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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남북조)

장려화(張麗華)는 어떻게 후궁과 조정을 장악했는가?

by 중은우시 2011. 3. 21.

 

 

: 장계합(張繼合)

 

장려화는 악명을 떨친 여인이다. 그녀는 남북조시대 남진(南陳)의 후주(後主) 진숙보(陳叔寶)의 후궁이다. <<진서>> <<남사>>에는 그녀가 어떻게 하여 시골아가씨에서 황제의 총애를 받는 여인으로 변신하게 되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그녀는 10살 때 궁녀로 뽑혀 건강성(建康城)으로 들어와 진숙보의 비()인 공씨(龔氏)의 시녀가 된다. 이때, 진숙보는 아직 동궁태자로 있었으며, 진나라의 후계자로서, 시종 편안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가련한 공씨는 자신이 데리고 있는 어린 시녀가, 자신을 위하여 차를 끓여오고 이불을 개어주고, 머리를 빗겨주는 어린 시녀가, 금방 자신과 총애를 다투는 정적이 되고, 진씨천하를 망가뜨리는 극성으로 성장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진서.열전>>에는 위징의 입을 빌어 이 10살된 어린 여자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머리카락은 길이가 7척이고, 머리카락은 칠흑처럼 검고, 빛이 날 정도로 윤기가 있다. 아주 총명하고, 기품이 있으며, 행동거지가 우아하고, 용모가 단아하다. 매번 쳐다볼 때면 빛이 눈에 넘치고 좌우에 비칠 정도이다.” 진숙보는 어떤 사람인가? 예쁜 여인만 보면 뼈가 녹아내리는 사람이다. 그는 먹지 않고 마시지 않을 수는 있지만 여인이 없이는 살 수가 없는 사람이다. 이 선녀와도 같은 어린 여자아이는 금방 그의 점유욕을 자극한다. 진숙보는 입을 멍하니 벌리고 반나절을 바라보다가 공씨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여자는 천향국색이로다. 너는 어찌 곁에 숨겨두고, 나에게 보여주지 않았느냐.”

 

처음에는 여자들은 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흐린 물이 된다. 10살된 장려화는 막 물에서 나온 연꽃과 같았다. 그리하여 풍류를 즐기는 진숙보에게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장난감이 된다. 진숙보는 그녀를 매일 자신의 다리 위에 올려놓았다. 서로 쳐다보면서 눈빛을 전하고, 애교를 부렸다. 일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장려화는 점점 황제의 측근비서로 변신한다.

 

장려화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다. 배경도 없고 뒤를 돌봐줄 사람도 없다. 후궁내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당연히 두뇌이다. 그녀가 황궁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주인을 모시는 일이었다. 성깔사나운 후궁들을 모시려면 눈치가 빨라야 했고, 동작이 빨라야 했다. 하는 일이 주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되었다. 다행히 그녀는 이 측면에 뛰어난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어린 소녀에게 예쁜 용모는 당연히 중요한 재산이다. 그러나 장려화는 절대로 빈꽃병이 아니었다. 그녀의 지적수준은 중상이상이었다. <<진서>>에는 장려화가 말재주가 뛰어나고 기억력이 좋았다. 사람의 안색을 잘 살폈다고 기록한다. 황제는 하루종일 여인과 술로 바쁘다. 그러니 백관들이 올리는 글에 신경쓸 여지가 없었다. 그런 귀찮은 일들은 모조리 환관인 채탈아(蔡脫兒), 이선도(李善度)가 먼저 가려냈다. 장려화가 황제의 무릎 위에 올라앉은 때로부터는, 모든 조정의 문건들이 하나도 빠트리는 법이 없었다. 이 어린 여자아이는 기억력이 좋아서, 일단 채탈아, 이선도가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한줄한줄 그녀는 그것을 한자한자 외울 수 있었다. 이는 비서로서 뛰어난 재주가 아니겠는가?

 

여자 세 명이면 드라마가 이루어진다. 하물며 여자들이 운집한 후궁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여자들 틈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산채를 장악해서 산적두목이 되는 것보다 어렵다. 장려화라는 어린 나이에 귀비에 오른 그녀는 천성적으로 이런 일에 뛰어났다. 사람들에게 잘 해주고, 여인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그녀는 본능적으로 이를 익혔다. 가난한 집안의 여자로서 아마도 이는 어쩔 수 없이 익힌 잠재능력일 것이다. 다행히 그녀는 이 잠재능력을 잘 갖추었다.

