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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도시

광저우(廣州)의 지명 "사(沙)"의 뜻은?

by 중은우시 2013. 12. 6.

글: 황소아(黃小婭)

 

"부용사(芙蓉沙)"는 광저우 원방촌구(原芳村區)의 가장 오래된 지명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남월왕 조타(趙佗)에게서 유래했다고 한다. 당시 그곳은 망망대해였는데, 조타가 여러 신하들을 이끌고 월왕강(越王崗)을 올라서 바다를 바라보는데 몇 개의 섬이 바닷 속에서 나타나는데, 마치 출수부용(出水芙蓉, 물에서 갓나온 물기 머금은 연꽃)같다고 하여, '부용사'라고 이름했다고 한다. 현지에는 지금까지 "조타의 손자 태자가 부용사로 피난왔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광저우의 적지 않은 지명은 "사(沙)"자가 붙는다. 다만 지칭하는 것은 사람들이 쉬고 노는 모래사장(沙灘)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강의 가운데 퇴적된 작은 섬이거나 혹은 바닷가 혹은 강가에 진흙층이 퇴적하여 이루어진 평탄한 육지를 가리킨다.

 

월수구(越秀區) 북경남로의 "태평사가(太平沙街)"는 명나라때 주강(珠江)의 작은 섬이었다. 청나라초기 영남(嶺南)의 대시인 진공윤(陳恭尹)의 "태평연호(太平煙滸)"로 인해서 그런 이름을 얻엇다. 주강 백아담(白鵝潭) 가에는 "사면(沙面)"이 있는데, 청나라초기에는 "중류사(中流沙)"라고 불렀다. 함풍9년(1859년) 돌을 날라서 바다를 메우고, 돌로 제방을 섬모양으로 쌓는다. 그리하여, "사면도(沙面島)"라고 불리웠다. 여만구(茘灣區)의 "황사(黃沙)"도 마찬가지로, 주강이 충적되어 만들어졌다. 지세가 편평하고, 역사상 수상주민이 거주지이다.

 

중국에서 최초로 설비가 완비된 체육훈련기지인 "이사두(二沙頭)"는 주강의 한 섬이다. 서로 다른 방위에 따라, 일찌기 "사남(沙南)", "사북(沙北)"과 "사미(沙尾)"라고 불렀다. 1930년대, 영남대학의 저명한 사회학자 오예린(吳銳麟) 선생은 일찌기 사남으로 가서 사회조사를 한다. 그리고 유명한 <사남단민조사보고(沙南疍民調査報告)>를 완성한다.

 

통명 "사"는 특수한 의미를 지닌다. 광저우의 지리환경변화와 관련이 있다. 광저우의 지형은 대체로 동북이 높고 서남이 낮다. 차례로 저산(低山), 구릉(丘陵), 대지(臺地), 평원(平原)등이다. 그리하여 충적된 니사(泥沙)가 서강, 북강, 동강의 세 개의 강이 데려온 사니류(沙泥流)가 주강 부근에 흘러서 모여든다. 점점 평원을 형성한다; 주강의 그 니사가 퇴적해서 만들어진 크기가 서로 다른 육지를 월어(粤語)사용인들은 "사", "주(洲)" 혹은 "사주(沙洲)"라고 부른다. 가르키는 것이 같으므로, 지명을 명명할 때 서로 바꾸어 쓰기도 하지만 그 뜻은 바뀌지 않는다.

 

광저우 원방촌구를 예로 들어보자. 명나라 정통연간에 "강심사주(江心沙洲)"이라는 섬이 하나 있다. 나중에 섬에 많은 규봉(葵蓬)으로 만든 붕료(棚寮)를 만들어서 "규봉주(葵蓬洲)"라고 부른다. 현재의 민치소학(民治小學)이 소재한 곳이다. 청나라말기에는 "대보사(大埗沙)"라고 불린다. 그외에 부용외사(芙蓉外沙), 대사(大沙), 사미(沙尾), 현용사(蜆湧沙), 복수사(福壽沙), 부용사, 신륭사(新隆沙), 대사지(大沙地), 이사지(二沙地)등의 지명은 원래 모두 강 속에 작은 섬이다.

 

광저우말의 "사전(沙田)"은 모래질이 많은 모래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주강이 씻겨내려와, 강이나 바다의 같에 진흙이 깊이 쌓여서 옥토로 된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사전"은 "사"라고도 칭할 수 있다. 사람들이 이 땅에 모여 살면서, 자식을 낳고 살아갔다. 비옥한 농지로 개간해낸 적지 않은 마을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사(沙)"자가 붙어 있다.

 

원래의 번옹구(番禺區)의 남부는 유명한 '대사전구(大沙田區)'이다. 대량의 '사'자가 붙은 지명이 분포되어 있다. 담주진(潭洲鎭)에는 마전사(馬前沙), 북류사(北流沙), 방마사(放馬沙), 압리사(鴨利沙), 유신사(維新沙), 새구사(塞口沙), 증사(增沙)등의 촌이름이 있다. 마찬가지로, "주(洲)" 또는 "사주(沙洲)"라고도 부를 수 있다. 석기진(石碁鎭)에는 "대도사주(大刀沙洲)"와 "박도사주(薄刀沙洲)"가 있고, 나중에 두 주는 늘어나서 합쳐지게 된다. 형상은 좁고 길다. 사람들은 원래의 두 이름을 합쳐서 "대박도사(大薄刀沙)"라고 부른다. 그리고 촌이름은 "대도사(大刀沙)"로 하고, "대박도(大薄刀)"라고도 한다. 종촌진(鍾村鎭)에는 사주가 하나 있는데, 전해지는 바로는 송나라때 퇴적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촌을 만들 때 "대주(大洲)"라고 이름짓는다.

 

만경사(萬頃沙)는 서북강 삼각주에서 영정양(伶仃洋)으로 뻗어나간 신사주(新沙洲)이다. 그래서 "만경소주(萬頃沙洲)"라고도 부른다. 그 말단은 순서대로 "사미일(沙尾一)", "사마이(沙尾二)"등으로 부른다. 의사(義沙)의 원래 이름은 "대오사(大奧沙)"이다. 사람들은 만경사를 제1사라고 하고, 대오사를 제2사로 한다. 월어에서 "이(二)"와 "의(義)"는 발음이 비슷하여, "의사"라고 불렀다. 번옹의 "해심사(海心沙)"는 넓다란 바다의 한 가운데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전해지는 바로는 명나라때 이미 수면위로 노출되었다고 한다; 그외에 자사(孖沙), 역심사(瀝心沙), 계포사(鷄抱沙)등이 있다.

 

청나라때 월지를 노래한 <죽지사>는 이러하다:

 

하화상영해남천(荷花相映海南天)

진착원앙거채련(趁着鴛鴦去採蓮)

수상유인사상녀(水上遊人沙上女)

제성박창상부련(齊聲拍唱相夫憐)

 

신사신지양변하(新沙新地兩邊河)

중유어주축랑과(中有漁舟逐浪過)

담수로어함수해(淡水鱸魚咸水蟹)

득전고주취환가(得錢沽酒醉還歌)

 

우리는 알고 있다. 지명 "사"에는 특수한 의미가 있다. 그것을 알면 위의 죽지사에 나오는 '사"가 '모래사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강 가운데 있는 작은 섬이나 물가의 육지를 말한다. "신사"는 충적으로 형성된 새로운 섬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