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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골동

“문화재밀수왕국” 탐방기

by 중은우시 2010. 9. 20.

: 오수(吳樹)

 

겉으로 보기에는 보잘 것없는 빌라였다. 허페이(合肥) 교외에 있는 버려진 면화밭 속에 있었다. 부지위에 2층짜리 건물의 외벽은 오렌지색의 타일을 붙여놓았고, 사방에는 검은색의 쇠난간이 둘러쳐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다른 건물보다 나은 점이 별로 없어보이는 빌라이지만, 가까이 살고 있는 이웃들의 말에 따르면 휘황찬란한 왕궁이라고 한다.

 

“말도 마세요. 인테리어에만 1000만위안(18) 들었다고 합니다. 안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는 보지 못했지만. 개가 다섯 마리나 있지 않느냐. 서면 사람보다 키가 정도이다. 하루종일 건물을 돌고 있다. 경비병 한부대와 같다. 개도 한마리에 수십만위안에 사들였다고 한다. 먹는 사료값만 하루에 2천위안이나 한다고 한다. 만일 담장에 가까이 가면, 개들은 눈을 부릅뜨고 달려들 것이다. 담장 때문에 살을 물어뜯지는 않겠지만, 간담은 서늘해 것이다. 다시는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못낼 정도로.

 

빌라에 가까이 살고 있는 면화장(棉花匠) 류뤄궈(劉羅鍋) 이렇게 말했다. 지나가다가 빌라를 바라보는 사람이면 놀라서 한번 쳐다보게 만들었다. 기자도 그의 말에 겁을 먹었다.

 

“사실, 그들 부부가 처음에 왔을 때는 시골사람같았습니다. 입는 것도 시골스럽고, 말하는 것도 안휘북부 사투리가 심했습니다. 입만 열면, ‘다소(아저씨) ‘다니(아줌마)’라고 했으니까요. 이년도 되지 않아 부자가 되었고, 거의 국왕같이 되었습니다. 정말로 횡재를 하지 않고서는 부자가 없는 것같습니다. 이웃의 아주머니가 질투심을 감추지 않으며 이렇게 말했다.

 

맞다. 빌라의 주인은 바로 그대로 ‘국왕’이라고 있다. 그는 전중국, 전세계의 문화재시장에서 호풍환우하는 지하청동왕국(地下靑銅王國) 장악하고 있다. 국왕의 이름은 두민(杜敏)으로 안휘 수현 사람이다. 1963년생이고, 1981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군대에 들어갔다. 퇴역후 수현 도점향정부에서 회계를 지냈다. 1990년에 사직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주로 골동품 장사를 했다.

 

안휘 수현은 전국시대에 초나라의 수도였던 적이 있다. 지하문화재가 풍부하다. 두민은 어려서부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거기에다가 본인도 총명하고, 연구를 좋아하였다. 공무원을 그만둔 , 청동기감정에서 뛰어난 재능을 선보인다. 그의 손을 거친 청동기는 판매가격이 다른 사람의 것보다도 수십배 비쌌다. 점점, 그는 업계내에서 명성을 얻게 되고, 그의 곁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된다. 어떤 사람은 그를 위하여 ‘청동기구매’를 해주고, 어떤 사람은 그를 도와서 판매루트를 개척해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은 분업이 명확하고, 조직이 엄밀한 문화재밀수집단으로 성장한다. 이들은 금방 중국청동기문화재 밀수시장의 절반을 차지한다.

 

필자가 ‘국왕’을 배알했을 , 그는 혼자서 지하실의 거실에 앉아 있었다. 그는 상나라때의 가지 청동주구(酒具) – 기룡문굉(夔龍紋觥), 봉문존(鳳紋尊). 손으로 문지르기도 하고, 입술에 대고 건배하는 모양을 하기도 했다. 빌라의 인테리어는 아주 신경을 것이었다. 어떤 방은 호화스럽다고 있을 정도였다. 겉으로 보기에 집의 주인은 중국농민의 ‘부를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심리상태도 엿볼 있으면서, 또한 일반적인 졸부의 금전으로 체면을 살리려는 허영심리도 엿볼 있다.

