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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송)

완안오걸매(完顔吳乞買): 역사상 유일하게 신하에게 곤장을 맞은 황제

by 중은우시 2011. 2. 3.

글: 진령신(陳令申)

 

황제는 중국봉건왕조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고, 그의 신체는 자연히 더할 수 없이 귀하게 다루어진다. 신하들이 황제를 배알할 때는 삼궤구고의 예를 취하고, 큰 소리로 만세를 세번 외쳐야 한다. 황제의 신체는 이렇게 중요하므로, 자연히 조심스럽게 보호되고, 함부로 부닥치거나 상처를 입지 않도록 한다. 몽둥이로 때린다는 것은 대불경한 일이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기 마련이다. 금나라의 두번째 황제인 금태종(金太宗) 완안오걸매는 대신들에 의하여 용상에서 끌려내려와 곤장을 받은 바 있다. 이는 중국 2천년 역사상 유일한 경우였다.

 

완안오걸매는 금나라 개국황제인 완안아구타(阿骨打)의 동생이다. 사료의 기록에 따르면, 완안오걸매는 힘이 대단했다. 자주 숲 속으로 뛰어들어가, 맨돈으로 곰과 싸우곤 했다곤 한다. 매전 당하는 것은 곰이었다. 그 본인은 기껏해야 피부에 상처를 입을 뿐이었다. 그는 완안아구타와 형제간의 정이 돈독했다. 저명한 '두어연(頭魚宴)'에서 아구타는 부락의 대표로 참가하였다. 관례대로라면 모든 수령은 일어나서 춤을 추어 요나라황제를 기쁘게 해주어야 한다. 아구타는 기질이 강했다. 죽어도 춤을 추지 않겠다고 한다. 요나라황제는 아주 화가 나서 그 자리에서 아구타를 죽이려고 한다. 이때 몸집이 큰 오걸매가 머리를 짜내어, 수행원의 신분으로 그 자리에서 자신의 뛰어난 솜씨를 선보인다. 즉 맨손으로 곰을 때려잡은 것이다. 그 결과 요나라황제는 가가대소를 하며, 아구타의 대불경의 죄를 면해준다.

 

아구타는 요나라황제를 싫어했다. 요나라황제는 백성을 괴롭히고, 여진족을 착취했다. 그러면서 위세를 부리고, 자신의 부족을 우스개로 삼았다. 자신들을 노예와 다를 바 없이 대하였다. 이에 대하여 아구타는 마음 속으로 분노의 불꽃이 일었다.

 

1114년, 아구타는 부족을 이끌고 의거를 일으킨다. 1115년, 아구타는 황제에 오르고 금나라를 세워서, 금태조(金太祖)가 된다. 완안오걸매는 암반발극렬(暗班勃極列, 발극렬은 금나라 특유의 최고영도기관이다. 암반발극렬은 황위후계자이다)로서, 황제인 형을 도와서 전쟁에 참가하여 큰 공로를 세운다.

 

금태조가 요나라를 정벌할 때, 그는 경도를 지키면서 조정을 관장했다. 천보7년(1123년), 그태조가 병사한다.  구월, 완안오걸매가 황제위를 승계받으니 그가 바로 금태종이다. 연호를 천회(天會)로 고친다.

 

그렇다면 그가 곤장을 맞은 것은 어떻게 된 일일까? 금나라는 개국초기에 기반이 약했다. 황궁도 그저 토적굴처럼 만들었다. 금태조 아구타는 근검절약을 솔선수범했다. 그리고 신하들과 맹약을 맺는다: 국고의 재물은 전쟁시에만 쓸 수 있다. 만일 누구든지 이 맹약을 위반하면 그가 누구이든지간에 곤장 20대를 때린다. 이 영은 아구타가 사망할 때까지 잘 지켜져 왔다.

 

완안오걸매가 황제에 올랐을 때, 처음에는 그도 아주 근검절약했다. 그의 황중으로 말하자면, 궁의 담장도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로 만든 목책이었다. 전청(前廳)에서 업무를 보고, 후원에서 잠을 잤다. 약간은 양산박의 산채와 비슷했다. 돼지를 키우거나 양을 모는 백성들도 후원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다. 중요한 군사회의가 개최되는 경우에만 병사들이 지키고 있어서 들어갈 수 없었다.

 

건물도 형편없었고, 의복도 낡았다. 그렇지만 술까지 마시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참아오던 완안오걸매는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된다. 그는 깜깜한 어느 날 밤에 몰래 국고의 문을 열고 재물을 끄집어내서 술을 즐겼다. 나중에 승상이 국고를 점검할 때 이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하여 바로 중신인 점한(粘罕)에게 보고한다. 점한은 가만있지 않았다.  이 사실을 조정에 알린다. 신하들이 모여서 상의를 한 후에 이 사치하고 낭비하는 황제를 처벌하기로 결정한다. 그들은 완안오걸매를 용상에서 내려오게 한 후에 곤장 20대를 때린다. 곤장을 다 때린 후에 다시 용상으로 모셔놓는다. 그후, 점한을 위시한 전체 대신은 함께 꿇어앉아 처벌을 내려달라고 청한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완안오걸매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는 여러 신하들에게는 죄가 없다고 용서한다. 일생동안 곰과 싸워왔던 완안오걸매는 꿈에도 대신들의 손에 곤장을 맞을 줄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이후 그는 다시는 사치낭비하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