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월초(越楚)
주말에 친구의 생일파티에 참가했었다. 파티중에 한 사람이 내게 물었다: 중국고대에는 어떻게 파티를 열었나요?
나는 대답했다: 중국고대인들의 파티는 비록 당시의 여건에 제약을 받아 원시적이고 소박했지만, 대부분은 현대인의 파티보다 아이디어가 풍부하거나, 더욱 광적이거나, 혹은 우아하거나, 혹은 황당했다.
필자가 알고 있는 것만으로 중국고대에 최소한 삼대파티가 있다.
1. 주지육림(酒池肉林): 가장 광적이었던 파티
<<사기.은본기>> 기록에 따르면, "사구에 모여서 즐기고 놀았는데, 술로 못을 만들고, 고기를 걸어서 숲을 만들었다. 남녀가 벌거벗고 서로 그 사이를 쫓아다녔는데, 밤을 새도록 마셨다."
이는 상나라 주왕과 달기가 즐겼다는 주지육림의 파티이다. 이는 정말로 미친 짓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들은 당시 사구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고 잡기공연을 하는등 사구의 전체에 걸친 대규모 파티를 벌였다.
달기는 사람을 시켜 '술못'을 파게 했고, 못안에는 좋은 술을 부어넣었다. 사람들은 못에서 배를 탈 수 있을 정도였고, 못안의 술은 수천명이 마실 수 있을 정도였다.
달기는 그외에 "술못"의 사방의 나뭇가지마다 고기조각을 걸어놓게 했다. 사람들은 마음대로 손으로 집어서 먹을 수 있었다. 이것이 '육림'이다.
주왕과 달기는 매일 '주지육림'에서 연회를 벌였다. 궁중의 남녀들이 맨몸으로 그 안을 돌아다니면서 서로 쫓았다. 음악이 연주되는 가운데, 벌거벗은 남녀들이 외설스러운 춤을 추었다. 이는 서방의 홍등가에서 추는 스트립쇼나 비슷했다.
혹은 궁인들에게 서로 씨름을 하게 해서, 이긴 자에게는 술못의 술을 마시게 하고, 패배한 자는 독사로 가득찬 갱 속에 집어넣어 죽였다.
이렇게 밤새도록 놀았으니, 고대에 가장 미치고 변태적인 파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곡수유상(曲水流觴): 가장 문인적인 파티
고대문인의 파티는 오늘날 작가, 서화가들의 모임과 비슷하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동진의 대서예가 왕희지가 주최하여 회계산 난정에서 거행한 '곡수유상' 파티일 것이다.
중국고대문인들은 아취가 있었다. 그리고 잘 놀았다. 그들은 계곡물을 찾아서 거기서 파티를 열었는데, 이것이 '곡수유상'이다.
'곡수유상'은 주나라때 성행한 매년 삼월 '상사(上巳)'일(상순의 '사'일)에 개최한 여자무당이 강가에서 거행한 재난을 쫓고 병을 물리치는 의식에서 유래한다. 이를 '불제(祓除)" 혹은 "수계(修禊)"라 칭했다. 여기서 '계"는 청결이라는 의미이다.
나중에 고대인들은 '수계'와 '답춘', '유춘'을 하나로 묶어서 물가에서 연회를 하는 풍속이 된다.
재미를 더하기 위하여, 술잔에 술을 가득 따른 후, 구불구불한 계곡물에 띄운다. 이것이 누구의 앞으로 흘러가면, 그가 술잔을 들어 한 입에 마시는 것이다.
위진때, 문인아사들은 고풍을 숭상했고, 하루종일 술을 마시며 즐겼다. 산수를 즐기면서 한묵을 연구했고 이것이 곡수유상으로 발전한다.
이런 '양춘백설'식의 고아한 술자리는 일종의 벌주수단일 뿐아니라, 벌을 받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시를 읊는다. 이렇게 하여 한때는 문인아사들의 고아하고 풍취있는 파티가 되었다.
