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선진)

중국고대 스와핑으로 인한 멸족사건

중은우시 2010. 9. 24. 18:08

: 곽찬금(郭燦金)

 

중국고대에도 스와핑(換妻)사건이 있었다. 춘추시대의 기승(祁勝) 오장() 그들이다. 이들 둘은 동료였고, 같은 상사를 모시고 있었다. 상사는 바로 ()나라의 대부(大夫) 기영(祁盈)이다.

 

중국역사상 기영은 무슨 유명인사라고 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의 조부는 대명이 자자한 인물이다. 그의 조부는 바로 기황양(祁黃羊)이다. 기록에 따르면, 기황양은 진도공(晋悼公)시절에 중군위(中軍尉) 지낸 인물이다. 그가 나이들어 은퇴할 때쯤, 진도공은 그에게 후임자를 천거하게 했다. 기황양은 이렇게 말한다: “해고(解孤) 괜찮습니다. 정치력도 있고, 업무도 뛰어나니, 자리는 그에게 맡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진도공은 의외로 생각했다. “내가 알기로, 해고는 너와 원수지간이 아니냐. 너는 자리에 그를 추천하느냐? 그러자, 기황양은 담담하게 말했다: “공께서 물어보신 것은 누가 나의 후임자가 되면 좋겠느냐는 것이지, 누가 나의 원수인지는 아니지 않습니까? 말을 듣고 진도공은 그의 도량에 감탄해 마지 않았다.

 

그런데, 묘하게도, 해고는 병이 들어, 취임한 얼마지나지 않아 죽고 만다. 진도공은 없이 다시 기황양에게 적합한 사람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한다. 이번에 기황양은 간단히 답한다: “저는 생각을 숨긴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 생각에는 기오(祁午) 적절합니다. 말을 듣자마자 진도공은 얼굴색이 변했다: “무슨 소리냐. 기오가 아들인 것은 누구든지 알고 있지 않으냐? 그러자 기황양은 담담하게 말한다: “그렇습니다. 기오는 확실히 아들입니다. 그러나, 공께서 물은 것은 누가 적임자냐는 것이었지, 누가 나의 아들이냐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기오가 중군위를 맡게 된다.

 

기오는 바로 기영의 부친이다.

 

확실히 기황양, 기오 부자는 행운이었다. 그러나, 이런 행운은 그의 집안에 계속되지 못했다. 기영은 정반대였다.

 

어느 , 기영은 확실한 정보를 하나 얻는데, 그의 가신인 기승과 오함이 ‘통실(通室)’한다는 것이었다. 통실은 처를 바꾸는 , 요즘말로 하면 스와핑을 말한다. 자신의 가신이 이런 황당한 짓을 저지르는 것을 알고는, 기영은 분기탱천한다. 그리하여 둘을 처리하려고 마음먹는다.

 

손을 쓰기 전에, 기영은 사마숙유(司馬淑遊)에게 의견을 물어본다. 사마숙유는 경전의 고사를 인용하였다: “민지다피, 무자립벽(民之多辟, 無自立辟) 사마숙유가 읊은 것은 <<시경>> 나오는 구절이다. 뜻은 대체로, 백성들에게 좋지 않은 습관이 많이 있는데, 네가 굳이 그런 것들을 상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영은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자, 사마숙유는 다시 마디를 던진다: “무도립의, 자구불면(無道立矣, 不免) 말은 함축적이면서도 침중하다. 대체적인 뜻은 현재의 우리 나라는 소인이 정권을 잡고 있다. 이렇게 하다가는 오히려 골치아픈 일을 당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기영은 말에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이유는 바로 나는 가신을 징벌하는 것인데, 국가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기승과 오장을 붙잡아서 가두어둔다.

 

그러나, 붙잡힌 기승과 오장도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그들은 주인인 기영의 조치는 자신들을 조금도 존중해주지 않는 것이며, 아무 것도 아닌 일인데, 공연히 관여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집안식구들로 하여금 윗사람을 찾아가게 한다.

 

그들이 찾아간 것은 순력()이었다. 순력은 진나라의 육경(六卿) 하나였다. 순력은 기승과 오장과 관련된 사안을 상세히 조사하여 파악한 , 일을 진경공(晋頃公)에게 보고한다. 순력은 원래 일을 그냥 재미있는 사건 정도로 보고했는데, 진경공은 진지했다. 진경공은 말을 듣고 안색이 완전히 변했다. 진경공은 바로 가지 명령을 내린다: 하나는 사형(私刑) 엄금하는 것으로, 기영으로 하여금 즉시 스와핑을 기승, 오장을 석방하라고 지시했다. 다른 하나는 일벌백계로, 임의로 가신을 구금한 기영을 엄벌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기영은 체포된다.

