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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하이얼(Haier)

하이얼의 산요 가전사업인수

by 중은우시 2011. 8. 11.

 

 

: 구복남(邱復南)

 

2011 7 28, 산요(三洋, Sanyo)전기주식회사는 중국하이얼집단과 LOI를 체결하여, 산요의 가전,상용세탁기 및 가전냉장고사업 그리고 동남아4개국의 백색가전판매사업을 하이얼에 매각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하이얼의 승리이다. 하이얼은 매체에 대한 보도자료에서 산요 자신이 하이얼을 찾아온 것이지, 하이얼이 인수의향을 먼저 밝힌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누가 적극적으로 나섰는지는 이렇게 하여 분명해졌고, 하이얼의 이미지는 대폭 올라갔다.

 

하이얼은 2011 5 16일까지, 글로벌세탁기 최대브랜드로서 중국에서 27.8%의 시장점유율로 압도적 1위에 올라 있다. 2, 3위업체를 합친 것보다도 많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전세계 시장점유율이다. 2010년에 냉장고는 전세계의 13% 가까이, 세탁기는 9%가량으로 모두 1위이다.

 

그렇다면, 하이얼은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 첫째, 기존시장에서 지역1위를 했고, 세계제일을 추구했다. 둘째, 경쟁상대방의 구조조정을 압박했다. 여기에는 자체구조조정도 포함된다. 셋째는 바로 자신보다 역사가 길고, 기술이 뛰어난 브랜드를 인수하는 것이다. 넷째는 관련자원을 통합하여, 시너지효과를 내는 것이다.

 

브랜드를 얘기해보자. 이번 인수에서, 최대특징은 바로, 직접적으로 브랜드에 좋은 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브랜드에 좋은 점이 있게 된다.

 

첫째, 유구한 브랜드역사를 보유하게 된다. 1947, 산요전기가 창립되었고, 1984, 하이얼이 청도에서 설립된다. 부인할 수 없는 점은, 하이얼이 후발주자로서 선발주자를 따라잡는 전형적인 경우라느 것이다. 생각해보면, 브랜드보유자로서, 1억달러를 들어, 브랜드역사를 소비자들의 마음 속에서 37년이나 앞당길 수 있다면, 이는 괜찮은 거래이다. 하이얼의 가장 강력한 적수인 지멘스는 1847년에 설립되었다. 전방위적인 추격이 불가피하 상황이다.

 

둘째, 브랜드에 포함된 이정표를 얻는다. 1949, 산요는 처음으로 제품을 수출했다. 1952, 최초의 플라스틱라디오를 판매했다. 1953, 일본 최초의 분류식전동세탁기SW-53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1957, 최초로 냉장고를 생산했고, 1961, 앞장서서 분리식 에어컨을 생산했다. 산요는 일본 백색가전으 비조이다. 가장 먼저 생산한 것이 아니라고 최소한 3번째 안에는 든다. 모든 백색가전은 모든 가정에 영향을 백색가전의 대표기업이 스스로 찾아왔고, 가격도 적당하니, 이는 하루빨리 품에 품어야 할 것이다. 상대방의 영예를 자신의 역사에 포함시킬 수 있게 되니까.

 

셋째, 고급이미지이다. 경동상성에서 판매되는 세탁기를 예로 들면, 산요의 세탁기의 최고가격은 12998위안이다. 하이얼은 5399위안이다. 이 문제를 분석해보면, 하이얼의 고급세탁기는 실은 그다지 고급이 아닌 것이거나, 물건은 있지만 팔리지를 않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경동상성에서 그 제품을 도입하기를 포기할 리가 없다. 만일 하이얼이 산요의 백색가전사업을 운영할 수 있다면, 산요의 일본이미지를 활용하여, 가볍게 가격을 인상시킬 수 있다. 중국고급시장에서 이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넷째, 신흥시장에서 발전하는데 유리하다. 이번 양도는 동남아국가의 사업을 산요가 기본적으로 모두 하이얼에 넘긴 것이다. 하이얼은 괜찮은 이미지를 구축한데다, 산요는 일찌감치 수출으 ㄹ하여, 이들 국가에서 완전한 채널과 판매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다. 게다가 앞에서 얘기한 3가지가 더해질 수 있다. 그렇게되면 하이얼은 신흥시장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시장점유율의 증가뿐아니라, 브랜드가치가 증가될 수 있다. 잊 머은 최종적으로 하이얼제품의 글로벌가치에 영향을 줄 것이다.

