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강유평(姜維平)
해외매체들의 집중포화속에서 체면을 모조리 구긴 보시라이는 며칠간 사라졌다가, 2월 17일 다시 얼굴을 드러냈다. 이때, 그의 다롄에 있는 한 무리의 일당들은 경궁지조(驚弓之鳥)처럼 한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 이유를 따져보면, 부정부패때문이 아니겠는가? 그가 무너지지 않는 한, 그들 심복들은 배경이 있고 희망이 있는 것이다. 랴오닝성의 서기인 왕민(王玟)과 다롄시위 서기인 탕쥔(唐軍)도 그들에 대하여 손을 쓰지 못할 것이다. 보시라이는 자신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역시 부정부패이다. 그래서 월남공산당 중앙정치국위원, 중앙서기처서기, 중앙조직부부장인 쑤후이를 만났을 때, <애련설(愛蓮說)>을 얘기하며 자신의 결백을 보이며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했다.
충칭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쌍방은 충칭과 베트남의 합작을 강화하는데 대하여 교류했고, 쑤후이는 충칭에 대하여 높이 평가했다. 그는 충칭은 중국서부의 중심도시이며, 이번 충칭행은 베트남에서 온 동지들에게 수확이 많고, 깨달은 것도 많았다고 말했다. 보시라이 서기의 지도하에, 충칭경제는 신속히 굴기하고, 최근 들어 GDP가 연평균 15%이상 증가했으며, 전세계에서 가장 발전속도가 빠른 곳중 하나였다. 민생은 효과적으로 개선되고, 환경과 인프라건설등 각 분야의 성취도 남다르다. 아주 대단하다. 베트남에도 이런 말이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충칭이 얻은 성취를 우리는 충심으로 치하하며, 깊이 탄복한다.
보기에 이번 방문은 작년에 이미 준비된 일정이었다. '왕리쥔사건'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는 카나다총리 하파와 마찬가지이다. 보시라이는 쫓겨나기 전에 마지막 행사를 치르는 것이다. 그는 첫번째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행동했다. 자신의 지위가 안정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왕리쥔의 휴가식치료시간이 길어지면 질수록 나는 지방정부의 최고수장 자리에 남아있는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쑤후이의 입을 빌어, 자신을 변호하고자 한 것이다. 고인의 <애련설>을 이용하여 자신이 청렴하고 멸사봉공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어쨌든 쑤후이야 중국고문을 잘 모를 것이고, 주돈이가 뭐라고 했는지도 자세히 모를 것이다. 더더구나 보시라이가 부정부패한 사실도 모를 것이다. 보시라이가 조종하는 매체는 허구의 청백리를 만들어내고, 우민들을 다시 한번 속였고, 월남고관도 갖고 놀았다.
보도에서는 쑤후이의 말을 빌어, 이번 방문은 당건공작(黨建工作)을 중점 고찰내용으로 삼았다고 한다. 보시라이서기는 중국의 <애련설>을 막 소개하며, 연꽃은 "진흙속에서 자라지만 더러움을 묻히지 않고, 연꽃은 맑지만 요사스럽지 않다"고 하였다. 그 뜻은 당원간부는 청렴하고 단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외부환경이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얼마나 많은 유혹이 있더라도, 모두 소박하고 힘든 것을 마다하지 않으며 겸허하고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런 말들은 간부업무에 느끼는 점이 많다고 했다. 월남에서 잘 부르는 노래 중에 이런 것이 있다고 했다: "연화는 비록 진흙속에서 나오지만, 어떤 꽃보다도 더욱 아름답다." 이는 서로 짠 것처럼 맞아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전에 필자는 여러번 보시라이가 대탐관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보시라이전>이라는 책도 출판했다. 그중의 한 편은 7만자인데, 보시라이의 부정부패문제를 언급했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이다. 그러나 한 장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가 여러번 구카이라이는 용퇴할 것이라고 말했다. 십여년전에 이미 변호사사무소를 폐쇄한다고 했을 때, 독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볼 수 있다. 나는 카메라로 찍은 사진에 명확히 찍은 연월일이 찍혀 있다. 그것은 보시라이의 거짓말을 분쇄하는 유력한 증거가 될 것이다. 곧 세상에 나올 졸작 <활인묘 - 옥중회고록>이라는 책에서 추가로 묘사할 것이다. 그것은 충분히 증명한다: 보시라이는 본인이 대거 뇌물을 받았을 뿐아니라, 구카이라이가 더욱 재물을 긁어모으는 재주가 있다. 보시라이의 형과 동생도 호랑이나 늑대와 같이 큰 나무에 의지하여 대거 불법적으로 돈을 벌었다. 그의 비서, 운전기사, 정부, 친구들도 모두 앞다투어 뇌물을 받고 부정부패를 저질렀다. 모든 사람의 방법은 열악하고 금액도 놀랄 정도이다.
