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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의학

고독(蠱毒)이 정말 존재하는가?

by 중은우시 2011. 12. 7.

글: 방주자(方舟子)

 

상서(湘西, 호남서부)에서 온 한 묘족(苗族) 노인은 TV에서 그가 여러해전에 앓았던 한 괴상한 질병을 얘기했다. 배가 부풀어 올라서, 시골병원에 갔는데 치료를 못했다. 누군가가 고(蠱)를 쓴 것이 아닌가 생각하여, 무사(巫師)를 찾아가서 고독을 제가하고, 묘약(苗藥)을 먹자 나았다는 것이다. 그 무사도 TV에 출연하여, 법술(法術)을 시연했다. 이것은 현지의 '비물질문화유산(非物質文化遺産)'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무도 누군가 고를 쓰는 것을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고는 몰래 써야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알아채면 효과가 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누구도 나서서 자신이 고를 썼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것은 전설이 될 뿐이다. 그러나, 프로그램에서 한 상서민속학자는 고가 있다고 분명히 믿는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50년대초에 그는 아동단의 일원으로 지주부인의 집을 몰수하는데 가담했는데, 침대아래에서 항아리를 하나 발견했고, 항아리를 열자 그 안에는 오공(蜈蚣, 지네), 갈자(蝎子, 전갈)등 독충이 있었다. 이것은 고를 기르는 것이다(養蠱). 그러나, 누군가가 고를 기른다고 하여, 그것을 완성한다고 얘기할 수는 없고, 다른 사람이 고에 중독되도록 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 민속학자가 말한 바는 확실히 전설에서 얘기하는 고를 기르는 방법이다. 사실 '고'라는 글자에서 알아차릴 수 있듯이, 그릇에 벌레를 놓아둔 것이다. 번체자인 '고(蠱)'에는 벌레가 3마리이다. 갑골문에도 이미 '고'자가 있다. 그린 그림은 그릇 위에 두 마리의 벌레가 있는 것이다. 이는 벌레를 고로 기르는 방법이 최소 삼천년의 역사를 지녔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서.지리지하>는 가장 먼저 고를 만드는 방법을 상세하게 기록한 것이다: "오월 오일날, 큰 것은 뱀에서 작은 것은 이(蝨)까지 크고 작은 일백종의 벌레는 그릇에 넣고 기르며, 그들이 서로 잡아먹게 한다. 마지막으로 한 마리가 남으면 그것이 바로 '고'이다. 뱀이 살았으면 그것은 '사고(蛇蠱)'이고, 이가 살았으면 그것은 '슬고(蝨蠱)'이다. 고를 먹거리에 넣어서 다른 사람이 먹게 하면, 고는 뱃 속으로 들어가서 오장을 씹어삼키고, 고에 중독된 사람은 죽는다. 그러면 재산은 고를 쓴 사람이 차지한다. 만일 고의 주인이 3년동안 다른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해를 입는다."

 

나중의 문헌에도 모두 비슷한 기록이 있다. 고를 기르는 것은 주로 남방의 각 산간지방에서 유행했다. 민간에도 고에 관한 전설이 전해진다. 그러다보니 각양각색의 방법들이 파생되었다. 예를 들어 가장 무서운 고는 '금잠고(金蠶蠱)라는 것인데, 수화병인(水火兵刃)을 겁내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가장 없애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것은 주로 민남(복건성 남부)일대에서 유행했다. 송나라때 요관(姚寬)이 편찬한 <서계총화>에서는 "천주(泉州)의 한 승려가 금잠고를 치료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원나라 말기의 도종의(陶宗儀)가 편찬한 <설부>에서는 더욱 상세하게 금잠고의 특징을  싣고 있다. 그의 기록은 이미 현대의 민간전설과 대동소이하다. 이를 보면 멀리는 송나라, 원나라때부터, 민남일대에는 이미 금잠고를 기르는 풍속이 있었고, 이미 대체적으로 그 형태가 완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금잠고는 어떻게 기르는가? 역시 마찬가지로 각종 독충을 밀폐된 그릇에 넣어서 서로 죽이게 한다. 1년후에 1마리가 남는데, 형태나 색깔리 모두 변하며, 형상은 누에(蠶)와 같고, 피부는 황금색이어서, '금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금잠고를 기르는 또 다른 방법은 12종류의 독충을 항아리 안에 넣어서, 비밀리에 십자로에 묻어둔다. 칠칠 사십구일이 지나면 다시 비밀리에 꺼내서 향로 안에 넣어둔다. 아침 저녁으로 차와 향을 올린다. 이렇게 하여 얻어진 금잠은 무형이다. 향의 재 속에 넣어둔다. 고를 쓸 때는, 금잠의 분변(糞便)이나 향의 재를 먹을 거리에 넣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먹게 하면 된다.

