재의 진전으로 보면 3월말이전에 채권등록을 완료하고, 채무구조조정방안이 확정되기는 이미 어렵다.

일부 초조한 채권자는 비이성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권익을 보호하고자 한다. 육재학교의 한 청소원아줌마는 자신이 힘들게 모은 8만위안을 회수하기 어렵게 되자, 농약을 마시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일부 채권자는 여러번 현정부 고위간부들을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했다.

"이 일은 처리가 어렵다." 한 타이순현의 관리가 한 말이다. 채권자들이 여러 유형이고, 어떤 사람은 집안상황이 곤란하고, 어떤 사람은 돈을 빌려서 살아야 하고, 어떤 사람은 이자를 전혀 받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이미 원금을 회수했다....통일된 방안으로는 그들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다. 이것은 현정부의 집정능력에 대한 하나의 큰 시험이다." 그 관리의 말이다.

 

입인집단, 채권자, 지방정부가 이 곤경가운데 패배자가 될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은행도 예외는 아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부동산담보대출의 상당한 일부채권자들은 은행대출금을 빌려주었다. "아마 은행도 잘 모를 것이다." 한 타이순현의 관리가 한 말이다.

신용카드로 현금을 만들어서 입인집단에 빌려준 경우도 있다. 2012년 1월, 타이순현 법원은 POS기기를 이용하여 신용카드로 1억위안을 현금화한 사건을 심리한 바 있다.

이번 사태에 승자는 없다. 마지막 패자는 아마도 현지의 경제일 것이다. 타이순현은 원저우에서 가장 발전이 느린 곳이다. GDP은 전체 원저우에서 아주 낮은 위치를 차지한다.

 

인근 현인 촹난, 뤼안과 비교하면, 타이순의 부동산업과 공업은 현저히 낙후되어 있다. 이 타이순의 경제는 쉽게 '허구'적인 곳으로 향하기 쉽다. 특히 부동산업이 그렇다. 촹난과 뤼안시의 부동산의 평균가격은 평방미터당 2위안 내지 3만위안에 이른다. 그러나, 타이순현은 평방미터당 7천위안 내지 8천위안이다. 불경기인 부동산업은 유동자금을 흡수하기 힘들다. 유동성은 더더욱 허구적인 민간대출로 향해가게 된다.

공식통계를 보면 이런 주장이 확인된다. 2011년 타이순현의 재정수입은 6억위안에 미치지 못했다. 2010년 가정의 평균총수입은 17.312위안이다. 그러나, 1인당 평균대출수입은 4,298위안에 달하여, 평균총수입의 1/4에 달한다.

입인집단의 자금모집사건은 이 현에 상처를 남겼다. 현재는 언제나 치유될지를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