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봉(尹鋒)
유리한 상황하에서, 황광위 가족은 완승을 거두지 못했으니 그들은 아주 착찹할 것이다. 그러나, 일은 이미 끝났으니, 나중에 다시 뒤집기를 기다려야 한다. 황광위가 이번에 왜 천샤오에게 당했을까? 전략, 전술의 두 측면에서 고려해보면, 황광위 가족은 천샤오만큼 잘해내지 못했다
전략측면에서, 황광위가족의 최종목표는 지배권확보였다. 이 목표를 둘러싸고, 반드시 지분을 희석시키지 않아야하고, 동사회내에도 자신의 사람을 심어야 했다. 지분측면에서, 황씨가족은 2급시장에서 매입하여 지분율을 늘였다. 그외에 황씨가족은 궈메이에 증자발행도 신청했고, 증자발행에 참여할 의사도 밝혔다. 만일 증자발행하지 않으면, 아예 증자발행을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자금에 있어서, 황씨가족은 자산을 매각하여 현금자산을 확보했고, 주식담보를 제공하고 자금을 조달했다. 그래서 주식확보라는 측면에서는 황광위 가족이 전략과 전술의 측면에서 모두 괜찮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약간 아쉬운 점이라면, 마지막 시점에, 황씨가족은 2%를 추가로 확보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임시주주총회에서 천샤오를 몰아낼 카드를 잃어버린 것이다.
동사회의 인원측면에서, 황광위 가족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투쟁이 막 시작되었을 때, 황씨가족이 내놓은 것은 두 장의 카드였다. 하나는 민족카드이고, 다른 하나는 천샤오반대카드였다. 첫째카드는 베인캐피탈을 반대한다는 것이고, 두번째카드는 천샤오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천샤오가 베인캐피탈과 손을 잡고 민족기업을 빼앗으려한다는 선전포인트를 잡았다. 그러나 후기에 들면서, 황광위가족은 베인캐피탈과의 협상을 선택한다. 첫번째 카드가 무력화된 것이다. 두번째 카드도 황광위가족은 그다지 멋있게 해내지 못했다. 천샤오에 대한 공격을 황씨가족은 주로 그의 경영능력을 지적하는데 집중했다. 그중에는 2010년 상반기의 실적이 쑤닝에 낙후되고, 향후 5년발전계획이 궈메이의 경쟁력을 증가시킬 수 없고, 자본지출을 증가시킬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카드는 살상력이 없었다. 결국에는 천샤오가 소화시켜버리고, 오히려 그의 전략방안으로 바뀐다. 천샤오는 나중에 이렇게 말한다. 자신은 미래전략측면에서 대주주와 완전히 일치한다. 바로 이것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는 전술측면의 문제점이다.
구체적인 지지층결집단계에서, 황광위가족은 어중이떠중이 투자고문들을 모아서 도움을 받았다. 거기에는 신비여부호 마핑(馬萍), 신비중간인, 오복자본 인진청(尹錦誠), 삼성증권 장중량(張忠良) 및 인도네시아 광산주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호소력이 약했고, 신용도 약했다. 도움이 되지 않았을 뿐아니라,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특히 마핑은 황슈홍(黃秀虹)과 사이가 틀어진 후, 사방으로 매체를 찾아가서 폭로했고, 황광위가족에 대한 좋지 않은 말을 하고 다녔다. 황씨가족이 배신했고, 그녀에게 중개료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핑이 나서서 베인캐피탈과 협상을 어레인지 했다는 것이다. 이는 황광위가족을 곤경에 몰아넣었다. 최소한 이미지손실이 컸다. 둘째, 신비중간인은 황씨가족과 천샤오 및 베인캐피탈을 오갔다. 그러나 황씨가족과 이익관계가 틀어지면서 나중에 천샤오를 오히려 도와주게 된다. 천샤오는 어떠했는가? 그는 모건 스탠리, JP 모건등 최고수준의 투자은행을 중간인으로 모셨다.
