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미상
역사를 뒤적여보면, 역사상 최대의 일전은 어느 것일까? 적벽대전일까? 아니다. 현재의 '삼대전투'일까? 역시 아니다. 그건 어느 전투일까? 그것은 기원전207년의 진초간의 마지막 전투이다.
이 전투는 7개월간 계속되었고, 3개의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제1단계: 진나라군대가 대거 진격하다.
진황(秦皇) 영호해(赢胡亥)는 장한(章邯), 이유(李由)에게 명령을 내려 각 20만의 진군을 이끌고 관동으로 출발하게 했다. 왕리(王離)에게는 30만의 진군을 이끌고 장성에서 남하하도록 명령했고, 조타(趙佗)에게는 영남의 50만진군을 이끌고 북상하도록 명령했다. 이들은 모두 초나라의 군민을 향해 미친듯이 진격한다. 이 단계에서, 북로의 진나라장수 왕리의 30만진군은 천리길을 달려오며, 보무당당하게 남하한다. 중로의 진나라장수 장한, 이유의 양로는 40만진군은 파죽지세로 초군의 십여만을 걱파하며, 초나라장수 항량(項梁)을 정도(定陶)에서 참한다.
그러나, 남로는 영호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대로 진행되었다. 영남의 5로 진군은 영남으로 진공할 때 이미 반이상이 죽어서, 실제로는 단지 20만의 병사만이 남아 있었다. 이 20만의 진군이 양광(광동,광서), 복선의 3개성에 나누어 주둔하고 있었다. 진나라장수 조타가 명을 받아 부대를 모아 북진하려 할 때, 복건의 민군 요가 민월병을 이끌고 민중에 주둔하고 있던 진군을 없애버린다. 그리고 광동동부를 향하여 진격한다. 광동의 월군 매견은 월병(粤兵)을 이끌고 횡포관을 공격하여, 광동 월북에 주둔하던 진군을 없애버린다. 광서 구월의 수령은 월병(越兵)을 이끌고 광서에 주둔하던 진군을 없애버린다. 삼로의 병사들은 초나라군대의 깃발을 들고, 조타의 진군을 향하여 진격해온다. 조타는 부득이, 광동에 주둔하던 10며만의 진군을 4곳으로 나누어 주둔시킨다. 한 곳은 월동으로 게양령에 주둔시키며, 한 곳은 월서로 봉개에 주둔시키며, 한 곳은 월북으로 영덕에 주둔시키며, 한 곳은 월중으로 번우에 주둔시킨다.
제2단게: 진초양군의 대치하다
여신은 팽성의 동쪽, 항우는 팽성의 서쪽, 유방의 군대는 탕군(碭郡), 송의지는 팽성에서 장한의 중로진군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남쪽에는 우월수령이 군을 이끌고 광서북부와 귀주동남부로 진격해왔고, 월군 매견은 월북초군을 이끌고 강서 감주, 호남 침주, 형양을 함락시키며 장사로 밀고 들어왔다. 민군 무요는 민북초군을 이끌고, 강서 응담, 무주, 길안을 함락시키고, 남창으로 향했다. 그리하여 오예(吳芮)도 부득이 깃발을 거꾸로 들고 초나라군대의 행렬에 가담한다. 그는 매견, 무요와 연합하여 구강, 남창, 장사를 함락시킨다. 운남과 광서 서부, 야랑, 진의 초나라 연합군은 진군을 소통, 의빈, 귀양에서 각파하고, 귀주의 대부분지구를 함락시키고, 사천, 중경의 진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북부에서 진장 왕리는 한단을 포위공격하고 장한의 진군와 연합하여 조, 제의 두 땅을 공격한다. 초회왕은 초군에 조, 제를 구원하도록 명령한다. 진초 쌍방은 서로 대치하는 단계에 들어간다.
제3단계: 초군이 대거 반격하다.
초회왕은 초나라장수 항우, 범증, 영포, 포장군, 여신으로 하여금 대군을 이끌고 황하를 건너 장한, 왕리의 군대를 격파하도록 명령한다. 이들은 진군의 주력과 결전을 벌인다. 그리고 초장 유방에게 명하여 초군을 이끌고 천리길을 달려 하남을 수복하도록 한다. 초장 팽월에게는 군대를 이끌고, 봉개, 신향, 개봉 일대를 공격하여, 항우, 영포, 포장군, 여신, 유방의 군대와 호응하도록 명령한다. 위표에게 명하여 산서 위 나라땅을 수복하도록 명령하고, 장량에게 명하여 산서 한나라 땅을 수복하도록 명령한다. 초장 공오는 강한, 파유를 수복하도록 명하며, 초장 오예, 매견, 무요에게는 강서, 호남, 귀주, 절강을 수복하도록 명한다. 진군은 연이어 패퇴하고, 초군은 싸울수록 용맹해졌다. 계속하여 진나라의 본토를 향하여 진격한다.
함양에서, 진황 영호해는 목이 쉬도록 소리쳤다: "버텨라. 버텨라. 후퇴하는 자는 죽는다" 서주에서 초왕 웅심은 검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초나라 장수들은 들으라. 먼저 관중에 들어가서 평정하는 자를 왕으로 삼겠다."
그리하여, 초장 항우, 범증, 영포, 포장군, 여신이 안양, 복양, 한단에서 전투하고, 초장 유방이 영양, 낙양, 남양에서 전투를 벌이고, 초장 팽월이 개봉, 연진, 신향에서 전투를 벌이고, 초장 위표는 진성, 진중, 하진에서 전투를 벌이며, 초장 장량은 심양, 제원, 풍릉에서 전투를 벌인다. 초장 매견은 무한, 신양, 형자관에서 전투를 벌이고, 초장 오예는 장사, 검중에서 전투를 벌인다, 초장 공오는 형주, 의창, 봉절에서 전투를 벌인다. 전국에서 백만초군이 일제히 움직여서 절강, 강서, 호남, 귀주, 중경, 사천, 호북, 하남, 하북, 산서를 점령하고, 직접 진나라의 땅인 관중과 함양으로 향했다. 십여로의 초군은 계속하여 섬서 관중평원으로 진입하하니, 진왕조는 철저히 멸망하게 된다.
진초의 마지막 전투는 7개월이 걸렸고, 전선이 1만3천여리에 달한다. 현재 중국의 거의 절반이 전쟁에 관련된다. 전황은 계속 변화하고, 전투가 끝난 후 진군 140만은 전멸한다. 그 기세가 크고, 장면이 큰 것은 삼천년 중국역사에 없던 일이다.
'중국과 역사사건 > 역사사건 (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秦)나라는 서융(西戎)의 한 갈래이다 (0) | 2012.03.08 |
---|---|
컨센서스: 진나라의 상앙변법 (0) | 2012.01.26 |
패왕별희(覇王別姬): 역사상 가장 유명한 허위보도 (0) | 2011.04.27 |
서복(徐福)은 일본으로 건너갔는가? (0) | 2010.05.30 |
대택향(大澤鄕): 진승(陳勝), 오광(吳廣)의 난 (0) | 2008.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