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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남북조)

진숙보(陳叔寶): 중국역사상 가장 웃기는 망국지군

by 중은우시 2012. 6. 6.

글: 이리(李莉)

 

 

 

 

역사의 수레바퀴가 남북조시대로 굴러갈 때, 여기에서 한 전형적인 인물이 나타난다. 그는 바로 진후주(陳後主) 진숙보이다. 그는 역사상 가장 웃기는 황제라고 할 수 있다.

진숙보의 황제 자리는 경심동백(驚心動魄)의 과정을 거친다. 그는 태자였는데, 동생인 진숙릉(陳叔陵)이 황제자리를 빼앗으려는 생각에 부황의 유쳬 앞에서 결국 참지 못하고 칼을 휘둘렀다. 만일 모친 유태후(柳太后)와 유모가 죽음을 무릅쓰고 뛰어들어서 대신 동생의 칼을 맞아주지 않았더라면, 진숙보는 일찌감치 도하귀(刀下鬼)가 되었을 것이다.

장군 소마가(蘇摩訶)가 나서서 막아주어 겨우겨우 진숙릉의 반란을 평정한다. 그제서야 진숙보는 황제위에 안심하고 앉아 있을 수 있게 된다. 아쉽게도 그는 황위에 오른 후 유일하게 좋아한 일이 바로 후궁에 빠져 매일 즐기고 노는 것이었다.

당시 진숙보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은 비빈은 장려화(張麗華)이다. 장귀비는 머리카락이 가장 아름다웠다. 사서에 따르면, "머리카락이 일곱 자나 되고, 기름을 바른 듯 빛이 났다"고 한다. 오늘날 샴푸광고에 나오는 미인의 모습을 연상하면 될 것같다.

 

진숙보는 장려화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하늘에서 내려온 여인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깜짝 놀란다. 그는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를 써서 장려화의 미모를 찬미했다. 이 시는 천고에 전해지는 망국의 시가 된다.

 

요희검사화함로(妖姬臉似花含露)

옥수유광조후정(玉樹流光照後庭)

 

이런 싯구를 쓸 수 있다는 것을 보면 진숙보는 글깨나 읽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시 황후 심씨(沈氏)는 성격이 조용하고 생활이 검소했으며 시를 읽고 염불하기를 즐겼으며, 다른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장려화는 먼저 후궁을 장악하고, 얼마후 조정에 간여하기 시작한다. 황제를 조종하여 태자를 폐위시키고, 자신의 아들을 태자로 앉힌다.

"권력은 감독받지 않으면 반드시 부패한다" 오늘날의 이 말은 고금사해 어디에 내놓아도 진리이다.

진숙보와 진려화는 찰떡처럼 붙어다녔고, 심지어 황당하게도 장려화를 끌어안고 조정에서 정사를 논의했다. 그리하여 조정은 거의 황폐화되었다.

 

진나라는 매일 술과 여자에 빠져 있었는데, 수나라쪽에서는 일찌감치 진나라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대신인 부재(傅縡)는 죽음을 무릎쓰고 간언했다: "폐하가 주색에 빠져 있고, 소인을 기용하고, 충신과 양신을 해치니, 더 이상 깨닫지 못하면 수나라에 멸망당할 것입니다."  진후주는 그 말을 듣자, 화를 내며 그 자리에서 부재를 죽여버린다. 부재는 정말 불쌍했다. 이름을 잘못 지은 것은 그렇다 쳐도 도광양회(韜光養晦)할 줄 몰랐다. 간언을 하려면 상대방을 보고 해야 한다. 과연 이름 그대로 "박이재지(縛而宰之, 묶여서 죽임을 당하다)"당했다.

진숙보는 신하들에게 말한다. "우리 두 왕조(수나라와 진나라)는 역대이래로 평화공존해왔다. 어찌 병력을 일으켜 침범할 것인가?"

이때부터 조정에서는 더 이상 아무도 간언을 하지 않았다. 진후주는 귀를 어지럽히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조용한 나날도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날, 진숙보는 마침 귀비들과 화원에서 술을 마시며 꽃을 감상하고 있었다. 누군가 와서 보고한다. 수문제의 아들 양광이 50만병력을 이끌고 공격해 오고 있으며 이미 장강의 북안에 도착했다고. 진숙보는 장강이 천험의 요새이라고 생각해서,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계속 꽃을 감상했다.