 

“스물 글자의 명문은 상나라 군왕이 술을 마실 쓰던 것이다. 하루종일 이들 문화재를 가지고 놀면, 어떤 때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린다. 한때는 국왕이 되었닥, 한때는 도적이 되고…나는 일반적으로 모르는 사람과는 얘기하지 않는다. 명성이 높아지다보니, 나를 해치려는 사람도 많다. 그렇지만 구가의 체면을 봐주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는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구가”는 나의 친구이다. 북경 골동품업계에서 ‘조삼대(早三代, ,,) 청동기 수장가이다. 그는 냄새를 맡아서, 전국의 어느 곳에 좋은 물건이 나타나면, 그의 시선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를 개같이 후각이 뛰어나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필자가 지하왕국에 들어올 있었던 것은 바로 그가 연결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진품입니까? 두중의 안중무인의 태도를 보자, 나는 바로 그의 물건에 대하여 의심부터 드러내서, 그를 자극시키고자 했다. 골동품업계에서 가장 꺼리는 것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물건을 ‘가짜’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주인의 안력과 품행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과연 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두민은 바로 고개를 들어 반격했다: “네 생각에 집안에 가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솔직히 말해주겠다. 집에 있는 것은 모두 국보급이다. 네가 믿지 못한겠지만, 아무나 집문을 들어설 있는게 아니다. 구가가 소개해주지 않았다면 너는 이들 물건을 쳐다볼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어째서 그렇게 자신하는가? 이것들은 전문가의 감정을 거친 것인가? 나는 더욱 몰아부쳤다. 그가 이성을 잃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무슨 전문가? 헛소리만 하는 놈들이다. 모두 사기꾼들이다. 진짜는 가짜라고 말하고, 가짜는 진짜라고 말한다. 구가가 너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얘기해주지 않았느냐? 두민은 마침내 안에 들고 있던 청동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며 가늠해보는 것같았다.

 

“그렇게 말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전문가는 전문가니까요. 물건을 전문가들이 인정하면, 박물관에 들어갈 있지 않습니까.

 

“헛소리. 물건들이 박물관에 들어갈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말해주겠다.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국외의 여러 박물관에서 청동기를 사가지 않은 곳이 없다.

 

“허풍아니냐. 박물관들이 어떻게 내력도 불분명한 이런 청동기를 사간단 말인가?

 

“내력이 불분명하다니 무슨 소리냐. 헛소리 말라. 두민은 이미 나의 말에 격동하기 시작했다. 일어서더니 나를 보고 소리쳤다: “네가 아느냐. 나의 물건들은 모두 상세한 자료가 있다. 언제 어디서 출토했는지…. 여기까지 말하고는 두민이 멈추었다. 아마도 꺼리는 것이 있어서일 것이다.

 

“이것들이 문물자료가 있다고? 너무 쉽지않은가. 판자위안의 노점에서 팔고 있는 농민들도 이야기는 개든지 만들어낼 수가 있다. 나는 더욱 화를 돋구었다.

 

“내 물건과 노점물건이 같단 말인가? 두민의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거의 이성을 잃을 지경이 되었다.

 

“당신과 그들이 뭐가 다르단 말인가? 나는 불에 기름을 부었다.

 

“말해줄 테니 들어봐라. 첫째, 나는 중국에서 실전경험이 가장 풍부한 청동기전문가이다. 무슨 물건이든 내가 한번 보면, 어느 성에서 모방해서 만든 것인지, 어느 지방에서 출도된 것인지 판결할 있다. 그들이 알겠는가? 둘째, 물건은 출토하기 전에 미리 내가 가서 봐둔 후에 언제 파라고 하면 그들이 파낸다. 감히 나를 속일 수는 없다. 그들이 살고싶지 않은 다음에야. 셋째, 나의 청동기는 출국하기 전에 이미 주인을 찾아놓는다. 물건이 도착할 돈도 도착한다. 어느 골동상이 이렇게 있단 말인가? 분노한 두민은 자신의 비밀까지 털어놓았다.

 

“좋다. 당신물건이 진짜라고 치자. 어떻게 외국의 박물관에 들어갈 있단 말인가? 세관도 허수아비이고, 밥통이란 말인가?

 

“너에게 말해주겠다. 나는 일을 ,팔년이나 해왔다. 물건을 내보내고 들여오는데 아무런 장애도 없다. 한번도 세관에 걸린 적이 없다. 못믿겠으면 구가에게 물어봐라. . 내가 얘기를 더해주겠다…”

 

바로 이때, 불청객이 지하실로 들어왔다. 그는 스무살남짓인데, 들어오자마자 질문을 퍼부었다: “두 어르신 너무 하십니다. 내가 얘기를 다해 놓은 것을 어떻게 중간에 빼돌립니까. 확실히 젊은이는 곳에 자주 들르는 사람인 듯하다. 통보도 하지 않고 바로 들어온 것으로 봐서.

 

내가 자리에 있었으므로, 두민은 난감한 듯했다. 여러 그를 누그러뜨리려고 했다. 그래도 상대방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젊은이는 기관총처럼 그에게 쏘아대다가, 한마디를 남기고 떠나버렸다: “하고싶은대로 해보십시오. 업계에서, 아무리 심하게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장사를 막아서는 안되지 않습니까.

