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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문화

중국문화의 빛과 그림자 - "그림자"

by 중은우시 2010. 9. 24.

: 주유광(周有光)

 

중국문화는 빛도 있지만 그림자도 있다. 그림자가 어떤 때는 빛을 전부 덮어버린다. 태평성대를 노래하는 속에서 그림자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한다면 이는 스스로를 속이는 것일 뿐이다. 그림자를 정면에서 응시하는 것이 진보의 출발점이다. 여기에서 가지 사항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중국문화에 대한 영향력에서 노자는 공자 다음으로 강하다. 노자의 중대한 ‘공헌’은 그의 우민철학(愚民哲學) 있다. 그는 말했다: “그 마음을 비우면 배를 채울 있다. 뜻을 약화시키면 뼈가 강해진다. 백성들을 알지 못하고 욕심없게 만들어야 하고, 지혜있는 자는 감히 행동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백성이 지혜가 많으면,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 “지혜가 나오면 거짓이 있게 된다” “백성들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그들이 지식이 많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도를 아는 자는, 백성들이 알게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모르게 하는 것이다”. 한비자도 이렇게 말했다: “백성의 지식은 그것이 올바르다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관리를 뽑을 현명하고 지식있는 자를 뽑으려 하거나, 정치를 하면서 백성의 뜻에 맞추려고 하는 것은 모두 난세를 불러오는 근원이고, 이를 제대로 다스린다고 수가 없다” “백성의 마음을 얻는 것을 가지고 다스린다고 한다면, 이윤, 관중 같은 사람은 필요가 없다. 그저 백성의 말을 들으면 뿐이다” “현명한 군주는 백성의 힘을 이용하지, 백성을 말을 듣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들은 죄짓는 것이 두려워 감히 말하지 못하고, 지혜있는 자는 다투지 못하게 하라” “현명한 군주의 나라는 서간의 글이 없고 법으로 가르치며, 선왕의 말이 없고 관리를 모법으로 삼는다”. 이들 글에서 ‘백성을 알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모르게 하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이 죄짓는 것이 두려워 감하 말하지 못하게 하라”. 얼마나 직설적인 표현인가? 우민철학은 문명고국 중국을 문맹고국으로 만들었다.

 

언론을 통제하고, 글자 하나만 잘못써도 감옥에 보내는 것은 역대제왕의 독재수단이었다. 진시황의 분서갱유, 역대왕조의 문자옥이 그러했고, 청나라는 가장 심했다. 글을 잘못쓰거나 시를 잘못쓰면 감옥에 갔는데, 갈수록 심해져서 피바람이 불었다. 되돌아보기조차 싫은 시기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있는데, 중국의 제왕은 문자옥 열중하고 있었다.

 

불교, 도교와 이학의 교조화는 중국은 연약하게 만들었다. 이는 기독교가 서구를 암흑시대로 몰아간 것과 유사하다. 서구문화는 그리스와 로마의 창조정신을 기초로 한다. 나중에 동방(팔레스타인)에서 기독교가 전래되었다. 이에 대항하나 실패한 , 로마정신과 기독교는 합쳐져서 기독교문화가 된다. 로마교황청이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보라. 이를 보면 서태후가 유신운동을 말살하려한 것을 충분히 이해할 있을 것이다.

 

하늘이 바뀌지 않으면, 도가 바뀌지 않는다. 진화론은 천리에 위배된다. 이학은 현상(玄想) 강조했고, 과학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 그리하여,  <<황제내경>> 최고의 의학이 되고, ‘천년비방’이 만병통치약이 된다. 고대를 배우는 것이 학문이 되고, 현대를 배우는 것은 학문이 아니게 된다. ‘천인합일’ ‘내성외왕’ 이처럼 낡고 진부한 개념을 가지고 도학선생들은 21세기에도 교화시키겠다고 한다.

 

중국에도 민본사상은 있었다. 그러나 민본사상이 민주사상인 것은 아니다. 일본의 메이지유신이 성공하는데, 중국의 무술변법은 실패한다. 법치를 제창하고, 포청천이 활약한다. 특권도 있고 기밀권도 있는데, 어떻게 깨끗한 정치가 이루어지겠는가? 매관매직이 성행하는 것은 천년의 관례이다. 진시황때 궁중의 기밀이 누설되었는데, 주범을 잡지 못했다. 그는 의심가는 자는 모조리 죽여버렸다.

 

맹자는 생산을 중시했다. 그러나 사대부는 생산을 그저 농민들의 일이라고만 여겼다. 공자가 말했다. “골고루 나누면 가난한 자가 없다(均無貧). “가난한 것을 우려할 것이 아니라 고르지 못한 것을 우려해야 하나(不患寡而患不均). 가난한 것은 두렵지 않다. 그저 모두 가난하지 않을까봐 걱정될 뿐이다. “균무빈”의 이념이 문인학사의 마음에 깊이 뿌리박혀 있고, 널리 민중에게도 퍼졌다. “안빈낙도”가 군자가 일이다. 장사를 해서 부자가 되는 것은 군자가 일이 아니다. 농사로 나라의 근본을 삼고, 소농경제를 중시하고, 농업을 중시하며 상업을 경시하고, 층층이 착취하고, 경제가 봉건의 겹겹 속박을 받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확대재생산이 어찌 이루어질 있겠는가?

 

청나라말기의 혁신파들이 내놓은 개혁원칙은 “중학위체, 서학위용(中學爲體, 西學爲用)”의 소위 중체서용이다. 실제로는 봉건을 체로 하며, 총포를 용으로 한다는 것이다. 체와 용이 분열되는 것은 생산관계와 생산력이 분리되는 것이다. 이는 생산관계는 반드시 적합한 생산력을 기초로 한다는 기본 법칙에 어긋난다. 명목상으로는 혁신이지만, 실제로는 수구이다.

 

“격물치지”는 과학으로 발전하지 못했고, “민본사상”은 민주제도로 승화되지 못했다. 과학과 민주는 서구가 중세기를 탈피하여 현대로 접어든 관문이다. 서구와 반대로, 중국문화는 불교의 출가사상을 받아들여 유학의 속세철학에서 이학의 ‘준출가’철학으로 바뀐다. 중국역사의 발전은 잘못된 길로 접어든 것이다.

 

이상에서 얘기한 것은 그림자의 모습이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이것만 보아도 얼마나 무서운지 있을 것이다. 그림자의 위해는 그것이 보였다 보이지 않았다 한다는 것이다. 언제든지 폭발할 있다. 심지어 미명하에서 추악한 일을 저지를 있다. 봉건제도를 위하여 2500년간 봉사해온 중국문화는 현대문화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탈태환골의 대수술이 필요하다. 만일 중국문화의 그림자가 이론적으로 철저히 비판받지 않고, 제도적으로 엄격히 방지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림자의 유산 속에서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해야 것이다. 과거를 청산하는 것만이, 미래를 창조할 있다. 중국문화의 임무는 크고 길은 멀다(任重而道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