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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도시

한단(邯鄲): 3천년간 이름이 바뀐 적이 없는 도시

by 중은우시 2011. 6. 27.

 

 

: 가운봉(賈雲峰)

 

 

왜황궁

 

인류의 역사가 처음 시작한 곳은 현대사처럼 확실하지 않고, 모호하며 신비롭다. 동방이건 서방이건 역사의 시작은 신화와 전설이다.

사람은 역사의 주인공이다.

사람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래서, 다윈의 진화론을 모르는 조상들은 사람을 만든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성경에서는 사람을 7일만에 만들었다고 한다.

중국의 전설에서, 상고시대의 인류시조인 여왜(女媧)는 한단(邯鄲)의 고중황산위에서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탄생한다.

 

한단은 확실히 우리가 주목할 곳이다.

이 도시의 이름은 화하역사의 시작편에 쓰여 있고, 그곳은 전설상의 인류기원의 땅이다. 한단의 신기한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한단에 가까이 가면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계속된다.

 

많은 역사의 변화가 한단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근원과 물길의 관계이다. 한단에서 출발하여 계속하여 흘러간다.

기원전259, 진시황 영정은 한단에서 출생한다. 그는 중국역사상 첫번째 황제이다. 중국 내지 세계역사상 미친 영향이 크다. 당시에 어렸던 영정은 한단에서 출발하여, 제후를 소멸시키고, 중국을 통일하는 불후의 업적을 쌓았다. 그리고 후세의 존경을 받는 천고일제가 되었다.

 

한단은 인재가 많이 배출된 도시이다. 문관이던 무장이든 모두 줄줄이 배출된다.

그들중 호복기사(胡服騎射)를 주장한 중국고대의 개혁개방, 변법자강의 선구인 조무령왕이 있다; 중국의 절반을 통일하고 시부에 능한 일대효웅 조조가 있다; 제갈량과 매번 비교되고 관중과 나란히 이름이 거명되는 장군 악의가 있다; 공자사상에 대한 비판과 계승을 한 대유학자 순자가 있다; 시경에 주석을 단 모장(毛萇)이 있다: ‘백마비마의 유심주의 궤변론자로 유명한 사상가 공손룡이 있고; 자천한 것으로 유명한 모수(毛遂)도 있다

 

그외에, “장상화(將相和)”중의 염포, 인상여가 모두 한단에 속하고; 전국시대 4대명장중 이목, 염파 두 명이 한단에 속하며, 전국사공자중 한명인 평원군 조승도 역시 한단사람이다.

그리고, 한단은 두 명의 태국권의 조사 양로선(楊露禪), 무우양(武禹襄)이 있고, 양대 경성경국미녀 조희(趙姬), 나부(羅敷)가 있다. 여기서 언급할 것은 후자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조희는 진시황의 모친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중국봉건역사상 최초의 황태후이다. 나부는 한나라의 악부 <맥상상>의 여주인공이고, 정절을 지키고, 빙청옥결의 품성은 후세인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한단이 문화의 도시라는 것과 관련하여, 한가지 언급할 점은 한단과 관련된 고사성어만 3천여개에 달한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한단은 중국고사성어의 고향이라는 별칭도 지니고 있다. “호복기사(胡服騎射)”, “한단학보(邯鄲學步)”, “완벽귀조(完璧歸趙)”, “부형청죄(負荊請罪)”, “황량지몽(黃粱之夢)”, “모수자천(毛遂自薦)”, “지상담병(紙上談兵)”, “위위구조(圍魏救趙)”등 익숙한 고사성어들이 모두 한단에서 나왔다.

 

이외에, 한단은 풍부한 관광자원을 지니고 있다. 피영희(皮影戱), 무안나희(武安儺戱), 여왜제전(女媧祭典), 양식태극권(楊式太極拳)등 비물질문화유산이 있고, 왜황궁, 총대공원, 팔로군129사단사령부부지, 조양구등 AAAA급 관광지구가 있다.

 

거의 모든 왕조마다 한단에는 풍부한 역사문화유산을 남겼다. 신석기시대의 자산문화, 춘추전국시대의 조나라문화, 조위시대의 건안문화, 북제시기의 석굴문화가 있다. 이외에 몽문화, 자주요문화, 광부태극문화, 성어전고문화, 변구혁명문화등이 있다. 서로 다른 시기, 서로 다른 지역, 서로 다른 주제의 문화가 서로 교차한다.

 

하나의 한단은 무궁한 맛을 지니고 있다. <한서.지리지>에 따르면, 한단의 동쪽 성아래에 산이 있는데, 한산(邯山)이라고 한다. ()은 다한다()는 뜻이다. , ‘한산의 끝머리가 바로 한단이다. 성곽이 있으므로 도시의 이름에 읍()을 추가하여 한단(邯鄲)이 된 것이다.

 

한단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3천년간 이름을 바꾸지 않은 도시이다. 이는 중국역사상 유일무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