 

“흥. 가짜나 팔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주제에, 여기와서 소란을 피우다니. 오줌을 눠서 자신을 비춰봐야지, 나한테 뭐라고 한단 말인가” 젊은이가 떠난 후에, 두민은 체면이 상했다고 생각했는지, 화를 참지 못하고 말했다. 나와 얘기할 마음도 없어진 것같다. 그는 그만 떠나라는 말투로 말했다: “청동기는 네가 가격을 수가 없을 테니, 도기나 하나 보내주겠다. 구가에 대한 인사라고 생각하라.

 

두민을 만난지 며칠 , 안휘성 공안국 형경총대는 고발장을 받는다. 수현 사람 두민이 개의 상나라 청동기를 가지고 있는데, 홍콩사람에게 팔아서 불법이익 1200만위안을 얻었다. 고발장에는 두민이 돈씀씀이가 크고 돈을 물처럼 쓴다. 문화재밀반출로 졸부가 되었다고 덧붙였다.

 

안휘성 공안청은 일을 문화재부서에 물어보았는데, 되돌아온 답변은 이러했다: “만일 고발장의 내용이 사실이면, 밀반출된 물건은 국보급의 진귀한 문화재이다. 공안부서에서 문화재를 회수해주기를 바란다.

 

국가중요문화재밀수사건이므로, 두민은 안휘 경찰의 조사대상이 되었다. 하루빨리 사건의 단서를 잡기 위하여, 경찰은 먼저 두민의 은행구좌를 조사하기로 결정한다. 그와 거래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려고 것이다. 청동기거래는 모두 거래금액이 크다. 걸핏하면 수백, 수천만위안이다. 모조리 현금으로 거래하기는 불가능한 형편이다.

 

며칠후, 경찰은 비밀조사를 통해서 밝혀냈다. 2001년까지, 두민의 은행구좌에서 거래금액이 매건당 100만위안이상이었다. 이년간 합계금액이 9000여만위안이었다. 그의 경영상황으로 보면, 경찰은 이것들이 모두 문화재밀수대금이라고 단정할 있었다. 다른 구좌에 따르면, 두민의 초기 거래처는 광저우, 선전의 고객이었다. 나중에는 점차 홍콩, 마카오 고객이 많아진다. 이런 여러가지 현상을 보면, 두민의 문화재밀반출은 단계로 나뉜다는 것을 있다. 초기에는 주로 광동사람을 통해서 해외로 보냈고, 나중에는 사람을 많이 알게 되면서, 아예 중개업자를 통하지 않고, 불법으로 손에 넣은 문화재를 직접 홍콩, 마카오 등지로 밀반출했다.

 

2개월의 외곽조사와 증거수집으로, 안휘 경찰은 두민일당의 국가중요문화재밀반출 범죄행위의 개요를 파악하고, 즉시 두민의 관계망에 내선을 심는다. 언제든지 그의 새로운 범죄증거를 파악할 있도록 해두었다. 두민 밀수집단에 대한 천라지망이 펼쳐진 것이다.

 

두민이 전매한 청동문화재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모두 홍콩과 마카오에 관련되고, 양안삼지의 법률은 약간씩 차이가 있다. 홍콩과 마카오에서, 문화재를 매매하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 이는 전문수사팀이 사건을 해결하는데 난점이 아닐 없다. 전문수사팀이 홍콩,마카오의 경찰의 협조를 받아내어, 그들의 협력하에, 두민의 범죄사실을 기본적으로 파악하고, 성공적으로 일부 문화재를 회수하기도 했다. 4건의 청동격(靑銅鬲), 1건의 청동제량유(靑銅提粱), 2건의 청동호(靑銅壺) 모두 국가2급문화재들이다.

 

기회는 빨리 왔다. 2003 7월말, 전문수사팀은 내부정보를 받는다. 두민이 30만위안의 가격으로 허페이시에서 수면문동정(獸面紋銅鼎) 매입했다는 것이다. 그후 연이어 외부로 물건을 찾아다니는 것으로 봐서는 거래를 하나 성사시키려고 한다는 것을 있었다. 며칠 , 내부정보원이 다시 소식을 보내온다: 마카오 문화재밀수업자 왕언성(王恩生) 보디가드를 데리고 허페이로 왔고, 두민의 빌라에서 9건의 청동기를 구매하는 거래를 마쳤다는 것이다. 다음날 오후에 자동차를 하나 리스하여 허페이를 떠날 예정이라고 했다.