다만, 자신이 앞장서서 부정부패를 저지르면서도 보시라이는 소리높여서 반부패를 외쳤다. 그가 관직에 있던 수십년의 경력을 보면, 매번 표면적으로 대거 청렴을 부르짖을 때가 그와 그 가족들이 대거 재물을 긁어모으는 호기였다. 다롄이건, 선양이건, 베이징이건 아니면 지금의 충칭이건, 모두 그러했다. 그저 옜날에는 적나라하게 '탐(貪)'하고 '강탈'했다면, 지금은 '송(送)'과 '편(騙)'이라는 것이다. 송은 인정을 보내는 것이고, 편은 매체를 속이는 것이다. 그는 중경에서 큰 사업, 큰 프로젝트를 모두 경성의 고관대작과 '다롄방'의 기업주들에게 주었다. 이것은 모두 돈냄새가 나는 이익교환이다. 이전에는 보이보의 보호가 있었지만, 지금은 이익집단이 감춰주고 있다. 그래서 그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중국은 자고이래로 '형부상대부(刑不上大夫), 예불하서인(禮不下庶人)"이라는 말이 있고, 보시라이는 이를 잘 알기 때문이다. 하물며, 왕리쥔은 고발자료를 미국영사관에 놔두었지만, 보시라이도 상대방의 부정부패증거를 보과과의 손에 놔두었기 때문이다. 키신저가 복사본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중국내에서 거리낌없이 행동하는 것이다. 말하는 것이 노래하는 것보다 듣기 좋다. 그는 배경과 도구가 체제라는 것을 안다. 그것이 있는 한, 크게 노래부르고, 노래를 불러서 목이 쉬어도 상관없다. 그는 말한다. 당의 건설과 간부의 작풍은 1개지구에서의 발전이 아주 중요하다. 최근 들어, 중공 충칭시위는 중앙의 요구에 따라,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점차로 효과적인 방법을 형성했다. 우리는 당원간부들에게 기층으로 깊이 들어가서, 백성들과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일하라'는 삼항제도를 요구하고, 간부들이 '대하방(大下訪)'할 것을 요구했다. 군중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실제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공산당의 근본종지는 인민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이다. 절대로 군중을 떠나서는 안되고, 반드시 시시때때로 군중을 생각하고 실질적인 일을 많이 해야 한다.
그러나, 보시라이는 마음 속으로 정말 군중을 생각하고 있는가? 만일 정말로 생각한다면, 수억위안을 들여서 충칭올림픽스포츠센터에서 '창홍'행사를 벌일 것인가? 70여량의 경찰차와 장갑차를 동원하여 미국영사관을 포위할 것인가? 펑제(奉節)현의 소학생들에게 왕복 8시간을 걸어서 학교에 통학하게 하겠는가? 두 아들을 영국과 미국으로 보내어 공부하도록 하겠는가? 자세히 계산해보라. 2월 7일에만, 충칭경찰이 청두의 미국영사관을 포위하고 왕리쥔을 빼앗으려고 한 일에만 국가는 얼마나 많은 돈을 썼을까? 중경의 농부는 병이 들어도 치료하지 못하여 죽기만 기다리고, 자기 스스로 자기 배를 가를 때, 보시라이는 한 손으로 은행나무를 심으면서 <홍색경전>을 인쇄하고, 한 손으로 주돈이의 <애련설>를 보이면서, "진흙에서 나오지만 때가 묻지 않았다'고 흥얼거리면서 얼굴색이 조금도 붉어지지 않는다. 한 후안무치하기 그지없는 철면피가 무슨 말인들 못하겠는가?