다음 날 아침, 진숙보는 수나라군대가 이미 경구(京口)에서 장강을 넘었고, 건강성(建康城)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는 그제서야 마음을 더이상 평온하게 계속 유지할 수 없었다. 즉시, 조정의 문무대신을 소집하여 대책을 논의한다. 그러나, 조정은 이미 부패했고 아무도 병력을 이끌고 나가서 맞이하겠다고 나서지 않는다.

위기의 순간에, 일찌기 반란을 평정했던 노장군 소마가가 결국 일어선다. 그가 병력을 이끌고 적을 물리치겠다고 자원한 것이다. 진숙보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며, 소마가에게 즉시 출정하라고 하고, 그의 처자식은 궁으로 불러서 큰 상을 내린다.

 

여기서 일은 다시 꼬인다.

소마가의 후처는 미인이었다. 입궁하자 호색한 진숙보는 바로 마음에 들어하고 궁안에 남도록 한다.

"목단화불사(牧丹花不死), 주귀야풍류(做鬼也風流)" 이런 생사존망의 순간에도 진숙보가 이런 짓을 하다니, 정말 어찌할 도리가 없는 자이다.

이 일은 목숨을 걸고 그를 위하여 싸우러 나섰던 소마가에게 "이것을 참으면 무엇을 더 참을게 있겠는가?"라는 상황이 된다.

소마가는 막 진법을 펼치고, 수나라대군과 전투를 준비하고 있을 때, 집안 가솔이 와서 보고한다. 부인이 궁중에 잡혀 있고, 이미 여러 해동안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소마가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기절할 정도가 된다. 결국, 진나라군대는 혼란에 빠지고, 싸워보기도 전에 스스로 무너졌다.

 

다음 날, 수나라군대는 건강성을 함락시키고, 황궁을 포위한다.

이런 때가 되어서도 진숙보는 장귀인, 손귀인의 두 미인을 잊지 않았다. 세 사람은 낡은 우물 속으로 숨는다.

정말 기괴한 일이다. 그들은 어찌 우물 속에 숨으려 했단 말인가? 이것은 스스로 독안에 든 쥐가 되는 꼴이 아닌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황궁이 적군에게 점령되었는데, 이런 좁은 곳에서 세 사람이 며칠이나 버틸 수 있겠는가? 정말 당황해서 일시에 어찌할 바를 몰랐던 것인지, 아니면 저능아인지?

수나라군대는 그들을 찾아낸다. 광주리를 내려보내서 끌어올릴 때, 깜짝 놀란다. "황제의 용체는 다른 사람과 다르구나. 이렇게 무겁다니"라고 말한다.

원래 진후주와 장귀비, 손귀비 세 사람이 서로 꼭 끌어안고 자그마한 광주리 안에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배를 잡고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장려화가 우물에서 구해진 후 이 이 우물에 "연지정(臙脂井)"이라고 이름붙인다.

두 미인은 그 자리에서 살해당한다. 진숙보는 포로가 되어 수나라조정으로 끌려간다.

이렇게 수나라는 '남북조'의 역사를 끝내고 천하를 통일했다.

 

비록 이미 나라는 망했지만, 진숙보의 개그공연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정말 운이 좋았다. 수문제라는 명군을 만나는 바람에 그는 삼품관리에 임명된다. 만일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의 머리는 일찌감치 잘려나갔을 것이다.

진숙보는 수문제가 자신에게 관대하게 잘 대해주는 것을 보고는 득촌진척(得寸進尺)했다. 수문제에게 실질적인 권한이 있는 관직을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수문제는 웃지도 물지도 못하는 상황이 된다. "숙보, 너는 도대체 어떻게 된 사람이냐?"

그리고 또 한번은 진숙보가 수문제에게 궁전을 지어서 향락을 누리라고 권한다. 그래야 황제는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수문제는 그후 대신들에게 말한다. "그 자신은 바로 향락에 빠져서 이런 지경에 되었는데도, 뉘우치지 않고, 나에게까지 따라하라고 하다니."

 

"상녀부지망국한(商女不知亡國恨), 격강유창후정화(隔江猶唱後庭花)". 당나라때의 대시인 두목의 이 싯구는 진숙보에게 정말 잘 어울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