 

<<진서.열전>>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진숙보)가 매번 귀비에게 손님들과 연회를 베풀 때면, 귀비는 다른 후궁을 추천했다. 그러니 후궁들이 모두 장귀비는 덕이 있다고 칭송하고, 서로 앞다투어 귀비가 착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하여 후궁들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큰일이건 작은 일이건 장려화에게 부탁만 하면 모두 해결이 된다. 왕공대신이라고 하더라도 장려화가 황제의 앞에서 한 마디만 하면, 바로 그날로 짐을 싸서 돌아가야 한다. 이런 여인이 떡하니 자리잡고 앉아있다면 누가 마음 편하게 살 수 있겠는가. 다행히, 장귀비는 아직도 힘을 축적할 단계였고, ‘다른 사람과 잘 지내는 것이 나도 잘 지내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후궁의 아래위가 모두 그녀를 칭찬했다.

 

후궁에 다른 남자가 있는갸? 바꿔 말해서, 삼천미녀들에게 다른 선택은 있을 수 없다. 오로지 황제폐하에게 잘 보이는 것밖에는. 진숙보는 미인을 좋아하고 미인을 아꼈다. 그는 장려화의 말이라면 모두 따랐고, 장려화도 황제의 뜻에 맞추었다. 그녀는 진숙보를 자신의 필생의 사업으로 여겼고, 온갖 수완을 동원해서 그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황제의 성격을 파악하다보니 황제를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갈 수 있었다.

 

진숙보는 글재주도 있었고, 시를 잘 지었다. 장려화는 새시회(賽詩會)’, ‘창시반(唱詩班)’등을 만들었고, 그 자리에서는 온갖 종류의 시들이 다 나왔다. 진숙보는 바로 이 자리에서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라는 시를 짓는다.

 

여우방림대고각(麗宇芳林對高閣)

신장염질본경성(新粧艶質本傾城)

영호응교사부진(映戶凝嬌乍不進)

출유함태소상영(出帷含態笑相迎)

교희검사화함로(嬌姬似花含露)

옥수유광조후정(玉樹流光照後庭)

화개화락부장구(花開花落不長久)

낙홍만지귀적중(落紅滿地歸寂中)

 

이 시는 250년후에도 여전히 진회하의 뱃놀이때 불리워지면서, 시인 두목(杜牧)의 탄식을 자아내게 된다.

 

가무음곡이외에 장려화는 황제의 마음을 잡기 위하여 귀신에게 기구하는 활동도 벌였다. “장려화는 염매(厭魅)의 술법에 능하여 귀신의 말로 후주를 미혹했다. 황음한 사당을 궁중에 두고, 여러 무당들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였다황제가 미신을 믿기만 한다면 장귀비는 그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할 수 있었다. 장리화는 여전히 황제와 신하들간의 연락관이었다. “인간세상의 말 한마디 일 하나까지 귀비가 먼저 알고서 그 다음에 황제에게 말했다. 그러다보니 총애가 더욱 깊어졌고, 후궁중에서 가장 총애를 받게 된다.” 이제는 조야에서 진숙보는 몰라도 장려화는 아는 상황이 오게 된다.

 

속담에 산에 의지하면 산이 무너지는 때가 있고, 사람에 의지하면 사람이 늙게 된다는 말이 있지만, 장려화는 수중의 권력을 그냥 낭비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사람을 심기 시작한다. 여인이 정치를 하게 되면 너무나 쉽게 지나치게 된다. 권력은 사람이 이성을 마비시킨다. 장려화는 멍청하지 않았다. 그러나, 1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르게 되자 그녀의 욕망은 무한팽창하게 된다. 각종 정치적인 의도가 속속 성사되자, 예전의 조심스럽고 주의성깊던 장려화는 돌연 발호하기 사직한다. 그녀의 손안에 남진왕조는 망하게 된다. 자신의 심복을 심고, 천하의 금기를 어기고 그녀는 공공연히 법도를 어기기 시작한다.

 

내외의 종친들 중에서도 여러명이 그녀의 사람이 되고, 대신들이 정치를 하면서도 바람의 방향을 보고 움직인다. 환관이나 소인배들이 안팎으로 결탁하여 서로 이끌어준다. 뇌물이 공공연히 행해지고, 상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기강이 문란해진다.” 황제의 후궁이 후궁내에서 무슨 짓을 벌이든 그것은 상관이 없지만, 일단 조정에 간여하기 시작하면 큰 화를 초래하고 끝이 좋은 경우가 드물다. 장려화는 너무 심하게 굴었다. 비록 황제가 그녀를 비호해주기는 했지만, 외부에서 욕먹는 것을 막아줄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