사실, 보시라이는 지금까지 부정부패의 진흙탕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진현(金縣)의 고급호텔에서 진스탄(金石灘)의 자양루(紫陽樓)까지; 진스(金石) 골프클럽에서 다렌호텔까지 보시라이 및 그 가족들은 매일같이 지취금미(紙醉金迷)의 화천주지(花天酒地)의 생활을 보냈다. 구카이라이의 곁에 있는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조수로부터 보과과의 미국 하버드에서의 보디가드까지, 보시라이는 여러 영화배우, 여자모델, 여자스포츠스타, 여기자들과 애정관계가 얽혀있었다. 쿠카이라이 변호사의 곁을 떠나지 않는 남자동료인 청이쥔(程毅君), 그들의 가족 친구 등등은 모두 물질생활의 호화와 정신생활의 탐욕과 허위를 모두 누렸다. 이것이 <애련설>과 나란히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내가 보기에 <애재설>을 쓰는 것이 보씨집안의 실제에 더욱 부합한다. 보시라이의 부정부패는 그의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거액의 '부정부패산업'을 가져다 주었다. 그가 발탁한 부시장 류창더(劉長德)는 건설을 여러해동안 주관했다. 국영의 다추공사의 동사장 린모로부터 많은 뇌물을 거두어들였을 뿐아니라, 두 아들도 모두 회사를 차려서 하나는 인테리어를 하고, 하나는 건축재료를 팔았다. 매년 수익만 천만위안에 이른다. 그의 비서 한모는 거리낌없이 일처리를 해줄 때마다 수천만위안의 뇌물을 받았다. 류창더는 잉청즈진 다헤이스촌에 여러 채의 빌라를 가지고 있고, 정부를 여러명 두고 있으며, 생활은 사치스럽고 악명이 멀리까지 떨쳤다. 사람들은 "류어르신(劉老爺)"라고 부른다.
보시라이의 비서인 우원캉(吳文康)은 더욱 큰 탐관오리이다. 그가 여러해동안 보시라이의 정치비서를 할 때는 물론이고, 충칭시정부 구안위에서 부주임으로 있을 때에도 모두 권력을 동원하여 사적이익을 취했다. 그의 일당인 리테잉(李鐵映)의 아들인 리리젠(李力踐)과 토지를 팔고,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대출을 연결시켜주고, 범인을 사적으로 풀어주며 억위안 이상의 이익을 챙겼다. 그의 형인 우모는 다롄자신국제호텔에 방을 일년내내 빌려서, 우원캉에 의존하여 중개를 해서 호텔용품사업을 했다. 그는 다롄의 오성급호텔의 용품을 거의 모조리 공급했다.
또 다른 비서인 처커민(車克民)은 더더욱 탐욕이 많았다. 그는 진저우완리향에서 부동산사업을 대거 벌여서 큰 돈을 벌었다. 그리고, 상인들을 보시라이에게 소개해주는 것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 중개서비스로 재물을 대거 끌어모은 것이다. 관료사회에 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판사처를 통하여 돈과 여색을 취했다. 부인도 그와 이혼했고, 그와는 선을 그었다. 그가 주관하는 안전국은 20세기에 "부패국'이 되었다. 그 관리들은 탐관오리가 많고, 안전국장인 완궈타오, 처장인 왕푸쉔, 정이창, 펑동휘등은 한편으로 현대회수단으로 정적을 타격하고, 억울한 사건을 날조해내고, 다른 한편으로 기회를 틈타 범죄협의자의 개인재산을 약취했다. 심지어 나의 처가 나를 위해서 사준 1천여위안의 약품조차도 그들이 차지했다. 내가 석방되기 전에 또한 나의 창청카드에서 강제로 5만위안을 가지고 가버렸다.
