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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보시라이-왕리쥔사건

보시라이의 두 아들

by 중은우시 2012. 2. 11.

글: 소량량(蕭良量)

 

보시라이(薄熙來)에게는 아들이 둘 있다. 하나는 그가 실의했을 때 얻은 본부인인 리단위(李丹宇)가 낳은 아들 리왕즈(李望知)이고, 또 하나는 애인에서 처로 신분을 바꾼 구카이라이(谷開來)가 낳은 아들 보과과(薄瓜瓜)이다.

 

관직으로 말하자면, 리단위의 부친인 리쉐펑(李雪峰)이 구카이라이의 부친 구징성(谷景生)보다 많이 높다. 리쉐펑은 1907년 1월 19일 산시성 용지현에서 태어났고, 문혁때 지위가 높았다. 그러나 4인방에 연루되어 실권을 잃고, 그저 중앙고문위원회의 위원이라는 허명만 걸어놓았고, 제6기 전국접협의 상임위원이 된다. 2003년 3월 15일 리쉐펑은 북경에서 병사한다. 당시 나이 97세이다. 구징성은 1955년 소장의 계급을 받은 후, 일생동안 기본적으로 투쟁대상이 되었고, 죽을 때까지도 명예회복을 하지 못했다.

 

보시라이가 결혼후 구카이라이를 만난다. 그리고 막 아들을 낳은 리단위를 버렸다. 그리고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부양비도 지급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리단위는 화가 난 나머지, 아들의 성까지 갈아버리고, 보시라이를 북경에서 쫓아내 버린다. 그리고 아들이 큰 후에 그에게 법률을 배우게 하겠다고 결정한다. 리왕즈는 대학졸업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학위를 받은 후, 부친의 관직이 갈수록 높아지자, 귀국하여 보시라이의 세력에 의지하여 사업을 하려고 생각한다.

 

그들 모녀가 보기에, 이것은 보시라이에 있어서 너무나 쉬운 일이다. 그저 전화를 한번 해주거나, 쪽지만 보내주어도 된다. 손등이나 손안이나 모두 내 살이다. 어찌되었건 자신의 친혈육이 아닌가. 그러나 보시라이는 구카이라이와 보과과 이외에는 아무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의 친형제자매도 절대 도와주지 않았다. 공개인 장소에서 보시라이는 '반부패', '친척,친구들이 사업을 하는 것을 엄금한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여러번 아랫사람들에게 장남 리왕즈의 사업을 도와주지 말라고 경고한다.

 

보시라이가 보니게, 장남이 개인의 능력으로 부자가 된다면, 부친으로서 그는 유형무형의 이득을 볼 수 있다. 당연히 이 '가족의 정'을 내세울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리왕즈가 부친의 권세를 이용하여 이득을 얻고자 한다면, 그것은 안될 일이다.

 

외부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보시라이가 청렴하다고 여길지 모른다. 사실 그는 세계에서 오직 구카이라이와 보과과만이 그의 배에 올라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구카이라이를 도와서 세 식구를 위하는 일이라면 아무런 거리낌이 없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끌어모은다. 그의 부인 구카이라이는 대련에서 상업 및 부동산프로젝트허가에 대거 관여했다. 변호사고문료등의 명목으로 커미션과 지분을 받았다. 그리고 이익은 해외에 때돌렸다. 관여한 프로젝트만 삼십여개에 이른다고 하고, 수취한 이익은 5-10억위안이상이라고 한다.

 

18차당대회는 보시라이에 있어서 마지막 일전이다. 그는 자신의 적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배수진을 펼친다. 성공하지 않으면 죽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거의 미친듯이 베이징으로 가서 뇌물을 뿌린다. 금액의 규모는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할 정도이다. 매번 보시라이에게 돈이 필요할 때면, 충칭에서 새로운 '타흑(打黑, 조폭단속)'운동이 전개된다. 대상은 모두 민영기업의 부호들이다. 돈이 들어오면, 구카이라이가 바로 북경으로 보낸다. 이것은 중경시위의 사람들이라면 모두 아는 공개된 비밀이다.

 

그러나, 보시라이가 나서서 아들 리왕즈를 도와주지 않더라도, 가는 곳마다 '보시라이 아들'이라는 명함만으로도 효과를 발휘한다. 리왕즈는 이 명함으로 장사를 했다.

 

18차당대회이전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순조롭게 정치국 상임위원에 들어가기 위하여, 보시라이는 독계를 하나 생각해낸다. 그는 전 진저우시 공안국장을 지낸 왕리쥔으로 하여금 '경제범죄' 협의를 씌워 친아들 리왕즈를 비밀리에 진저우에 연금시킨다; 그를 인질로 하여 전처 리단위를 협박하여, 그녀로 하여금 18차당대회전의 '민감기간'에 그에 관련된 스캔들이 바깥으로 떠들지 말게 한 것이다. 리단위는 서로 의지하던 아들이 부친으로부터 이런 대우를 받자,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는다. 하루종일 눈물로 범벅이 되어 지낸다. 그녀는 아들을 중국으로 되돌아가게 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하곤 했다.

 

보시라이가 둘째아들 보과과는 어떻게 대했던가? 다렌시에는 스더(實德)그룹이 있다. 오너인 쉬밍(徐明)은 돈을 긁어모으는데, 안전조치로 쉬밍은 보시라이의 아들 보과과의 영국 및 미국유학비 및 생활비를 모조리 부담한다. 현금을 잔뜩 주어서 보과과는 자주 오락장소에 나타났고, 서양여자들을 안고 있는 역겨운 사진들이 인터넷에 널리 퍼져 있다. 쉬밍은 전용기를 태워서 그를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보게 보내주었고, 전용기로 그를 보스톤에 보내어 공부하게 했다. 그리고 그에게 붉은 색 페라리 스포츠카도 선물한다.

 

2012년 2월 6일 정월대보름날 저녁, 왕리쥔이 청두 미국영사관으로 가는 사건이 벌어진다. 보시라이와 죽기살기로 싸울 생각이라고 한다. 그래서, 보과과는 갑자기 기가 죽어서 말한다: 그 페라리는 내 명의로 되어 있지 않다고. 동료학생들은 최근 이틀동안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고, 실종상태라고 말했다.

 

현재, 보시라이의 두 아들중 하나는 실종되고, 다른 하나는 실종당했다. 모두 보시라이가 18차당대회 권좌를 쟁탈하려는 것과 관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