 

다섯째, 일본의 혁신창조능력을 이용하여, 하이얼의 자주혁신이미지를 증가시킬 수 있다. 낭함평교수가 최근에 말한 바와 같이, 1957년에 일본은 <수출검사법>을 통과시켰고, 그 대체적인 내용은 일본국내제품이 서방동일유형제품을 완전히 복제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통산성은 양호한 설계선택시스템과 우수상품인증서를 가지고 우수설계를 보호했고, 발명이 침해되거나 복제되는 것을 막도록 노력했다. 일본은 일찌감치 1957년에 지적재산권보호에 앞장섰다. 일본에서 인정해준다면, 하이얼의 자주혁신과 흡수한 특허기술은 더더욱 가치와 합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전략적으로 보면, 이는 윈윈의 국면이다.

 

첫째, 하이얼의 해외진출기술과 인재문제를 해결해준다. 하이얼은 현재 중국과 세계를 보고 있다. 중국의 뿌리를 다진 다음, 세계시장을 노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인수는 한꺼번에 많은 인원과 기술을 넘겨받을 수 있게 된다. 하이얼의 성숙한 연구개발역량과 기술이 결합하는 것은 하이얼이 꿈에도 바라던 일이다.

 

둘째, 마쓰시다(松下)의 체면을 보호할 수 있다. 얼마전에 마쓰시다는 3.5만명의 감원을 발표했다. 마쓰시다는 이미 64억달러로 산요를 합병했는데, 산요의 사정이 바로 마쓰시다의 사정이다. 일본에서 대량감원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도산이 아닌 다음에는. 사람들이 마쓰시다와 같은 오래된 브랜드회사에서 3.5만명의 직원을 버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이번에 산요를 감원함으로써 마쓰시다의 이미지를 다시 깍는 것보다는 하이얼에 매각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마쓰시다 브랜드에 더 이상 손상이 가지 않게 한 것이다. 어쨌든 기업경영은 원래 구사일생이다. 사기가 떨어지지 않은 마쓰시다라면 재기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이중브랜드운영경험이다. 하이얼은 고급브랜드로 만든 카사디(Casarte, 卡萨帝)브랜드가 궤도에 오르지 않아서 고민이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산요가 자신의 성숙한 브랜드를 가져다 준 것이다. 하이얼이 이중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운영한다면, 하이얼의 고급화, 다원화의 길은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정부도 체면이 섰다. 은행도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이번 인수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적극환영이다. 이는 중국의 국위를 선양한 것이기 때문이다. 상무부와 산동성정부, 청도정부는 이번 거래를 아주 환영하고 있다. 하이얼은 이후 은행대출을 받기도 아주 좋아진 것이다.

 

다섯째, 장뤼민(張瑞敏)의 개인영광이다. 장뤼민은 자신의 전설적인 생애를 개척해왔다. 이번 인수로 그는 또 하나의 훈장을 달게 되었고, 새로운 도전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하이얼이 산요의 백색가전을 인수한 것은 금액이 크지는 않다. 그러나, 마쓰시다, 산요와 하이얼이 모두 윈윈한 결과가 되었다. 하이얼에 있어서 더욱 큰 도전은 앞으로 닥칠 것이다. 우리는 하이얼의 역사에서 보아왔다. 최종적으로 승리한 것은 모두 하이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