동진 영화9년 삼월삼일, 대서예가 왕희지는 당시의 명사인 사안, 손작등 42명과 회계산 난정(지금의 절강성 소흥)에 모여 '곡수유상' 파티를 벌인다.
이 날은 따스한 봄날로, 깨끗하여 바닥까지 보이는 계곡물에 술잔을 띄우고 42명의 문인들이 작은 계곡의 양편에 앉아서, 한편으로 술을 마시며, 다른 한편으로 시를 읊었다. 술기운을 빌어서 각자의 소회를 읊고 서로 친구가 되었다. 그날 모두 37수의 시가 지어진다.
왕희지는 더구나 술에 취한 상태에서 붓을 놀려 천고에 유명한 <<난정집서>>를 쓴다.
이번 "곡수유상"은 중국역사상 가장 유명한 문인들의 파티라 할 수 있다.
3. 평화방(評花榜): 가장 황당한 파티
북송에서부터 명,청까지, 몰락한 문인들이 발기한 청루의 '평화방' 파티는 세계에서 가장 황당하고 가장 해괴한 파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위 '평화방'은 청루기녀들의 미인선발대회이다.
북송시기에 이르러서는 정식으로 청루의 명기들을 대상으로한 '미인선발'활동이 벌어진다. 몰락문인들은 이것을 재미로 삼았고, 미인의 랭킹을 매긴 것을 '평화방'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각중 꽃을 가지고 명기를 품평하였고, 거기서 '화괴(花魁)'를 뽑았다.
어떤 경우에는 아예 과거시험을 모방하여 기녀들에 등급을 매겨, 일갑, 이갑, 삼갑으로 나누고, 일갑의 3명을 각각 '장원' '방안' '탐화'라고 불렀다.
이는 아마도 과거시험에서 실의한 문인들이 과거시험과 관료사회의 부패를 비웃는 일종의 행동이었을 것이다.
'평화방' 파티를 시작할 때, 현지 각 청루의 명기들이 화장을 하고 자신의 재주를 뽐낸다. 그 광경은 실로 대단했다. 구경하는 사람이 수천수만에 이르렀다고 한다.
풍류재자와 명기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렀으며 그 고하를 논했고, 이를 시사 혹은 평어로 썼다.
평가가 완료되면 그 자리에서 공포한다.
청루여자가 일단 '평화방'에 들면, 몸값이 10배로 뛴다.
지금으로부터 구백여년전인 북송 희녕연간에 변경(지금의 하남성 개봉)에서 한번의 평화방 파티가 있었다. 당시의 변경 명기인 곡의(郜懿)는 출중한 미모로 유명하여, 문인들에 의하여 '장원홍'에 뽑히고 일세를 풍미한다.
명나라 중엽이후에 '평화방'은 더욱 성행한다.
풍몽룡의 <<정사.정치류>>에는 당시 문인재자들이 평을 한 "금릉청루십이채(金陵靑樓十二釵)"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호사가들이 쓴 <<연도기품(燕都妓品)>>과 <<금릉기품(金陵妓品)>>은 '품, 운, 재, 색(品韻才色)"을 기준으로 4종의 풍격을 나눈다. 이는 나중에 '평화방'의 4가지 표준이 된다.
명나라 숭정연간, 금릉성에서 교거수각에서 거대한 '평화방'파티가 벌어진 바 있다. 사방에서 구경온 인사, 부호들의 가마와 말이 온 거리를 가득 메웠다. 수각의 바깥에 줄지어있던 배가 마치 담장과 같았으며, 이원(梨園)자제들은 3반으로 나누어 공연을 하여 흥을 돋구었다.
최종적으로 1등이 된 왕월(王月)이 장원에 뽑힌다. 북과 음악이 울리는 가운데 '장원'의 보좌에 올라 금술잔으로 술을 받으니, 아주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시를 썼다: "월중선자화중왕(月中仙子花中王) 제일항아제일향(第一嫦娥第一香)"
청나라말기에 이르러, 근대신문이 참여하면서, '평화방'은 현대의 '미인설발'과 형식에서 더욱 접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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