 

무형의 금잠은 확실하게 미신이므로 더 말할 것도 없다. 유형의 금잠도 마찬가지로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백가지 벌레를 서로 죽이게 하더라도, 이로 인하여 새로운 동물로 진화될 리는 없는 것이다. 이는 생물학의 기본원칙에 어긋난다. 백가비 벌레가 서로 죽인 결과는 모조리 죽거나 한 마리가 살아남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독사가 나머지 독충을 모조리 먹어치워도 '사고'로 바뀌지 않는 것이다. 문헌의 기록을 보면, '사고'가 자주 언급되는데, 독사가 마지막에 살아남을 가능성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고로 부르든 독사로 부르던 이로 인하여 다른 것이 되지는 않는다. 독사의 독성도 이로 인하여 강화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독충이 가진 독소는 서로 다르기 때문이고, 서로 전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독사가 독두꺼비, 지네, 전갈등등을 먹어치우더라도 그들 몸의 독소가 사독으로 바뀌지 않는다. 독에 중독되어 죽지만 않더라도 이미 행운이다.

 

그러므로, 사고와 다른 독사는 차이가 없다. 이로 인하여 독이 강해지지 않는다. 독사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을 물게 하면 그 사람은 당연히 죽을 것이다. 그러나, 고를 쓰려면 먹을 거리에 넣어야 하는데, 그렇게 해서는 중독되지 않는다. 기록에 따르면, 사고의 침을 분말로 만들어서, 먹을 거리에 넣고, '사람이 잘못 먹으면, 칠팔일만에 병이 생기고 치료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하는데, 이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뱀의 침은 뱀의 독을 함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그냥 단백질이다. 단지 직접 혈액에 주사하여야만 사람이 중독된다. 만일 먹으면, 뱀독은 다른 단백질이나 마찬가지로 소화되어버리고 만다. 하물며 분말로 만든 후에는 사독이 독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만일 다른 독충을 가지고 분말을 만들면 어떨까? 어떤 독충의 독소는 사독과 마찬가지로 입으로 먹어서는 효력이 없고 반드시 주사해야만 사람이 중독된다. 예를 들어, 거미의 독소가 그렇다. 또 어떤 독충의 독소는 입으로 먹어도 중독된다. 예를 들면 독두꺼비의 독소가 그렇다. 그러나, 직접 약국에서 독두꺼비독(蟾酥)를 사는게 빠르다. 만일 누군가가 고독에 중독되었다면, 아마도 독두꺼비독과 같은 보통동물독소에 중독된 것일 것이다. 정말로 고독에 중독된 것이 아니라, 식중독이거나, 기생충 혹은 다른 질병을 얻은 것일 것이다. 고대 혹은 현대의 변방 산간벽지의 의료조건은 열악하다. 원인을 모르니 아무렇게나 추측을 한 것이고, 고독에 중독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쨌든 고를 쓰는 것은 사람을 무형중에 죽인다는 것이니, 증거를 찾을 수도 없고, 어떻게 연상해도 가능하다. 사람을 찾아서 고를 제거하면 효과가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식중독과 같은 질병은 원래 스스로 치유할 능력이 있다. 만일 고를 제거했다는 심리암시를 주면 더욱 효과가 빠를 수 있다.

 

고를 쓰는데 대한 전설은 사실 전설일 뿐이다. 어떤 것은 더욱 황당무계하다. 그러나, 시골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믿는다. 감히 의심할 수가 없다. 고대의 문인학사들도 이를 재미있게 글로 썼고, 전했으며 야사필기에도 이에 관한 글을 남겨두었다. 고대의 의사들도 대체로 고의 존재를 믿었던 것같다. 그래서 여러가지 고를 방지하고 고를 치료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중의학 서적에도 이런 약방이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손사막(孫思邈)의 <천금방>에는 고에 중독된다는 것은 믿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이 고의 주인 성명을 부르면 없앨 수 있다. 고의 주인의 이름을 모르면 어떻게 하는가? 낡은 북(鼓)의 가죽껍질을 태워서 분말로 만든 후 마시면 자연히 알게 된다. 이는 확실히 '고(蠱)'와 '고(鼓, 북)'의 발음이 같다는 것을 이용한 것이고, 무술(巫術)이다. 고를 쓰는 것도 무술이다. 고대인들은 몽매하여, 무술을 미신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대하여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가볍게 믿어서는 안된다. 민속학자들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저 연구대상에 고혹되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