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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청 초기)

'대청(大淸)' 국호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있는가?

by 중은우시 2011. 1. 16.

글: 월초(越楚)

 

1636년(대명 숭정9년) 사월 십일일, 홍타이시(皇太極)는 칸(汗)의 칭호를 버리고 황제를 칭했으며, 국호를 '대청(大淸)'으로 하였고, 연호는 '숭덕(崇德)'으로 하였다.

 

<<만문노당(滿文老檔)>>의 숭덕원년 사월 십일일조를 보면, 홍타이시가 존호를 받은 것만 기록하고 있을 뿐, 국호를 바꾸고 칸을 황제로 바꾼 것에 대하여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청태종실록>> 권28의 같은 조 기사에는 "관온인성황제의 존호를 받고, 국호를 만들어 '대청'이라 하고, 숭덕원년으로 연호를 바꾸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두 곳 모두 국호를 바꾼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대청'이라는 국호를 채택한 이유는 역사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대청(大淸) - 대명(大明)

숭덕(崇德) - 숭정(崇禎)

 

이 '대청' 국호는 도대체 어떤 비밀을 품고 있을까?

 

이에 대하여 후세학자들은 여러가지 설을 내놓고 있다.

 

첫째, 청색설(靑色說)이다. <<만주원류고>>에서는 건륭황제의 "천조황청(天造皇淸), 발상대동(發祥大東)"이라는 싯구를 인용하여, 5색으로 5방을 표시하는데, 동방은 청색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청(大淸)'을 청색과 연결시키는 것은 약간은 억지스러운 점이 있다.

 

둘째, 근음설(近音說)이다. 일본학자인 시촌찬차랑(市村瓚次郞)의 <<청조국호고>>에서는 '금(金)'과 '청(淸)'의 발음이 비슷하다고 하였다. 원래의 '금'이라는 국호를 '청'으로 바꾼 것은 발음이 비슷한 글자중 적절한 글자를 찾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셋째, 소호설(少昊說)이다. 도엽암길(稻葉巖吉)의 <<청조전사>>에서는 홍타이시가 국호를 금에서 청으로 바꾼 것은 역사상 소호김천씨(少昊金天氏)의 전설에서 연유한다고 보았다. 소호김천씨는 "칭부위청(稱父爲淸), 칭토위청(稱土爲淸), 조토어청(胙土於淸)"하였다. 홍타이시는 금나라를 소호김천씨에 비견하였다. 김천씨는 청(淸)에 땅을 하사받았다는 것이므로, '청'이라는 국호를 쓴 것이라고 본다. 이를 통하여 만주족들은 한민족이 송나라이래로 금나라에 대하여 가진 강렬한 원한을 완화시키고자 했다고 본다.

 

넷째, 주실수명설(周室受命說)이다. 중산팔랑(中山八郞)의 <<청의 국호에 관하여>>에서는 홍타이시가 금을 청으로 바꾼 것은 구 족호를 버리고, '만주'로 개칭한 것과 같은 의미라고 본다. 그 뜻은 한문화에서 찾아야 한다. <<상서.태서>>의 마지막 구절은 "영청사해(永淸四海)"이고, <<시경.대아>>의 첫구절은 "사벌대상(肆伐大商) 회조청명(會朝淸明)"이고, <<주송>>의 첫구절은 "유청집희(維淸緝熙), 문왕지전(文王之典)"이다. 이에 근거하여, '청'은 주황실로부터 수명을 받은 것을 상징한다. 홍타이시가 국호를 고친 것은 자신의 기업을 주무왕의 대업과 비교하기 위한 것이다.

 

다섯째, 오행설(五行說)이다. 범문란의 <<중국통사간편>>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홍타이시가 국호를 고친 것은 금이라는 국호가 한족의 민족감정을 건드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여진(女眞, 諸申)이라는 족호를 버리고 만주로 고쳤다. 만주와 청은 모두 삼수변이 붙어 있다. 주씨의 대명은 '주명(朱明)'의 두 글자가 모두 불과 관련이 있다. 물이 불을 이긴다는 것은 오행의 상생상극설이다. 불은 금을 이기므로(火克金), 금이라는 국호는 불리했다. 그리하여 홍타이시는 청을 국호로 삼았는데, 이는 명나라를 이기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필자는 범문란 선생의 '오행설'에 찬동하고 싶다.

 

전국시대 제나라 사람인 추연이 "오덕종시설'을 내놓았다. 천자가 되려면 반드시 오덕중 하나의 덕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덕이 쇠락하면, 오덕중 다른 덕이 대체한다. 오덕은 고대의 오행설에서 나왔다. 즉, 금, 목, 수, 화, 토이다.

 

추연의 오덕설은 역사상 진시황이 보배처럼 채택한 바 있다. 진시황은 오덕시종설을 채택하였는데, 그 의도는 대통을 계승하는데 있어서 군권신수의 모자를 쓰기 위한 것이다.

 

추연의 학설에 따르면, 주왕조는 '화덕'을 지녔다. 그러므로 오행의 상생상극에 따르면 주왕조의 '화덕'을 대체하는 것은 '수덕'이다.

 

진시황이 육국을 멸망시킨 후, 어용문인들은 진시황의 의도에 따라, 여러가지 '부응(符應)'을 만들어낸다. 오백년전에 진문공이 외출할 때 '흑룡'을 얻은 바 있는데, '흑룡'은 음유함을 대표하고 '물'을 상징한다. 이는 오백년전에 이미 '부응'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나라가 반드시 주나라를 대체하게 될 것이다.

 

진시황이 등극한 후, 진나라가 주나라를 대체한 것은 수덕이 화덕을 대체한 것이라고 대거 선전했다. 이는 하늘로부터 명을 받은 것이다. 그는 왕조교체의 이론적 근거를 오행설에서 찾았다. 이를 진왕조가 백성을 통치하고 정권을 공고히하는 사상적 도구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홍타이시의 곁에는 한학에 정통한 신하들이 있었다. 추연의 오행종시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아마도 진나라가 주나라를 대체한 것에서 힌트를 얻어서, '만청'의 수덕이 '주명'의 화덕을 이긴다고 보았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숭덕'이라는 연호이다. 이는 명나라의 '숭정'이라는 연호와 아주 비슷하다. 그러나, 명나라가 정상(禎祥)을 숭상하는데 비하여, 청나라는 도덕(道德)을 숭상한다는 것이니, 자신이 명나라보다 더욱 도덕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