 

기영은 전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도덕의 보위하는 자로서, 스와핑행위를 징벌한 것이 어찌 범법행위가 있는지, 이는 흑백이 전도된 것이 아닌가?

 

기영이 감옥에 갇히자, 기영의 부하들이 파업을 했다. 그들은 자신의 주인이 억울하게 벌을 받는 것이고, 모든 죄는 기승, 오장에게 있다고 보았다. 의분 때문에, 그리고 아마도 옥중에 갇힌 주인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그들은 기승과 오장을 죽여버린다.

 

진경공이 보기에, 기승과 오장은 ‘자신의 신체는 자신이 지배할 있는 권리’를 가진 자들이었다. 그런데도 기영이 무고하게 징벌을 가했으니, 그들 둘은 무고한 피해자이다. 그리하여 진경공은 그들을 풀어주게 하고, 기영을 가둔 것이다. 그런데, 기영의 부하들이 피해자인 기승과 오장을 죽여버리다니,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고의로 진경공의 뜻을 역행하는 일이다. 이는 일부러 자신에 대항하는 일이다. 기영부하들의 이런 행위에 진경공이 어찌 가만히 있을 있겠는가? 그는 즉시 사건을 ‘난()’으로 규정한다.

 

‘난’은 요즘 말로 하면 반정부행위이다. 이는 대역죄이다. 진경공은 진노하여, 신속히 그리고 무겁게 처벌한다. 가을이 오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여름 유월에 기영의 전일족을 주살한다. 죽이고 나서도 부족하여, 기영을 동정하던 양이아(楊食我) 일족까지 죽여버린다. 기씨, 양씨(羊舌氏) 진나라에서 참초제근 당한다.

 

일은 <<좌전>> 나온다. 좌구명이 어디에서 자료를 찾았는지는 모르겠다. 만일 사건을 좌구명이 날조한 것이 아니라면, 춘추시대의 진나라는 스와핑의 천국이라고 있을 것이다.

 

중국고대에 ‘통실’에 대하여 관대한 전통이 있는지 살펴보기 위하여, 필자는 <<좌전>> 살펴보았다. 보다보니, 등에 식은 땀이 정도이다.

 

<<좌전>> 기록에 따르면, 진경공이 재위한 기간은 아주 길지는 않았다. 기원전525년에서 기원전512년까지 14년간이었다. 그보다 100여년전인 진헌공(晋獻公) 재위하던 기간에 “여러 공자(公子) 모조리 죽여버렸다” 그리하여 진나라에는 공족(公族) 남지 않게 된다. 진경공시대에 이르러서는 공족중에서는 난씨(欒氏), 기씨, 양설씨등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만 남는다. 공족이 수는 적지만, 진나라의 자원을 대거 점유하고 있었고, 봉지의 면적도 컸다. 그리하여 진나라의 경제발전에 장애가 되었다. 진경공은 이에 여러 손을 쓰고자 하였으나, 명분이 없었다.

 

바로 이러한 때에, 기영이 스와핑한 수하를 사사로이 처벌한 일이 알려진다. 진경공은 이때 장계취계로 기씨가족의 대표인물인 기영을 감옥에 집어넣는다. 이는 확실히 아무 것도 아닌 일을 트집잡은 혐의가 있다. 그런데도 기씨 일족은 연유를 따지지도 않고, 기승, 오장을 죽여버렸다. 이는 진경공에게 오랫동안 기다렸던 구실을 마련해주었다. 그리하여 진경공은 이를 기화로 기씨, 양설씨를 멸족시켜 버린 것이ㅏ.

 

기씨, 양설씨가 멸족되자 진경공은 기씨의 영지를 7 ()으로 나누고, 양설씨의 영지를 3 현으로 나눈다. 10 현은 중앙정부 직속의 영지로, 진나라의 국왕이 직접 관할했다. 진경공이 기씨, 양설씨를 타도한 것은 중국고대의 호족을 타도한 전형적인 사례이다. 원래 진경공이 중시한 것은 기승, 오장의 자유권이 아니라, 기씨, 양설씨의 대량토지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