 

다음날 오후, 자동차는 고속도로에서 경찰에 붙잡히고, 왕언성 일행 3명은 법망에 걸려든다. 9건의 청동기도 몰수되었다. 조사초기에 왕언성은 여러가지 변명을 늘어놓았다. 차안에 실린 청동기는 자신이 허페이의 골동품시장에서 구매한 ‘공예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경찰에 두민이 준비해준 가게의 세금영수증도 꺼내서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어떤 수법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중에 국가문화재국 국가문화재감정위원회가 감정한 바에 따르면, 이번에 두민이 거래한 9건의 청동기는 모두 국가중요문화재이다. 그중 수면문동정은 국가1급문화재이다; 3건의 기봉문개정, 2건의 ‘주면’절과 1건의 봉문절은 모두 국가2급문화재이다. 1건의 용문입와문이와 1건의 와문이는 모두 국가3급문화재이다. 모든 물증을 보면 두민의 말이 헛소리가 아니었음을 있다. 그의 손을 거친 것은 모두 진품이었다.

 

왕언성은 수사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진술했다. 그는 1999 광저우의 골동품시장에서 두민을 알게 되었고, 그이후 계속하여 두민으로부터 물건을 구입했다. 얼마전에, 그는 두민에게서 동고수룡문수이함환굴 1, 동고수룡절 2, 동환대문쌍룡이함환호 4, 동절곡문이 1, 동절곡문부이정 1건을 매입했다. 문화재는 마카오로 들어온 , 화야연일문화예술반전공사가 수탁받아 매입한 , 북경중무성가국제경매유한공사에 매각하였다. 이들 청동기를 회수한 북경시문화재감정위원회가 감정한 바에 따르면 모두 국가2급문화재였다.

 

곧이어 안휘경찰은 주범인 두민에 대한 체포에 돌입한다. 그리고 그의 거점에서 청동기 100여점을 압수한다. 두민은 속수무책으로 체포된 , 체포장에 서명했다. 이에 이르러 그의 ‘청동왕국’은 무너진다.

 

사건이 끝날 때까지, 3.25’전문수사팀은 각종 문화재 563건을 압수했다. 거기에 국가1급문화재는 13, 2급문화재는 32, 3급문화재는 83, 일반문화재는 289건이었다. 심문후에 알게 것은 이들은 두민집단이 밀반출시킨 문화재중 극히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2004 7 20, 안휘성 고급인민법워은 두민일당에 대한 최종판결을 내린다. 문화재밀수죄와 문화재매매죄로 두민, 왕언성은 무기징역, 나머지 사람들은 유기징역 2 내지 13년형을 받았다. 홍콩의 골동품상에게 들은 바로는 이후 상당한 기간동안 홍콩 내지 국제문화재시장에 중국고대청동기는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아 가격이 많이 올라갔다고 한다.

 

짧은 3년동안 두민일당은 어떻게 수천건의 문화재를 순조롭게 해외로 빼돌릴 있었을까? 이에 많은 사람들은 놀람을 금치 못한다.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이들을 밀반출시킬 있었단 말인가.

 

답은 놀랄 정도였다: 두민 사건에 관련된 왕언성, 마장성등 국제문화재밀수꾼들이 진술한 바에 따르면, 그들은 10여년간 밀수하면서, 문화재를 반출하는데 한번도 실수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그들이 문화재를 반출하는 방식은 간단했다. 주로 3가지 방식이다.

 

첫째는 직접 휴대하여 나가는 것이다. 마장성에 따르면, 그들의 렉서스차량은 광동, 홍콩 곳의 번호표를 붙이고 있는데, 자주 양지역을 오간다. 세관의 사람들도 자주 다니다보니 익숙해졌다. 차에 올라서 검사를 하기는 하지만, 몇마디 묻고는 가는 정도였다. 그들은 승용차의 짐칸에 청동기를 넣고 적도 있었다. 누가 보면, 그냥 공예품을 구매해서 선물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둘째는 ‘문화재보따리상”을 이용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문화재밀수활동이 빈번해지면서, 변경일대에는 새로운 직업이 나타났는데, 문화재보따리상이다. 이들은 대부분 변경부근에 살고 있고, 지형에 익숙하다. 그리고 여러 요로의 사람들을 안다. 두민이 토로한 바에 따르면, 국외로 보내는 주요 통로는 ‘문화재보따리상’들을 고용하는 것인데, 한번도 실수한 적이 없다고 한다.

 

셋째는 문화재를 내지와 홍콩,마카오를 자주 오가는 농민들에게 맡기는 것이다. 그들의 등짐이나 보따리에 넣어서 보낸다. 밀수꾼은 그들의 바루 뒤를 따라가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농민들에게 100-200위안의 보수를 지급한다.

 

전설적인 ‘청동왕국’은 무너졌다. ‘국왕’ 두민과 그의 신하들은 형사처벌을 받고 역사무대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범죄집단의 복사판은 여전히 중국의 여러 지방에서 파생적으로 나타나고 있다