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민국 초기)

포가회(袍哥會)의 내력

by 중은우시 2011. 4. 4.

글: 장익문(蔣益文)

 

포가회의 기원은 청나라말기이다. 일찌기 사천의 "보로운동(保路運動, 철로국유화에 반대하는 운동)"과 무창의거등 중요한 역사사건에 참여했고, 신중국이 성립된 후에 점차 소멸했다. 포가회의 활동지역은 사천, 중경, 운남등 중국의 서남부지역에 걸쳐 있다. 사람수도 많고 영향력도 크며, 신비적인 색채가 강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잘 알지는 못하고 있다. 아래에서는 포가회의 내력과 내부비밀을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한다.

 

포가회의 내력. 

 

1644년, 청나라가 북경을 점령하여 명나라를 대체한 후, 한족에 대하여 무력진압정책을 채택한다. 민간에서는 '반청복명'의 투쟁이 일어나고, '구제달로, 반청복명(驅除鞑虏, 反淸復明)'을 기치로 내걸었는데, 각성, 각지역에서 조직명칭은 각각 달랐다. 그중 규모가 비교적 큰 것으로는 '천지회'가 있다. 나중에 천지회에서 한 갈래가 갈라져 나오는데, 가로회(哥老會)이다. 함풍연간에 일어나서 6년이나 지속된 사천을 주무대로 한 이영화, 남조정, 이남의 농민의거는 기본적으로 가로회를 바탕으로 한다. 도광, 동치 두황제시대에 가로회를 사천에서는 '포가(袍哥)'라고 통칭했다.

 

포가회가 참여한 역사적 사건. 

 

우선 보로운동이다. 신해혁명전에 사천에는 손중산의 '동맹회'가 기획하여 '보로운동'이 발발한다. 전체 성의 각지에서 속속 보로동지회를 결성하고, 나아가 반청무장역량인 '동지군'을 결성한다. 이때 실질적으로 각지역의 포가조직을 골간으로 하여 농민을 끌어들여 청나라정권을 전복하려 한 것이다. 신해혁명전에, 동맹회는 전국각지의 회당과의 연락을 강화하였다. 손중산은 일찌기 일본에서 웅극무, 단무신, 장석상등을 끌어들였는데, 웅씨등도 사천의 포가세력은 강대하고, 지역도 넓어, 동맹회가 각지의 포가세력을 이끌 수 있다면, 청나라를 무너뜨리는데 아주 유리할 것으로 보았다.

 

많은 하층민중이 속속 포가조직에 가담한 후, 점차 지역부호지식층도 가담하여 서로를 보호해주게 된다. 1911년, 사천의 포가조직은 각주, 부, 현으로 파고들어, '개산, 입당'하였다. 당시 민간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명말무백정, 청말무공자'. 여기서 '공자'는 포가에 가담하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

 

동맹회는 각지에서 보로운동을 선동하고, 대규모의거를 일으킨다. 농민을 위주로 하여 포가조직이 선도하였다. 중경, 성도 부근에서 가장 뛰어난 자들은 광한의 후귤원, 후국치, 신진의 후보재, 온강의 오경조(오이대왕), 숭경의 손택패, 관현의 장첩선등이었다. 이들은 모두 포가의 타파자(舵把子)의 신분으로 동지군의 수령이 되어, 병력을 이끌고 성도를 포위공격했다. 당시 십여만에 이른다고 할 정도로 기세가 등등했다. 전투는 전체 사천으로 번져가고, 청나라정권의 붕괴를 가속화시켰다.

 

1911년 10월, 무창의거가 성공하자, "대한사천군정부(大漢四川軍政府)"가 출범한다. 왕우유의 <대한사천군정부성립전후견문>에 따르면, "윤창형이 대한사천군정부 도독의 자리에 오른 후, 공개적으로 가로회조직을 제창했다. 도독부의 대문위에 '대한공(大漢公)'이라는 편액을 달았고, 스스로 대한공의 '타파자'가 된다. 그때, 운남, 귀주, 호남등 삼성군정부가 연명으로 성도군정부를 '포가정부'라고 비난하며 승인하지 않은 바 있다. 윤창형은 외부의 명성이 좋지 않아지나, 가로회를 단속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성도의 200여개의 공구(公口) 초패(招牌)를 모조리 수거한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초패를 수거하였지만, 실제로는 계속 암중으로 발전시킨다.

 

포가회의 조직형식.

