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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보시라이-왕리쥔사건

왕리쥔사건시말

by 중은우시 2012. 2. 11.

글: 오가(敖歌)

 

2012년 2월 9일 저녁 10시 20분, 전국네티즌 혹은 전세계네티즌들은 왕리쥔사건이 비로소 중국정부가 공식확인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내용이 간단하고 헛점이 있다는 것은 잠시 언급하지 않기로 하자. 이 사건의 뉴스성과 특수성만 얘기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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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기 2012년 1월 27일, 나는 미국에 있는 동창으로부터 충칭(重慶)에 사건이 터지지 않았는지 질문을 받았다. 나는 당시에 깜짝 놀랐다. 물어보니 그쪽에는 왕리쥔과 보시라이(薄熙來)가 싸우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고 한다. 나는 당시에 그럴 리가 없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부부처럼 사이가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 곁에는 청두(成都)의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 일은 그 날 그녕 이렇게 지나났다.(필자 본인은 중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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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2일이 되어, 바이두의 왕리쥔바에는 "왕리쥔의 부하들의 모조리 체포되었다"는 말이 나왔다. 나는 미국동창의 말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메세지는 3시간되 지나지 않아 사라져 버린다. 나는 정말 사건이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즉시 충칭의 매체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그 친구는 술에 취하여 있었고, 직접적으로 "그게 가능하겠느냐?" 인터넷에서 하는 말을 헛소리이고, 중국의 99% 네티즌들은 거저 유언비어를 만들어 퍼뜨릴 뿐이라고 하였다.(그 기자는 중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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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3일, 어떤 네티즌이 더우반왕(豆瓣網)에 "보-왕이 갈라졌다. 보시라이는 군영으로 손을 뻗을 것이다. 의미심장하다." 이 말은 하루도 되지 않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같지만, 처음으로 군대를 움직이겠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같은 날 오전 9시가 지나서, 시나의 네티즌 순다파오(孫大砲)는 웨이보에서 "중경에 큰 일이 났다"고 말한다. 수천이 네티즌들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었지만, 아무도 정면으로 대답해주지 않았다. 매일 정보에 주목하는 우리 네티즌경찰들이 뭘로 먹고사는 사람들인가? 나는 그저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유언비어일 것이다. 아마도 유언비어일 것이다.(정부도 중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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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4일, 한 홍콩네티즌이 한 최대BBS사구(社區)에 <왕빠(王八)와 우꾸이(烏龜)간 다툼의 초진(初震)>이라는 글이 실린다. 이 글에서는 비교적 상세하게 보시라이와 왕리쥔간의 분열내용을 말해주었다. 그러나, 화장실을 갔다 오자 글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나는 이때 다른 네티즌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더 사건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쉽게도, 우리의 관리들은 매일 우리 평민백성만 주목하지, 자신의 관리들은 주목하지 않는다. 매체들은 분명 백성들보다 적게 알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르는 척했다. 아마도 알았더라도 쓰기 불편하거나, 감히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남방도시보계열은 그저 전화로 왕리쥔의 새로운 업무상황이 어떤지를 물었을 뿐이다. 사실 기자들은 어느 정도 이 쪽의 문제를 묻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물을 수가 없었다. 스페이커(石菲客)가 그 사례이다.(매체가 중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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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5일, 어떤 네티즌이 더무반에 왕리쥔이 일찌기 권총으로 보시라이를 겨냥한 적이 있고 두 사람이 대판 싸웠다고 밝힌다. 그러나 구체적인 시간은 말하지 않았다. 보기에 약간은 거짓말 같다. 나는 처음으로 이것들이 정말로 유언비어가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녀녁 11시, QQ친구가 보내온 소식을 들었는데, 왕리쥔의 운전기사가 체포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할 말이 없어졌다. 