황씨가족은 이번 협상에서 여러 번 성숙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위의 고문들도 약한 부분이지만, 다른 부분에서도 그러했다. 협상기교, 대가 및 방식등에서 모두 피동적이고 신축성이 없었다. 황광위가 있을 때가 비교하여, 천지차이였다. 황씨가족은 천샤오의 주요역점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했고, 천샤오의 공격에 대하여 그거 말로만 대응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천샤오를 지지할 수 있는 기관투자자를 쟁취해오는 힘도 부족했다. 시간배치도 부족했다. 설득의 근거나 준비도 불충분했다. 나중에 천샤오에 의해 하나하나 격파당한다. 나중에 천샤오가 경영진이 준비한 방안과 대주주가 준비한 방안이 비슷하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기관투자자는 천샤오을 지지하는 생각을 바꾸지도 않았고, 오히려 더욱 견고하게 천샤오를 지지한다. 이외에 천샤오는 황광위의 지지자들을 파고들어서 성공적으로 설득하여 자신의 진영으로 오게 만들기도 했다.
천샤오는 수시로 외부에 최신의 동향을 공개했다. 그러나, 황씨가족은 항상 저우샤오춘(鄒曉春)이 나섰는데, 저우샤오춘의 영향력은 천샤오에 미치지 못했다. 다만 황씨가족은 공중과 투자자에게 저우샤오춘을 적극적으로 추천하지도 않았다. 그저 매체에 의하여 피동적으로 선전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어떤 때는, 주요인물임에도, 황씨가족은 전체사건에서 아무도 나서서 얘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두줸, 황슈홍, 황얜홍, 장즈밍등은 모두 신비인물이다. 천샤오측에서는 계속하여 뉴스거리를 제공했다. 황슈홍이나 두줸은 비밀리에 다른 사람들과 협상을 벌여서, 광명정대하지 못한 일을 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황씨가족과 협력하려던 사람들이 오히려 반기를 들어, 외부에서는 황씨가족과의 협력에 대한 불신감을 부추기게 된다. 천샤오측에서는 계속하여 직업경영인이라는 것을 강조했고, 현대회사의 지배구조를 얘기했다. 그리하여 외부에 아주 규범적이고 투명하다는 이미지를 주었다. 황씨집안의 조용하고 신비스러운 풍격과는 완전히 달랐다. 원래 외부에서는 황씨집안의 불투명성에 대하여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외부의 우려를 더욱 부추겼다. 사실 황씨집안은 주요인물이 모두 외부에 나타났어야 한다. 가족투명성과 친화력을 보여주었어야 한다. ‘고아과부’의 이미지로 외부의 동정을 구했어야 한다. 그렇게 했다면 황씨집안에 대한 지지율이 올라갔을 것이다.
되돌아서 천샤오를 보자. 그는 대륙에서의 이미지와 홍콩에서의 이미지가 전혀 다르다. 한때는 이런 이미지이다가 또 다른 때는 다른 이미지로 전환한다. 한 투자자 앞에서의 이미지와 다른 투자자 앞에서의 이미지가 서로 다르다. 천샤오는 수시로 황씨집안의 변화에 대응하여 조정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을 신축성있게 변경시킬 수 있었다. 계속하여 황씨집안의 헛점을 잡아낼 수 있었다.
합작파트너의 선택에서, 황씨집안은 명성도 없고, 금전동원능력도 작은 회사를 선택했다. PR회사를 예로 들면, 궈메이회사가 선임한 것은 보란쓰웨이(博然思維)회사인데, 황씨가족이 선임한 것은 즈예처화(智業策劃)이다. 양자를 비교해보면 누가 더 강한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여기에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황씨가족이 선임한 것은 이름없는 재무고문회사들이다. 천샤오가 데려온 모건 스탠리, JP 모건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나중에 궈메이는 다시 ISS, GLASS Lewis등을 추가로 선임하여 궈메이의 이미지를 좋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황씨가족의 사회자원은 생각했던 것처럼 강력하지 못했다. 황씨가족이 먼저 접근했던 곳이건, 황씨가족에 먼저 접근했던 곳이건, 선임한 회사이든, 모두 사람들에게 황씨가족이 그다지 강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황광위가 있을 때는 황씨의 사회자원이 대단했는데, 현재의 황슈홍등 가족구성원들의 인맥자원은 궈메이라는 큰 회사를 운용할만큼 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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