 

중경, 성도지구의 포가조직은 형식에 있어서 사천성의 다른 지역과 유사했다. 횡행조직(橫行組織)이었다. 소위 '형제도'는 오륜(군신, 부자, 형제, 부부, 친구), 팔덕(효,제,충,신,예,의,염,치)를 신조로 한다. 연락거점을 처음에는 '산두(山頭)' '향당(香堂)'이라고 부르다가 참가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산두, 형당을 '마두(碼頭)'(公口 혹은 社라고도 한다), 마두는 5개의 당구가 있는데, '인, 의, 예, 지, 신"(혹은 위,덕,복,지,선)이라 부른다.

 

5개 당구는 5가지 서로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 참가한다. '인(仁)'자는 옛날 사회에서 지위와 체면이 있는 인물이 참가하고, '의(義)'자는 돈이 있는 상인이 참가하고, '예(禮)'자는 소규모수공업노동자들이 참가했다. 이들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하기도 한다: "인자는 정자(頂子)를 중시하고, 의자는 은자를 중시하고, 예자는 도자(刀)자를 중시한다." 지, 신의 두 당은 구사회에서 최하층의 육체노동자들이다. 그들의 조직방법은 신비한 규정이 있다. 예를 들어, 구사회에서 하류직업으로 분류되는, 창기(娼妓), 소수연(燒水煙), 수족장(修足匠), 찰배(擦背), 이발, 남예인, 여배우등은 모두 포가에 참여할 수 없다. 그리고 도둑질하는 자나 처가 아무 남자와 놀아나거나, 모친이 개가하였거나 하는 경우에도 차별을 받아 포가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재물을 강탈하는 비적 깡패는 모두 참가할 수 있었다.

 

모든 공구(당구)는 10배(排)로 구성된다: 두배(頭排)의 수뇌인물을 '대야'라고 부른다. 대야중 '용두대야(龍頭大爺)' 혹은 좌당대야(坐堂大爺)외에 상벌을 담당하는 집법대야도 있고, 별로 일에 관여하지 않는 '한대야(閑大爺)'도 있다.

 

이배(二排)의 한 사람을 성현이야(聖賢二爺)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정직하고 의리와 신용을 지키는 사람을 추천하여 봅는다. 도원결의의 관성인(관우)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일반적으로 마두조직내에서 그다지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람좋은 인물인 경우가 많다.

 

삼배(三排)의 한 사람을 '당가삼야(當家三爺)'라고 부르는데, 그는 내부의 인사, 재무를 담당한다. 특해 향당을 열 때, 각족 업무를 기획 안배하는 책임을 진다. 이 사람은 전체 마두에서 핵심인물이다.

 

오배(五排)에는 '관사오야(管事五爺)가 있고, '내관사' '홍기관사' '방판관사' '한관사'로 나눈다. '내관사' 즉 '흑기관사'는 반드시 포가의 예절, 강호용어에 능통하여야 한다. 회의를 열  때 그가 예의를 관장하고, 자리순서를 정하며, 타파자의 분부를 전하는 일을 한다. '홍기관사'는 외교를 담당한다. 삼산오악, 남북의 가로회들과 연락하는 업무를 한다. 연락과정에서 오는 사람을 맞이하고 사람을 보내는 등 임무가 상당히 복잡하다. '안의 일에 잘 모르는 일이 있으면 당가에 물어보고, 바깥 일에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관사에게 물어보라'는 말이 있다.

 

오배 이하에는 육배의 '순풍육야'가 있다. 회의개최개간 혹은 '향당'을 개설할 때 그는 순찰을 책임지고, 관부의 동정을 정탐하며, 연락업무를 담당한다. 팔배, 구배의 사람들은 평소에 마두의 각 윗사람들의 심부름을 한다. 향당을 개설하는 회기가 되면 그들이 가장 바쁘다. 당가삼야의 지시를 받아 전체 마두의 사람들은 동서로 뛰어다니게 된다. 십배는 '노요(老幺)"라고 부르는데, 노요에도 '대노요' '소노요'의 구분이 있다. 일배부터 10배까지를 '일조룡(一條龍)'이라고 부른다. 성도에서 일반적으로 마두는 '공' 이나 '사'로 부른다. '사'에는 '총사'와 '분사'의 구분이 있다.

 

각지의 포가는 모두 '사배'와 '칠배'는 두지 않는다. '사'는 도원결의때 조자룡이 마땅히 넷째동생이 되어야 했으므로 자리를 비워둔다는 것이다. 칠은 전설에 따르면 반도(叛徒)라는 것이다. 와강채의 나성이 일곱째였다. 그래서, 사배와 칠배는 없다.