이때으 시나왕 텅쉰왕은 아직도 여전히 한한-방주자간의 너죽고 나살자식의 전쟁이 진행중이었다. 나는 마음 속으로 중국정부측이 이미 처리를 잘 끝낸 줄 알았다.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다면 그저 왕리쥔의 운명에 대하여 마음을 한번 써줄 뿐이다. 그러나 일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진행되고 있지 않았다. 중국정부는 사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미국의 911처럼, 모두 회의를 열어서 유가가 오르는 문제를 얘기했다. 이 일을 지금 돌아보면, 발개위는 정말 신기한 기관이다. 기름값을 올리기만 하면 국내외에 반드시 큰 사건이 벌어진다(중앙이 중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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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6일, 전국인민이 조용히 있었고, 나도 조용히 있었다. 나는 마음을 안정시킬 수 없었다. 각종 검색방식을 이용하여, 많은 소식을 모으고 대조했다. 그러나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자버렸다(하늘도 중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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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7일 저녁 7시 3분, 청두의 미국영사관의 길이 봉쇄되었다. 나는 식사를 하려고 친구를 만나러 갔다. 전화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는지, 나오지를 못하겠다고 했다. 경찰이 많이 깔려 있다고 했다. 나는 왕리쥔이 그 곳으로 와서 사건이 터졌을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이런 일은 큰 도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저녁 8시 10분경, 청두경찰차량이 미국영사관도로에 있는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동시에 "왕리쥔 반도(叛逃)"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나의 마음은 한동안 무너진 듯했다. 그후 바이두에는 각종 청두, 왕리쥔, 미국영사관등의 검색단어가 등장한다. 이 때는 누가 중시하든지 이미 늦었다. 이날 밤에 나는 잠을 자지 못했다. 더욱 의미있는 정보를 기다렸으나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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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8일 아침, 다시 바이두에 '왕리쥔 청두'등으로 검색해봤는데, 거의 공백이었다. 나는 알았다. 이미 통제되고 있었다. 오전에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3가지 유형의 소식이었다. 첫째는 회의파. 회의파는 정부측의 확인을 기다리려는 유형이다. 이들이 대다수를 점했다. 둘째는 우마오파(五毛派)이다. 그들은 왕리쥔이 아니라고, 티벳독립분자가 미국영사관으로 뛰어들어갔다고 우겼다. 셋째는 긍정파이다. 나는 이 유형이었다. 대체로 인터넷에 퍼진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믿는 족속들이다. 사람들은 중경시정부 신문판공실의 "휴가식치료(休假式治療)"라는 문구를 가지고 여러가지 말들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중국대변인에 대하여 조롱했다. 같은 날 21CN뉴스의 '수가평론'은 중경에서 확실히 사건이 일어났다는 점을 확인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그후 밤 3시가 지나서 미국의 동창이 보내온 소식을 받는다. 미국에서는 이미 왕리쥔이 청두 미국영사관에 온 것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건발생후 처음으로 한 국가의 명으로 확인한 것이다. 이때는 이미 2012년 2월 9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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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9일, 미국과 홍콩 대만지구에서는 거의 전면적으로 왕리쥔 사건을 보도하기 시작한다. 인터넷은 바빠졌다. 중국정부는 그러나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완전히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너희 네티즌들이 어떻게 놀든지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알았다. 이 사건에 관련된 사람의 관직이 크다보니,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온갖 조롱섞인 글들이 각 웹사이트에 날아다녔다. 저녁 9시가 되어, 런민왕, 신화왕, 시나왕, 텅쉰왕에소 돌연 중대뉴스예고가 나왔다. 사람들은 모두 발꿈치를 들고 왕리쥔에 대한 뉴스를 기다렸다. 사실 이것도 뉴스라고 할 수 있을까? 뉴스라고 치자. 비록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기는 하지만, 중국 정부는 그래도 정면으로 말해주지 않았다. 네티즌들이 멍해지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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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9일 10시 20분, 중국정부는 겨우 100자도 되지 않는 "중대구문(重大舊聞)"을 발표한다. 네티즌들이 이를 보고 어떤 반응이었을까? 온통 욕설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