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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하이얼(Haier)

장뤼민(張瑞敏): 해는 저물고 갈길은 멀다

by 중은우시 2008. 10. 27.

글: 나건법(羅建法)

 

지난달, 리동셩(李東生)은 외부에 당년의 구조개혁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나는 원죄가 없다"고 자랑스럽게 말한 바 있다. 1990년대 후기의 구조개혁열풍은 나중에 보편적으로 국유자산을 침탈하렸다는 의문을 불러왔다. 한바퀴가 돈 후에 TCL의 증량식 구조개혁의 합법성은 거의 결론이 난 것같다.

 

다만, 국유기업 구조개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같은 가전영역에서 하이얼의 구조개혁은 업종선두주자라는 지위로 인하여 널리 관심을 끌었다. 장뤼민의 기업 대부격인 명성은 사람들에게 그에 대한 두터운 기대를 걸게 하였다. 그러나, 선구자 이동성이 배후에서 우리는 확실히 발견할 수 있다. 장뤼민의 시대에 하이얼의 구조개혁은 이미 무망하다는 것을

 

1. 대세이거(大勢已去): 대세는 흘러갔다.

 

시래천지개동력(時來天地皆同力)

운거영웅부자유(運去英雄不自由)

 

시운이 도래하면 천지가 한마음으로 힘을 합치고

시운이 다하면 영웅도 어찌할 수가 없다.

 

현재 TCL의 증량식 구조개혁은 아마도 각측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런 증량모델에 따라 구조개혁을 한다면, 하이얼은 이미 최선의 시기를 놓쳤고, 다시는 그러한 시기가 올 수 없을 것이다.

 

1997년 4월, 혜주시정부는 TCL그룹에 대하여 경영성국유자산 수권경영시범을 진행하는 것을 승인했고, 리동셩과 5년간의 경영위탁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에 따르면, TCL은 1996년의 3억위안의 순자산을 전부 혜주시정부 소유로 한다는 것이고, 이후 매년의 순자산 회수율이 10%이상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만일 10%-25%의 성장을 이루면 경영진이 그 중의 15%를 얻고; 25%-40%의 성장을 이루면 경영진이 그 중의 30%를 얻으며; 40%이상의 성장을 이루면 경영진이 그 중의 45%를 얻는 것이었다.

 

1997년 구조개혁부터, 2001년 구조개혁완성시까지는 바로 TCL의 도약기였다. 1997년, TCL의 판매액은 54억위안이었는데, 2002년, 211억위안으로 급증했고, 연간성장률이 40%를 초과했다. 고속성장은 TCL로 하여금 10%의 자금회수율을 보장해주었을 뿐아니라, 경영층이 점차 실질적인 지분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1990년 중후반은 하이얼의 비약기였다. 1996년부터 2001년까지, 하이얼의 판매액은 62억위안에서 603억위안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두었다. 연간 평균성장률이 근 60%에 달했다. 당시 하이얼의 60%성장률로 정부의 순자산에 대한 회수율은 TCL의 10%보다 훨씬 높았으므로, 시도해볼 수도 있었지만, 아쉽게도, 당시의 하이얼은 그저 방관자였다. 구조개혁의 최선시기를 놓쳐버린 것이다.

 

영웅은 여전히 남아 있으나, 시대는 이미 흘러갔다.

 

하이얼의 구조개혁은 2003년부터 시작되었다. 사실상으로는 2001년부터 시작하여, 하이얼의 속도가 완만해졌다. 고원기에서 평원기로 접어든 것이다. 2001년, 하이얼의 판매액은 603억위안인데, 2007년에 하이얼의 판매액은 1180억위안이다. 연평균증가율이 12%에 불과하다.

 

더욱 불행한 점은 리동셩의 구조개혁때, 많은 국유기업은 결손에 놓여 있었다. 이것도 TCL이 매년 순자산회수율을 10%로 하더라도 정부가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이다. 다만, 최근 몇년간, 정부는 국유기업에 대하여 구조조정을 하면서, 특히 대형 국유기업에 대하여 점차 바닥에서 벗어나 강력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07년 국유기업의 누적판매수익은 18조위안이고, 이윤은 1.62조위안이며, 연간성장률이 20%에 달한다. 하이얼의 12%성장은 이미 국유기업의 평균수준보다 뒤쳐졌다. 하이얼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판매액이 1060억위안에서 1180억위안으로 증가했다. 최근 2년간의 연평균성장률은 6%에도 못미친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하이얼은 이미 증량개혁의 기회를 놓쳤다. 국유기업이 보편적으로 잘 성장하는 환경하에서, 정부는 일반적으로 하이얼의 구조개혁시 평균성장률보다 낮추지는 않을 것이다. 하이얼의 명망을 봐서 좀 봐주어서, 순자산회수율을 요구하지 않고, 하이얼의 현재 성장률을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경영진이 실질적인 지분을 취득하기에는 요원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최근 몇년간, 중국은 위기를 연이어 맞이하고 있다. 사회가 불안하고, 정부는 중앙집권을 강화한다. 정치, 경제, 사회사상분야에서 날로 통제가 심해지고 있고, 경제분야에서 국유기업에 대한 통제가 날로 강화된다. 춘란(春蘭), 창홍(長虹), 하이얼(海爾)의 구조개혁은 TCL, 메이디(美的)때와 같은 느슨한 환경을 갖고 있지 못하다. 국유자산유실을 방지하자는 것이 보편적인 심리상태이다. 정부가 민중과의 갈등을 완화시키려는 책략이 되었다.