보시라이의 형제중 보시용(薄熙永)은 리치밍(李其明)이라고도 하는데, 보시라이의 간판을 이용하여, 광다(光大)집단의 사업에 참여했고, 대련의 민영기업 홍푸(宏孚)기업집단과 부동산개발을 하면서 이익을 취했다. 밴쿠버에도 대거 투자를 했다. 보시라이의 부인인 구카이라이의 남자비서인 청이쥔은 미국과 상해에서 보시라이의 권세에 의존하여 돈을 크게 벌었다. 다렌보리빌딩 6층에 휘뤼스고문투자유한공사의 등록자금은 5만위안에 불과하다. 다만, 1998년의 이윤은 1억7천만위안이다. 그는 다롄의 '명예시민"이고, 정협위원이다. 그 명의로 보시라이의 상을 공개적으로 받았고, '21세기다롄건설성취전'을 조직하여 다롄인의 돈을 충분히 끌어모았고, 좋은 명성을 얻었다.
이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보시라이의 정부인 다롄의 유명한 모델인 위모는 아직도 다롄 진스탄에 복장모델학교를 만들고 있다. 시정부에서 매년 600여만위안을 내준다. 이뿐아니라, 관리위원회 주임인 왕촨즈는 한때 정부 사무실건물을 위모가 학교를 하도록 넘겨준 적도 있다. 군중이 말했다 무슨 복장모델학교? 보시라이를 위하여 미인을 골라주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낫겠다고 한다. 그 몇 해동안 보시라이는 이들 미녀들의 육탄을 이용하여 적지 않은 중남해의 고관들을 무너뜨렸다.
한번 물어보자. 이것이 모두 사실이 아닌가? 이것이 고인이 말한 <애련설>과 모순되지 않는가? 류창더, 우원캉, 구카이라이, 보과과, 리치밍, 위모델, 청이쥔, 처커민등은 모두 '진흙에서 나왔지만 때묻지 않았다"를 실천했는가? 보시라이가 <애련설>을 언급하지 않았다면 몰라도, 시간이 오래되다보니 과거에 그가 저지른 이런 부정부패를 다롄인들이 점차 잊어버렸다고 생각할지는 모르겠다. 그가 정치무대에서 물러나면서 아마도 죄증도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 왕리쥔사건의 충격파로, 사람들은 그를 노려보고 있다. 그의 비서들은 그에게 '안약'을 주었다. <애련설>을 찾아내서 그에게 외우게 한 것은 원래 그의 청백함을 드러내고자 하였지만, 오히려 과거의 기억을 일깨웠다. 잘하려고 잔머리 굴리다가 일을 오히려 망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기꾼의 '대지혜'이다. 모자라거나 정신병자이다.
보시라이는 일찌기 부인과 아이로 하여금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게 했고, 정적의 약점자료를 적절히 안배했다. 그래서, 왕리쥔은 그의 애제자이자 그의 원수이다. 그들은 모두 감독과 제약이 없는 제도에 의존하여 부를 쌓았다. 모두 비열한 온갖 수단방법을 동원했으며 제도의 비호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명성은 이리 철저히 더러워졌다. <애련설>에 묘사된 진흙과 같이.
그래서 나는 <애런설>을 모방하여, 단문을 쓰고자 한다. <애재설>이라는 제목으로 보시라이에게 선물하고자 한다:
관료의 부정부패의 기풍은 따르는 자가 아주 많다. 충칭의 보시라이는 특별히 돈을 좋아한다. 진현이래로, 세상사람들이 많이 질책했다. 보시라이는 거짓말을 잘 하여 악취를 풍기지 않았다. 지혜는 크지만 청렴하지는 않았고, 윗사람을 속이고 아랫사람을 기만했으며, 온 가족이 재물을 탐했다. 부는 나라에 비견할 만하고, 헛된 명성이 널리 퍼졌다. 멀리서 논의할 수는 있지만, 형벌을 가할 수는 없다. 나는 말한다: 국화는 꽃의 은일한 것이다. 모란은 꽃의 부귀한 것이다. 연꽃은 꽃의 군자이다. 오호라. 얼굴이 두꺼운 것은 세상에서 드물게 들을 정도이다. 보시라이가 재물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도 이길 자가 없다. 거짓말이 심한 것은 군중을 미혹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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