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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풍속

잉어: 중국인의 물고기토템

by 중은우시 2011. 2. 1.

글: 홍촉(洪燭)

 

 

 

중국인의 년야반(年夜飯에는 집집마다 물고기 한 마리를 요리해서 올리고, 명절이 지난 후에 먹는다. "어(魚, Yu)"와 "여(餘, Yu)"의 발음이 같다는 데서 "년년유여(年年有餘, 해마다 풍족하여 모자라지 않는다는 의미)"를 상징한다. 이 물고기는 반드시 온전해야 하고, 머리와 꼬리가 다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하여 일을 함에 있어서 유시유종(有始有終)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온 가족의 마음을 이 물고기에 담는다. 그것은 이미 음식의 개념을 넘어섰고, 행복한 생활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송구영신의 시기에, 누구든지 집안에 먹거리도 충분하고, 돈도 충분하기를 바랄 것이다. 누구나 매년 그렇게 여유있기를 바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중국인은 희망 속에서 살아왔던 민족이다. 그들은 절망하지 않고, 고난과 빈곤에 시달리면서도 행복한 삶을 상징하는 물고기 한 마리를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삼은 것이다. 이것은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희망이다. 희망 자체가 바로 그들의 가장 큰 생명력이다.

 

몇몇 고대문명중에서, 중화문명만이 물만난 고기처럼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져서 오늘날에 이르른 것같다. 만일 정신적으로 지탱해주는 것이 없었다면, 이처럼 주이부시(周而復始)하고 불변응만변(不變應萬變)하는 질서를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전통적인 풍속에 따르면, 이같이 예의(禮儀)의 의미를 지니는 물고기로 최초로 쓰인 것은 '잉어(鯉魚)'였다. 나중에 범위가 넓어져서, 어떤 물고기를 써도 상관없게 되었다.

 

왜 잉어가 가장 먼저 꼽혔을까? 중국인의 신앙에서, 잉어는 가장 길(吉)한 것이기 때문이다. <<신농서(神農書)>>에는 랭킹을 매긴 것이 있는데, "잉어는 물고기의 주인이다(鯉爲魚之主)"라는 말이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잉어는 모두 용으로 된다" "황하의 잉어는 습성이 물을 거슬러 상류로 올라가는데, 일단 지금의 산서에 있는 용문을 뛰어넘기만 하면 용으로 변신한다." 당연히 이것은 물고기에 대한 억측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신화이다.

 

이성적인 공자도 이것을 믿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아들에게 "리(鯉)"라고 이름을 붙여준다. 그가 아들이 용이 되기를 바랐던 것이 아닐까(望子成龍)?

 

잉어는 중국에서 물고기류의 이미지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연화(年畵)에서 묘사된 것은 대부분 잉어이다. 이를 통하여 경사스러운 분위기를 더해준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용문에서 펄쩍펄쩍 뛰는 잉어는 열국을 주유한 공자와 마찬가지로, 고대 황하문명의 토템이라고 할 수 있다고 본다. 소위 '늑대토템'은 외국수입품이지, 본토의 것이 아니다. 중국인의 품성에 들어맞는 것은 역시 '물고기토템'이다.

 

도가의 시조인 장자는 <<소요유(逍遙遊)>>에서 첫머리에 이렇게 적었다 "북명(北冥)에 물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은 곤(鯤)이라 한다" 그의 묘사에 따르면, 이 신기한 물고기는 당대의 항공모함보다도 크다. 그리고 변신하여 구만리 하늘을 나는 붕조(鵬鳥)가 될 수 있다. 장지능운(壯志凌雲)이라 할만하다. 이것은 이어등용문(鯉魚登龍門)의 이야기와 같은 구조이다. 단지 스케일이 더 클 뿐이다.

 

'물고기토템'을 구체화하면 '잉어토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나중에 주류가 된 유가사상과 비슷하다. "뜻을 이루면 천하를 다스리고, 뜻을 이루지 못하면 혼자서 자신을 수양한다(達則兼濟天下, 貧則獨身其善)". "공부를 잘 하는 자가 벼슬을 한다(學而優則仕)" 중국역대의 과거시험은 '잉어토템'이라는 꿈을 현실로 마든 것이다. 용문(龍門)을 오르면 관료사회에 들어가는 것이다.

 

'물고기토템'은 중국특색의 '변신이야기'이다. 노자,장자이든 공자,맹자이든, 본질적으로는 모두 엘리트문화이다. 민중에서 왔지만, 항상 민중을 벗어날 준비를 하고, 민중을 이끌려고 한다. '물고기토템'의 배후에는 실제 '용토템'이 있다. 중국인은 스스로 용의 전인(龍的傳人)이라고 하지 않는가?