 

대세가 이러하니, 장뤼만이 신의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되돌릴 수가 없게 되었다. 소위 시류는 우연히 만날 수는 있지만 억지로 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可遇不可求).

 

2. 영웅지모(英雄遲暮): 석양의 영웅

 

자고양장여미녀(自古良將如美女)

불허인간견백두(不許人間見白頭)

 

자고로 좋은 장수는 미녀와 같아서,

사람들에게 흰머리를 보여주지 않는다.

 

TCL의 구조개혁때 리동셩은 겨우 39세였다. TCL의 구조개혁은 당시 체제적인 개혁의 희망을 찾는 것일 뿐아니라, 어떤 의미에서 말하자면, 리동셩에 대한 개인적인 기대가 있었다. 은연중에, 현지정부는 연부역강한 리동셩에게 기대를 걸었고, TCL을 좀더 잘 이끌기를 바랬다. 1993년에 TCL전자집단공사 총경리를 맡은 후로, 1997년 구조개혁에 이르기까지, 리동셩은 이미 경영재능을 드러냈을 뿐아니라,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했고, 전도가 양양했다. 그러나, TCL식의 증량개혁이 성공을 이루면, 리동셩과 현지정부는 윈윈을 이룰 수 있었다. 리동셩은 지분의 인센티브를 받는 것이고, 현지정부도 리동셩의 경영능력을 최소한 10년이상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49년에 태어난 장뤼민은 이순(耳順)을 1살 남겨두고 있으니, 이미 인생의 가을에 접어들었다.

 

하이얼에 대하여, 장뤼민은 더더구나 과거를 대표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1984년부터 장뤼민은 하이얼을 도산에 직면한 이름없는 작은 공장에서, 중국 최고급의 가전기업으로 발전시켰다. 그의 경영재능은 세상이 모두 인정한다. 장뤼민은 세계의 선진경영관리이론이 익숙했고, 본토시장에 대한 오성과 통찰도 뛰어났다. 그는 뿌리를 전통문화와 본토시장에 둔 경영관리모델은 모두 그를 중국의 잭 웰치로 만들었다.

 

다만, 2001년이후, 하이얼은 성장의 벽에 부닥친다. 특히 2005년이래, 심지어 주업무에서 결손이 나타난 적도 있었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하이얼의 판매액은 1060억위안에서 1180억위안으로 연평균성장률이 6%에 불과해졌다. 같은 기간 주요 경쟁상대방인 메이디는 2005년의 456억위안에서 2007년에는 750억위안으로 늘어서 연평균성장률이 30%에 달했다. 또 다른 주요 경쟁상대방인 거리(格力, Gree)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연평균성장률이 25%에 가깝다. 증가속도가 하이얼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그리고 하이얼은 과거의 전통지주산업인 에어컨사업에서 2008년의 8개월간 통계를 보면, 메이디와 거리의 수입이 모두 하이얼의 3배이다. 예전에 업계의 패주였지만, 이미 업계의 이류로 전락했다.

 

하이얼은 최근들어 방황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경영의 곤경을 보여준다. 일원화 영수의 주요지배구조를 지닌 하이얼은 장뤼민이 책임져야 한다. 일시에 사람들은 장뤼민에 대하여 의문을 품었다. 위인은 이제 시들었는가?

 

만일 당년의 TCL의 구조개혁은 리동셩 개인에게 있어서 댓가도 있고 희망도 있었다고 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하이얼의 구조개혁은 장뤼민에게 있어서 아마도 그저 기존의 거대한 공헌에 대한 댓가의 의미밖에 없을 것이다. 위축된 업적은 이미 장뤼민의 곤경을 날로 드러나게 할 뿐이다. 하늘을 힘차게 날던 거대한 새는 이제 한때 힘있던 날개를 내려뜨리고 있다. 석양의 노래가 울려퍼진다.

 

영웅은 이제 늙었다.

 

장뤼민은 기업을 24년간 경영해왔다. 개인소득은 공헌과 비교하자면 물질적으로 확실히 균형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하느님은 창문 하나를 닫아버리면, 반드시 또 다른 창문을 열어준다. 정신영역에서 장뤼민은 아주 존경받는다. 장뤼민은 17기 중앙후보위원이다. 이는 거의 국내기업가가 도달할 수 있는 개인지위나 영예로는 최고봉이다. 중국관방에서 찍은 <<수석집행관>>의 주인공인 능민의 원형은 바로 장뤼민이다. 관방이건 민간기업계이건 모두 그에 대하여 높은 평가를 내린다.