 

가로회는 비록 '호협을 따지고, 의리를 중시한다'고 하지만, 유교식 예절인 '오륜팔덕'을 신조로 삼으니 봉건의식이 악성팽창을 하게 된다. 일부분 사람들은 점점 변질되어 서로 다를 포가로 된다. 소위 '청수(淸水, 맑은 물)'와 '혼수(渾水, 흐린 물)'이다.

 

청수포가에서 다시 '금대피(金帶皮)'와 '하구류(下九流)'로 나뉜다. 금대피의 의미는 금이 돈을 의미하고, 피는 체면을 의미한다. 즉, 체면도 있고 돈도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들을 금대피포가라고 부른다. 그들은 자신의 권세를 이용하여 '대야'에 오르는 인물이다. 측자,산명,포당, 도사, 병졸등을 사람들이 보기에 하류의 직업에 속한다. 이들은 '지' '신'의 두 당에 속할 수밖에 없다.

 

혼수포가의 조직은 청수포가와 같다. 그저 칭호가 조금 다르다. 청수포가의 우두머리믄 '파타자' 혹은 '사장(社長)'이라고 하지만, 혼수포가에서는 우두머리를 습관적으로 '노요(老搖)'라고 부른다. '노요'보다 낮은 등급을 '변붕노판(邊棚老板)', '관사'라고 부른다. 혼수포가를 보통 '도탄장(跳灘匠)'이라고도 부른다.

 

포가는 매년 몇번 회기를 가진다. 가장 정중한 것은 음력 오월 십삼일의 '단도회(單刀會)'이다. 전설에 따르면 삼국시애 관운장이 단도부회한 날이라고 한다. 이 날, 크고 작은 마두, 공구는 모두 융중한 성회를 연다. 색색의 등과 천을 걸고, 향안을 펼치고, 회중에게 연회를 베풀며, 널리 손님과 친구를 불러모은다. 처음에 포가에 참가하는 사람은 반드시 "신가청, 기사명(身家淸, 己事明)'의 두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 그를 추천한 사람이 회의장에 데리고 들어갈 수 있다. 4형 즉 은형, 승형, 보거, 인진에게 인사를 하고, '배양'을 받아야 비로소 '배항(排行)'이 정해진다. 그후에야 형제로 서로 부를 수 있고, 정식 포가가 되는 것이다. 기존의 포가는 이날 논공행상을 하여, 승진을 시킨다. 다른 집회도 있는데, 정월에는 '춘대주' 납월에는 '단년회'를 한다. 그리고, 비정기적인 '영빈회'도 있다. 회기에는 서로 인사하는 외에, 먹고 마시며, 도박을 벌이고 아편을 피우는 외에 서로간에 분쟁이나 원한도 해결한다. 윗사람이 나서서 화해시킨다. 중경에서 포가의 마두는 절대다수가 차관에 있다. 어떤 차관의 앞에는 모모공 모모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차관은 포가들이 활동하는 중심이자 연락처이다. 보통 홍기대관사가 책임을 진다.

 

포가에는 18조의 죄행에 관한 규정이 있다. 부모불효죄, 상사불경죄, 친척구타죄, 부녀희롱죄등등이다. 범한 후에는 '표도' '삼도육개안' '자기와갱자기매' 과흑패' 연근발' '강급'등등의 처벌을 받는다. 다른 포가의 경전 <해저>에는 '십조' '십관' '십요' '십금' '오륜' '팔덕' '구장'이 기록되어 있는데, 쉬운 글로 되어 있지만, 진위를 파악하기는 힘들다. 성도지역의 포가조직에서 실제로 집행된 것은 드물다.

 

중경포가의 크고 작은 공구(마두)에서는 십여년동안 천개이상이었다. '손, 오, 정, 장'과 '마, 원, 강, 탕'이외에 더욱 유명한 사람으로는 장강 일대에서 청홍양방과 통했던 냉개태(冷開泰), 사천남부에 이름을 떨친 등숙재(鄧叔才), 북로총관화의 마곤산(馬昆山), 도삽계령자의 공위덕, 팔방각평의 진준산등이 있다. 이들의 역할과 독기는 범소증, 진란정, 석조무같은 류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후, 정부는 토지개혁의 방법으로 사회하층민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며, 일체의 민간방회조직을 단속한다. 그리고 해방군에 저항한 무장포가회를 대거 진압한다. 그리하여 공산당을 도와준 적이 있는 홍색포가조직까지도 신속히 와해된다. 이렇게 하여 100여년에 걸친 포가의 역사는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