 

잉어가 길상(吉祥)을 의미하는 것은 그것이 중국최초의 진룡천자(眞龍天子)인 황제(黃帝)를 목격했다는데서도 알 수 있다. <<하도(河圖)>>에는 이런 말이 있다: "황제가 낙수(洛水)에서 놀고 있을 때, 잉어를 보았는데 길이가 삼장(三丈)이었다. 푸른 몸통에 비늘이 없으며, 붉은 글자가 쓰여져 있었다."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잉어의 이마에 글자가 있으면, 물고기의 제왕 혹은 용의 화신이라고 한다. 이마에 '왕(王)'자가 쓰여 있으면, '왕자리(王字鯉)'라고 하는데 신통력이 있다."(<<청이록>>)

 

중국의 신화에서 용으로 변신할 수 있는 것은 물고기 이외에 말(馬)이 있다. 말도 '용종(龍種)'이다. 잉어를 '치룡(稚龍, 영아기의 용)'이라 하는 것과 같다. 잉어는 오색이 있다. 고대인들은 이를 말에 비유했다. "적리(赤鯉)는 적기(赤驥)이고, 청리(靑鯉)는 청마(靑馬)이며, 흑리(黑鯉)는 흑구(黑駒)이고, 백리(白鯉)는 백기(白騏)이고, 황리(黃鯉)는 황치(黃稚)이다" 그리고, '용문을 오르는 황하의 잉어는 온 몸이 불처럼 붉어 적리에 속한다. 이는 변신기에 접어든 것이다'라고도 한다.

 

공자의 말씀중에 "식불염정(食不厭精), 회불염세(膾不厭細)"(곡식은 잘 빻은 것이 좋, 고기는 가늘게 썬 것이 좋다). 여기의 '회'는 지금의 사시미를 가리킨다. 중국인들이 회를 먹은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이다. 회를 썰 때 가늘면 가늘수록 좋다는 것이다. 아마도 가장 먹은 것은 여전히 잉어일 것이다. 특히 송나라때는 황하에서 잡아올린 잉어로 회를 쳐서 먹었다. 송태조 조광윤이 좋아한 음식이어서 동경 변량에 유행하여 유명한 음식이 된다.

 

"황하잉어는 인족(鱗族, 비늘있는 족속)을 압도한다. 그러나, 황하변에서는 산채로 삶아서 먹어서, 그 맛을 모른다."(양장거 <<낭적삼담>>) 중주(지금의 하남성) 일대의 황하잉어는 당시의 최고의 요리였다.

 

황하잉어가 한창 잘나가고 있을 때 장강유역의 무창어(武昌魚)는 명함도 못내밀었다. 아예 식탁에 오르지도 못했다. 고대인들은 "건업의 물을 마실지언정, 무창의 물고기는 먹지 않겠다"고 했다. 당대에 와서 모택동이 "장사의 물을 마시고, 무창의 물고기를 먹다(才飮長沙水, 又食武昌魚)"라는 시를 읊고나서 몸값이 크게 뛰어올라서, 옛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필자는 황하잉어와 무창어를 각각 황하문명과 장강문명의 마스코트로 보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중국인들이 구정에 올리던 '물고기'가 잉어가 아니어도 되게 되었을까? 아마도 당나라때부터일 것이다. 왜냐하면 당나라황제의 성이 이(李)씨이므로, "이(鯉)"와 발음이 같다. 그리하여 거국적으로 잉어포획을 금지하게 되었다.

 

백성들이 '년야반'을 차릴 때도 당연히 다른 물고기류로 대체하였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위법이 되고, 잘못하면 재판을 받을지도 몰랐다. 잉어는 당나라때 지위가 아주 높았다. 진정 인간의 '용문'을 넘은 것이다. 황제와 운명을 같이 했다.

 

<<대업광기>>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청령수의 남쪽에 횡독이 있고, 동남쪽으로 탕산현까지 이어진다. 서북의 통제거에 갑자기 큰 물고기가 나타났는데, 잉어와 비슷한데 뿔이 있었다. 청평수에서 통제거로 들어갔으니, 당나라가 흥할 징조이다." 나중에 당현종이 장하에 유람을 갔을 때 역시 붉은 잉어(赤鯉)가 뛰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는 "영황(靈皇)의 상서로움이다"라고 하면서 기뻐하며, 잉어에게 작위를 내린다: "적공(赤公)".

 

잉어는 마치 당나라 이씨황제의 먼 친척처럼 되어 버린다. 그러다보니 누구도 잉어를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되고, 세상에서의 명성과 영예가 높아진다.

 

당나라정권이 무너진 후, 잉어는 다시 먹거리가 되고, 백성들의 식탁에 올라간다.

 

잉어야, 황제의 친척이 된 기분이 어떠했느냐, 아주 좋았느냐?

 

잉어야, 지금도 다시 당나라로 되돌아가고 싶으냐?

 

중국에서 잉어의 운명은 '사서'의 부록과도 같다. 잉어를 통하여 혁사를 해석할 수 있고, 중국의 토템을 해석할 수 있다.

 

잉어는 고전주의 물고기일 뿐아니라, 낭만주이 물고이이기도 하고, 더더욱 현실주의 물고기이기도 하며, 상징주의(포스트모더니즘) 물고기이기도 하다. 잉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은유의 가운데 헤엄쳤다. 빛과 그림자, 형이상과 형이하. 모두 같이 잉어의 환상을 만들어냈고, 잉어의 희노애락을 만들어냈따. 비록 잉어는 실체로서는 전혀 이런 사실을 모른채, 강산과 수초의 사이를 헤엄치고 있고, 자신이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심지어 '감독'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지만.

 

중국인의 상상력은 잉어에게 많은 배경을 부여하고, 많은 이야기를 부여하고, 많은 컨텐츠를 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