 

만일, 언젠가 장뤼민이 은퇴한다면, 예견할 수 있는 것은, 관방은 장뤼민에게 인센티브를 줄 것이다. 아마도 이는 정신적인 것이 위주일 것이다. 전체 하이얼의 실제지배권을 인센티브로 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것은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본성이다. 물질적인 인센티브를 준다고 하더라도 1억? 혹은 10억?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것으로 하이얼이라는 1천억이 넘는 거대한 기업의 몇 % 지분이나 취득하겠는가?

 

당연히 장뤼민의 영향력과 그리고 하이얼에 대한 비할 바 없는 지배력이 있으므로, 장뤼민은 이것을 가지고 도박을 해볼 수는 있다. 이전의 공헌을 지분으로 바꿀 수는 있다. 그러나, 이는 장뤼민이 원하는 바가 아닐 것이다. 전세대 기업가로서, 니룬펑(倪潤峰, 창홍의 동사장)이든 장뤼민이건, 그들의 몸에는 일종의 이성주의정신이 충만하다. 모두 '산업보국' '민족브랜드창조'를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다. 장뤼민의 포부와 흉금으로 그리고 그가 중국정치제도를 잘 알고 있는데서 보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같은 도시의 왕하이(汪海, 雙星그룹)는 말년에 구조개혁의 막차를 집어타고 기존의 공헌을 가지고 지배권을 차지했으며, 논쟁의 여지가 있는 비증량 구조개혁을 했다. 구별되는 점이라면 쌍성은 그저 작은 시냇물이고, 하이얼은 바다라는 것이다. 돌맹이 하나만으로도 천하에 파도가 칠 것이니, 같은 반열에 놓고 얘기할 수 없다.

 

3. 천명불귀(天命不歸): 천명은 그의 것이 아니다

 

전인경지후인수(前人耕地後人收)

 

앞사람이 갈아놓으면 뒷사람이 거둔다

 

하이얼의 구조개혁을 위하여 설립한 하이얼중젠(海爾中建)공사의 고위경영진에 장뤼민의 이름이 빠졌다. 이는 음미할만한 현상이다.

 

장뤼민이 없었더라면, 하이얼은 작은 이름없는 공장에서 천억자산을 지닌 특대형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기왕의 공헌과 현재의 곤경은 바로 장뤼민을 '공고불상(功高不償, 공로는 크지만 상은 받지 못함)'의 지경으로 몰아넣고 있다. 장뤼민의 임기내에 그는 재산권개혁을 완수할 수 없을 것이다.

 

하이얼은 메이디나 TCL과 다르다. 허향젠(何享健)과 리동셩의 수하에는 장수들이 구름처럼 많고, 모신(謀臣)도 비처럼 많다. 하이얼의 기업 지배구조이념영역의 권위주의와 일원영수모델은 후계자의 배양 특히 최고경영진의 배양에 있어서 계속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심각한 일은, 하이얼은 거의 권력의 단층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장뤼민과 양��(楊綿綿)은 사실 같은 시대의 사람이다. 심지어 양��은 장뤼민보다도 8살이나 많다. 최근들어 굴기한 후계자군은 집행인이지 메이디의 팡홍보(方洪波)와 같이 혼자서 감당할만한 최고사령관재목이 결핍되어 있다. 장뤼민은 하이얼의 사상지도자 겸 조직영역의 영수로서 그는 지나치게 강했고, 장수식의 인물이 나타나는 것을 억제했다. 장뤼민의 이후에 인재의 단층이 생긴 것이다.

 

후계자가 없는 곤경은 장뤼민으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임기를 연장하게 했고, 미래의 하이얼이 개혁을 완성하려면, 장뤼민과 같은 강세인물이 주도하여야만 완성할 수 있다. 하이얼의 내부 재산권을 명확히 하는 일이건, 아니면 하이얼을 최근 몇년간의 부진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이건 아니면 미래의 국제화전략이건 모두 장뤼민의 결단이 필요하다. 장뤼민의 미래사명은 자기의 영향력과 재지로 개혁의 길에 놓인 각종 장애물을 치우는 일이다. 미래후계자가 풍성하게 거둘 수 있도록 초석이 되는 것이 바로 장뤼민의 숙명이다.

 

어떤 의미에서 말하자면, 하이얼중젠의 경영진에 장뤼민의 이름이 없다는 것ㅇ느 사실 이미 장뤼민의 미래 하이얼에서의 역할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하나의 초석을 다진 자이지, 수확을 거둘 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한 시대를 연 인물이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위하여 길을 놓은 사람이다. 다만,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면 그는 역사를 독점할 수 없고 권한을 후임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개인각도에서 말하자면, 장뤼민은 물질보수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았다. 하이얼을 진정한 강한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 아마도 그에게 가장 큰 영광일 것이다. 누가 수확을 거둘지는 하늘만이 알 것이다.

 

장기적인 안목을 지녔던 조조는 다른 사람이 그에게 황제를 칭하라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 만일 천명이 나에게 있다면, 나는 주문왕(周文王)이다.

 

장뤼민은 바로 하이얼의 주문왕으로 운명지워진 사람이다. 이것은 아마도 많은 창업영웅의 영광이자 비애이다. 소위 천명은 뒤에 오는 사람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